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골프서 아마추어들이 즐기는 대회 중 골프클럽동우회 대항전이나 학교 동문 대항전 등이 있다. 우리가 생각할 때 그런 대회가 근래에 생긴 것으로 여기기 쉽지만, 사실 160여년 전부터 존재했던 방식이다. 다시 말해 19세기에 행해졌던 대회 방식이 오늘날까지 이어졌다는 뜻이다.
최초로 열린 클럽동우회 대항전은 어떤 것이었을까? 1857년 7월29일부터 31일까지 3일간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서 이색 대회가 열렸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등 전 영국서 11개 골프클럽 동우회가 참가한 가운데 경기가 벌어졌다. 각 클럽은 이 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했다.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던 클럽들은 3개월 전부터 대회 준비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위대한 첫걸음
에딘버러 젠틀맨스클럽을 비롯한 4개 클럽이 모여 대회 장소를 프레스트윅이나 올드코스서 치를지 논의했다. 결국 에딘버러 젠틀맨스클럽의 강력한 주창으로 올드코스가 대회 장소로 결정됐다. 경기 방식은 3일간 하루에 18홀씩 치르는 게 골자였다.
각 팀은 2명씩 2조를 보내서 더블플레이를 진행하고, 각 팀이 2명씩 최종 선발해 22명이 출전하는 대회 방식을 택했다.
초대 대회에서는 런던의 로얄블랙히스 클럽서 참가한 조지 글레니와 리유트 스튜어트조가 우승했다. 두 사람은 로얄히스 클럽의 평생회원이었으나, 원래 세인트앤드루스 출신의 골퍼들이었다. 올드코스서 다져진 경험으로 홈그라운드처럼 경기를 운영한 것이 두 사람이 우승하게 된 요인이었다.
이 클럽 대항전은 한 해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었고, 이후 매년 경기를 이어나가게 된다.
이듬해 2회 대회가 열렸는데 이때는 팀 대항의 2인1조가 아니라 개인별 대항으로 치러졌다. 이 대회에는 많은 아마추어 선수가 참석했으며, 훗날 실질적인 영국의 아마추어 오픈대회로 불리게 된다. 2회 개인대항전은 7월28일부터 30일까지 3일간 치러졌다.
마지막 날 마지막 18홀까지 가는 접전 끝에 로버트 챔버가 데이비드 월러스를 간신히 물리치고 정상을 차지하는 명승부가 연출됐다.
톰 모리스가 제시한 시도
‘디 오픈’ 계기가 되다
1859년 열린 3회 대회에서는 또 다른 방식을 시도했는데, 대회를 2개로 나눠 실시하는 것이었다. 스크래치 골퍼, 즉 프로 선수들 간의 대결과 핸디캡을 적용받는 아마추어 선수 간 공평성에 의거한 별도의 대회를 진행한 것이다.
문헌상에서는 조지 콘디가 4 UP으로 최종 우승했다고 기록돼있다. 3년간 대회를 지속적으로 진행되기까지 프레스트윅의 헤드프로였던 올드 톰 모리스의 숨은 공로가 있었다. 1956년부터 톰 모리스는 이 대회를 처음 제안한 장본인이었다.
톰 모리스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영국의 모든 골프선수를 한 자리에 모아 자신이 주관하는 방대한 골프대회를 열고 싶었던 것이다. 개인적인 욕심이었지만 훗날 영국 골프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톰 모리스의 목표이기도 했다.
시대적인 흐름도 한몫했다. 당시 골프계에 일대 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고무볼이 발명됐다. 올드코스 공방서 스승인 알렌 로버트슨과 가죽공을 만들었던 톰 모리스는 새로운 고무공을 만들고자 프레스트윅으로 자리를 옮겼다.
역사 발자취
3회 대회가 열렸던 1859년 갑작스럽게 올드코스의 알렌 로버트슨이 사망했다. 알렌 로버트슨은 고무공 제작과 관련해 톰 모리스와 갈등을 겪었지만, 오랜 기간 톰 모리스와 사제 관계였다. 알렌 로버트슨이 세상을 떠난 것을 계기로 톰 모리스는 ‘골프의 신’으로 불리는 알렌 로버트슨을 추모한다는 명분으로 1860년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아이랜드 등 그레이트브리튼을 망라하는 전영오픈을 개최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까지 150년 넘게 이어져 온 ‘디 오픈’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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