‘보수 변곡점’ 한동훈 등판 초읽기

‘몰락한 황태자’ 다시 왕좌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자취를 감춘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복귀설에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다. ‘윤석열의 황태자’에서 한순간에 ‘배신자’로 낙인찍혔지만, 아직은 심폐소생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여당과 극우가 밀착한 지금이 오히려 적기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 전 대표는 질주하는 국민의힘에 제동을 걸 수 있을까?

지난해 12월16일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여의도를 떠났다. 12·3 내란 사태 이후 최고위원들이 줄사퇴하자 정상적인 당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비상계엄 사태로 고통받은 모든 국민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인 한 전 대표는 “나라가 잘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끝으로 당 대표직을 내려놨다.

부활전

그런 한 대표가 지난 16일 복귀탄을 쏘아 올렸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지난 두 달 동안 많은 분의 말씀을 경청하고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책을 한 권 쓰고 있다”며 “머지않아 찾아뵙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서 가결됐지만 보수는 오히려 똘똘 뭉치는 양상을 띠는, 이른바 ‘극우화’ 현상이 한 전 대표의 등판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최근에는 국민의힘에서조차 여당이 극우 세력과 극우 유튜버에게 끌려다니느라 닥쳐올 미래를 전혀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는 점에서다.

‘조기 대선’이 금기어로 여겨지는 상황서 국민의힘에서는 과연 누가 대선후보로 뛰어야 할지 갈피조차 잡지 못하는 모양새다. 그러는 동안 한 전 대표는 차기 대선주자를 묻는 여론조사에 꾸준히 이름을 올렸다. 그럼에도 정작 본인은 SNS 활동을 최소화하면서 현실 정치와 거리를 뒀다.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 역시 한 전 대표의 등판 시기에 대한 취재진의 질의에 즉답을 피했다.

성급하게 나서기보다는 정치 동향을 파악한 뒤 정치권의 부름에 응답하는 식으로 전략을 세워 재등판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그런 한 대표가 본격적으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건 지난 설 연휴가 끝난 이후부터다.

정치권에 따르면 한 전 대표는 보수 원로를 비롯한 국민의힘 의원들과 접촉하며 복귀 시기를 재고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변론기일이 끝난 직후인 2월 말이나 탄핵 결과가 나오는 3월 초 즈음에 한 전 대표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며 “이 시기를 놓친다면 두 번째 기회는 장담할 수 없다. 지금처럼 어수선할 때 한 전 대표가 꾸준히 밀던 ‘차별화’ 전략이 먹히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제대로 된 진짜 보수”다시 뭉치는 친한계
어쩌면 마지막 기회…대권 열차 올라타나

‘2말3초 등판설’에 힘이 실리면서 한 전 대표의 측근으로 이루어진 모임 ‘언더73’의 움직임도 덩달아 빨라졌다. 해당 모임은 73년생인 한 전 대표와 나이대가 비슷한 정치인 모임으로 국민의힘 김상욱·김예지·진종오 의원을 비롯해 박상수 인천서구갑 당협위원장·정혜림 전 부대변인·류제화 세종시갑 당협위원장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짜기 위해 73년생 이하의 젊고 지적인 정치인들이 뭉쳤다!”는 소개 글을 작성했다. 젊은 정치인을 주축으로 극우 세력과 거리를 두는 ‘건강한 보수’ ‘진짜 보수’를 내세워 세대교체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언더73은 지난 7일 서울 동작구 김영삼 도서관을 찾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이사장과 만남을 가졌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김영삼 정신은 2025년 오늘, 정통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이 계승해야 할 자랑스러운 역사와 전통”이라며 “기필코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자.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국민이 주인 되는 정치”라고 밝혔다.

이들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제안한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를 환영하면서도 “소환 1호는 이재명 대표”라고 말해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이는 정권교체론에는 공감하면서도 “윤도 싫고 이도 싫다”는 비토 세력을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 변론기일이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친윤(친 윤석열) 세력은 강하게 결집했다. 국민의힘 친윤계는 지난 10일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윤 대통령을 접견하고 탄핵 심판 7차 변론을 방청하는 등 지지층을 향해 지속적인 메시지를 던졌다.

친한계도 지지 않고 한 전 대표 복귀설에 부지런히 군불을 땠다.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은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확정되진 않았지만 윤 대통령 최종 변론 이후 2월 하순이 한 전 대표의 가장 빠른 복귀 시점이 될 것 같다”고 다시 한번 복귀설을 띄웠다.

