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시대’ 영풍제지 무슨 일이…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1.04 14:03:51
  • 호수 14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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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조작에 추락사고까지
도마에 오른 방만 경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크리스마스 이브날 영풍제지 평택공장서 작업 중이던 노동자가 추락사했다. 같은 곳에서 또 다른 노동자가 작업 중 기계에 끼여 숨진 사망사고 이후 두 달여 만이다. 침울한 분위기는 본사도 마찬가지. 비슷한 시기에 영풍제지는 주가조작 사건에 휩싸여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연말연시 속 영풍제지는 말 그대로 ‘수난시대’를 겪고 있다.

평택경찰서에 따르면 2023년 12월24일 오전 3시50분께 평택시 진위면의 영풍제지 공장서 60대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 A씨가 기계 위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A씨는 지난 24일 오전 3시50분쯤 종잇조각을 모아 재가공하는 기계 위에 배관 연결 작업을 하던 중 2.12m 아래로 떨어져 숨졌다.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지만 오전 4시53분께 사망했다.

협력업체 
노동자 사망

고용부는 영풍제지가 중대재해법을 위반했는지 수사에 착수했다. 영풍제지 평택공장은 상시노동자 50인 이상으로 중대재해법 적용을 받는다. 중대재해법은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의 안전보건관리체계를 따져 형사처벌하는 법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사고 원인과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법 위반 여부에 대해 조사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경찰은 현장 관계자 등을 상대로 안전수칙 이행 여부 등을 조사했다.

해당 공장에선 지난해 10월14일에도 40대 노동자 B씨가 재생용지를 감는 기계에 끼여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영풍제지는 노동자 사망사고에 무대응으로 일관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유가족이 B씨의 사망 소식을 들었던 것은 사고 발생 몇 시간 뒤 병원을 통해서였다. 


‘외상으로 인한 심정지’로 사망했다는 의료진의 말을 처음 접한 B씨의 어머니는 ‘심정지’라는 단어만 들었을 때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불과 석 달 전 40대 중반 나이에 건강했던 B씨는 영풍제지 정규직 일자리를 얻었다며 기뻐했기 때문이다.

<경인일보> 보도에 따르면 유가족은 B씨가 사망한 지 사흘이 지나도록 영풍제지 측으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는 물론, 사고 원인조차 듣지 못했다. 사망 당일 사고지점을 직접 찾은 유가족은 생전에 B씨가 헬멧 등 기본 보호구를 착용한 정황도 없었고, 위험을 대비한 멈춤 장치의 작동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B씨 동생 C씨는 “멈춤 장치 작동은커녕 위험 지역 진입을 막는 노란색 철제 안전펜스도 먼지만 잔뜩 껴 있어 작동 여부가 의심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구석 뿐”이라며 “사측은 어떤 해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사람이 죽었는데, 경찰 수사 및 부검 결과만 바라보고 회사는 사과 없이 기다리라고 한다”고 토로했다.

유가족이 바라는 건 최소한의 추모 공간 마련 등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공장에 추모 공간을 5일 정도 마련해 망자를 기리고, 진상규명에 대한 연대 목소리를 모으자는 게 이들의 요구 사항이다. 

영풍제지 측은 “유가족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의견 차이가 있는 상황”이라고 일축했다.

안타까운 사망사고가 잇따른 가운데 주가조작 논란에 휩싸인 영풍제지는 침울한 연말을 맞이했다. 영풍제지는 골판지와 지관원지를 제작하는 상장사로 지난 8월 당시 주가가 10개월 만에 700% 넘게 급상승하면서 주가조작 의혹이 제기됐다.

앞서 2023년 4월, 영풍제지의 주식이 무상증자한 후부터 주가는 꾸준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영풍제지 측에서도 “뚜렷한 주가 상승 배경은 없다” “기업 가치가 과열된 것은 사실”이라고 말하면서 주가 상승에 의문을 보이기도 했다. 


다만, 주식 투자자들의 관심은 2차 전지 관련주에 쏠렸던 때라 당시만 해도 영풍제지가 2차 전지에 조금 관련이 있고 외국인들의 매수세가 강해 주가가 올라간 것으로 봤다. 

안전모 등 기본 장비 없었다
분노한 유가족 “원인도 몰라”

일각에서는 영풍제지를 인수한 대양금속이 주가조작의 배후라고 해석했다. 앞서 스테인리스 제조기업 대양금속은 2022년 11월 사업다각화를 내세우며 영풍제지를 인수했다. 대양금속이 품은 영풍제지는 돌연 지난해 3월, 주주총회서 사업목적을 추가했다.

전자부품제조, 무인항공기 제조, 소프트웨어 개발 등 16가지와 더불어 2차 전지 사업까지 확장하겠다고 밝혔던 것이다.

