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12번째 한국인 IOC 위원 김재열

장인 이어 올림픽 유치 뛴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김재열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회장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선출됐다. 한국인으로서는 12번째다. ‘언론 재벌’이자 삼성가의 사위인 김 회장은 고 이건희 회장의 대를 잇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 회장이 IOC 위원이 되면서 한국 스포츠 외교의 영향력이 커질 전망이다.

김재열 신임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은 현재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회장직과 삼성글로벌리서치 사장직을 맡고 있다. 고 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의 둘째 아들인 김 위원은 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차녀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겸 리움미술관 운영위원장의 배우자이기도 하다. 형은 김재호 <동아일보> 대표이사 회장 겸 채널A 대표이사 회장인 ‘언론 재벌’이다.

엘리트 가문
언론 재벌

김 위원은 1968년 10월14일 김 명예회장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미국 노스필드마운트허먼스쿨을 거쳐 웨슬리언대학서 국제정치학을 공부했고 존스홉킨스대학 대학원서 국제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스탠퍼드대학교 대학원서 인터넷비즈니스 경영학 석사과정(MBA)을 마치고 미국 이베이서 일했다.

삼성가와 어렸을 적부터 인연을 쌓아왔다. 이재용 삼성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청운중학교 동창이다. 김 위원과 이서현 사장의 만남을 주선한 사람도 이재용 회장으로 알려졌다. 이건희 회장이 미국 텍사스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을 때 병문안을 갔는데 당시 이건희 회장을 간병하던 이서현 사장을 보고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둘은 이 병문안을 계기로 사이가 급속도로 가까워져 결혼했다. 이건희 회장은 김 위원을 무척 아꼈다고 알려진다. 김 위원과 이서현 사장이 결혼하자 “보면 볼수록 든든하다, 아들 하나를 더 얻은 기분”이라고 흡족해했다.


영어에 능통하고 사교성이 좋은 것도 이건희 회장에게 각별한 신임을 받는 데 한몫했다. 이건희 회장은 국제스포츠계 인물을 만날 때 김 위원을 늘 대동했고 통역 역할을 맡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전 때 이건희 회장을 바로 옆에서 보좌하면서 언론을 통해 존재가 크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정 부회장과도 친분이 깊다. 정 부회장은 김 위원의 어머니가 별세하자 고려대 안암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밤새 위로해줬다고 한다. 정 부회장의 전 부인인 고현정씨가 고려대 영문과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 둘의 친분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김 위원은 독실한 불교신자다. 그는 “전부터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절에 다닐 수 있는 아내를 맞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서현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주장이 강하고 끈기 있는 성격이었다고 주변 사람들은 평가한다. 청운중 3학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는데 이는 김 위원 본인의 강력한 뜻이었다. 1980년대라 조기유학이 쉽지 않자 김 위원은 유학 방법을 연구하다 <한국일보>서 주관하는 청소년 미술대회에 입상하면 부상으로 미국유학이라는 특전이 주어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부터 미술학원에 다니면서 노력해 입상에 성공했고 마침내 미국 유학을 떠날 수 있었다.

김 위원은 IT산업 쪽으로 관심이 많다. 그는 “인터넷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인터넷 비즈니스에 관심을 쏟게 됐다”고 말했다. 정치에도 관심이 많았다. 김 위원은 “전부터 정치학이 재미있어서 다른 것은 신경도 안 쓰고 정치학 공부만 했다”고 회고했다.

미국 웨슬리언대학서 국제정치학을 공부하고 존스홉킨스대학서 국제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은 것도 정치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아일보> 사주 집안 태어나 삼성가 사위로
이건희 회장 보좌하며 스포츠계 인맥 넓혀

제일기획에 상무보로 입사해 제일모직으로 옮긴 뒤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고 입사 9년 만인 43세에 사장이 됐다. 삼성엔지니어링 경영기획총괄 사장으로 옮겨 경영수업을 더 받은 다음 스포츠사업총괄 사장으로 제일기획에 복귀했다.

김 위원은 2014년 12월 제일기획 스포츠사업총괄 사장에 오르면서 삼성그룹의 스포츠를 포괄적으로 담당하게 됐다. 그가 제일기획 스포츠사업총괄 사장에 오르기에 앞서 제일기획은 삼성그룹 스포츠단을 하나씩 인수했다.

2014년 삼성 프로축구단 수원삼성 블루윙스를 시작으로 배구단인 삼성화재 블루팡스, 삼성전자 남자농구단, 삼성생명 여자농구단을 인수했다. 2015년에는 프로야구단인 삼성라이온스도 인수했다.