정 의원은 “한 전 대표가 더는 (복귀를)늦출 수 없는 부분 중 하나가 광장 정치를 하는 우리 강성보수 지지층들 발언이 보수 전체를 대변하는 듯한 느낌의 목소리로 지금 나오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분명히 그 목소리도 있지만 이걸 걱정하며 ‘이게 아닌데’ 하는 목소리도 생각보다 많다”고 설명했다.

‘한 전 대표가 조기 대선 경선에 임할 수 있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는 “그럴 가능성도 있다”며 “우리가 정권을 재창출하고 보수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선 ‘한동훈이 대안이구나’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너무 늦게 나올 수는 없다”고 답했다.

국힘 당내서도 극우화 우려
“계엄 반대” 중도 확장성은?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역시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국민의힘이 극우 집회에 참여하는 점을 지적했다. 한 전 대표의 출마 가능성에 대해서는 “한 전 대표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며 “일단 정치에 참여한 이상 자기 나름대로 뜻을 펼치려면 한번 큰 뜻을 품고 무대에 출연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전당대회 당시)63%라고 하는 절대적인 다수가 한 전 대표를 선택했기 때문에 그 뿌리가 아직 없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대선이 조기에 열린다면 어느 후보보다(국민의힘에서) 한 전 대표가 제일 확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한 전 대표가 내세울 수 있는 차별점은 비상계엄을 반대했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날, 한 전 대표는 메신저를 통해 의원들을 국회로 소집했으며 “국민과 함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 비상계엄을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배신자 프레임’이 한층 두터워졌지만,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거부감을 느낀 보수 지지층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당길 명분을 만들었다.

국민의힘이 고착화된 상황서 한 전 대표가 복귀하더라도 ‘이재명 대항마’로 자리를 굳힐지 미지수다. 짧은 텀을 두고 비상대책위원장, 당 대표를 역임했지만 번번이 마무리가 좋지 못했던 만큼 정치인으로서의 평가와 당내 세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관문

‘검사 윤석열’에 이어 ‘검사 한동훈’까지, 이어지는 검사 프레임 역시 부담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한 전 대표가 당 대표로 출마한 데에는 검사 이미지를 빠르게 탈피하고 정치인으로서의 면모를 다지기 위한 포석이 깔려 있었을 것”이라며 “문제는 그 시기가 너무 짧아 각인이 덜 됐다. 게다가 성공 대신 실패 경험이 더 많았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국민 인식 속 ‘한동훈’이라는 사람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복귀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부름이 필요한데 그 시기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며 “지난 총선 전략이 차별화였다면 조기 대선에서는 ‘세대교체’를 기치로 내세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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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삼킨 장동혁 속내