최근엔 사용 후 배터리 시험인증업체 ‘시스피아’를 인수한다고 나섰다. 영풍제지는 전환사채(CB·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를 취득하는 방식으로 투자했는데, 1년 뒤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하면 최대주주에 오르게 된다. 정확한 투자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다.

같은 해 11월엔 호주의 한 업체와 함께 2차 전지, 전자폐기물 산업에 진출하기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영풍제지는 이 업체가 광물 채굴부터 재활용까지 배터리 산업의 전반에 걸쳐 사업을 펼치고 있다고 밝혔다.

영풍제지의 2022년 매출액은 1054억원, 영업이익은 78억원이 고작이다. 그럼에도 2023년 초 주가는 6000원선에서 4만원대로 치솟았다. 대양금속에 인수되기 전 2500억원 수준이었던 시가총액은 현재 1조5000억원을 넘겼다. 

영풍제지의 주가 상승은 그해 9월까지 계속됐다. 무상증자 이후의 주가가 1만3990원이었는데 같은 달 8일 주가는 5만4200원으로 약 4배 가까이 상승한 것이다.

영풍제지 관계자는 “2차전지가 미래 먹거리라고 판단했다. 내부에 전문가는 아직 없는데, 영입을 고려하고 있다”며 “생산시설은 가장 빨리 갖출 수 있는 방법을 논의 중이며 사업 성과가 언제 날지는 변수가 많아 단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다 지난해 10월18일 영풍제지 주가가 갑자기 하한가를 기록하자 투자자들은 주가조작을 의심했다. 전날에는 약 5만원에 달했던 주가가 갑자기 하한가를 기록하며 하루 만에 약 3만원대로 내려앉았으니 의심받을 만했다. 

사람이 
죽었는데…

금융감독원 등은 수개월전부터 이미 영풍제지 주식을 모니터링해왔다고 한다. 영풍제지의 주가가 급하락하기 하루 전인 10월17일 검찰은 영풍제지 주가 시세를 조작한 것으로 의심되는 피의자 4명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이로써 영풍제지의 주가가 급하락한 이유는, 전날 체포된 주범들이 영풍제지 주식을 모조리 매도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거래소는 10월20일 영풍제지 주식을 거래 정지시켰으며 앞서 체포영장을 발부한 4명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해 구속 심사했다. 이어 사흘 뒤인 23일, 검찰은 영풍제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다음 날에는 영풍제지의 최대주주인 대양금속, 대양홀딩스컴퍼니 사무실까지 압수수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여파는 키움증권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당시 피의자들이 주가조작에 활용한 주식계좌가 키움증권에 다수 분포된 것으로 드러나면서다. 영풍제지 미수금 거래를 차단하지 못하고 4943억원의 미수금을 발생시킨 키움증권의 주가는 이날 23.93% 폭락했다.

영풍제지 시세조종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윤모씨와 이모씨 등은 소수 계좌서 시세조종 주문을 집중할 경우 범행이 드러날 수 있다고 판단, 100여개에 달하는 다수의 계좌를 동원해 범행 은폐를 시도했다. 피의자들은 이 계좌를 활용하면서 미수거래를 통한 레버리지를 이용했다. 

3일 뒤인 26일, 한국거래소는 영풍제지에 대해 거래를 재개했다. 주가는 여전히 하한가를 기록했다. 이후 11월2일까지 연속으로 하한가를 맞으며 역대 최장기간 하한가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5만원대였던 주가가 순식간에 4000원대로 떨어졌다.

하락세는 다음날부터 멈췄다. 장 초반에는 약간의 하락세를 보였으나 이후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다 전일 종가 4010원보다 5.24% 상승한 422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11월3일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는 주가조작 일당 4명을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이들은 2023년 초부터 영풍제지 주식을 무려 약 3600만주가량 사들여 주가를 조작하고 약 2800억원 상당의 이득을 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과는
없었다

지난해 영풍제지가 무상증자한 직후 주가로 약 3600만주를 계산해보면 영풍제지 주가조작 사태에 약 5000억원이라는 금액이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피의자들은 ‘라덕연 사태’와 마찬가지로 다수 계좌를 동원해 매일 조금씩 시세를 상승시키는 방법을 썼다. 11개월 동안 주가를 무려 12배 이상 끌어올렸으나 금융당국의 데이터 분석과 자금 추적에 결국 꼬리를 밟힌 것이다.

라덕연 사태는 투자동호회 등을 통해 동원된 다수의 계좌를 이용, 거래량이 적은 대성홀딩스 등 8개 종목의 주가를 끌어올린 뒤 차익을 실현해 주가가 급락한 사건이다.

