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한 죽음’ 자발적 안락사의 세계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3.19 11:23:26
  • 호수 14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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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마지막을 선택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정말 죽음을 원합니까? 당신은 ○○씨가 맞나요? 이걸 마신다면 죽게 됩니다. 정말 당신의 뜻이 맞나요.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겠습니다.” 이 질문은 모두 자발적 안락사를 선택한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 받는 질문이다. 질문을 받는 사람이 모두 “네”라고 대답하면 스스로 안락사 약을 복용하고, 곧 깊은 잠에 빠진다.

안락사는 불치병에 걸린 등의 이유로 치료나 생명 유지가 무의미하다고 판단되는 사람이나 생물에게 직·간접적 방법으로 고통을 느끼지 않고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행위다. 안락사가 선택이 아닌 필수일 때가 있다. 드리스 판 아흐트 네덜란드 전 총리는 동갑내기 부인과 93세를 일기로 고향인 네덜란드 동부 네이메현에서 동반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 

모두 다
스위스로

그는 평소 아내를 ‘내 여인’이라고 부르며 애정을 드러내는 등 아내 사랑으로 유명했는데, 이 부부의 사연이 알려진 뒤 국내서도 자발적 안락사의 관심이 일었다. 특히 한국은 초고령화 사회로, 내년부터는 한국인 10명 중 4명이 65세 이상이다.

국내는 안락사가 불법이다. 다만 질병이 있는 환자에 관해 의사가 치료할 수 없는 상태라고 판단했을 때 산소호흡기 등을 설치하는 연명 치료를 거부하는 소극적 안락사는 가능하다. 소극적 안락사의 경우 생명 유지에 최소한으로 필요한 진통, 영양, 물, 산소의 공급을 하지 않는다.

자발적 안락사가 가능한 곳은 현재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위스, 콜롬비아, 캐나다는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미국은 주마다 다르다. 현재까지 오리건과 워싱턴, 몬태나, 버몬트,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6개주서 합법화됐다.


그렇다면 한국인에게 자발적 안락사는 불가능한 일일까? 국내서도 자발적 안락사를 원하는 사람들은 꽤 있다. A씨는 선천적으로 희귀병을 가지고 태어났다. 온몸에 마비가 되는 병이었고 외모도 일그러졌다.

수술과 재활을 하던 중 다리에 후유증도 생겼다. 무엇보다도 병이 언제 재발할지 모르는 고통으로 자발적 안락사를 희망하고 있다. A씨는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병으로 항상 고통받고 살았다. 이제는 고통받고 싶지 않고 자발적 안락사가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발적 안락사를 희망하는 사람은 대개 이런 이유가 있다. 그래서 이들이 찾는 것은 자발적 안락사를 도와주는 단체다. 스위스 바젤에 한 비영리단체는 자발적 안락사가 허락되지 않은 나라의 사람이 자발적 안락사를 희망할 때 절차를 도와준다. 이 단체는 2019년에 생겼으며 심각한 질병이나 장애가 없더라도 고령에 안락사를 선택하는 것을 지지한다.

초고령화 사회서 반드시 필요?
“스스로 선택한 후 평화로웠다”

이들은 건강 상태와 관계없이 정신적으로 건강한 성인이라면 누구나 죽음의 방식과 시기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단체의 사이트에는 자발적 안락사를 선택한 사람의 사연들이 소개돼있다. 자발적 안락사를 선택한 B씨의 친구는 “난 스위스 바젤서 친구와 나흘 밤을 함께 보냈다. 친구는 죽기 12시간 전에 자신의 삶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B씨는 20대 때부터 쌓아 올린 경력을 35살에 그만뒀다. 갑자기 생긴 근육통성 뇌척수염과 만성 피로 증후군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B씨는 병원을 꾸준히 다녔지만 B씨의 병은 호전되지 않았다. 28세에는 갑상선을 제거했고, 50대에는 헤일리병이라는 희귀 유전 질환을 앓기 시작했다. 온몸에 물집이 생기는 질환으로, 이제 B씨에게는 ‘또 어떤 병이 올지 모르는 고통’만이 남아 있었다.

새로운 치료법이 나오길 기다리다가 치료를 받기도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B씨는 자발적 안락사를 선택하기 위해서 해당 단체에 연락했다.