제일기획은 스포츠단 통합관리를 통해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자생력을 높이는 데 나서고 있다. 축구단의 경우 K리그 유료 관중비율 1위 달성, 유소년 클럽 등 선수 육성 시스템 강화, 통합패키지 스폰서십과 브랜드데이 도입 등 가시적 성과도 거뒀다.

제일모직서 근무할 당시 제일모직의 성장동력을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2년 제일기획에 상무보로 입사해 제일모직 전략기획실 경영기획담당 상무와 제일모직 경영관리실 경영기획담당 상무를 역임했다. 이후 전무와 부사장을 거쳐 2011년 3월부터 12월까지 제일모직 사장을 지냈다.

제일모직서 9년 동안 주력 사업인 케미칼 부문과 신규 사업인 전자재료사업 부문의 성장기반을 구축하는 등 업무처리가 뛰어나다는 평을 받아왔다. 특히 미래 첨단소재 사업을 개척해 제일모직 소재사업의 역량 강화와 글로벌화를 주도했다고 한다.

동계올림픽 분야를 통해 스포츠계서 활동 폭을 넓혀왔다. 소치동계올림픽 대한민국선수단 단장과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을 맡았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부위원장, 국제빙상경기연맹 집행위원, 대한체육회 부회장, 베이징 동계올림픽 조정위원으로도 활동한 바 있다.

병문안 이후…
이서현과 결혼

김 위원이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을 맡고 있던 2014년 빙상계에 ‘성추문 논란’이 일면서 김 위원과 삼성의 책임론도 불거졌다. 빙상연맹은 2014년 1월 소치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를 맡고 있던 지도자를 임시 직무 정지한 뒤 태릉선수촌서 퇴출 조치했다. 해당 지도자가 과거 지도하던 여제자를 성추행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았던 일이 뒤늦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빙상연맹이 해당 지도자의 징계와 관련해 미온적 태도를 보이며 퇴출 조치도 지나치게 늦게 결정됐다는 논란이 확산됐다. 빅토르 안(안현수)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의 부친인 안기원씨는 한 라디오방송서 해당 지도자가 빙상연맹의 고위 임원과 관련돼 소치동계올림픽 코치로 발탁될 수 있었다는 내용을 폭로하기도 했다.

2018년 당시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삼성이 빙상연맹을 후원하며 전명규 빙상연맹 부회장에 모든 권한과 힘을 실어줘 파벌 문제 등이 계속 불거지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빙상연맹은 2012년에도 성추문을 일으킨 전력이 있는 외국인 코치를 임명하려다 비판이 거세지자 철회한 적이 있다. 이후 미성년자 선수의 음주와 쇼트트랙 대표팀의 폭행사건 등도 언론을 통해 공개되며 빙상연맹이 선수 관리와 인재 영입에 허점을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이후 김 위원은 2016년에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직서 물러났다.

최순실 게이트에도 연루되면서 곤욕을 치렀다. 2016년 11월 검찰은 삼성서 최순실(최서연으로 개명)씨 측에 사업상 특혜를 제공하는 과정에 김 위원도 개입한 것으로 보고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김 위원을 상대로 삼성전자가 최순실씨의 조카인 장시호씨가 운영을 주도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자금을 지원하게 된 경위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삼성전자는 장씨가 운영을 주도한 비영리법인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빙상캠프 후원금 명목으로 2015년 9월부터 2016년 2월까지 16억원을 지급했다.

2016년 12월 김 위원은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그룹서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원을 주도록 결정했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그룹이 결정했다면서도 누가 이 지원을 결정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과 관련해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의 압박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박영수 전 특별검사는 2016년 12월 삼성 관계자 최초로 김 위원을 참고인으로 소환 조사했다. 특검은 삼성의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이 국민연금공단의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찬성의 대가였던 것으로 보고 이를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순탄치 않은
사건·사고

김 위원은 이재용 회장이 2016년 2월15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면담서 직접 전달받은 문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종합형 스포츠클럽 꿈나무 드림팀 육성계획안’을 제출했다. 이 문건은 이재용 회장의 구속에 물증 역할을 했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의 최지성 전 실장과 장충기 전 차장도 특검 조사에서 해당 문건을 두고 “대통령에게 받은 게 맞다”고 진술했다. 김 위원은 특검으로부터 불기소 처분을 받았지만 이후 관련한 재판에 여러 번 중요 인물로 언급됐다.

2017년 3월13일 열린 재판서 김종 전 차관은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으로부터도 ‘(최순실씨가 운영하는)동계스포츠센터영재센터에 지원한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고 증언했다.