영풍제지 주가 역시 라덕연 사태 종목들과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특별한 호재성 공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주가는 매일 서서히 오르며 2022년 11월부터 12배 이상 상승했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SG 사태와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다가 나온 게 영풍제지”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조사 착수 후 한 달여간 영풍제지 관련 약 1년간의 매매데이터를 분석하고, 혐의 계좌 등을 거쳐간 자금 원천에 대한 추적을 펼쳤다. 이후 강제수사 필요성이 크다고 판단, 지난 9월 증권선물위원장의 패스트트랙(긴급조치) 결정을 통해 사건을 서울남부지검에 이첩했다.

남부지검은 시세조종이 현재까지 계속 진행되고 있어 투자자 피해가 커질 수 있다고 보고 곧바로 수사에 돌입한 뒤 피의자 4명을 체포했다.

영풍제지의 거품은 실적을 통해 드러났다. 2023년 3분기까지 누적매출액이 629억원에 그치며 2022년 같은 기간 대비 23.3%의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아울러 9억2000여만원의 누적영업손실을 기록하고 있어 연간 적자전환이 우려된다.

회장 아들도 포기한 회사 
35세 연하 사모님 재조명 

이에 따라 영풍제지를 이끌고 있는 조상종 대표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질 전망이다. 대양금속 대표이기도 한 그는 영풍제지를 인수한 시점부터 영풍제지 대표도 겸직해오고 있다. 특히, 조 대표 역시 주가조작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는 대양금속 오너 일가와 밀접한 관계로 추정되고 있어 당국이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중대재해 발생으로 법적 책임을 마주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중대재해처벌법상 중대재해 발생에 따른 처벌 대상은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다. 따라서 잇따른 사망사고가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처벌로 이어질 경우 영풍제지 단독 대표이사인 조 대표가 그 대상이 될 전망이다.

한편, 영풍제지의 오너 리스크는 과거부터 이어져왔다. 영풍제지의 창업주이자 대표이사였던 이무진 회장은 2013년 1월3일 노미정 부회장을 최대주주로 변경했다. 공시에 따르면 이 회장은 2012년 말 자신이 보유하던 주식 51.28%(113만8452주) 전부를 노 부회장에게 증여했다.

증여가격은 주당 1만6800원으로 총 금액이 대략 191억원이다. 이에 따라 노 부회장은 영풍제지의 지분율이 기존 4.36%에서 55.64%(123만 5182주)로 크게 늘어나며 단독 최대주주가 됐다.

더욱 화제가 됐던 건 1969년생인 노 부회장은 1934년생인 이 회장과 2008년 재혼한, 서른다섯 살 연하의 아내라는 점이다. 노 부회장은 2012년 초 영풍제지의 부회장으로 이름을 올린 후 그해 8월 처음으로 회사 주식을 시장서 사들였고, 12월에 남편인 이 회장 보유 주식 전량을 증여받았다. 

영풍제지를 40년간 이끌어온 이 회장이 하루아침에 딸뻘인 아내에게 최대주주 자리와 사실상의 경영권을 넘겨주면서 경영 자질 논란에 휩싸였다. 심지어 이 회장에게는 전 부인과의 사이서 낳은 장성한 두 아들이 있었다. 

장남 이택섭씨도 경영에 참여한 바 있으나, 결과는 좋지 못했다. 이씨는 2002년 대표이사로 취임하며 경영권 승계 과정을 밟아 나갔다. 한경대학교를 졸업하고 영풍제지에 입사한 이씨는 경영 전면에 나서며 공격적으로 사업 확장을 시작했다.

하지만 부동산 관련업과 DMB 관련 회사를 자회사로 영입하면서 회사 재정에 손실을 입혔다.

이씨는 2009년 대표이사 임기 만료와 함께 그 전까지 보유했던 지분 2.71%도 모두 정리한 채 회사를 떠났다. 이어 차남 이택노(53)씨가 형이 회사를 떠난 2009년, 임기 3년의 등기임원으로 선임된 후 2012년 초까지 활동했으나 재임도 못한 채 임원직서 물러났다.

현대판 
신데렐라

그렇게 두 아들이 거쳐간 빈자리를 노 부회장이 앉았으나, 3년을 넘기지 못하고 물러났다. 당시 업계에선 노 부회장을 두고 “전처와의 사이서 태어난 두 아들을 물리치고 경영권을 물려받은 ‘현대판 신데렐라’”라고 평가했다.

한편, 영풍제지가 중대재해 처벌 위기에 놓인 이유는 방만 경영 때문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해 10월 사망한 40대 노동자의 유가족 측은 “영풍제지가 사고 발생 직후인 10월18일 ‘주가조작 의혹’을 수습하느라 사망 책임을 뒷전에 둔 게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든다”고 주장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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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