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국내 요소수 수급에 빨간불이 켜졌다. 2년 전 요소수 대란을 되풀이하는 형국이다. 일부 판매 사이트에선 품절현상마저 빚어졌다. 사태는 이미 예견됐다. 지난 9월 초 중국이 “요소 수출량을 적극적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하면서다. 중국 내 비료 가격 안정 때문이란다. 이에 한국 정부는 “문제없다”며 여론 진화에 급급했다.
지난 5일 오전 롯데정밀화학이 판매하는 요소수인 ‘유록스’가 품절됐다. 온라인 판매 사이트에는 “이 상품은 현재 구매하실 수 없는 상품”이라는 공지가 떴다. 재입고 시 구매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국내 수급
급 빨간불
앞서 9월에도 요소수 품절이 예고되면서 개인당 1개로 구입을 제한했던 바 있다. 이후 품절 사태가 재발생한 것이다. 롯데정밀화학, 금성이앤씨 회사의 국내 차량용 요소수 시장 점유율은 50%가 넘는다. 금성이앤씨는 도매로 요소수를 취급한다.
지난 5일 기준, 쿠팡 등 온라인 사이트서 유룩스가 공식 홈페이지보다 1만원 이상 비싼 가격으로 판매됐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 중인 홈플러스 등은 품절이다.
롯데정밀화학 관계자는 “주문이 밀리면 자동으로 멈추는 시스템”이라며 “다음 해 3월까지 재고 물량이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이어 중국의 규제 지속 시 방안에 대해선 “중동 쪽 수입 물량으로 중국 수입 물량을 대체 가능하다”며 문제가 없다고 일축했다.
이처럼 2년 전 요소수 대란 때보다 낙관적인 분위기가 만연하다. 산업부에 따르면 현재 차량용 요소 및 요소수의 국내 재고와 베트남·일본 등 중국 외 국가로부터의 수입 예정분을 합치면 대략 3개월 분량의 재고가 확보된 상황이다. 2년 전 최대 6주 정도 물량밖에 비축하지 못한 상황과 다르다는 것이다.
지난 4일, 정부는 산업통상자원부 이승렬 산업정책실장 주재로 ‘정부-업계 합동 요소 공급망 대응회의’를 개최했다. 회의에서는 차량용 요소 재고 현황, 우리 기업의 중국 통관 애로사항을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정부는 공공비축(조달청)을 확대하고 업계는 대체 수입국가와 추가 물량을 확보해 나가기로 했다.
동남아·중동 등으로 다변화를 적극 추진해 차량용 요소를 안정적으로 확보해 나갈 계획이다. 환경부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협력해 수입 대체품의 신속한 품질검사를 지원하고, 관세청은 수입 요소에 대한 신속 통관을 지원하는 등 관련 조치를 시행할 예정이다.
강종석 기획재정부 경제안보공급망기획단 부단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서 “비료용 요소의 경우에는 최근에 수입 다변화가 이뤄지고 있고 가격도 하향 안정화 추세로 수급에 전혀 문제가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3개월 전부터 예고했는데…
2021년 대혼란 되풀이 우려
양기욱 산업통상자원부 산업공급망정책관도 “2년 전과는 달리 중국의 공식적인 조치가 아니고 재고와 대체 수입선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중국 외에 수입선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전망이다. 앞서 9월 초 중국 최대 화학비료 수출입 업체인 중눙그룹은 자국 내 비료 공급과 가격 안정을 이유로 “요소 수출량을 적극적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지난 6월부터 요소 선물 가격은 50% 이상 급등했다.
일각에선 가격 급등 원인에 관해 가을철 파종에 맞춰 대두와 옥수수 등 작물에 쓰는 비료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요소는 경유차의 발암물질 배출을 줄이는 요소수 뿐 아니라, 농업용 질산질 비료(요소비료)의 주원료이기도 하다. 특히 요소가 비료의 주원료인 만큼, 중국의 농민들이 안정적 공급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지난 9월8일 베이징 소식통에 따르면, 전날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요소 수출 제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우리 정부에 전했다. 당시 국내 차량용 요소수 1위 기업인 롯데정밀화학 관계자 역시 “아직 중국 업체들로부터 요소 수출 중단 등의 공식 통보를 받은 것은 없다”며 “이후 계약에 대해서도 원활하게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다만 중국 요소 업계가 수출 물량을 줄이려는 움직임은 곳곳서 감지됐다. 지난 9월 초, 중국 경제 매체 <시나파이낸스>는 “요소 수출 검사 정책이 엄격해졌고, 수출 통제 소식이 퍼지기 시작했다”며 “톈진항, 연운항에서는 (요소 수출 관련)검사가 중단된다는 구두 통지가 내려졌다”고 보도했다.
예견된 사태
뒤늦은 대처
중국이 요소 확보에 나선 이유는 대량 수출로 인한 빈 곳간을 채우기 위함이다. 중국은 올해 들어 요소를 적극 수출해왔다. 중국 관세청인 해관총서에 따르면, 올해 1~7월 중국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2.3% 늘어난 총 133만톤(t)의 요소를 수출했다. 특히 7월에만 약 32만t을 수출했는데, 지난해 동월보다 114.7% 급등한 수준이다.
