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홀연히 떠난 자승 스님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3.12.04 10:38:10
  • 호수 14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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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입적 의문만 남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여기서 인연을 달리해 미안하다.” 지난 10여년간 조계종의 실세로 군림했던 자승 스님. 현장에 그가 남긴 유서로 추정되는 메모는 단 2장이었다. 생전에 스님은 ‘상월결사’(霜月結社)와 봉은사 회주 등을 맡으며 조계종의 주요 의사결정을 지휘해왔다. 상월결사는 불교중흥과 국민화합을 이루고 세상의 평화로 나아가자는 그의 뜻을 계승·실천하고자 결성됐다.

지난달 29일 오후 6시50분께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사 요사채에 불이 났다. 요사채는 사찰 내에 스님들이 거처하는 곳을 말한다. 화재 진압을 위해 요사채 내부로 들어간 소방당국은 숨져 있던 스님 1명을 발견했다. 숨진 채 발견된 법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33·34대 총무원장을 지낸 자승 스님으로 확인됐다. 당시 요사채 안에 있던 스님 4명 중 3명은 밖으로 대피해 화를 면한 것으로 전해졌다.

불탄 칠장사
법구들 발견

소방당국은 화재 발생 후 한 시간여 만인 7시52분께 불길을 잡아 9시48분께 불을 껐다. 요사채 외 다른 사찰 시설로 불길이 번지지는 않았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사찰 내 폐쇄회로(CCTV), 사찰 내 목격자 등을 통해 정확한 화재 원인과 피해 규모 등을 조사했다.

서울 봉은사 회주를 맡았던 자승 스님은 죽산면 아미타불교요양병원의 명예 이사장으로도 활동 중이었다. 아미타불교요양병원은 조계종 스님들의 노후를 돌보는 무료 병원으로 지난 5월 개원했다.

평소에도 자승 스님은 이따금 칠장사에서 머무르곤 했다. 이날도 스님은 칠장사를 방문한 이후 연락이 두절된 것으로 전해졌다. 칠장사는 궁예, 임꺽정, 어사 박문수와 관련된 설화로 유명한 천년 고찰로 1983년 9월19일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24호로 지정된 곳이다. 이번 화재로 인한 문화재 훼손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불이 난 요사채는 종무소 등이 있는 사찰 법당과는 직선거리로 100여m 떨어져 있다. 경찰의 현장 통제로 요사채로의 출입은 막힌 상태다. 요사채는 타다만 나무기둥이나 일부 잔해만 남긴 채 모두 소실됐다. 다만, 누군가가 요사채만 타도록 불을 낸 것일 수도 있다는 의구심은 증폭됐다.

칠장사에 주차된 차량에서는 자승 스님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메모가 발견됐다. 이 메모에는 “검시할 필요 없습니다. 제가 스스로 인연을 달리할 뿐인데 CCTV에 다 녹화되어 있으니 번거롭게 하지 마시길 부탁합니다”는 문구와 함께 자승 스님 자필 서명이 담겼다.

또 지강 스님에게 “이곳에서 세연을 끝내게 되어 민폐가 많소. 이 건물은 상좌들이 복원할 겁니다. 미안하고 고맙소. 부처님법 전합시다”라는 당부를 남기기도 했다. 

경찰은 방화 등 모든 가능성 열어두고 수사할 방침이다. 합동감식은 지난달 30일 오전 11시부터 이뤄졌다. 칠장사 CCTV 영상을 확보한 경찰은 자승 스님이 혼자 요사채에 들어간 것을 확인했다. 

