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서울경찰청장 불기소 시나리오

외부 전문가들은 책임 있다는데…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500일이 돼간다. 고위 공무원 및 윗선에 관한 수사기관의 진상규명 의지는 증발했다. 그나마 경찰은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게 법률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불구속 기소 가능성이 점쳐졌으나, 관측만 1년을 넘겼다. 결국 검찰이 수사심의위원회를 소집하면서 김 청장의 무혐의 가능성만 커졌다.

10·29 이태원 참사를 수사한 경찰청 특별수사본부(이하 특수본)는 윗선 중 김광호 서울경찰청장만 검찰에 송치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무혐의 처분됐다.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서부지검 수사팀은 김 청장을 기소조차 하지 않고 있다. 대검찰청 차원서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이유다.

기로에서…
관측만 1년

특수본은 이태원 참사 수사 당시 형사법 전문가 등 외부 전문가들로부터 ‘김 청장의 혐의가 인정된다’는 취지의 의견을 받았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특수본은 지난해 1월 행안부와 서울시, 경찰청, 서울시 자치위원회, 서울경찰청 등 5개 기관 책임자에 관한 혐의 판단을 구했다.

해경 지휘부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한 세월호 참사 판례나 경찰서장이 불기소된 일본 아카시시 압사 사고 등 상급자의 과실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국내외 판례가 있으니 김 청장 등의 경우는 어떤지 외부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한 것이다.

특수본은 행안부, 서울시, 경찰청장, 서울청장, 서울시 자치경찰위원회 등 5개 기관 책임자에 대한 수사 결과 보고서 초안을 전문가들에게 송부한 뒤 의견을 받았다. 전문가 5명 중 4명은 김 청장의 혐의가 인정된다며 송치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서울청장의 혐의가 인정된다’는 수사 결과에 동의한다는 취지였다. 이들은 행안부, 서울시, 경찰청장, 서울시 자치경찰위에 대해선 불송치 내지 입건 전 조사 종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특수본 수사 결과에 동의한다고 밝힌 A 자문위원은 의견서에서 김 청장이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주의의무를 진다’고 봤다. A 위원은 김 청장이 참사 보름 전인 10월14일부터 27일 사이 정보분석과·112치안종합상황실 등으로부터 핼러윈 데이와 관련해 보고를 받았고, 참사 당일에도 용산경찰서장으로부터 상황 보고를 받은 점에 주목했다.

A 위원은 “사상의 위험 발생 가능성이 현저함에도 불구하고 서울청장은 인파 관리에 효율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경찰관기동대를 배치하는 등 인명사고의 예방 및 대책을 수립·시행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며 “이태원 사고 피해자나 사고 발생 장소의 상인 등의 과실이 인명사고의 공동 원인이 됐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서울청장 등의 형사책임이 부정되진 않는다”고 분석했다.

사고 발생 500일…윗선 책임자 처벌 ‘0명’
서부지검 전·현 수사팀 의견 충돌 이유는?

자문위원 B씨는 의견서에서 “예년의 경우 관례적으로 기동대가 투입되어 인파 관리를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에만 예외적으로 기동대가 투입되지 않은 데는 모종의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된다”면서 “이런 의혹이 사실이라면 경찰 지휘부 혹은 외부서 기동대 투입을 막은 존재는 사고 발생에 공동정범의 책임을 질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해 김 청장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은 김 청장의 기소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이하 수심위)에 회부했다. 대검찰청은 이원석 검찰총장의 직권으로 15일 김 서울청장과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에 대한 수심위를 개최한다.


김 청장이 수심위에 회부된 것을 두고 서부지검 전·현 수사팀 간 갈등이 표출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9월 바뀐 서부지검 현 수사팀은 세월호 참사 사건서 해경 지휘부 전원이 무죄를 받은 점, 부산 초량 지하차도 침수 사건 항소심서 공무원들이 무죄 혹은 감형 판결을 받은 점 등을 들어 김 청장을 불기소 처리하는 것이 옳다고 보고 있다.

반면 서부지검 전 수사팀은 김 청장을 기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이태원 참사 사건과 관련한 정보보고서를 삭제한 혐의로 기소된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경무관)의 공소장에 ‘참사 전 김 서울청장에게 인파 집중 위험성이 보고됐으며, 김 청장이 이에 대비할 것을 지시했다’는 취지로 기재했다.

기소 의견
책임 명확

서부지검 전 수사팀은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아 지휘부의 업무상 과실치사죄를 인정한 판례를 들여다본 것으로 전해졌다.

고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과 관련해 구은수 전 서울청장이 유죄를 확정받았던 게 대표적이다. 구 전 서울청장은 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 현장서 살수차 운용 감독을 소홀히 한 혐의로 기소됐는데, 법원은 “이 사건 집회·시위의 총괄 책임자로서 사전에 경찰과 시위대에 부상자가 발생할 가능성을 예상했다”며 벌금 1000만원을 확정했다.

