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은행 직원들의 횡령과 내부정보 거래, 무단 계좌 개설 등의 도덕적 해이로 금융감독원이 분주하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조사 1·2·3국 체제로 전방위 조사에 나섰다. 검사 출신답게 특기를 살렸다는 의견이 나온다.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은 권위를 되찾기 위해 강수를 뒀다. 금감원은 지난해 금융회사 검사 체계를 ‘종합·부문검사’에서 ‘정기·수시검사’로 개편했다. 일각에선 “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최근 금융권서 발생한 금융사고와 관련해 금감원 책임론이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상한
책임론
지난해 1월 금감원은 검사의 예측 가능성 및 실효성 제고를 위해 검사체계를 종합·부문검사에서 정기·수시검사로 바꿨다. 정기검사는 금융회사의 규모,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 등을 감안해 일정 주기에 따라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검사다. 수시검사는 금융사고 예방, 금융질서 확립, 기타 감독정책상 필요에 따라 수시로 실시하는 검사로 테마검사나 기획검사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당시 이찬우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종합검사는 금융회사 업무 전체를 일시에 점검할 수 있으나 사후적 시각에 중점을 둔 검사만으로는 예방적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며 “주기적인 정기검사 체계로의 전환을 통해 검사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금융회사별 특성에 맞춰 핵심·취약 부문에 검사 역량을 집중하게 돼 검사의 실효성을 높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금감원은 특정 검사사항에 대해 개별·다수 금융회사에 감사를 요구할 수 있는 자체감사요구제도를 도입했다.
시범 실시안을 살펴보면 금융회사는 자체감사 요구사항에 관해 감사를 실시해야 한다. 그 결과를 이사회에 보고한 후 금감원에 보고하게 된다. 금감원은 금융회사 조치를 원칙적으로 수용하되 자체감사 활동이 부실하거나 허위 보고한 경우, 직접 검사한다.
이외에도 검사결과 처리의 투명성·수용성 제고 차원에서 검사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한다.
이 수석부원장은 “검사 결과의 조기 교부 및 충분한 설명을 의무화하고 쟁점이 있는 경우에는 검사국장이 직접 의견을 청취하고 다수의 임직원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통해 검사 결과를 충분히 리뷰하는 절차를 마련함으로써 신중하고 합리적으로 검사 결과를 처리하겠다”고 강조했다.
검사체계 개편은 2022년 검사업무 운영계획 수립 시 반영됐다. 검사체계 전환 속에도 금융권의 도덕적 해이는 여전했다. 지난 4월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주가폭락과 주가조작 의혹이 터지자 이 원장은 “불공정거래 이슈나 금융기관 내부의 탈법 등을 약간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고 반성했다.
취임부터 금융소비자 보호와 불공정거래 근절, 금융시장 안정 등을 강조한 이 원장의 심기를 건드린 셈이다. 거듭되는 내부통제 강화 요청에도 은행권 금융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이에 금감원은 올해와 내년 은행 부문 중점 감독·검사 테마로 ‘은행 지배구조’를 선정했다.
은행 경영실태 평가서 지배구조·내부통제와 사회적 책임 비중을 확대했다.
갈수록 더하는 은행권 비리
검사 출신 원장 드디어 폭발
결국 전면전에 나섰다. 금감원은 내부통제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자체 점검하라고 경고했다. 앞서 KB국민은행 직원들은 업무상 알게된 정보를 이용해 127억원의 주식 매매차익을 챙겼다.
지난 9일 금융당국은 상장사들의 증권 업무를 대행하는 KB국민은행 직원들이 미공개 중요정보를 이용한 행위를 적발해 검찰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이 직원들은 2021년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61개 상장사의 무상증자 업무를 대행하는 과정서 무상증자 규모와 일정 등의 정보를 미리 파악했다. 이를 주식 매매에 활용해 66억원가량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다.
