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병 취급 ‘CRPS’ 환자들 실상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3.11.06 14:08:13
  • 호수 14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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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진통제로 하루하루 버틴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칼로 벤 듯한 고통 속에 살아가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들의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을까? 보건복지부가 장애로 인정했으나, CRPS 환자들은 끊임없는 재판정을 통해 ‘꾀병’이 아님을 증명해야 한다. 의료용 마약 진통제로 버티며 생사를 오가는 이들은 ‘마약 중독자’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CRPS는 외상을 입거나 수술을 마친 후 비정상적으로 극심한 통증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신경 경로가 정상서 일탈해 통증이 과도하고 불규칙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드물게는 염좌, 베임 등 비교적 가벼운 손상에도 발생할 수 있다. 만성적인 통증질환으로 진행되는 발병기전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치료에 어려움이 따른다.

3명 중 2명 
일상이 고통

통증은 환자마다 조금씩 다르게 느낀다. 절단한 신체가 있는 것 같다거나, 감전된 듯 찌릿하다고 표현한다. 어떤 환자는 땀이 과도하게 나고, 감각이 예민해져서 사회·경제적 활동에 지장을 받는다. 미세한 바람에도 심한 통증을 호소한다. 외관상 피부의 색이나 질감이 변하는 등 근육과 관절의 경직도가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CRPS 치료를 위해서는 마약성 진통제와 향정신성 약물을 활용한 약물치료, 신경치료, 척수 자극기 수술법, 기능 회복을 위한 재활치료가 있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할 만큼 고통스러운 이들은 펜타닐 패치를 처방받기도 한다. 다만, 용량에 따라 식약처서 문제가 제기된다. 펜타닐은 말기 암 환자 등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에게만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다.


1인 치사량은 0.002g으로, 2021년 미국서만 7만명 넘는 사람이 펜타닐 중독으로 숨진 것으로 조사됐다.

몸에 붙이는 패치 형태로 제작된 펜타닐 패치는 다른 마약류와 달리 의사 처방에 따라 합법적 구매가 가능하고 몸에 붙이기만 해도 빠른 속도로 약효가 나타난다.

보통 비 암성 통증(만성 통증)일 때 건강보험서 허용하는 펜타닐 패치의 최대 용량이 37.5 mcg/h다. CRPS 환자는 이를 준수하기 위해 2장의 펜타닐 패치(12.5mcg/h 1장과 25mcg/h 1장)를 처방받을 수밖에 없다. 다만, 식약처는 이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주로 펜타닐 패치 처방은 3일에 1장이기에 CRPS 환자가 과량 처방받고 있다고 해석한다.

또, 신경치료는 건강보험 횟수 제한으로 충분한 치료가 어렵다. 특히, 보건복지부 기준 CRPS가 ‘심하지 않은 장애’로 분류되는 점도 문제다. 이에 따라 CRPS 재활치료는 건강보험서 인정받지 못해 회당 5만~15만원을 지불해야 한다.

이용우 CRPS 환우회 회장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장애 인정 관련 문제점을 언급했다. 이 회장은 “CRPS 환자를 심하지 않은 장애로 인정하는 점과 2년마다 재심사, 진단 후 2년 이상의 진료기록을 요구하는 점에서 (다른 질환과 비교해)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어 “장애 등록도 지체장애를 잣대로 보기 때문에 통증만 겪는 환자는 장애 진단서 배제된다”며 “CRPS 환자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통증이 심한 데도 장애 진단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극심한 고통에 못 이겨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CRPS 환자 10명 중 8명은 자살 충동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상 어려운데 재활치료비도 본인이?
‘중독자 오명’ 오남용 제도 개선 시급

매년 국내서 1000명 이상의 환자가 새로 발생하는 것을 고려했을 때 시급한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019년 7월~8월까지 전국 37개 수련병원서 치료받고 있는 CRPS 환자 25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주부, 학생 등을 제외한 응답자 75% 이상이 발병 전 사회·경제적 활동을 했지만, 발병 이후에는 3분의 2가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 원인으로는 통증점수(10점 기준) 7점 이상의 극심한 통증과 이로 인한 수면장애 및 신경정신과적인 문제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발병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 부위가 확대됐다’는 응답이 다수를 차지했다.

CRPS 환자들의 고통과 불편은 일반인들이 짐작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응답자 80%가 ‘자살 충동을 느꼈던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으며, ‘가벼운 일상활동서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라고 응답한 비율도 절반을 넘었다. 또 응답자 전체의 평균 수면 시간은 4.9시간에 불과했다. 

특히 응답자 중 45%는 하루에 고작 4시간도 수면을 취하지 못했다.