서부지검 전·현 수사팀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으나 이 총장이 직권으로 김 청장을 수심위에 넘긴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비판이 거세다. 검찰 내부서도 면죄부를 던져준 것이라는 불만이 나타나는 분위기다.

서울중앙지검 한 관계자는 “수사 지휘부서 김 청장을 재판에 넘길 의지가 있었으면 굳이 수심위를 열 필요가 없었다”며 “여러 판례가 존재함에 따라 기소 후 무죄 가능성 등 정치적 이유와 역풍 등을 고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부지검 관계자도 “전 수사팀 관계자들이 정말 열심히 수사해왔다. 유족분들의 눈높이를 맞추려 애썼지만 대검서 김 청장의 구속영장 청구를 반대하는 분위기였던 건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김 청장의 불기소 가능성은 적지 않다. 이태원 참사 재판서 피고인들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면서 업무상과실치사 혐의의 입증과 인과관계에 관한 재판부의 판단이 길어지고 있다. 김 청장이 기소된다고 해도 같은 혐의를 받는 만큼 재판서 무죄를 받을 가능성은 크다는 분석이 제기되는 이유다.

사실상
면죄부?

현재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진행 중인 재판은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등 용산경찰서 관계자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용산구청 관계자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공공안녕 정보외사부장 등 경찰 정보라인 관련자 ▲최재원 용산구보건소장 재판 등 4가지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을 비롯한 용산경찰서 관계자들은 보석으로 풀려난 뒤 직위 해제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들은 핼러윈을 앞두고 10만명 인파 운집이 예측된다는 보고 및 참사 당일 압사 위험을 알리는 112 신고를 받고도 별다른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혐의(업무상과실치사상 등)를 받는다.


또 이 전 서장과 그 관계자들은 참사 현장 도착 및 경찰 구조활동 내역을 허위로 기재하도록 지시 및 기재한 혐의(허위공문서 작성·행사 등)도 받고 있다. 이 전 서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은 무전 내용만으로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어려웠다거나 허위 기재 지시 및 작성은 이뤄지지 않았다며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밀집 위험을 예측한 정보보고서 등을 참사 직후 폐기하려 한 혐의를 받는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공공안녕 정보외사부장 등 3명 역시 혐의를 부인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폐기 절차가 규정에 따른 올바른 직무수행이었다고 결백을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측은 기자 브리핑서 “참사 관련 정보보고서 7건 중 4건이 삭제됐고, 핼러윈 행사 관련 정보보고서가 다수 제작됐지만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총장 직권으로 수심위 회부
김광호 무혐의 가능성 커져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를 받는 박 구청장 등 관계자 4명에 대한 재판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이태원 참사가 예측 불가능한 행사였으며 주최자가 없었기 때문에 관리 책임 또한 없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용산구청 실무자들도 책임을 경찰 측에 떠넘기고 있다. 서울시 인사위원회 측에선 이들에 대해 공무원직무상 의무 위반 등에 따라 징계 절차를 의논하고 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이들 공판이 동일한 사안을 다루는 만큼 선고기일을 최대한 맞추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다. 박 전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 공판의 경우 이달 안으로 1심 선고를 예고한 상황이다.

서부지검 전 수사팀은 지난해 말까지 현 수사팀에 “김 청장을 재판에 넘겨야 한다”는 의견을 지속적으로 피력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서부지검 전 수사팀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임재 전 서장의 혐의와 김 청장의 혐의가 비슷한 게 아니라 같다. 이 전 서장을 넘겼는데 김 청장을 못 넘길 이유가 없지 않느냐”며 “향후 책임과 혐의 인정은 재판부가 판단할 몫이다. 정치적 이유를 왜 고려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 전 서장의 재판서 검찰은 ‘핼러윈 데이를 맞아 이태원 일대에 인파가 몰린다는 것을 예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고 발생까진 예상하지 못했더라도 인식 없는 과실이 인정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고 발생 가능성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해 과실범으로 기소한 것이지, 사고 발생 가능성을 알았다면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므로 고의범으로 기소했을 것이라는 취지다.

서부지검 전 수사팀에 따르면 김 청장은 참사 당일 이태원 일대에 대규모 인파가 몰릴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여러 차례 전달받았다. 이 전 서장 혐의의 핵심이 되는 ‘인파가 몰릴 것을 예견할 수 있었는데도 적절치 대처하지 않았다’는 논리와 일치한다.

서부지검 초기 수사팀도 김 청장의 혐의를 인정했고, ‘구속 기소가 필요하다’는 의견까지 냈었다.

검찰 내부
갈등 표출?

기소를 뒷받침하는 판례가 상당하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대표적이다. 실제 검찰은 이 전 서장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해당 사건을 언급하기도 했다.

당시 검찰은 “해당 사건에서 법원은 피고인들(제조·판매사 대표)이 ‘위험성을 알리는 자료를 몰랐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몰랐으니 업무상과실치사상이지)그 자료를 확인하고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면 고의범이 성립할 수 있다’는 취지로 판결문에 적시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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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