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쏙 들어간’ 피의사실 공표 논란

같은 식구라 하는 척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배우 이선균씨가 경찰 수사를 받다 세상을 떠난 지 세 달이 다 돼간다. 그의 죽음으로 불거졌던 피의사실 공표와 관련된 조사나 처벌은 여전히 미미하다. 경찰의 실적을 위해서인지 사문화된 법조문 때문인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제2의 이씨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관련자 처벌과 관련 법 개정이 절실하다.

지난해 12월, 고 이선균 배우가 마약 투약 혐의로 수사를 받다 목숨을 끊은 후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수사 자료를 유출한 사람에 대한 징계와 피의사실이 유출된 사람에게 공표금지 청구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찰 등에 따르면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 마약범죄수사계는 이씨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상 대마·향정 혐의로 입건하고 지난해 10월부터 수사했다. 

시끌벅적
마약 사건

수사 과정서 이씨는 간이시약 검사를 비롯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1·2·3차 정밀검사에서 음성판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경찰은 지난해 12월23일 이씨를 3차로 불러 19시간에 걸친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했다. 같은 달 26일엔 변호인을 통해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의뢰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인천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에 제출했다.

마약 투약 혐의 관련 증거가 유흥업소 실장의 진술뿐이라 억울하다는 입장이 의견서에 적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결백을 주장하던 이씨는 서울 종로구 와룡공원 인근 성북구 성북동의 한 주차장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이씨가 구체적인 수사 상황과 확인되지 않은 혐의가 실시간으로 보도되자 이씨가 심적 부담감과 절망감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봤다.

실제로 이씨 사건 당시 수사 과정서만 확보할 수 있는 진술, 자료, 수사 계획 등이 지속적으로 보도됐다. 심지어는 통상 피검사자에게 결과를 알려주지 않는 마약 검사 상황이나 결과 등까지도 실시간으로 보도됐다. 게다가 수사 상황과 상관없는 이씨의 사생활이나 확인되지 않은 의혹까지 우후죽순으로 쏟아지기도 했다.

경찰 내부서 수사 자료를 유출했다는 의혹이 커지자 김희중 인천경찰청장은 “이 사건과 관련한 조사, 압수, 포렌식 등 모든 수사 과정에 변호인이 참여했고 진술을 영상 녹화하는 등 적법 절차를 준수하며 수사를 진행했다”며 “일부서 제기한 경찰의 공개 출석 요구나 수사 상황 유출은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의혹이 사그라들지 않자 경기남부청에선 인천경찰청으로부터 이씨 사건 수사 정보 유출 경위 관련 수사 의뢰를 받아 조사에 착수했다. 

경기남부청은 지난 1월18일 정식 조사에 착수하고 같은 달 23일, 이씨 수사를 진행한 인천청 마약범죄수사계와 이씨 수사 정보를 자세히 보도한 언론사 등을 압수수색하며 재빠르게 행동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수사보고서가 유출된 것은 맞다”는 수사 유출을 확인한 것 외에는 진척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내부 문건인 수사보고서를 유출한 사람이 누군지 유출 경위는 어떻게 되는지조차 파악되지 않은 것이다. 

경찰은 해당 사건에 대한 수사를 상당히 진행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홍기현 경기남부경찰청장은 지난 4일 기자 간담회 자리서 “수사 유출 목록 확인 등 필요한 수사를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며 “추가 압수수색 여부 등 자세한 수사 상황에 대해서는 언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우종수 국가수사본부장도 지난 4일 정례 간담회서 “철저하게 필요한 수사는 모두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일각에서는 경찰이 실적 수사를 지향하고 있어 징계 절차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해 4월 전국 시·도경찰청장 화상회의서 ‘마약범죄와의 전면전’을 선포하고 마약범죄 수사 유공자를 특진 임용했다.

이선균 사건 모든 수사 상황 중계 보도
징계 없이…경찰 실적 위해 처벌 안 해?

윤 청장은 “공동체를 파괴하는 테러와도 같은 마약범죄 근절을 위해 계속 노력해줄 것을 당부드린다”며 “올해 마약 특진 규모를 작년의 6배인 50명 이상으로 늘리고, 공적이 뛰어나다면 수사팀 전체도 특진시키는 등 대대적으로 포상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윤 청장의 발언 이후 경찰의 모든 기능이 마약 수사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각 시도경찰청장(본청은 국가수사본부장)이 총괄하는 합동단속추진단 설치 구상을 내놨다. 

