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29일 토요일,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서편 좁은 골목.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이자 최대 규모의 압사 참사가 발생했다. 이 참사로 159명이 사망했고, 300여 명이 다쳤다. 그날 그곳에서 많은 것을 몸으로 겪고 목격한 사람, 김초롱은 이태원 참사 생존자다. 그날 이후, 그의 세상은 뒤집히고 무너졌다. 김초롱은 당시 상황과 목격한 것들, 생존자로서 상담을 받으며 겪은 심리 변화를 다룬 글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재했다. 그 글의 제목이 <선생님,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다.
책은 참사 당일의 타임라인으로 시작한다. 10월29일 18시30분부터 10월30일 새벽 이후까지, 직접 겪은 시간대별 이태원의 상황과 감정 변화를 시간 순으로 되도록 자세히 담았다. 김초롱 작가에 따르면 그날은 ‘평범한 날’이었다. 21시10분쯤 녹사평역에서 이태원으로 향하는 길은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마법사 분장을 하고 뛰어 놀던 모습, 가족 세 명이 모두 콘헤드 분장을 하고 몰려다니는 걸 보고 깔깔거리던 기억까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했다. 모두에게 행복하고 평범했어야 할 그날이 참사 현장으로 변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22시 무렵 인파를 뚫고 도착한 해밀턴 호텔 뒷골목에서 김초롱은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는 상황, 발이 땅에 닿지 않고 앞뒤로 세게 압력이 가해지는 공포를 경험한다.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아, 그는 이 책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책에는 김초롱 작가가 이태원 참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준비 중인 미국 CBS 촬영 팀과 했던 인터뷰 장면이 등장한다. 촬영 팀 감독은 묻는다.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사람들의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무엇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은지.
김초롱은 답한다. ‘문제해결 방식’이 문제라고. 어떤 큰 사건이나 참사가 벌어졌을 때 ‘사회적 학대’를 하는 식으로 해결해왔다고. 그 일이 일어난 원인을 툭 터놓고 이야기하거나 사과할 생각은 하지 않고, 개인 탓이나 남 탓으로 돌리고 축소하고 외면하고 무시하고 얼른 지워버리려 애쓰면서. 그리고 그는 “이제는 좀 더 건강한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때”라고 덧붙인다.
책을 먼저 읽은 배우 문소리는 추천의 말에서 ‘생존자’라는 단어에 담긴 양가적 의미를 정확히 포착했다. ‘기쁘고 감사한’ 동시에 ‘무섭고 고통스러운’ 단어라는 것이다. 생존자는 동시에 살아남지 못한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생존자라는 단어를 집요하게 말하는 이 책의 가장 큰 효용은 아마도 잊을 수 없는 사건, 잊지 않아야 할 것을 계속 기억하도록 돕는 데 있을 듯하다.
이제, 소설가 김훈이 추천의 말에서 날카롭게 짚어낸 것처럼 재난 참사의 모든 진실은 피해자 쪽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피해자의 고통을 경청하고 공감하는’ 일일 것이다.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는 지금, 이 책은 그렇게 우리 손을 잡아끌어 경청과 공감의 입구에 데려다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