이민을 간 뒤 B씨는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삶의 마지막을 꾸민다는 생각이었고, 삶이 의미 있길 바랐다. 죽음을 선택하기 4~5년 전에는 집에서 나오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죽을 수 있다는 희망이 삶의 원동력이 됐다. B씨는 그렇게 자신의 삶을 채우고 ‘존엄한’ 죽음을 맞이했다. 

B씨는 삶의 마지막 길을 해당 단체와 함께했다. 자발적 안락사를 선택한 마지막 길은 친구와 함께였고, 친구는 “그의 죽음은 평화로웠다”고 평했다.

해당 단체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연간 100유로(한화 약 14만원 정도)가 필요하다. 이름, 주소, 생년월일, 국적, 여권 정보 등을 입력하면 가입할 수 있다. 가입 후에는 안락사를 신청해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서류가 있다.

죽음 후
절차는?

필요 서류는 ▲자발적 안락사를 요청하는 이유 ▲시민권과 현재 생활 상황 ▲간단한 자기소개 ▲가족 상황 ▲건강 진단서 ▲연락 담당자 지명 ▲출생증명서 ▲거주 증명서(요금 고지서, 공과금 고지서 등) ▲결혼·이혼 증명서(미혼은 법정선언문) ▲화장, 유골 등의 주의사항이다. 

이 서류를 제출하면 해당 업체는 신청서를 검토한다. 승인이 나면 업체는 신청자와 함께 자발적 안락사를 할 날짜를 정한다. 자발적 안락사의 방법은 일반적으로 넴뷰탈(펜토바르바탈)을 정맥 주사로 투여받거나 마시는 방법이 있다. 이때 신청자가 직접 정맥 주사의 밸브를 열어야 하고,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발적 안락사를 하는 경우 필요한 비용은 총 1만유로(한화 약 1435만원)다. 여기에는 자발적 안락사가 가능한지 서류 평가와 관리 비용, 예약, 의료상담, 장례서비스, 사후 관리 비용까지 포함된다. 나라나 지역이 다른 경우는 비행기 값이나 숙소 비용이 추가된다. 

이 단체의 특징은 ‘장기간의 우울증’ ‘극심한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더라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정신질환이 있다고 자발적 안락사가 거절당하지 않는다.

중요한 점은 해당 업체는 영어를 잘 하지 않아도 안락사를 진행할 수 있다. <일요시사>는 해당 업체에 “영어가 능숙하지 않아도 진행할 수 있는지” “한국인 회원은 얼마나 있는지”를 물었다. 업체는 “영어가 부족해도 안락사가 필요한 사람은 어떻게든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한국인 회원이 있다”고 답했다.

스위스의 또 다른 업체는 회원이 되면 ‘위험한 자살 예방’ ‘완화 치료에 대한 조언과 지원’ 등의 정보를 보내준다. 평생 회원 회비는 140만원 정도이고, 연간 회원은 7만원 정도다. 이곳은 회원에 한해 자발적 안락사를 요청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불치병에 걸렸거나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의 장애가 있는 경우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수반하고 있고 ▲가능한 치료와 대안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정신질환
환자는?

또 ▲죽음을 다른 사람에게 영향받지 않고 스스로 선택해야 하고 ▲오랫동안 죽음을 원했으며 ▲가족에게 죽음을 통보한 경우여야만 했다.


이곳에서 안락사를 진행하고 싶으면 두 번의 의사 상담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때 의사는 회원을 진찰한다. 왜 죽고 싶은 건지, 온전한 정신에서 죽음을 선택했는지 판단하는 시간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안락사는 회원이 직접 정맥 주사 밸브를 열어야 한다. 이것이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죽음을 원했다는 증거다. 해당 순간은 녹화된다.

해당 업체의 한 담당 의사는 고의적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2019년 1심에는 징역 5년을 구형받았지만,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의사가 정신질환자의 의견을 듣고 안락사를 허용한 것을 두고 고의적 살인을 한 간접 가해자라고 판단했지만, 재판부는 안락사 회원이 상담 중에 “정신질환에 불만이 없다. 몸에서 오는 고통이 너무 힘들다. 치료할 수 없는 질환 때문에 죽음을 원한다”고 말한 것을 두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으로 봤다.