이런 상황서 유명 연예인이 연루된 마약범죄로 이목을 끌고 수사 결과까지 좋았다면 팀 단위 특진은 떼놓은 당상인 셈이다. 한 마약수사계 경찰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다른 사건보다 마약범죄 보도가 많이 된 것은 수사 실적을 널리 알리려는 내부적인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 경찰 출신 변호사는 “이씨 사건은 경찰이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서 수사가 진척됐다”며 “내부 자료를 유출하고 또 강압적인 수사를 진행해 자백받아 사건을 마무리해 실적을 올리려는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이목을 끈 덕분인지 인천경찰청은 지난달 역대 가장 많은 6명의 총경 승진 인사를 배출한 데 이어 전국 경찰청 성과 평가에서 ‘A’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21일 경찰청이 국민의힘 김웅 의원실에 제출한 18개 시·도청 성과 평가 등급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부산청 등 4곳은 가장 높은 S 등급(상위 20% 이상)을 받았다. 인천청을 비롯해 대구·광주청 등 7곳은 A 등급(상위 40% 이상)이었다.

등급은 최고인 S부터 최하인 C까지 4개로 나뉘는데, 소속 직원의 성과급과 승진 인원에 영향을 준다.

이를 두고 부실 수사 논란과 기밀 유출 의혹에 휩싸인 인천청이 상위 두 번째에 해당하는 평가를 받은 것을 두고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경찰청 관계자는 “성과 등급은 치안 종합성과 등 각 지표를 종합 판단하는 만큼 하나의 사건이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있다”고 항변했다.

어디까지
진행됐나

경찰 내부에선 인천청이 실적을 인정받았는데 징계위원회가 열리게 되면 경찰청 전체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 있어 조사나 징계위원회 구성이 늦어지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피의사실공표죄가 이미 사문화된 조문이라는 의견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피의사실공표죄는 1953년 형법이 만들어질 때부터 존재했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부터 민감한 피의사실이 공개되면 ‘여론재판’이 이뤄져 무죄추정의 원칙은 의미를 잃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상실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였다.

형법 제126조에 따르면 검찰, 경찰 그 밖에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수행하면서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소제기 전 공표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하지만 피의사실 공표에 관련한 형사 판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지난 10년간 검찰서 피의사실 공표로 기소한 사례조차도 없다.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지난 2019년 5월 발표한 피의사실 공표 사건 조사 및 심의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08년부터 2018년까지 검찰에 피의사실 공표로 접수된 사건은 347건이지만 기소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단지 검찰서도 그저 민사소송의 대법원 판례만 참고할 뿐이다.

대법원은 지난 2002년 9월24일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 행위는 공권력에 의한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국민들에게 그 내용이 진실이라는 강한 신뢰를 부여함은 물론 그로 인해 피의자나 피해자 나아가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해 치명적인 피해를 가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수사기관의 발표는 원칙적으로 일반 국민들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항에 관해 객관적이고 충분한 증거나 자료를 바탕으로 한 사실 발표에 한정돼야 하고 이를 발표함에 있어서도 정당한 목적하에 수사 결과를 발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에 의해 공식의 절차에 따라 행해져야 하며 무죄추정 원칙에 반해 유죄를 속단하게 할 우려가 있는 표현이나 추측 또는 예단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는 표현을 피하는 등 그 내용이나 표현 방법에 대해서도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시했다.

이는 매우 엄격한 요건하에서만 허용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이 공표 목적의 공익성, 공표 내용의 공공성, 공표의 필요성, 피의사실의 객관성 및 정확성, 그 표현 방법, 침해되는 이익의 성질 및 내용 등을 두루 고려하지 않고 관행처럼 피의사실 공표를 묵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도 
흐지부지?

이를 두고 대한변호사협회 사법인권침해조사단 소속 한 변호사는 “기소 판단의 주체가 수사기관이라는 특이점서 온 현상”이라며 “수사기관의 편의적이고 자의적인 수사 관행을 타파하고 관련 법령체계를 합리적으로 재정비하기 위해 실정법을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피의사실공표죄가 사문화된 것에는 법무부와 수사기관의 공보 규칙서의 많은 예외 사항이 있는 것이 이유로 꼽히기도 한다.

예외 사항으로는 ‘오보 또는 추측성 보도가 존재하거나 발생할 것이 명백한 경우’, ‘중요 사건으로서 언론의 요청이 있는 등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는 경우’ 등 6개 사항이다.

특히 ‘중요 사건’의 범위가 넓은 것도 문제다. ‘공소시효가 임박한 사건’ ‘내란, 외환, 대공, 선거, 노동, 집단행동, 테러, 대형참사, 연쇄살인 관련 사건’ ‘판사 또는 변호사의 범죄’ ‘국회의원 또는 지방의회 의원 등 공직자 범죄’ ‘공안사건’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등이 여럿 있다.