수사당국 관계자는 이날 “일체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자승 스님의 사망 원인 및 과정에 대해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수사당국은 방화나 방화에 의한 살해, 제3자가 개입한 사고사 위장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아울러 자승 스님이 남긴 유서가 그가 직접 작성하지 않은 문건이거나, 누군가에 위력에 의해 작성됐을 가능성 등을 조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돌연 유서까지 쓰고?…커지는 미스터리
상월결사 지휘…불교 알리기 온몸 던져


이와 관련해 국정원은 전날, 경기도 안성 칠장사 화재 현장을 현장 점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정원 관계자는 “현장 점검을 실시한 것이 맞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자승 스님이 불교계 유력인사고 사찰 화재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서 경찰 수사와 별도로 테러 및 안보 위해 여부 등을 확인하는 차원서 현장 점검을 실시했다”고 전했다.

자승 스님은 지난 2002년과 2010년, 2011년 세차례에 걸쳐 남북 불교 교류 활성화를 위해 북한을 방문한 바 있다.

경찰과 국정원은 통신 기록 등을 통해 자승 스님의 행적을 면밀히 확인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칠장사 화재 직전 자승 스님과 함께 있었던 스님들을 상대로 조사에 나서 당일의 상황을 전면 재구성할 방침이다.

또 다른 수사당국 관계자는 “하루 전, 이틀 전까지만 해도 정부 관계자 등 다양한 인사들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고 했다.

일각에선 자승 스님이 지난달 27일 봉은사에서 언론 간담회를 갖는 등 활발하게 활동한 만큼 유서를 작성할 이유가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주변 관계자들은 자승 스님의 돌연한 입적 선택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다. 최근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보이며 종단 정책에 대한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한 조계종 관계자는 “입적이 믿기지 않는다”며 “일선서 활약하며 힘든 일도 마다치 않고 이끄셨는데 갑작스러운 상황에 허망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자승 스님은 조계종 내의 대표적인 사판승(행정 담당 스님)으로 ‘종단 내 최고 실력자’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사흘 전까지…
조계종 발칵

자승 스님은 지난달 27일, 불교계 언론사와 만난 자리서 “나는 대학생 전법에 10년간 모든 열정을 쏟아부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2027년 교황 방한이 예상되는 가톨릭 세계청년대회에 맞춰 서울서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기도 했다. 

자승 스님은 2009년 조계종 33대 총무원장으로 선출됐다. 2013년에는 재선돼 총 8년간 총무원장을 지냈다. 두 번의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냈던 그는 퇴직 후에도 서울 강남구 봉은사 회주를 맡아 왕성하게 활동했다. 실제로 정치인들도 스님을 찾아올 만큼 상당한 권력을 쥐고 있었다.

여야 국회의원은 물론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해 윤석열 대통령도 봉은사를 방문해 그에게 불교계 현안을 들었다.

자승 스님의 입적 소식을 접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가르침을 잊지 않겠다”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오 시장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자승 스님의 갑작스런 입적 소식을 듣고 황망하기 이를 데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오 시장은 “스님은 ‘동심동덕’(同心同德)으로 화합을 강조하셨던 불교계의 큰 어른이셨다”며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는 말씀은 정치권에 주신 죽비와도 같다”고 되새겼다.

자승 스님은 33대 집행부와 스님 노후를 위한 수행연금 지원, 스님 사후 사유재산을 종단에 귀속시키는 종법 개정, 한국불교수행법 대중화, 해외특별교구 설립 등을 추진했다. 베트남 고엽제 피해자, 동남아 국가의 저소득계층 지원 등 사회활동도 왕성히 펼쳤다.

2021년에는 학교법인 동국대 건학위원회의 고문이자 총재를 맡았다. 사실상 조계종 내 가장 큰 권력 두 개를 모두 잡은 셈이다. 은사인 월암 정대 스님이 설립한 은정불교문화진흥원의 이사장도 맡았다. 

북한 테러?
온갖 소문

지난해엔 상월결사 회주로 부처의 말씀을 전파하는 전법 활동에 매진했다. 2019년 자승 스님을 주축으로 9명의 스님이 모여 시작된 상월결사는 봉암사결사 정신을 잇는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봉암사결사에 참여한 스님들은 소욕지족의 삶을 살며, 어떤 명예나 자리를 탐하지 않고 오로지 “부처님 법대로 살아가자”는 마음이었다.