CRPS는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약물치료, 신경치료, 약물펌프 수술법, 재활치료 등으로 치료를 진행하지만 정확한 기전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서 이미 만성이 된 CRPS 환자들은 재활치료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CRPS 전문 재활클리닉은 국내 분당서울대병원이 유일하다. 분당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임재영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CRPS 재활치료는 1대1로 환자와 치료사가 치료를 30분 이상을 해야 한다”며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 하루에 최대 15만원까지 환자가 부담해야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CRPS 환자를 대상으로 재활치료를 할 수 있는 병원은 한정돼있고 병원 입장서도 건강보험 규정상 환자에게 할 수 있는 치료는 한정돼있다”며 “이마저도 거절하는 병원이 많다.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는 CRPS 환자를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는 병원이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주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최종범 교수도 “CRPS로 재활치료를 처방하고 치료 보장을 받는 것은 쉽지 않다”며 CRPS 재활치료에 대한 제도적인 지원체계의 부재를 지적했다.

10명 중 8명
“자살 생각”

CRPS 환자들은 건강보험 처리에 어려움을 겪는 모양새다. CRPS 환자의 경우 마약성 진통제의 양이 한정돼있고 이를 넘어가면 전부 본인이 부담하게 된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이 안 될 경우,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고통이 심해도 경제적 어려움이 발생해 보험이 되는 약으로만 버티지만,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최 교수는 CRPS 치료를 위한 신경치료의 건강보험 횟수 제한 등 유연하지 못한 보험 제도를 지적했다.


그는 “건강보험 급여 항목인 신경차단술이나 마약진통제 같은 경우 암 환자는 무한정 보험이 적용되지만 CRPS 환자는 용량·횟수 제한이 있다”며 “전혀 다른 중증도와 질환임에도 횟수 제한을 똑같이 규제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CRPS 환자가 펜타닐 패치를 오남용한다는 왜곡된 시선도 있다. 문제는 CRPS 환자들이 건강상 문제가 없는 마약 투약범으로 치부될 수 있다는 것이다. CRPS 환자는 갑자기 찾아오는 돌발통 때문에 마약성 진통제를 소지하고 다니면서 일상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약이 없으면 언제 통증이 찾아올 지 모르는 불안감에 일상생활은 마비가 된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겐 쉽게 와 닿지 않는 경우다. 일부 CRPS 환자는 펜타닐 패치 오남용 이슈로 인해 기존에 처방받던 용량만큼도 못 받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마약성 진통제를 기준치 이상 복용해야 하는 CRPS 환자들은 “마약 중독자”라는 싸늘한 시선을 받기도 한다. 정부와 경찰의 마약 단속에 발맞춰 의료계가 마약 근절과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가 왔다.

지난 8월2일, 서울 압구정역 앞에서 롤스로이스 차량으로 행인을 들이받은 이른바 ‘롤스로이스’ 사건은 향정신성의약품(향정약) 오남용 사례를 전적으로 보여준다. 가해자 신모씨가 인근 성형외과서 미다졸람·디아제팜 등 향정신성의약품(향정약)을 투약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지난 9월11일에는 무면허 상태로 주차하다 시민을 흉기로 위협한 ‘람보르기니’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의 가해자 홍씨도 필로폰·엑스터시·케타민 등의 양성 반응을 보였다. 사건 직전 그는 서울 논현동 피부과를 방문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롤스로이스 사건 가해자와 연루된 병원 10곳 이상을 압수수색했다. 조사 결과 사건 당일 신씨에게 마약류를 처방한 A 의원에서는 수상한 정황이 포착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의료용 마약류 안전 사용 기준에 따르면 간단한 시술 및 진단을 위한 프로포폴 투약 횟수는 월 1회를 초과하지 않아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A 의원에서 지난 2년 새 향정신성의약품 처방이 2배 급증했다. 2020년 790명이었던 이곳의 향정약 처방 환자가 지난해 1593명으로 2배 증가했다.

해당 병원서 연도별 향정신성의약품을 가장 많이 처방받은 상위 20명을 분석한 결과, 한 명은 지난해 13건에 걸쳐 총 47개 프로포폴을 처방받았다. 최근 5년간 사망자 명의로 처방된 마약류는 4만여개에 달한다. 이른바 ‘유령 처방’이 의료기관서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마약 범죄 
오해 대상

국민의힘 최영희 의원이 식약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사망자 명의 의료용 마약 처방량은 3만8778개였다. 

최근에는 의사들이 직접 허위로 수술한 것처럼 꾸민 뒤 프로포폴을 대량으로 빼돌려 유통한 혐의로 경찰 수사선상에 올랐다. 이에 대한의사협회는 해당 회원들을 중앙윤리위원회에 징계 심의를 부의, 대검찰청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이에 따라 프로포폴·펜타닐·졸피뎀 등 의료용 마약류 유통망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연일 제기되고 있다. 수면제 및 진통제 처방이라는 명목하에 오남용 사례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환자들의 오남용을 1차적으로 잡아낼 수 있는 것은 의료진이지만 한계가 존재한다.