신천지 삼킨 장동혁 속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새해 벽두부터 당명 변경·단식투쟁을 정치 문법으로 제시했다. 삼김 시대 정치 문법을 동원하는 장 대표에겐 ‘상상력 부재’란 지적을 할 수도 있다. 김종인·마키아벨리·아우구스투스가 장 대표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 12일 당명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 2020년 9월 당명을 미래통합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바꾼 후 약 5년5개월여 만이다. 이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공천 헌금·통일교 특검 수용 촉구’를 명분으로 지난 15일부터 22일까지 8일 동안 단식을 했다. ‘택갈이’ 당명 개정 외국과 달리 한국 정당사에선 유난히 당명 개정이 잦았다. 당명을 바꾸는 주된 원인은 선거 패배 수습과 당내 쇄신이다. 당의 체질은 바꾸지 않은 채 명칭만 바꾸기 때문에 당명 개정은 ‘택갈이’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새누리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꿨다고 지난 2017년 제19대 대선에서 패배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자유한국당에서 미래통합당으로 당명을 바꿨다고 지난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패배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미래통합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바꾼 후 지난 2022년 제20대 대선과 제8회 지방선거에서 이기긴 했지만, 문재인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유권자들의 호응과 국민의힘 나름의 자체 개선에 대한 주목이 더 큰 역할을 했다. 장 대표가 단식투쟁이란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던 것에 대해서도 여러 의문이 있다. 대통령실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대응하지 않았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지난 2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신임 홍익표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제1 야당 대표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심각하게 인식하길 바란다”며 “홍 수석을 단식농성장에서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강명구 의원도 같은 날 채널A 라디오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인간적 도리로 장 대표를 걱정·위로·격려하는 게 맞다”며 “이재명 대통령도 홍 수석이라도 보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어 “조정식 대통령 정무특보도 한번 찾아오지 않았고,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며 “우리 정치 역사에 없었던 일인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직접 와서 야당 대표 얘기를 듣고 이재명 대통령에게 전달해 달라”고 요구했다. 통상의 정치 문법에 따르면, 대통령실·여당은 야당 대표의 극한 투쟁을 자제시키기 위해 먼저 움직인다. 하지만 장 대표의 단식투쟁에 대해선 단식 투쟁자와 그 주변에서 “제발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당명 변경·단식 투쟁은 20세기 대한민국 정치, 특히 삼김 시대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엔 당명 변경이 1인자 교체·정계 개편 등 강력한 정치적 파문을 거친 후 이를 상징적으로 정리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단식투쟁은 군사독재 시절 야당 지도자의 최후 항거 수단이었다. 세월이 흘러 수단이 남용되면서 그 수단이 지니는 정치적 의미가 축소됐다. 이젠 야당 대표가 단식을 하든 말든 대통령실·여당이 무시하는 시대다. 장 대표가 삼김 시대를 상징하는 정치 문법인 당명 변경·단식투쟁을 선택한 것을 놓고, 일각에선 “장 대표의 정치 문법이 너무 정직한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아울러 단식 중단 결정에 대해서도 “중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당명 변경·단식투쟁…장의 ‘정직한 정치’ 법관 출신·위기 없는 안락함…절박함 없어 통일교·신천지의 정교유착 비리 의혹을 수사하는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장 대표의 단식 하루 전인 지난 21일 신천지 전직 강사로부터 “지난 2021년 6~7월경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지역 지파장으로부터 국민의힘 가입 지시를 받아 신도들을 가입시켰다”는 진술을 받았다.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을 돕기 위해 국민의힘에 가입해야 한다는 기류가 팽배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민주당은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을 다루는 특검법에 신천지 관련 의혹도 포함해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 대표의 단식투쟁 출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만들어줬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2일 국회를 전격 방문해 장 대표의 단식을 만류했고, 장 대표는 이를 수용해 단식을 중단한 후 병원으로 이송됐다. 장 대표는 “좀 더 길고 큰 싸움을 위해서”라는 단식 중단 명분을 제시했다. 