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VS 이준석 TK 고지전

보수 텃밭서 ‘보수와 보수’ 붙는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보수와 보수가 갈라져 조만간 정면으로 충돌할 조짐이다. 승리하는 사람은 다음 대권주자로 발돋움할 기회가 생긴다. 더 많이 전국을 돌아다녀야 하고, 더 좌클릭해야 한다. 그래야 이번 22대 총선서 살아남을 수 있다. 

국민의힘에 새바람이 불고 있다. 기존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는 뒷선으로 물러났다. 이들은 대부분 불출마를 선언하거나, 주요 요직서 떠났다. 대신 윤석열 대통령 최측근 중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 전 법무부 장관)을 천거했던 국민의힘은 그를 필두로 총선 승리를 간절히 원한다. 일단 여론은 나쁘지 않지만, 시작부터 인사 문제로 잡음이 발생했다. 

보수층 
갈라지나

과거 노인 비하 발언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며 민경우 비대위원의 논란이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임명 하루 만에 ‘한동훈 비대위’ 인사가 사퇴했다. 한 비대위원장이 대한노인회를 찾아 사과하는 등 사태 진화에 나섰으나, 당의 주요 지지층의 마음을 크게 요동치게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앞서 한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원 대부분을 현역 정치인이 아닌 원외 인물들로 인선했다. 중도층, 청년층을 고려한 인사로 이들 대부분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저격해왔다는 특징을 보였다. 이는 총선 국면을 맞이하면서 민주당을 향한 공세 수위를 높여 지지층을 결속시키겠다는 의도였던 것으로 해석된다.

한 비대위원장은 국립현충원 방문을 시작으로 대전, 대구, 광주, 경기도, 강원도 등 전국 순회에 나섰다. 자신에게 급격하게 관심이 쏠리자, 전국을 다니며 컨벤션 효과를 이어가겠다는 복안이다. 취임 이후 국민의힘 후원금도 급증하는 등 제대로 한동훈 효과를 누리고 있어 일단 호재다. 


본격적인 정치 시작 이후 대구에 방문했던 한 비대위원장은 “대구는 정치적 출생지이자, 당의 기둥”이라며 지지층 결속을 시도했다. 이어 “지난해 11월 대구에 방문한 뒤 정치 참여의 계기가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TK(대구·경북)는 대표적인 보수 텃밭 지역으로 통한다. 지난 21대 총선에서는 국민의힘이 TK 지역의 25개 지역구 중 24석을 휩쓸었던 바 있다(1석은 대구수성을 무소속 당시 홍준표 후보). 

문제는 현역 의원과 대통령실 출신 인물 간의 대결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현역 의원들 사이에서는 묘한 긴장감마저 흐른다.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하며 한 비대위원장이 강조한 지점은 세대교체와 헌신이다. 

‘국민의힘 간판만 달고 나가면 당선되는 지역’으로 불리는 TK 지역은 결국 한 비대위원장이 현역 의원들의 불만을 어떻게 잠재울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일단 자신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승부수를 던졌다. 이를 두고 당내 물갈이의 주도권을 잡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 비대위원장은 오는 11일, 국민의힘 4~5선 중진 의원들과 오찬이 예정돼있는데, 이 자리서 총선 불출마를 요청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앞서 김기현 대표 체제에서는 김 전 대표가 험지 출마 및 불출마를 두고, 혁신위원회와 갈등을 일으켰다.

한, ‘대통령 아바타’부터 벗겨내야
호감도 높지만 ‘정치 신인’은 한계

다만, 21대 총선 당시도 초선·재선·다선 등 TK 현역 의원 교체율은 64%에 달했다. TK 지역이 인적 쇄신의 주요 대상인 만큼 이번에도 공천을 둘러싼 당내 갈등은 불 보듯 뻔하다.

인적 쇄신을 키를 쥐고 있는 한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이른바 ‘빚’이 없는 인물이다. 이는 그가 비대위원장으로 인선된 배경 중 하나다. 문제는 현역 의원들을 대체할 대상이 대통령실 출신 인물일 경우다.


현재 윤정부 출신 TK 출마자로 거론되는 인물은 강명구 전 대통령비서실 국정기획비서관과 김오진 국토부 1차관, 전광삼 전 시민소통비서관, 조지연 행정관, 이병훈 전 행정관, 이부형 전 행정관, 김찬영 전 행정관 등이다. 일각에선 이들이 공천서 다소 불리해 현역 의원들의 컷오프(공천배제)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경우 현역 의원은 무소속 출마로 가닥을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탄탄한 지역구 조직이 완성돼있는 이들은 무소속 출마 시 당선 가능성은 충분하다. 실제로 당시 홍준표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의 전신) 의원은 공천 탈락에 반발해 무소속으로 출마해 같은 당 이인선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가 복당했던 바 있다.

결국 한 비대위원장은 현역 의원들 표심까지 챙겨야 하는 만큼 이번 총선서 TK에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TK 일각에선 신당, 현역 의원의 탈당 등 보수층에 전례없던 변수가 생길 수 있다는 신호도 감지된다. 집토끼 이탈 시 총선 패배는 자명해질 수밖애 없다. 

유일하게
빚이 없다

게다가 한 비대위원장이 벗어던져야 할 짐은 ‘김건희 호위무사’ 프레임이다. 현재 김 여사는 공개 행보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자신의 리스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등판할수록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에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한 비대위원장은 야당서 언급하고 있는 ‘김건희 특검법’이라는 말조차 사용하길 꺼린다. 