자승 스님은 지난 봄 40여일에 걸쳐 인도 부처님 성지 1167㎞를 도보로 순례할 만큼 건강했다. 지난 3월에는 조계사 회향법회서 “성불(成佛)보다 부처님 법(法)을 전합시다”며 전국 교구본사별로 대학생 등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전법 캠페인을 벌였다.


일각에선 종단 권력이 자승 스님에게 집중된다는 비판도 나왔다. 진보 성향의 명진 스님은 자승 스님이 자신의 승적 박탈을 이끌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불교계 일각에서는 자승 스님이 조계종의 최고 지도자인 ‘종정’이 되려고 한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부정 여론이 일자 자승 스님은 조용한 은퇴를 고민했지만 결국 활발한 포교활동을 선택했다. 생전에 자승 스님은 “퇴임 후에, 은퇴 후에 종단에 얽매이면서 살아온 여러 가지 힘들었던 이런 것들을 여과시키고 어쨌든 정진하고 기도하는 이러한 평범한 대중으로 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새 총무원장이 취임하자 상월결사에 참여한 자들이 대거 요직을 차지하기도 했다. 당시 조계종 노조 박정규 기획홍보부장이 “총무원장 선거에 자승 스님이 개입한다”며 서울 강남 봉은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중 승려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갑작스러운 입적 소식에 불교계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며 상당히 큰 충격에 휩싸인 모습이다. 특히, 종단 내 실세였던 자승 스님의 갑작스러운 입적으로 조계종 내부는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동국대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건학위원회, 봉은사 회주, 상월결사 회주, 은정재단 등이 리더십 공백에 처했다.

‘조계종 실세’ 논란도 잇달아
경찰에 국정원까지 조사 나서

한편, 조계종 측은 “11월29일 안성 칠장사 화재와 관해 대한불교조계종 제33대 제34대 총무원장을 역임하신 해봉당 자승 스님께서 입적하셨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자승스님이 스스로의 선택으로 분신했다고 판단했다. 

조계종 대변인인 기획실장 우봉 스님은 “(자승 스님이)종단 안정과 전법도생을 발원하면서 소신공양 자화장으로 모든 종도들에게 경각심을 남기셨다”고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소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서 열린 브리핑서 말했다. 소신공양(燒身供養)은 불교서 자기 몸을 태워 부처 앞에 바치는 것을 의미한다.

조계종은 자승 스님이 “생사가 없다 하니 생사 없는 곳이 없구나. 더 이상 구할 것이 없으니 인연 또한 사라지는구나”라는 열반송(스님이 입적에 앞서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후인들에게 전하기 위해 남기는 말이나 글)을 남겼다고 전했다.

조계종은 총무원장인 진우 스님을 장의위원장으로 하는 장례위원회를 꾸렸다. 서울 종로구 소재 총본산인 조계사에 분향소를 마련해 지난 3일 자승 스님의 장례를 종단장으로 모셔 영결식을 엄수했다. 다비장은 자승 스님의 소속 본사인 용주사 연화대서 행했다.

조계종은 조계사 외에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와 전국 각 교구 본사, 종단 직영 사찰인 봉은사·보문사 등에도 지역분향소를 마련할 예정이다. 장례는 종단장 규정에 따라 입적일을 기점으로 5일장으로 행했다.

고인은 1954년 강원도 춘천 출신으로 1972년 해인사로 출가해 1973년 첫 은사였던 조계종 3·9대 총무원장을 지낸 경산 스님으로부터 ‘자승’이란 법명을 받았다. 1986년부터 총무원 교무국장으로 종단 일을 시작했다. 1988년 제30대 조계종 총무원장 정대 스님의 상좌도 지냈다.