해당 업체의 경우는 한국 사람은 거의 없고 일본 회원이 많은 편이었다.

마지막으로 알아본 업체는 창립자가 변호사이며, 의사들이 협력해 안락사 약물을 처방해 주는 곳이었다. 다른 곳과 다 비슷했지만, 이곳은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 병력이 있으면 진행이 매우 까다로웠다. 엄밀히 말하면 이곳은 말기 암 등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돕기 위한 곳이었다.

다른 곳에 비해 준비할 서류도 많고, 업체 쪽에서 언어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안락사를 준비하는 한국 회원이 있었다.


합법적으로…금액은 1400만원 들어
본인이 직접 정맥 주사 밸브 열어야 

가장 최근 안락사가 합법화된 나라는 호주다. 호주서 인구가 가장 많은 뉴사우스웨일스(NSW)주에서는 자발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존엄사법이 발표됐다.

지난해 11월28일 호주 <AAP 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날 NSW에서 안락사가 허용되면서 노던 준주(NT)와 수도 준주(ACT) 등 2개 준주를 제외한 호주의 모든 주에서 안락사가 가능해졌다. NSW주 의회는 2022년 5월 환자 자의에 따라 안락사를 허용하는 내용의 존엄사법을 통과시켰고 시행일은 1년6개월 뒤인 지난해 11월28일로 미뤄 놓은 상태였다.

이날 법이 시행되면서 기대 수명이 최대 6개월이라고 진단받은 불치병 환자나 기대수명이 최대 12개월이라고 진단받은 신경계 퇴행성 질환자는 안락사 신청을 할 수 있게 됐다. 안락사 신청은 NSW주에 최소 12개월 이상 거주한 자의식 있는 성인 환자가 직접 해야 한다.

안락사를 신청하면 보건부와 법무부 장관이 임명한 위원 5명이 승인해야 하며 이와 별도로 독립된 의사 2명의 승인도 필요하다. 안락사 지지 단체인 NSW 존엄사 협회는 첫 12개월 동안 약 600~900명의 말기 환자가 안락사를 선택할 것으로 예상했다.

NSW 존엄사 협회의 셰인 힉슨 대표는 “사람들이 이 법으로 여러 선택권이 있다는 사실에 큰 마음의 평화를 얻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기독교 단체인 호주 크리스천 보이스는 안락사법이 ‘반 생명 로비스트’에 의해 추진된 것이라며 “인간 생명의 신성함에 대한 터무니 없는 공격”이라고 비난했다.

한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안락사에 대한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한국존엄사협회는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조력 존엄사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해당 토론회는 녹색정의당 정책위원회가 주최하고 한국존엄사협회가 함께 했다.

이날 화상회의 토론자로 척수염 환자 이명식(63)씨가 발표했다. 이씨는 3시간 이상 앉아 있기 어려운 탓에 화상회의를 통해 이날 토론에 참여했다. 그는 조력 존엄사를 입법하지 않은 현행법은 위험이라며 지난해 12월 헌법소원을 제기한 바 있다. 이씨는 “(국내서 조력 존엄사를) 반대하고 싶다면 제 통증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반대해야 할 것이다. 통증 완화나 치료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는 무책임한 반대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반대하는 이들에게는 “지금 내 몸이 아무렇지 않게 건강하다고 해서 죽는 그 날까지 튼튼하게 살다가 죽을 것이라고 자신하느냐. 현대의학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이라면 그 통증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거나 멈출 수 있는 마지막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도
공론화

반대 측에서는 자발적 안락사가 법제화된다면 취약 계층의 생명권을 앗아갈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정아 동아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장애, 노령 등 자본주의 안에서 생산능력을 의심받는 이들에게는 (자발적 안락사가) 의무사항으로 여겨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인으로서의 양심의 자유 문제도 거론됐다. 김 교수는 “의사들에게는 이에 대한 실질적인 역할을 하거나,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사들에게 의뢰해야 하는 의무가 발생한다. 조력사가 윤리적으로 논쟁적인 지점에 있는 만큼, 어떤 의사들에게는 자신의 정체성과 상충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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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