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시대’ 영풍제지 무슨 일이…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1.04 14:03:51
  • 호수 14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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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조작에 추락사고까지
도마에 오른 방만 경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크리스마스 이브날 영풍제지 평택공장서 작업 중이던 노동자가 추락사했다. 같은 곳에서 또 다른 노동자가 작업 중 기계에 끼여 숨진 사망사고 이후 두 달여 만이다. 침울한 분위기는 본사도 마찬가지. 비슷한 시기에 영풍제지는 주가조작 사건에 휩싸여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연말연시 속 영풍제지는 말 그대로 ‘수난시대’를 겪고 있다.

평택경찰서에 따르면 2023년 12월24일 오전 3시50분께 평택시 진위면의 영풍제지 공장서 60대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 A씨가 기계 위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A씨는 지난 24일 오전 3시50분쯤 종잇조각을 모아 재가공하는 기계 위에 배관 연결 작업을 하던 중 2.12m 아래로 떨어져 숨졌다.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지만 오전 4시53분께 사망했다.

협력업체 
노동자 사망

고용부는 영풍제지가 중대재해법을 위반했는지 수사에 착수했다. 영풍제지 평택공장은 상시노동자 50인 이상으로 중대재해법 적용을 받는다. 중대재해법은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의 안전보건관리체계를 따져 형사처벌하는 법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사고 원인과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법 위반 여부에 대해 조사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경찰은 현장 관계자 등을 상대로 안전수칙 이행 여부 등을 조사했다.

해당 공장에선 지난해 10월14일에도 40대 노동자 B씨가 재생용지를 감는 기계에 끼여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영풍제지는 노동자 사망사고에 무대응으로 일관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유가족이 B씨의 사망 소식을 들었던 것은 사고 발생 몇 시간 뒤 병원을 통해서였다. 


‘외상으로 인한 심정지’로 사망했다는 의료진의 말을 처음 접한 B씨의 어머니는 ‘심정지’라는 단어만 들었을 때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불과 석 달 전 40대 중반 나이에 건강했던 B씨는 영풍제지 정규직 일자리를 얻었다며 기뻐했기 때문이다.

<경인일보> 보도에 따르면 유가족은 B씨가 사망한 지 사흘이 지나도록 영풍제지 측으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는 물론, 사고 원인조차 듣지 못했다. 사망 당일 사고지점을 직접 찾은 유가족은 생전에 B씨가 헬멧 등 기본 보호구를 착용한 정황도 없었고, 위험을 대비한 멈춤 장치의 작동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B씨 동생 C씨는 “멈춤 장치 작동은커녕 위험 지역 진입을 막는 노란색 철제 안전펜스도 먼지만 잔뜩 껴 있어 작동 여부가 의심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구석 뿐”이라며 “사측은 어떤 해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사람이 죽었는데, 경찰 수사 및 부검 결과만 바라보고 회사는 사과 없이 기다리라고 한다”고 토로했다.

유가족이 바라는 건 최소한의 추모 공간 마련 등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공장에 추모 공간을 5일 정도 마련해 망자를 기리고, 진상규명에 대한 연대 목소리를 모으자는 게 이들의 요구 사항이다. 

영풍제지 측은 “유가족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의견 차이가 있는 상황”이라고 일축했다.

안타까운 사망사고가 잇따른 가운데 주가조작 논란에 휩싸인 영풍제지는 침울한 연말을 맞이했다. 영풍제지는 골판지와 지관원지를 제작하는 상장사로 지난 8월 당시 주가가 10개월 만에 700% 넘게 급상승하면서 주가조작 의혹이 제기됐다.

앞서 2023년 4월, 영풍제지의 주식이 무상증자한 후부터 주가는 꾸준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영풍제지 측에서도 “뚜렷한 주가 상승 배경은 없다” “기업 가치가 과열된 것은 사실”이라고 말하면서 주가 상승에 의문을 보이기도 했다. 


다만, 주식 투자자들의 관심은 2차 전지 관련주에 쏠렸던 때라 당시만 해도 영풍제지가 2차 전지에 조금 관련이 있고 외국인들의 매수세가 강해 주가가 올라간 것으로 봤다. 

안전모 등 기본 장비 없었다
분노한 유가족 “원인도 몰라”

일각에서는 영풍제지를 인수한 대양금속이 주가조작의 배후라고 해석했다. 앞서 스테인리스 제조기업 대양금속은 2022년 11월 사업다각화를 내세우며 영풍제지를 인수했다. 대양금속이 품은 영풍제지는 돌연 지난해 3월, 주주총회서 사업목적을 추가했다.

전자부품제조, 무인항공기 제조, 소프트웨어 개발 등 16가지와 더불어 2차 전지 사업까지 확장하겠다고 밝혔던 것이다.