1992년 10대 중앙종회의원에 선출된 후 1996년 11대 중앙종회 사무처장, 12·13·14대 중앙종회의원을 역임했다. 서울 관악산 연주암 주지였던 1994년부터 신도는 물론, 등산객들에게 비빔밥 점심 공양을 제공하는 등 불교 교세 확장을 위해 노력해왔다.

4년 임기 두 번
총무원장 유일

이때 1994년 개혁종단 설립 후 분열된 불교계를 하나로 묶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유력한 차기 총무원장 후보로 떠올랐다. 

2009년 10월 총무원장 선거서 전체 317표 중 290표라는 역대 최대 득표로 제33대 총무원장에 당선된 자승 스님은 당시 나이 만 55세로 전 총무원장들보다 젊어 주목을 받았다. 1962년 통합종단조계종 출범 후 청담, 의현 스님이 총무원장을 연임했지만, 4년 임기 두 번을 모두 채운 총무원장은 자승 스님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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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창행 김건희’ 아직 남은 의혹들

‘철창행 김건희’ 아직 남은 의혹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논란과 문제가 끊이지 않던 퍼스트레이디가 결국 구속됐다. 김건희 여사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검찰총장 인사청문회부터 사사건건 발목을 잡던 의혹으로 최초로 구속된 영부인이 됐다. 김 여사의 구속 기간인 20일 동안 김건희 특검팀은 남은 수사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법원이 지난 13일, 김건희 여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전격 발부하면서 최초로 전직 대통령 부부가 모두 구속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대통령보다 힘이 세던 V0이 몰락한 셈이다. 주요 의혹인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태균 공천 개입’ ‘건진법사·통일교 현안 청탁’ 등으로 김 여사 구속에 성공한 김건희 특검팀은 남은 의혹에 대한 수사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증거인멸 도주 우려” 이날 법조계에 따르면, 김 여사는 구속영장이 발부되면서 정식 구치소 입소 절차를 거쳤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주소 등 인적 사항을 확인한 후 일반 수용자와 마찬가지로 정밀 신체검사를 진행한다. 이는 마약 등 반입 금지 물품을 지니고 들어왔는지 등을 확인하는 절차다. 왼쪽 가슴 부분에 수용자 번호가 있는 미결수용 수용복으로 갈아 입고, 얼굴 사진인 ‘머그샷’을 촬영한다. 또 지문 채취와 구치소 내 규율 등 생활 안내, 건강 검진도 받게 된다. 이후 세면 도구와 모포, 식기 세트 등을 받아 본인 ‘감방’으로 향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영부인 신분이 아닌 만큼 일반 수용자와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게 법무부 측 설명이다. 김 여사는 앞서 수감된 윤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독거실에 수용될 전망이다. 크기는 구인 피의자 대기실과 비슷하며 매트리스와 책상 겸 밥상, 관물대, TV 등이 비치돼있다. 끼니도 구치소에서 제공하는 1700원짜리 음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식사와 목욕도 일반 수용자와 같은 절차에 따르지만, 보안상 다른 수용자와의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김건희 특검팀(특별검사 민중기)은 지난 7일, 김 여사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검은 법원에 22쪽 분량의 구속영장 청구서와 함께 848쪽 분량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구속 의견서에는 ▲지난 4월4일 윤 전 대통령 파면 직후 김 여사가 휴대전화를 교체한 사실 ▲탄핵 인용 전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에 있는 노트북을 포맷한 사실 ▲김 여사의 ‘문고리’로 불리던 유경옥·정지원 전 대통령실 행정관이 휴대전화를 초기화한 사실 등이 적시됐다. 특검은 ▲김 여사가 지난 6일 조사 과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한 점 ▲김 여사의 진술이 계속 바뀌는 점 ▲압수된 휴대전화의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등 수사에 비협조적인 점 ▲전 대통령실 행정관 등 최측근과 말 맞추기를 시도할 우려가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김 여사가 건강상 이유로 입원할 경우 수사에 불응할 가능성이 있다며 구속 사유에 ‘도주 우려’를 포함했다. 