아울러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는 지난 13일 장 대표와 사이가 좋지 않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 대해 당원 게시판 의혹과 관련해 제명을 결정했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 전한길·고성국씨와 밀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씨는 지난해 7월에, 고씨도 지난 6일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세력과의 밀착을 토대로 국민의힘 안에 ‘장동혁계’를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장 대표는 광주지법 부장판사를 지낸 법관 출신이다. 여의도엔 수많은 법관 출신 정치인이 있었다. 법관은 법전·판례란 과거의 흔적을 토대로 현재를 심판한다. 하지만 정치는 다르다. 현재를 토대로 과거를 참고하면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법관도 새로운 판례를 개척하고 싶은 욕심이 있을 땐 미래를 의식하지만, 판단의 중심은 현재에 맞춰져 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전 대표는 지난 2002년 대선 출마 당시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로부터 “북한이 서해 5도에서 무력 도발하면, 즉시 육법전서를 가져오라고 할 사람”이란 비난을 들었다. 유권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각종 선거 기법을 활용해 많은 고비를 넘는 선거를 치른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이 전 대표가 패배했던 이유가 함축됐던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판사 출신 정치인에게 한정된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개혁신당 이준석 대표·한 전 대표 등 정적들에게 검사 재직 시절 관성으로 범죄자를 바라보듯 대응하다가 정치적으로 몰락했다. 한 전 대표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지난 2024년 총선을 지휘하면서 이 대통령과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를 범죄자로 규정한 ‘이조심판론’을 과도하게 내세우다가 패배했다. 현재의 문제점을 토대로 미래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정치·선거 영역에서 과도하게 직업적 관성을 내세우다가 정치적으로 패배한 사례들이다. 장 대표는 지난 2020년 제21대 총선에 출마해 정계에 입문한 이후 큰 정치적 위기를 겪지 않았다. 그가 정치에 입문한 후 겪은 좌절은 제21대 총선 패배와 대전시장 경선 패배가 있다. 물론 이 같은 사례는 다른 정치인도 흔히 겪는 일이기 때문에 두드러지는 좌절이라고 평가하긴 어렵다. 얻은 것 잃은 것 장 대표는 지난 2022년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됐다. 이어 지난 2024년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후 아직 2년이 지나지 않았다. 형식적으로는 재선 의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초선 의원 임기가 아직 끝나지 않을 만큼의 의정활동을 했다. 그런데 그는 현재 제1야당 대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지난 1983년 단식은 신군부 군사정권과 맞설 정상적 정치 수단이 없었던 상황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자신의 단식을 만류하던 민주정의당 권익현 당시 사무총장이 외국행을 제안하자, 김 전 대통령은 “국민이 고생하는데 내가 어떻게 외국에 나가느냐. 나를 외국으로 보내고 싶으면, 시체로 만들어 보내면 된다”고 응수했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가택연금 중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내란음모 사건 때문에 수감생활을 하다가 형집행정지로 석방돼 미국으로 떠나 있었다. 김종필 전 총리는 권력형 부정 축재자로 몰려 정계에서 축출당한 후 은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대통령실·여당이 장 대표의 단식을 무시하는 이유는 이 같은 큰 그림과 의지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사람의 상상력은 절박한 위기에서 나온다. 판사 출신으로서 갖는 관성과 위기를 겪은 적 없는 정치 행보가 상상력 부재로 이어져 당명 변경·단식투쟁 등 삼김 시대 정치 문법을 대여 투쟁 방법으로 제시하는 현 상황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은 지난 2022년 1월 국민의힘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를 일컬어 “내가 ‘총괄선대위원장이 아니라 비서실장 노릇을 할 테니, 윤 후보도 태도를 바꿔서 선대위가 알려준대로 연기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선후보는 선대위에서 해주는대로 연기만 잘할 것 같으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늘 얘기한다”며 “대선후보는 자신의 의견이 국민 정서에 맞지 않으면 절대로 말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각종 실언 논란 때문에 하락하고 있었다. 김 전 위원장의 당시 발언은 “군주는 모든 미덕을 갖출 필요는 없지만, 갖춘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국가원수는 국가의 상징이다. 국가원수가 되려는 자의 발언·행보엔 큰 정치적 의미가 부여된다. 뉴스에 나오는 대통령의 이미지는 강하고 믿음직해야 하지만, 실제로 강하고 믿음직할 필요는 없다. 국민의 눈에 강하고 믿음직하게 보이는 것이 권력의 본질이다. 아울러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짐승의 방법을 잘 이용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여우와 사자를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마키아벨리는 이 같은 전략·도구를 ‘가상’이라고 표현했다. 