환자의 개인정보인 의료기록을 들여다보기 어렵기에 마약성 진통제를 얼마나 사용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병원 내 ‘약물 쇼핑’을 감시할 법적 제도가 미비해 정부 차원의 대응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관계부처가 제시하는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 혹은 DUR(Drug Utilization Review) 제도의 도입도 거론되고 있다. DUR은 의약품 처방·조제 시 의약품 안전성 관련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해 부적절한 약물 사용을 사전에 점검할 수 있도록 의사 및 약사에게 의약품 안전정보를 제공하는 제도다.

강력한 예방책으로 제시됐으나, 실효성의 한계는 존재한다. 과거에 오남용 이력이 있는 환자를 판별하기 때문에 ‘병원 뺑뺑이’를 처음 시도하는 환자는 걸러낼 방법이 없다.

이에 따라 마약류 진통제가 꼭 필요한 CRPS 환자들은 고스란히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마약성 진통제 처방 행위가 자칫 범죄 행위로 간주되면 CRPS 환자조차 의료인이 처방을 꺼릴 수 있다. 마약성 진통제 등이 꼭 필요한 환자가 쓰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DUR 제도를 보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마약성 진통제 처방 시, 환자에게 설명 및 동의서를 의무화하고, 정기적인 혈중 마약농도 검사를 통해 부적절한 환자를 배제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한 마약성 진통제 사용 적정성 평가를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평등한 제도로 인한 피해자는 실제로 존재했다. 한 CRPS 환자는 “통증으로 주사를 맞고 싶어도 횟수 제한 때문에 참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희귀난치성질환인 CRPS는 산재 승인 과정도 쉽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는 증상
“안 겪어본 사람은 몰라”

서울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최초 접수 후 산재 범위에 들어오면 그 다음부터 요양 기간을 연장할 시 진료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며 “공단에선 의학 전문가에게 자문해야 하고 의무기록을 모아야 하므로 기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과정서 신경외과나 정형외과는 빠른 자문이 가능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 마취통증의학과 등의 경우 온라인 자문이 없어 시간이 소요된다.

눈에 띄지 않는 증상으로 인해 환자가 직접 검사를 받으러 가야만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스치기만 해도 아픈 CRPS 환자가 산재 승인 과정에 필요한 의사 면담을 위해 직접 옷을 벗고 확인받아야 하는 것이다.

지난 2021년 4월 장애인정을 비롯한 꾸준한 개선이 있었지만, 여전히 장애인정 기준과 대상, 잦은 재판정 등으로 환자의 불편이 따른다는 지적이다.

CRPS 환우회와 대한통증학회 전문가들은 “CRPS에 대한 재판정 빈도에 있어 1회 재평가 후 재진단하지 않는 통상적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며 “진단 후 2년 이상의 진료기록의 요구는 미국 AMA서 규정한 ‘1년 이상’의 기준에 준해 1년으로 수정됐으면 한다”는 입장이다.

장애 인정 문턱도 높다. CRPS 진단 후 2년 이상 지속 치료에도 골스캔 검사, 단순 방사선 검사, CT 검사 등 결과 근위축, 관절구축이 뚜렷한 경우 혹은 팔 또는 다리 전체에 마비가 있는 경우에 한정된다. 이 중에서 근위축 등 가동성 감소는 CRPS로 인한 필연적 증상이 아니다.

환자의 상당수는 통증 자체만을 갖고 있는데, 이로 인해 사회적 활동 자체가 어려운 수준의 고통을 겪고 있다. 객관화, 시각화할 수 있는 기준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향후 상당수 CRPS 환자들이 통증만 가졌다는 이유로 장애 인정 대상서 원천 배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 4월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서 열린 환자 중심 CRPS 정책 개발과 시행을 위한 정책토론회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아주대학교 마취통증의학과 최종범 교수는 “CRPS 환자의 장애 인정 기준의 경우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외상 수술 등과 관련된 지체장애에 해당하는 환자만 장애 대상으로 포함된다는 점이 모순적인 부분”이라며 “CRPS 환자에 맞는 통증 장애진단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어렵게 장애 판정을 받은 CRPS 환자들이 잦은 재판정 등으로 불편이 크며 실제 혜택 대상서 제외되는 등의 위험에 처해 있다”며 ”현재 복지부 지침에 따라 2년마다 다시 판정하도록 하는 동시에 2년 이상의 진료기록을 요구하는 부분은 앞으로 개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뽕쟁이 아냐?
범죄자 취급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 최경일 과장은 “장애 진단 후 재판정 기간을 현행 2년서 3년 혹은 4년으로 연장하는 것과 최근 2년 간의 진료기록 제출 기한을 단축할 수 있도록 완화하는 부분은 검토해볼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장애정책이 빠르게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만큼 많은 토론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답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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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