김 위원은 같은 해 4월7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2015년 8월20일 김 전 차관을 만나 영재센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며 “BH(청와대)라는 말을 듣고 정확히 어떻게 해석할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분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영재센터의 이야기를 듣고 김 전 차관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물어봤더니 이규혁(당시 영재센터 전무)을 만나면 잘 알 것이라고 얘기했다”며 “가볍게 듣고 흘릴 얘기가 아니라 자세히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김 전 차관 변호인은 “증인(김재열)과 김 전 차관이 만난 시점에는 이미 이재용 회장이 청와대의 지시사항을 이행하고 있던 상황”이라며 “이재용 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지원 지시를 받고 당연히 증인을 만나 상의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위원은 “이 부회장으로부터 어떤 지시도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해 7월11일 재판에서는 이영국 제일기획 상무가 증인으로 나와 김 위원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는 BH 관심사항”이라고 말한 것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검찰에 따르면 2016년 2월22일 이 상무는 빙상 국가대표 출신 이규혁 전 영재센터 전무를 만나 ‘영재센터 빙상 영재선수 지원 계획안’을 전달받았다. 이 상무는 이를 장충기 전 삼성전자 미래전략실 차장과 김 위원에게 보고했다. 김 위원은 보고를 받은 뒤 이 상무에게 “BH 관심사항이니 잘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비유럽인 처음으로 ISU 회장 당선
최순실 게이트·빙상 성범죄 진땀

특검 공소 사실에 따르면 2015년 7월25일 이재용 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2차 독대자리서 박 전 대통령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 대비해 유망주 양성과 은퇴한 메달리스트 지원 등을 도와달라고 이재용 회장에게 요청했고 이재용 회장은 이를 승낙했다.

김 위원은 노력 끝에 한국인으로 12번째 IOC 위원으로 선출됐다. 그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선대 회장님 덕분에 국제 스포츠계에 입문했다”면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는 지난 2010년 1월에 시작해 1년 반 만인 2011년 7월, 삼수 끝에 유치에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은 “당시 이건희 회장의 통역 겸 비서로 활동하면서 IOC 위원 등 국제 스포츠계 인사들과 교류하고 인맥을 쌓게 됐다”고 부연했다.

이를 발판 삼아 김 위원은 지난해 6월 비유럽인으로는 처음으로 ISU 회장에 당선됐고, 이 여세를 몰아 1년여 만에 IOC 위원 자리까지 꿰차면서 당당히 국제스포츠계 중심 인물로 서게 됐다. ‘한국인 IOC 위원으로 한국 스포츠 외교력 제고라는 보이지 않는 의무감을 느끼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스포츠 발전을 위해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하겠다”고 답했다.

그는 “130년 ISU 역사에서 제가 비유럽인으로 처음 회장에 당선된 것은 우리나라 국격이 그만큼 높아진 데다 선배들이 길을 잘 닦아 놓았기에 가능했다”고 공을 돌리기도 했다.

이어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을 2년간 지내면서 우리 젊은이들이 다양한 분야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봤다”며 “어떤 젊은이들은 기업 스포츠 마케팅 분야서, 어떤 젊은이들은 IOC 등 국제스포츠 단체서 일하는데 그런 젊은이들을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기꺼이 돕겠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은 “대한빙상연맹 회장을 지내면서 빙상선수들을 많이 봤다. 국가대표 선수까지 오르기까지는 정말로 엄청난 훈련을 하고 노력해야 한다”며 “그런데 국가대표 선수들은 일부(선수)가 되는 것이다. 그 밑에 있는 (많은 다른)선수들에게도 (성장할)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스포츠에 대한 팬들의 관심도 스포츠 발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역설했다. 김 위원은 “이를테면 올림픽이 열리면 전 국민이 모두 스포츠 팬들이 되는데 올림픽이 끝나면 스포츠에 관심이 많이 떨어진다”면서 “(국민들이)선수들에게 응원과 사랑, 관심을 많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김 위원은 스포츠계 관심사인 ISU 회장 재도전 여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지난해 6월에 ISU 수장으로 당선된 김 위원은 ISU 회장 4년 임기 중 1년여를 이미 보낸 상태다.