여기에 비료 수요까지 겹치면서 중국 내 요소 재고가 급격히 줄었다. 중국 원자재 가격정보기관인 줘촹쯔쉰에 따르면, 7~8월 중국 요수 생산 기업의 주간 평균 재고는 20만1000t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53.7% 감소했다.
물량 부족에 중국 요소 선물 가격이 오르자 베이징 외교 소식통은 “해외 가격보다 국내 가격이 높게 형성되고 있는 만큼 요소 생산 기업 입장에선 수출보다는 내수에 집중하는 것이 더욱 이득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3개월 전부터 예견된 중국의 요소 수출 통제는 실현됐다. 정부에 따르면 지난달 말 중국 해관총서가 롯데정밀화학, 금성이앤씨 등 국내 차량용 요소수 제조업체들의 중국산 요소 수입을 막았다고 전했다. 수출 심사를 마치고 선적 단계서 통관이 보류된 사실이 알려지자 ‘제2의 요소수 대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중국 당국의 요소 물량 통제로 요소수 대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지만, 현장에선 차분하게 대응하는 분위기다. 불안감에 따른 사재기 현상은 결국 일부 판매업자의 이익만 불려줄 뿐 일반 구매자나 화물업계 종사자에게는 되레 피해만 가중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주유소마다 1인당 판매량에 자체적으로 제한을 걸고 있는 조치도 품귀현상을 저지하고 있다.
한 주유소 운영자는 “사재기하려는 분들이 간혹 있지만 차량 1대당 요소수 3통 이상은 못 팔게끔 하고 있다”며 “많이 사가려고 해도 딱 3통까지만 판다”고 밝혔다.
품귀현상
사재기도
온라인서 요소수는 평소보다 가격이 조금 오른 경향은 있지만, 일부 판매처를 제외하곤 품절현상이 회복되는 추세다. 오프라인 주유소와 마찬가지로 판매량에 제한을 둔 곳도 적지 않다.
사재기를 경계하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품귀 효과를 기대해 판매를 일시 중지하거나 가격을 올리는 일부 온라인 판매상들의 이기심에 대응하려는 취지다. 이 같은 움직임은 특히 화물업계 종사자들 사이서 먼저 꿈틀거리고 있다.
화물업계 종사자 약 11만명이 모인 한 포털사이트 카페는 “요소수 사재기는 일부 판매 업자들에게만 이득을 주는 것”이라며 “필요한 만큼만 구매해 가격 인상이나 품절 사태를 막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공지했다.
발 벗고 나선 소비자들은 사재기 현상을 억제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요소수 대란이 재현될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중국 당국이 내년 1분기까지 요소 수출을 제한하고, 한해 수출 물량 역시 크게 줄일 거란 보도도 우려를 키우고 있다.
현실화할 경우 차량·산업용 요소의 91%를 중국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으로서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올해 1~7월 한국은 중국산 요소 19만6000t을 수입하면서 전 세계서 2번째로 많이 사들였다. 1위는 총 22만6000t을 수입한 인도였다. 한국의 공업용, 차량용 요소의 중국산 비중은 90%에 육박한다.
업계에서는 지금과 같은 상황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공급망 다변화로 예방책을 세우는 것이 최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2021년 요소수 대란 이후 정부의 ‘수입선 다변화’ 등 재발 방지 대책은 오리무중이다. 현재 한국의 요소수 관련 중국 의존도는 2년전 요소수 대란이 일어났을 때보다 높은 수준이다.
중국 수입 세계 2위
수입망 다변화 실패
2021년 71%서 2022년 67%까지 떨어졌으나,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는 91%로 다시 높아진 상황이다.
중국 요소수 의존도가 급등한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가격 경쟁력 때문”으로 해석했다. 관련 업계 종사자에 따르면 “요소라는 것이 생산하기도 쉽고 부가가치가 아주 큰 제품이 아니다 보니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며 “거리가 먼 곳에서 수입할수록 비용이 더 들기 때문에 가깝고 가격경쟁력이 높은 중국산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더불어 공급망 안전화를 위한 제도 정비도 계류된 상태다. 지난해 10월에 발의된 ‘경제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공급망 기본법)은 아직 국회 문턱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해당 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회 본회의 의결 절차가 남아있다.
지난 8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의결된 ‘공급망 기본법’은 자원 무기화 추세 속 정부가 공급망 안정화 및 위기 관리체계를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법안이 통과되면, 정부는 공급망안정화 기본계획, 조경보시스템을 수립 및 운영해야 하고 관련 정책만 별도로 심의·의결하기 위한 공급망안정화위원회도 설치된다. 긴급 지원 등 비상상황에 대비한 공급망안정화기금도 한국수출입은행 산하에 설치된다.
대표 발의한 국민의힘 류성걸 의원실 측은 “법사위 파행으로 인해 아직 국회 본회의 상정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제도 정비
멈춘 상태
야권에서는 현 정부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더불어민주당 윤영덕 원내대변인은 지난 4일 “중국의 의도를 떠나 요소수 수입의 91%를 중국에 의존하는 현실서 중국의 선적 중단이 계속되면 요소수 대란을 피할 방법이 없다”며 “전임 정부는 2년 전 요소수 대란을 겪고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했지만 윤석열정부는 공급망 다변화 정책을 철폐해 71% 의존도가 91%까지 치솟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 와 공급망 다변화에 나서겠다니 한심하기 그지없다”며 “정부는 공급선을 다변화하는 한편 중국과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수급 혼란을 최소화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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