윤 전 대통령은 대외적으로 투박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김 전 위원장은 윤 전 대통령에게 여우의 교활한 연기를 통한 가상 구축을 주문한 것이었다. 정치도 일종의 상품이라서 포장지가 필요하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여우의 교활한 연기’는 대중에게 교묘하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한 정치적 포장지를 의미한다. 마키아벨리는 “사람은 대체로 손으로 만져보는 것보다 눈으로 보는 것에 의해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이를 ‘연기’라는 두 글자로 축약한 것이다. 큰 그림과 의지 부재 마키아벨리가 말한 대중 기만·속임수의 극치를 보여준 사람은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였다. 아우구스투스는 40년 동안 황제로서 로마를 통치했다. 그런데 아우구스투스는 단 한 번도 스스로를 황제라고 칭하지 않았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와의 내전에서 승리한 후 종신독재 관직에 취임하면서 로마군의 최고사령관을 겸직했다. 이후 로마에선 카이사르 동상에 왕관이 씌워지거나, 일부 카이사르 지지자가 카이사르를 향해 “왕”이라고 부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카이사르에게 왕관을 씌우자, 카이사르가 이를 벗고 안토니우스에게 돌려주는 이벤트도 있었다. 공화정 사수를 주장하는 보수파는 이를 보고 크게 불안해했다. 결국 마르쿠스 브루투스 등 보수파 일부는 원로원 회의에 참석한 카이사르를 향해 무기를 들고 덤볐고, 카이사르는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카이사르의 조카손자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의 양자 자격으로 정계에 입문해 안토니우스와의 내전을 거쳐 로마의 통치자가 됐다. 그는 대중을 속여 양아버지의 전철 답습을 피하면서 로마를 통치해야 했다. 아우구스투스가 창조한 속임수는 원수정이었다. 그는 내전 승리 직후 “권력을 원로원과 로마 시민에게 반납한다”면서 자신의 통치 체제를 “회복된 공화정”이라고 명명했다. 이어 ▲제1시민·아우구스투스(존엄한 자)란 존칭이 갖는 권위 ▲최고사령관 직위 ▲근위대 지휘권 ▲호민관 특권 등을 이용해 로마를 통치했다. 제1시민은 공화정 말기 로마 원로원에서 최고 원로를 명예롭게 예우하기 위해 사용된 호칭이었다. 카르타고 전쟁에서 한니발 바르카스를 물리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에게도 부여됐던 호칭이었다. 최고사령관 직위를 의미하는 ‘임페라토르’는 승전한 장군에게 병사들이 경의를 표하던 호칭이었다. 아우구스투스는 이를 군권 1인자란 의미로 활용해 군권을 독점했다. 이탈리아 반도 내에 주둔하는 군대는 근위대가 유일했기 때문에 근위대 지휘권은 매우 중요했다. 아우구스투스는 근위대 지휘권을 통해 근위대장 임명권을 행사하면서 근위대를 통제했다. 김종인 ‘연기’ 발언 속 마키아벨리 철학 통찰해야 정치적으로는 호민권 특권을 요긴하게 활용했다. 아우구스투스는 귀족 가문 출신이라서 평민 출신이 독점하는 관직 호민관에 오를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호민관의 권한만 가져왔다. 그가 가져간 호민관 특권은 ▲신체 불가침권 ▲입법권 ▲원로원 결의 거부권 등을 의미한다. 제1시민이란 존경을 받는 군권 1인자가 호민관 특권을 가져가면 원로원보다 우월한 지위가 확고해진다. 아우구스투스는 ‘황제 아닌 황제’로 40년 넘게 로마를 통치했다. 이런 교묘한 정치 행위는 우리 정치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적 이념·행적이 전혀 다른 김종필 전 총리와 DJP 연대를 구축한 후 대통령에 당선돼 의원내각제식 연립정권을 구축했다. 비교적 진보 성향을 드러내는 소수 야당 후보로서, 거대 여당에서 분리돼 독자노선을 걷는 강경 보수 야당과 연대해 선거에서 신선한 충격을 준 후 연립정권을 구축한 독특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윤 전 대통령 당선 과정에선 세대포위론이란 정치공학 이론이 등장했다. “2030세대 여성·4050세대 다수가 지지하는 민주당을 이기기 위해선 민주당에 적대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대 이상 노년 세대가 연합해 포위해야 한다”는 취지의 이론이었다. 이는 새로운 국민의힘 지지층을 형성하는 데 이바지했고, 젊은 보수 정치인이 다수 등장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안겨줬다. 하지만 민주당과 지지자들로부터 “세대·남녀 갈라치기를 한다”는 비판을 들었다. 아울러 윤 전 대통령과 이 대표의 갈등 끝에 새로 수혈된 2030세대 신진 정치인과 지지층 상당수는 이 대표를 따라 개혁신당으로 둥지를 옮겼다. 이는 “인간은 어버이의 죽음은 쉽게 잊어도, 재산의 손실은 좀처럼 잊지 못한다”는 마키아벨리의 주장이 현실 정치에 구현된 사례라고 평가할 수 있다. 윤 전 대통령 당선 과정에선 “이 대통령보다 중도층 지지를 더 많이 얻었다”는 평가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도층은 정치 변화의 의지가 담긴 신선한 정치 문법 제시를 선호한다. 정치 문법은 결국 정치인이 대중 앞에서 선보이는 연기에 달렸다. 아우구스투스는 안토니우스 견제를 원했던 로마 최고의 논객·정치인 키케로를 상대로 예의 바른 청년 행세를 하면서 속여 그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키케로는 안토니우스를 국가의 적으로 규정한 연설을 했다.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정치 기반이 안정된 후엔 “키케로를 숙청해야 한다”는 안토니우스의 요구를 묵인했다. 아우구스투스는 당시 20세였다. 카이사르 사후 양자로서 정계에 등장한 후 불과 2년 만에 구사한 속임수였다. 아우구스투스 59년 교훈은? 안토니우스를 몰아낸 이후엔 40년 동안 원수정을 통해 로마인을 교묘하게 속였다. 아우구스투스는 만 77세로 사망하면서 “내가 인생이란 연극에서 내 배역을 충분히 잘 연기했다면, 기쁜 목소리와 박수로 날 보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당명 변경·단식 투쟁이란 삼김 시대 방식 정치 문법을 구사하는 장 대표는 그의 배우 인생 59년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