최근엔 사용 후 배터리 시험인증업체 ‘시스피아’를 인수한다고 나섰다. 영풍제지는 전환사채(CB·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를 취득하는 방식으로 투자했는데, 1년 뒤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하면 최대주주에 오르게 된다. 정확한 투자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다.

같은 해 11월엔 호주의 한 업체와 함께 2차 전지, 전자폐기물 산업에 진출하기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영풍제지는 이 업체가 광물 채굴부터 재활용까지 배터리 산업의 전반에 걸쳐 사업을 펼치고 있다고 밝혔다.

영풍제지의 2022년 매출액은 1054억원, 영업이익은 78억원이 고작이다. 그럼에도 2023년 초 주가는 6000원선에서 4만원대로 치솟았다. 대양금속에 인수되기 전 2500억원 수준이었던 시가총액은 현재 1조5000억원을 넘겼다. 

영풍제지의 주가 상승은 그해 9월까지 계속됐다. 무상증자 이후의 주가가 1만3990원이었는데 같은 달 8일 주가는 5만4200원으로 약 4배 가까이 상승한 것이다.

영풍제지 관계자는 “2차전지가 미래 먹거리라고 판단했다. 내부에 전문가는 아직 없는데, 영입을 고려하고 있다”며 “생산시설은 가장 빨리 갖출 수 있는 방법을 논의 중이며 사업 성과가 언제 날지는 변수가 많아 단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다 지난해 10월18일 영풍제지 주가가 갑자기 하한가를 기록하자 투자자들은 주가조작을 의심했다. 전날에는 약 5만원에 달했던 주가가 갑자기 하한가를 기록하며 하루 만에 약 3만원대로 내려앉았으니 의심받을 만했다. 

사람이 
죽었는데…

금융감독원 등은 수개월전부터 이미 영풍제지 주식을 모니터링해왔다고 한다. 영풍제지의 주가가 급하락하기 하루 전인 10월17일 검찰은 영풍제지 주가 시세를 조작한 것으로 의심되는 피의자 4명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이로써 영풍제지의 주가가 급하락한 이유는, 전날 체포된 주범들이 영풍제지 주식을 모조리 매도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거래소는 10월20일 영풍제지 주식을 거래 정지시켰으며 앞서 체포영장을 발부한 4명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해 구속 심사했다. 이어 사흘 뒤인 23일, 검찰은 영풍제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다음 날에는 영풍제지의 최대주주인 대양금속, 대양홀딩스컴퍼니 사무실까지 압수수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여파는 키움증권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당시 피의자들이 주가조작에 활용한 주식계좌가 키움증권에 다수 분포된 것으로 드러나면서다. 영풍제지 미수금 거래를 차단하지 못하고 4943억원의 미수금을 발생시킨 키움증권의 주가는 이날 23.93% 폭락했다.

영풍제지 시세조종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윤모씨와 이모씨 등은 소수 계좌서 시세조종 주문을 집중할 경우 범행이 드러날 수 있다고 판단, 100여개에 달하는 다수의 계좌를 동원해 범행 은폐를 시도했다. 피의자들은 이 계좌를 활용하면서 미수거래를 통한 레버리지를 이용했다. 

3일 뒤인 26일, 한국거래소는 영풍제지에 대해 거래를 재개했다. 주가는 여전히 하한가를 기록했다. 이후 11월2일까지 연속으로 하한가를 맞으며 역대 최장기간 하한가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5만원대였던 주가가 순식간에 4000원대로 떨어졌다.

하락세는 다음날부터 멈췄다. 장 초반에는 약간의 하락세를 보였으나 이후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다 전일 종가 4010원보다 5.24% 상승한 422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11월3일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는 주가조작 일당 4명을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이들은 2023년 초부터 영풍제지 주식을 무려 약 3600만주가량 사들여 주가를 조작하고 약 2800억원 상당의 이득을 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과는
없었다

지난해 영풍제지가 무상증자한 직후 주가로 약 3600만주를 계산해보면 영풍제지 주가조작 사태에 약 5000억원이라는 금액이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피의자들은 ‘라덕연 사태’와 마찬가지로 다수 계좌를 동원해 매일 조금씩 시세를 상승시키는 방법을 썼다. 11개월 동안 주가를 무려 12배 이상 끌어올렸으나 금융당국의 데이터 분석과 자금 추적에 결국 꼬리를 밟힌 것이다.

라덕연 사태는 투자동호회 등을 통해 동원된 다수의 계좌를 이용, 거래량이 적은 대성홀딩스 등 8개 종목의 주가를 끌어올린 뒤 차익을 실현해 주가가 급락한 사건이다.