‘특히 사회적 이목을 끌만한 중대한 사건’도 포함되는데, 이 또한 자체 해석에 따라 고무줄처럼 적용될 여지가 있다.

실례로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현 조국혁신당 대표)의 자녀 입시 비리 수사 당시 검찰 수사 내용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피의사실공표죄 적용을 둘러싼 논란이 있기도 했다. 

이에 법무부는 당시 기존 수사공보준칙을 폐지하고 공표 금지의 강도를 더욱 높인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재개정했다.

해당 규정에는 내사 사실을 포함해 피의사실과 수사 상황 등 형사사건 관련 내용은 원칙적으로 공개가 금지되고 공개소환 및 촬영이 전면 금지된다고 나와 있다. 예외적으로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공개가 허용된 경우에도 수사에 관여하지 않는 전문공보관의 공보와 국민이 참여하는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해 사건관계인의 인권보장과 국민의 알 권리가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하지만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공익을 위해’라는 명목으로 피의사실 공표는 계속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애매모호한 규정만 있어 죄를 입증하기도 처벌을 하기도 어렵다고 주장한다. 발표할 수 있는 사실의 범위, 구체적인 언론 대응 기준이 수사기관마다 다른 점 등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무죄 추정의 원칙은 없다?
흘려도 71년 동안 기소 없어

미국의 경우는 검사의 업무 지침에 언론 브리핑 원칙이 적혀 있다. 그중 피의자의 범죄 전력, 유무죄에 대한 의견 등 편견을 낳을 수 있는 정보는 공개할 수 없다. 보도자료에도 “단순한 혐의에 불과하며 재판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된다”는 코멘트 역시 필수로 적도록 했다.

미국 미연방대법원서도 “언론의 자유는 모든 법적 절차 과정서 최대한 보장돼야 하나 그것이 재판의 원래 목적인 공정성을 혼란시킬 정도로 허용돼서는 안 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피의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표돼 재판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언론사와 수사기록을 흘린 사람을 법정 모욕죄에 따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피의사실공표죄의 사문화를 없애기 위해서는 법령 개정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재현 오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피의사실공표죄의 사문화는 공보와 피의사실 및 위법성 조각 사유 사이에 얽힌 법리와 명확하지 못한 기준들도 적지 않은 원인이 됐을 것”이라며 “명확한 기준 제시를 통해 공표의 내용과 범위를 설정하는 게 규범력을 회생시키는 데 가장 중요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피의자의 인권과 국민의 알 권리 관계를 고려해 보다 조화롭게 개정해야 한다”며 “피의사실이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중대한 범죄로 인해 공익적 목적이 있거나 피의자가 공적 인물인 경우 우선 예외적으로 인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피의자의 기본권 보장과 관련한 엄격한 기준이 적용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사 과정서의 일반적·절차적 사항은 공표가 가능하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봤다. 

그는 “중요한 건 진술과 증거 내용이다. 어떤 맥락이나 관점서 해당 진술을 보느냐에 따라 의미가 뒤바뀔 수 있다. 증거도 위법하게 수집됐거나 ‘전문 증거(타인에게 전해 들은 말)’일 수도 있다. 법원이 심리 절차를 거치지 않은 상태서 일방적 진술이나 증거가 진위 확인도 없이 공개되면 편견과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는 것”라며 “객관적 사실만을 공표할 수 있게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의사실 공표를 금지하는 이른바 ‘이선균 금지법’ 이야기도 대책으로 꼽혔다. 지난 1월30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사법센터 소속 백민 변호사는 “수사기관 등이 피의사실을 공표한 경우 피의자가 법원에 피의사실의 삭제와 피의사실 공표 금지를 청구할 수 있도록 형법과 형사소송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 변호사는 “재판부에 선입견을 심을 수 있는 피의사실을 검찰이나 경찰이 기소 전에 공개한 것으로 의심될 때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판사 출신 더불어민주당 김승원 의원도 지난해 12월 피의사실공표금지청구권을 신설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피의사실이 공표·유포·누설됐을 경우, 피의자가 법원에 언론 보도 등을 삭제하거나 앞으로의 공개도 막게 해달라고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내용이다.

이선균 
금지법

한편 수사기관이 흘린 피의사실을 그대로 받아적는 언론기관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이야기도 나온다.

백 변호사는 “피의사실 공표는 수사기관의 실적 홍보와 언론기관의 선정적 보도라는 양측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에 서로 확대, 증폭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언론사에 대한 실효적인 대책도 필요하다”며 “수사기관이 제공하는 정보를 받아 위법하게 피의사실을 보도한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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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