영장실질심사에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수사를 주도했던 한문혁 부장검사 등 8명이, 김 여사 측에선 유정화·채명성·최지우 변호사가 참여했다. 김 여사 측은 이날 약 80페이지 분량의 자료를 준비했으며 특검도 구속 수사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약 3시간 분량의 프리젠테이션(PT)을 진행했으나 법원은 특검의 손을 들어줬다. 특검팀이 처음 주목한 의혹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이른바 명태균 게이트로 불리는 ‘명태균 공천 개입’ 건진 게이트로 불리는 ‘건진법사·통일교 현안 청탁 의혹’이다. 특검팀은 이를 848쪽의 구속 의견서에 담았다. 최초 전직 대통령 부부 구속 의견서엔 구체적 사실 적시 구체적으로 김 여사가 지난 2010년 10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범행에 가담한 공범이라고 판단하며 불법 거래 횟수가 총 3822회에 달한다고 적시했다. 특검은 김 여사가 주가조작으로 수익 8억1144만3596원을 얻어내기 위해 70만2512주를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과 공모해 통정매매 188회, 가장매매 12회를 했다고 판단했다. 또 같은 기간 주가를 올리려는 목적으로 높은 값에 사는 척하는 고가 매수 주문 1661회, 주가를 내리려는 목적으로 많은 양의 주식을 파는 척하는 물량 소진 주문 1432회, 허수 매수 주문 367회, 시가·종가 관여 주문 242회 등의 이상매매 주문을 김 여사가 권 전 회장 등과 공모해 제출했다고 봤다. 4년 넘게 김 여사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수사했던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0월 “김 여사가 주가조작을 인식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김 여사의 계좌가 주가조작에는 이용됐지만 범행을 알았다는 증거가 없었다는 취지라며 주가조작 공모와 방조 모두 무혐의로 판단했다. 하지만 특검은 보강 수사를 거쳐 방조 혐의를 넘어 공범 혐의를 적용했다. 특검은 2011년 1월경 김 여사가 미래에셋증권 직원과 통화하면서 “6대 4로 나누면 저쪽에 얼마를 줘야 하는 것이냐”며 “2억7000만원을 줘야 하는 것 같다”고 말한 통화 녹취록을 확보해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여사가 통화 당일 은행 계좌에서 2억7000만원을 수표로 인출한 사실도 확인했다. 이에 특검은 김 여사가 주가조작 주도 세력인 ‘저쪽’에 수익 40%를 떼어줬다고 판단하고 “시세조종이라는 교묘한 수법을 동원해 재산상 이득을 취했다”고 적시했다. 특검은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 관련 공천 개입 의혹과 건진법사 전성배씨 관련 통일교 현안 청탁 의혹 등에 대해선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가 공적 지위를 사적으로 활용한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특검은 “헌법적 가치가 훼손됐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명씨로부터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받고 공천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정당의 후보자 추천 제도에 정치권력과 금권이 개입한 사건’으로 규정하며 “선거제도의 출발점인 공천의 공정성을 훼손하면서 정당의 후보자 추천 제도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침해했다”고 영장에 적시했다. 또 윤모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으로부터 샤넬 백 2개와 영국 그라프사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등 총 8000여만원의 금품을 전씨를 통해 전달받은 뒤 통일교 현안 청탁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선 김 여사 구속영장을 통해 “종교와 정치가 분리돼야 한다는 헌법 정신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서 국정 질서에 혼란을 초래했다”고 규정했다. 848쪽 의견서 특검은 통일교의 캄보디아 메콩강 부지 개발 등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지원 청탁에 대해선 “김 여사가 대한민국 정부의 조직과 예산에 대한 사적 개입으로 국정 질서에 혼란을 초래했다”고 밝혔다. 