또 야당이 합심해 통과시킨 이른바 ‘쌍특검법’을 ‘총선용 악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앞서 지난 4일, 민주당 등 야당은 해당 특검법을 정부로 이송시켰으나 윤 대통령은 즉각 거부권을 발동했다.

한 비대위원장은 이제 국민 여론에 신경써야 할 처지다. 일각에선 ‘혹시나?’라는 시선을 보내기도 했지만, ‘역시나’ 대통령의 그늘로부터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제 아무리 한 비대위원장이 중도층을 노린 행보를 펼치더라도 결국 한계점에 봉착할 수 있다. 아직까지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도 보이지 않는다. 국민이 기대하는 부분은 정치를 해본 적 없는 인물이 갈아엎는 그림이다. 아직까지는 한 비대위원장의 지지율이 윤 대통령과 연계되지는 않는 모습이다.

그러나 총선이 다가올수록 민주당이 ‘김 여사’ ‘정권 심판론’을 카드로 꺼내들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한 비대위원장이 어떤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줄지 관심이 쏠린다. 국민의힘은 한 비대위원장에 대한 호감도만 키워줬을 뿐, 정당 지지율은 크게 오르지 않는 모습이다. 

속도 내는
신당 창당

지난 12월27일, 탈당을 선언했던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현 개혁신당 정강정책위원장)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않다. 아직까진 돌풍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정치를 시작한 지 12주년 된 이 위원장은 이날 탈당 선언문을 통해 대통령과 겪었던 갈등에 대해 언급하면서도 “미래’를 보고 정치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위원장의 신당 창당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으나, 결국 최근 중앙당창당준비위원회를 발족시키는 등 창당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국민의힘에서는 이 위원장을 붙잡지 않았으며, 본인 역시 국민의힘으로 되돌아갈 퇴로를 끊었다. 그는 “국민의힘을 탈당한다. 동시에 국민의힘에 제가 갖고 있던 모든 정치적 자산을 포기한다”며 다시 국민의힘과 함께할 가능성이 낮음도 함께 시사했다. 

현재 이 위원장의 창당에는 측근 4인방 ‘천하용인’ 중 천하람 공동창당준비위원장, 허은아 전 국민의힘 의원, 이기인 경기도의회 의원이 합류했다. 

이 위원장은 첫 행보로 국립현충원 참배 후 신년에는 서울역서 신년 하례회를 갖는 등 국민의힘 탈당 후 본격 행보에 나섰으며 온라인 당원 모집도 시작했다.

이 위원장 측에 따르면 온라인 당원은 공지를 하지 얼마지 나지 않아 수만명을 돌파했다. 당명은 개혁신당(가칭)이다. 보수당 출신 인사 출신인 그는 줄곧 보수당서만 정치를 해왔다. 오는 20일, 중앙당 창당대회도 갖는 등 신당 창당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연일 중도층을 겨냥한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노리는 유권층은 TK로 해당 지역서 어떤 파급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앞서 본인도 “전국적인 정당이지만, TK를 기반으로 신당을 차리겠다”고 약속했던 바 있다.

이, 3지대 빅텐트 연대 결집
현역 참여로 총선 3번 노려


그는 “영남지역은 대부분 (신당 후보)가 출마한다”고 밝히기도 했었다. 이 위원장 자신도 대구 출마 가능성이 거론되는 만큼 TK 지역서 신당이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신당이 힘을 받을 경우, 이는 곧 국민의힘에겐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는 신당 창당이 압도적 여론을 구성하고 있지는 않은 분위기다. 

다만, 천 위원장의 경우 전남 순천서 여론조사 2위를 기록 중이라는 게 고무적이다.

이 위원장은 제3지대의 지역과 ‘빅텐트’를 위한 연대를 모색 중이다. 양향자 대표가 이끄는 한국의희망과 금태섭 공동대표의 새로운선택과 물밑서 활발한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제3지대가 노리는 지점은 30% 안팎의 중도층으로 매 선거 때마다 캐스팅 보트가 돼왔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와의 연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문제는 연대 이후 총선서의 ‘지분 싸움’이다. 

또 다른 변수는 선거제도다. 국회는 선거제 방식을 놓고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지난 총선 당시에는 준연동형제도를 도입해 시행했으나, 위성 정당으로 도입 취지가 퇴색된 바 있다. 준연동형제는 지역구서 정당투표의 득표율만큼 의석을 채우지 못했을 때 비례대표서 모자란 의석의 절반을 채워주는 방식으로 국민의힘과 민주당 입장에선 지역구 의석이 많을 것으로 예상돼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병립형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병립형은 지역구 의석과 관계없이 정당투표 득표율에 따라 정당별로 비례대표 의석을 나누기 때문이다. 

이 위원장은 이번 총선서 3번을 노릴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허 전 의원은 “국민의힘 중진 의원을 비롯해 10명이 넘게 참여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이기면 
대선행”

이대로라면 현역 의원이 많아 총선서 국민의힘, 민주당에 이어 이 위원장의 개혁신당이 3번을 부여받게 된다. 추후 이 위원장은 국민의힘과 차별화된 행보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한 인사는 “한 비대위원장은 ‘윤석열 아바타’라는 프레임서 벗어나야 중도층을 포섭할 수 있을 것”이라며 “반면 이 위원장은 배신자라는 프레임을 TK서 끊어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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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