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최초로 측정을 한 시기는 언제였을까?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은 알 수 없다. 다만 저자는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 고대 문명을 살펴본다. 제1장에서는 최초의 문자가 탄생한 곳으로 생각되는 메소포타미아, 나일 강의 수위를 재던 이집트인, 고유한 방법으로 하늘의 움직임을 읽던 고대 마야인과 중국인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제2장에서는 최초의 국가가 형성될 즈음에 측정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살펴본다. 토지의 면적이나 곡물의 무게를 잴 때 쓰이는 기준값들은 지역이나 사람마다 달랐고, 이 느슨하고 유연한 값들을 통제하는 것은 사회 질서를 지키는 데에, 즉 왕권의 강화에 필수적이었다.
제3장과 제4장에서는 중세와 르네상스에 측정 방식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다룬다. 특히 옥스퍼드 계산학파와 갈릴레오, 뉴턴 등의 업적을 흥미롭게 소개한다. 아울러 과학과 수학이 본격적으로 꽃피던 시기에 측정 역시 꽃피었음을 지적한다.
세상을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 탐구하던 자연철학자들, 그리고 수많은 측정 도구들 중에 특히 온도계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인류가 저울과 자를 들기 시작하자, 위대하고 신비롭던 자연은 측정되고 해석되는 대상이 됐다.
제5장부터 제8장까지는 측정과 사회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짚어본다. 우선 제5장에서는 측정의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사건, 미터법의 제정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러나 저자는 1m의 탄생을 소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이면에 있던 프랑스 혁명의 분위기-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던 열망-를 함께 톺아본다.
제6장에서는 18세기 미국의 개척자들이 ‘야생의 땅’을 측량해 ‘관리할 수 있는 땅’으로 바꾼, 즉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지도를 그린 역사를 소개한다. 제7장은 통계의 탄생을 다루면서 이 새로운 학문의 엄청난 힘을 살핀다. 인류는 이제 특정한 현상의 경향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획득했는데, 그 힘은 우생학이라는 인류 최악의 학문을 낳기도 했다.
제8장은 영국의 제국 도량형과 미국식 도량형 등 미터법을 따르지 않는 척도들(그리고 이 척도들을 지키기 위해서 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우리가 일상서 항상 사용하는 미터법의 이면을 조명한다. 제9장은 ㎏의 정의가 새로 쓰인 2018년의 파리서 시작한다.
결국에는 똑같은 무게인데, 그 무게를 정의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과학자들이 표준값을 왜 일상에서는 체감하기 어려운 빛의 속도나 플랑크 상수를 통해서 정의하려고 하는지를 저자는 친절하게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제10장에서는 오늘날 성과를 나타내는 지표나 목표 대비 달성 비율 등이 기업서 널리 쓰인다는 것, 심지어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자연스럽게 숫자로 표현한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현대 사회서의 측정의 힘, 어쩌면 지나치게 커진 힘을 지적한다.
이처럼 생생한 일화와 흥미로운 이야기가 종횡무진 교차하는 이 책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어서 그 중요성을 미처 깨닫지도 못했던 측정을 소재로 인류 문명사를 독창적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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