스포츠 발전
중요한 역할

그는 이번에 국제경기연맹(IF) 대표 자격으로 IOC 위원에 뽑혀 IOC 규정상 ISU 회장 임기까지만 IOC 위원으로 활동하게 돼있다. 따라서 ISU 회장직에 재도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일각서 나온다. 이에 대해 김 위원은 “지금 (그 부분에 대해)말씀드리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어 “지난해 각국 빙상연맹 회장이 모여 ISU 회장을 뽑는 자리서 ‘스포츠계도 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면서 “남은 임기 동안 공약을 이행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제가 ISU 회장에 다시 나설지 여부는)투표권자들이 결정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민낯이 드러났다. 주로 수도인 프놈펜 인근과 시아누크빌 범죄 단지가 그들의 주둔지였다. 국내 조직폭력배가 중국 갱단과 결탁해 만든 ‘셀허브’의 경우 피해자만 수십명이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가장했다. 사이트에는 유명인의 사진이 수차례 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사라진 셀허브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 지난해 7월 <일요시사>가 취재한 이후 대표이사의 이름과 사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표창장을 받았다며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이 기업의 정체는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확인된 피해액만 약 40억원,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한 언론사는 보도자료까지 작성하며 홍보하기도 했다. 조직적 준비 경찰 수사 중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4일, 셀허브 조직원 3명을 각각 구속·불구속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조건 만남 사이트를 운영한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여성 관련 데이트 상품을 판매하거나 연애 빙자 사기를 일삼았다. 셀허브 조직원이던 A씨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모델과 연락하게 해 준다며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대포통장 계좌에 돈을 입금하게 한 뒤 텔래그램 아이디를 알려주고 연락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며 “연결된 여자는 실제 남성이고 한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3월 캄보디아 범죄 밀집 지역인 태자 단지에서 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사이트를 개설해 조직원들에게 민간인 협박, 중국어 통역 등의 역할을 맡기고 수십명으로부터 약 40억원을 뜯어냈다. 같은 해 7월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이 조직은 셀허브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이름을 ‘김현숙’에서 ‘박소희’로 변경하고 유명인의 사진을 수차례 도용했다. 유 전 장관에게 표창장까지 수여받았다며 피해자들의 의심을 피하려는 꼼수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조직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은 밤새 맞거나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하기도 했다. 조직폭력배 출신 한국 사람들이 간부고 일반 조직원은 교민 사이트를 통해 ‘한 달에 500만~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일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수사하기 이전인 지난해 7월부터 강서·영등포·구로경찰서 등에 여러 고소장이 접수됐었다. 하지만 수사는 원활하지 않았다. 주요 혐의자가 해외에 거주 중이거나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게 난관이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주요 혐의자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공조를 요청했으나 캄보디아 당국이 비협조로 일관했다”며 “고소인분들이 ‘왜 안 잡냐’ ‘내 돈 어떻게 하냐’는 등 불만이 많으셨다.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캄보디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조직원 모집…태자 단지서 모의 ‘유인촌 표창장’ 걸어 놓고 ‘정상 기업’ 홍보 막막했던 수사는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재명정부가 캄보디아를 압박했고 현지에 구금된 한국인 범죄자 겸 피해자 수십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송환된 인원 중 일부는 셀허브 사건과도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학 충남경찰청 수사부장은 지난 20일 청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및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혐의로 전원 구속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부건(총책 가명, 40대 초반,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 추정) 조직으로부터 확인된 피해 건수는 110건, 피해액은 93억여원에 달했다. 약 1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부건은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7월까지 주로 프놈펜 웬치(범죄 단지) 및 태국 방콕 등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부건 조직은 지난 2018년 중국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단속을 피하려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범행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 입출금 등을 지원·관리하는 CS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투자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팀 등 총 5개 팀으로 이뤄진 조직체계를 갖췄다. 이들은 가구판매업을 하러 캄보디아에 갔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지역 선·후배 권유, 고액 아르바이트 인터넷 광고 등을 접하고 범죄에 연루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직에 가입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속아서 조직에 들어갔다고 진술하지 않은 이들의 유입 경로는 ▲지인 포섭 29명 ▲인터넷 광고 등 포섭 8명 ▲현지 카지노 포섭 6명 ▲기타 2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남성 42명과 여성 3명으로 연인도 있었다. 