영풍제지 주가 역시 라덕연 사태 종목들과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특별한 호재성 공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주가는 매일 서서히 오르며 2022년 11월부터 12배 이상 상승했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SG 사태와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다가 나온 게 영풍제지”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조사 착수 후 한 달여간 영풍제지 관련 약 1년간의 매매데이터를 분석하고, 혐의 계좌 등을 거쳐간 자금 원천에 대한 추적을 펼쳤다. 이후 강제수사 필요성이 크다고 판단, 지난 9월 증권선물위원장의 패스트트랙(긴급조치) 결정을 통해 사건을 서울남부지검에 이첩했다.

남부지검은 시세조종이 현재까지 계속 진행되고 있어 투자자 피해가 커질 수 있다고 보고 곧바로 수사에 돌입한 뒤 피의자 4명을 체포했다.

영풍제지의 거품은 실적을 통해 드러났다. 2023년 3분기까지 누적매출액이 629억원에 그치며 2022년 같은 기간 대비 23.3%의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아울러 9억2000여만원의 누적영업손실을 기록하고 있어 연간 적자전환이 우려된다.

회장 아들도 포기한 회사 
35세 연하 사모님 재조명 

이에 따라 영풍제지를 이끌고 있는 조상종 대표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질 전망이다. 대양금속 대표이기도 한 그는 영풍제지를 인수한 시점부터 영풍제지 대표도 겸직해오고 있다. 특히, 조 대표 역시 주가조작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는 대양금속 오너 일가와 밀접한 관계로 추정되고 있어 당국이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중대재해 발생으로 법적 책임을 마주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중대재해처벌법상 중대재해 발생에 따른 처벌 대상은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다. 따라서 잇따른 사망사고가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처벌로 이어질 경우 영풍제지 단독 대표이사인 조 대표가 그 대상이 될 전망이다.

한편, 영풍제지의 오너 리스크는 과거부터 이어져왔다. 영풍제지의 창업주이자 대표이사였던 이무진 회장은 2013년 1월3일 노미정 부회장을 최대주주로 변경했다. 공시에 따르면 이 회장은 2012년 말 자신이 보유하던 주식 51.28%(113만8452주) 전부를 노 부회장에게 증여했다.

증여가격은 주당 1만6800원으로 총 금액이 대략 191억원이다. 이에 따라 노 부회장은 영풍제지의 지분율이 기존 4.36%에서 55.64%(123만 5182주)로 크게 늘어나며 단독 최대주주가 됐다.

더욱 화제가 됐던 건 1969년생인 노 부회장은 1934년생인 이 회장과 2008년 재혼한, 서른다섯 살 연하의 아내라는 점이다. 노 부회장은 2012년 초 영풍제지의 부회장으로 이름을 올린 후 그해 8월 처음으로 회사 주식을 시장서 사들였고, 12월에 남편인 이 회장 보유 주식 전량을 증여받았다. 

영풍제지를 40년간 이끌어온 이 회장이 하루아침에 딸뻘인 아내에게 최대주주 자리와 사실상의 경영권을 넘겨주면서 경영 자질 논란에 휩싸였다. 심지어 이 회장에게는 전 부인과의 사이서 낳은 장성한 두 아들이 있었다. 

장남 이택섭씨도 경영에 참여한 바 있으나, 결과는 좋지 못했다. 이씨는 2002년 대표이사로 취임하며 경영권 승계 과정을 밟아 나갔다. 한경대학교를 졸업하고 영풍제지에 입사한 이씨는 경영 전면에 나서며 공격적으로 사업 확장을 시작했다.

하지만 부동산 관련업과 DMB 관련 회사를 자회사로 영입하면서 회사 재정에 손실을 입혔다.

이씨는 2009년 대표이사 임기 만료와 함께 그 전까지 보유했던 지분 2.71%도 모두 정리한 채 회사를 떠났다. 이어 차남 이택노(53)씨가 형이 회사를 떠난 2009년, 임기 3년의 등기임원으로 선임된 후 2012년 초까지 활동했으나 재임도 못한 채 임원직서 물러났다.

현대판 
신데렐라

그렇게 두 아들이 거쳐간 빈자리를 노 부회장이 앉았으나, 3년을 넘기지 못하고 물러났다. 당시 업계에선 노 부회장을 두고 “전처와의 사이서 태어난 두 아들을 물리치고 경영권을 물려받은 ‘현대판 신데렐라’”라고 평가했다.

한편, 영풍제지가 중대재해 처벌 위기에 놓인 이유는 방만 경영 때문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해 10월 사망한 40대 노동자의 유가족 측은 “영풍제지가 사고 발생 직후인 10월18일 ‘주가조작 의혹’을 수습하느라 사망 책임을 뒷전에 둔 게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든다”고 주장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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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