특검팀이 밝혀낸 3가지 의혹의 주요한 사실과 더불어 제시한 ‘증거인멸 정황’이 김 여사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검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를 구매해 김 여사에게 교부한 혐의를 받는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으로부터 전날 제출받은 자수서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 진품, 김 여사의 친오빠 진우씨의 장모 자택에서 압수한 목걸이 가품을 영장실질심사에서 제시했다. 이 회장은 자수서에서 “대선이 치러진 2022년 3월 직후 비서실장을 통해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를 구입해 김 여사에게 전달했고 다시 돌려받았다”고 밝혔다. 특검에 따르면 김 여사가 이 회장 측에 진품을 돌려준 시기는 2022년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순방 이후 재산 미등록 의혹 관련 고발장이 제출된 2022년 9월 이후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건희 특검팀이 수사하고 있는 의혹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삼부토건 주가조작 사건 ▲코바나컨텐츠 뇌물성 협찬 사건 ▲명품 가방 수수 사건 ▲명태균·건진법사 등 민간인이 국정에 관여한 국정 농단 사건 ▲인사 개입 사건 ▲채해병 사건 및 세관 마약 사건 구명 로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개입 ▲제8회 전국동시지방 선거 개입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개입 ▲명태균 등을 통해 제20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불법 여론조사 등 총 16가지다. 이 외에도 ▲무상 여론조사 제공 대가로 2022년 재보궐선거 공천 거래 등 선거 개입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및 양평 공흥지구 인허가 과정 개입 ▲대통령 집무실 이전 및 국가 계약에 개입 ▲국가기밀정보 유출 ▲제1호부터 제15호까지의 사건과 이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 및 특별검사의 수사에 대한 방해 행위 등이다. 특검팀은 의혹의 정점인 김 여사의 신병을 확보함에 따라 최장 20일간의 구속 기간 동안 아직 풀리지 않은 사건들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낼 예정이다. 대부분의 의혹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태균·건진법사 게이트와 관련된 사건으로, 특검팀은 관련된 사실을 대부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들통난 거짓말 이에 특검팀은 출범 이후 인지한 사건인 ‘집사 게이트’와 관련해 수사력을 모을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베트남에서 귀국한 ‘김 여사 일가의 집사’ 김예성씨의 신병을 확보함에 따라 향후 수사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김씨를 중심으로 IMS모빌리티(구 비마이카)에 대가·보험성 투자 혐의가 의심되는 기업들과 김 여사 일가의 사금고 의혹을 받는 신안저축은행, 그리고 김 여사가 운영해 온 코바나콘텐츠가 개최한 전시회 뇌물 협찬 기업들로 수사가 확대될지도 주목된다. 우선 특검팀은 이번 김 여사의 구속영장 청구에서 배제됐던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 의혹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6000만원대로 알려진 해당 목걸이는 2022년 6월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나토 정상회의 참석 차 유럽 순방 당시 착용했다가 재산 신고 누락 논란의 중심에 섰던 바 있다. 목걸이의 행방을 추적해 왔던 특검팀은 최근 김 여사의 오빠인 김진우씨의 장모집에서 해당 목걸이를 확보했지만 감정 결과 모조품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 여사 역시 해당 목걸이에 대해 모친인 최은순씨에게 선물하기 위해 2010년쯤 홍콩에서 구매한 200만원대 모조품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특검팀이 최근 서희건설 측으로부터 윤 전 대통령 당선 직후 ‘김 여사에게 반클리프 스노 플레이크 목걸이의 진품을 직접 건넸다’는 취지의 자수서를 확보하면서 수사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윤 전 대통령 당선 직후 해당 목걸이를 선물했으며, 몇 년 뒤 김 여사 측으로부터 돌려받아 보관해 왔다는 게 서희건설 측의 설명이다. 서희건설 측은 해당 목걸이 실물도 특검팀에 제출했다. 