대부분은 20~30대 연령으로 최소 2개월부터 최대 16개월까지 범행에 가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건 만남 사이트 경기북구경찰청 형사기동대도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피의자 15명 중 11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간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여성을 사칭, 조건 만남 등을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챘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성 만남 광고를 낸 후 이를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에게 여성인 척 채팅으로 유인했다. 여성을 소개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조건 만남 사이트에 회원 가입과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속여 인증을 위한 돈을 요구했다. 3차례에 걸친 인증 절차 과정에서 여러 게임에 성공하면 가입비를 돌려준다고 속여 피해자로부터 1인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별도의 만남 인증과 후기글을 남기는 ‘화력방’도 운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는 피해자 36명, 피해금 16억원 상당이며, 1인당 최대 피해 금액은 2억1000만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 남녀다. 최초 범죄집단을 구성한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 명칭 ‘툴콕’을 의미하는 ‘TK’파로 스스로를 부르며 총책을 정점으로 한 지휘·통솔 체계를 갖췄다.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총책, 이를 보좌하며 실무 전반과 인력 공급 등을 담당하는 총관리자, 각 파트 팀원의 근태를 관리하고 지시하는 팀장으로 구성됐다. 또 자체적인 조건 만남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개발자, SNS에 광고 글을 게시하는 홍보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 2개팀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상호 가명 사용 ▲근무 중 휴대전화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야간에는 커튼으로 외부 차단 ▲다른 부서와의 업무 내용 공유 금지 등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기도 했다. 중국 국적 100명 뒷배 이들은 총책이 마련한 건물에서 2인1조로 합숙했는데 프놈펜 툴콕 지역의 13층 건물을 사용하다가 지난 8월, 현지 단속을 피해 센소크 지역 7층 건물로 이전해 범행을 이어오던 중 현지 수사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SNS 구직 광고나 조직원을 통해 범죄단체에 가입했다고 진술했으며 사기임을 알고도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금된 중에도 총책이 이른바 관작업을 통해 자신들을 석방시켜 줄 것이라는 말만 믿고 대사관의 도움을 거절하고 귀국하지 않았다. 셀허브 사건 간부들은 타 사건에도 연루됐다. 지난 7일 캄보디아 바벳에 인접한 베트남 떠이닌 지역 국경 검문소 인근에서 30대 여성 B씨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숨지기 직전까지 셀허브 간부와 같이 있었다. B씨의 사인은 마약 과다 투약이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B씨가 셀허브에서 한국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공급해 왔다고 보고 있다. A씨는 “셀허브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역할을 했던 B씨인데 통장을 팔려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유인해 범죄 단지로 팔아넘기고 유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보·수사기관도 B씨에 의해 범죄 단지에 넘겨지는 피해를 입거나 유흥업소 일을 강요당한 사례를 확인하고 조사 중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실상 마약을 강제로 과다하게 투약당한 살인사건이라는 첩보는 아직 확인 중”이라며 “특정 조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현지 경찰도 수사 중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개 조직폭력배 출신…지휘는 중국 조직이 맡아 40억 피해액 환수 불가능 “자금 세탁 끝났다” 첫 데이트하던 연인을 치어 여교사를 숨지게 했던 이른바 ‘대전 머스탱 교통사고’의 피의자도 셀허브 조직원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전모씨는 2019년 2월10일 오전 10시14분 대전 중구 대흥동에서 면허도 없이 외제차를 운전하던 중 인도를 걷던 조모씨와 박모씨를 들이받아 박씨를 숨지게 하고, 조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전씨가 대여한 외제차는 불법 대여 차량이었다. 이 차량은 애초 대구에 사는 C씨가 자신 명의로 캐피털에서 월 115만원씩 주는 조건으로 60개월간 대여한 것이다. C씨는 사촌 안모씨와 함께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나모씨가 올린 ‘외제차 저렴하게 빌려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고 접근, 한 달에 136만원씩 받기로 하고 대여한 머스탱 차량을 재임대했다. 나씨는 이렇게 빌린 머스탱 차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외제차를 빌려준다”고 광고하며 또다시 대여업을 했다. 전씨는 나씨가 올린 이 글을 보고 일주일에 90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머스탱을 빌려 운전했다. 매년 확정되는 범죄수익 추징금은 30조원을 넘지만 환수 금액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법무부가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로 발생한 현지 범죄수익을 국내로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법무부는 “캄보디아 내에서 벌어진 범죄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이 1차 현지 수사 의뢰 대상”이라며 “이후 국내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종적으로 환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국내에 있고 피해액이 특정될 경우, 우리 정부가 해외에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캄보디아와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해 2021년 정식 발효됐다. 주요 간부들 타 사건 연루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죄자 개인이 아닌 조직을 대상으로 한 범죄수익 환수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국내에서 수사와 재판이 끝나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지만 이미 늦었다. 범죄조직 특성상 이미 코인이나 대포 통장으로 제3국에 은닉하거나 세탁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가 끝나고 유죄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환수 절차는 이 모든 사법절차가 종료돼야 가능하다. 특히 조세회피처로 범죄수익을 옮겨놨다면 환수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