특검팀 관계자는 “김 여사는 서희건설 측으로부터 목걸이 진품을 교부받아 나토 순방 당시 착용한 게 분명함에도 특검 수사 과정에서 자신이 착용한 제품이 20년 전 홍콩에서 구매한 가품이라고 진술하고 김 여사 오빠 인척집 압수수색 과정에서 이와 동일한 모델인 가품이 발견된 경위에 대해 철저히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여사를 비롯한 모든 관련자를 수사 방해 및 증거인멸 혐의에 대해 명확히 규명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받은 귀중품 수사 확대 집사 게이트·관저 이전 의혹도 특검팀은 조만간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과 비서실장 최모씨 등을 소환 조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인척집에서 최소 3000만원 이상의 바셰론 콘스탄틴 여성용 시계 보증서가 발견된 것과 관련해서도 김 여사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수사 중이다. 해당 시계를 구매한 사업가 서모씨는 최근 특검팀 조사에서 지난 2022년, 윤 전 대통령 취임 뒤 김 여사의 부탁을 받아 같은 해 9월7일쯤 자신이 구매한 뒤 직접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시계 구매 자금 중 일부는 김 여사 측으로부터 받았다는 입장이다. 같은 해 9월 대통령경호처와 1870만원 상당의 로봇개 경호 시범 사업 계약을 맺기도 했다. ‘집사 게이트’와 관련해서는 핵심 키맨인 김씨가 베트남 호찌민에서 귀국하자마자 특검팀은 인천공항에서 체포해 특검 사무실로 압송해 즉시 조사에 착수했다. 김씨의 체포 기한이 영장 집행 기준 48시간 이내이기 때문에 특검팀은 그 안에 수사를 마치고 구속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김씨 역시 특검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특검팀은 김씨를 상대로 집사 게이트에 연루된 기업들의 184억원 투자 경위와 46억원의 행방 그리고 코바나콘텐츠 뇌물 협찬 의혹을 집중 추궁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씨가 운영한 렌터카 플랫폼 사이드스탭 ‘뿅카’는 비마이카와 함께 2015~2019년 코바나콘텐츠가 개최한 4개 전시회 협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또 카카오모빌리티와 HS효성 등은 물론 신안저축은행을 대상으로 특검팀의 수사가 확대될지도 주목된다. 특검팀은 카카오모빌리티와 HS효성 등이 IMS모빌리티에 거액을 투자하기 전후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조사받은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이에 지난 11일, 관련 자료 제출 요구를 위한 정부세종청사 공정위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기도 했다. 김 여사 일가가 운영하는 이에스아이엔디(ESI&D) 등에 130억원이 넘는 대출을 해준 것으로 알려져 사금고 논란이 제기된 바 있는 신안저축은행은 코바나콘텐츠 전시회에도 협찬했다. 신안그룹 회장 차남인 박지호(개명 전 박상훈) 전 신안저축은행 대표는 2010년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EMBA)에서 김 여사와 김씨를 처음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인연이 이어져 2013년 3월 신안저축은행의 각종 불법 대출 혐의가 불기소 처분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수사를 지휘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부장검사가 바로 윤 전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김씨는 박 전 대표의 집사 역할을 했다는 의혹도 있다. 박 전 대표는 신안저축은행이 2017년 김씨와 모친 최은순씨의 329억원대 허위 잔고 증명서 사건의 피해자였음에도 이듬해 김씨를 계열사인 바로투자증권(현 카카오페이증권) 임원으로 선임했다. 특검팀 과제는? 특검팀은 관저 이전 특혜 의혹에 관한 수사도 본격화했다. 이들은 지난 13일 “관저 이전과 관련해 21그램 등 관련 회사 및 관련자 주거지 등에 대해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등 혐의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검팀이 관저 이전 문제에 대한 강제수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관저 이전 특혜 의혹은 윤 전 대통령 취임 후 대통령실과 관저 이전·증축 과정에서 21그램 등 무자격 업체가 공사에 참여하는 등 실정법 위반이 있었다는 게 핵심이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