무상증자란 주주에게 돈을 받지 않고 주식을 나눠주는 것을 말한다. 주주 입장에선 추가로 돈을 들이지 않으면서 더 많은 주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주식시장에선 호재로 통한다. 기존의 주주들에게 신주를 무상으로 나눠주는 것은 재무적으로 건실한 기업만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무상증가를 했다는 것은 건전성을 증명하기 때문에 대부분 주가가 오른다.
해당 부서 직원들은 은행 내 다른 부서 직원들을 비롯해 본인들의 가족, 친지, 지인들에게도 관련 정보를 전달했다. 이들도 주식거래를 통해 61억원가량의 부당이득을 얻었다.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부당이득 규모가 총 127억원에 달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국민은행 직원은 6~8명이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현재 비위가 입증돼 업무서 배제된 직원은 차장급 직원 1명이다. 나머지 직원들은 검찰 수사를 통해 구체적 혐의가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식 매매는 증권 범죄임에도 문제의식이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민은행 내부 제보가 아닌 금융위·금감원이 포착한 것이다. 따라서 은행 내부에선 알고도 묵인했을 가능성이 있다. 올해 상반기 주가조작 사태 이후 금융당국은 자본시장 이상현상에 집중하고 있어 사건을 포착할 수 있었다.
계속 터지는
사건·사고
금융위는 “금융위와 금감원의 긴밀한 공조로 인한 성과”라고 강조했다. 양 기관은 매매분석, 금융계좌 추적은 물론 스마트폰 포렌식까지 동원했다.
신뢰가 생명인 은행에 치명적인 횡령사고도 여전하다. 금감원에 따르면 금융권 전체 횡령액은 지난해 1010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올해 7월까지 은행권 횡령액은 592억7300만원으로 2위다. 덩달아 금감원 책임론도 부상했다. 지난해 우리은행 700억원대 횡령에 이어 최근 경남은행에서도 500억원대 횡령 사건이 벌어졌다.
은행권 비위에 대한 감시와 처벌 수위가 강화돼야 할 시점이다.
금감원은 경남은행 투자금융부장 이모(51)씨가 총 562억원에 달하는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를 확인했다. 이에 경남은행은 최고리스크담당자(CRO)를 교체했다. 지난 17일 은행권에 따르면 정용운 CRO에게 지난 9일 업무배제 조치를 내렸다. 대신 BNK금융지주의 CRO인 윤석준 상무가 겸직하기로 했다.
이씨는 2007년부터 올 4월까지 약 15년 동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업무를 담당하면서 총 562억원을 횡령·유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 전 CRO는 2021년부터 IB사업본부, 투자금융그룹장을 역임한 이후 지난해부터 CRO를 맡았다. 경남은행은 정 CRO가 이씨와 업무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지난 4일 빈대인 BNK금융 회장은 계열사 경영진 회의를 열고 횡령 사고와 관련해 유감을 표했다.
고금리 상황이 지속된 탓인지, 실적에 눈이 멀어 비위행위를 저지른 경우도 있다. 최근 대구은행은 고객 문서를 위조하다 발각됐다. 대구은행은 2021년 8월부터 은행 입출금통장과 연계해 다수 증권회사 계좌를 개설할 수 있는 서비스를 도입했다.
지난 10일, 대구은행 직원들은 고객 동의 없이 예금 연계 증권계좌를 임의로 추가 개설했다. 이를 감지한 금감원은 지난 9일부터 긴급 검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금감원에 따르면 대구은행 일부 직원은 평가 실적을 올리기 위해 지난해 1000여건이 넘는 고객 문서를 위조해 증권계좌를 개설했다.
은행장에
책임 묻기로
해당 직원들은 고객을 상대로 증권사 연계 계좌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해당 계좌 신청서를 복사해 고객 동의 없이 같은 증권사의 계좌를 하나 더 개설했다. 직원들은 미동의 개설 사실을 숨기기 위해 계좌 개설 안내문자(SMS)를 차단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지난 6월30일 해당 건과 관련한 민원을 접수받고 자체감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한 금감원은 즉시 검사를 개시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임의 개설이 의심되는 계좌 전건을 철저히 검사하고 검사 결과 드러난 위법·부당행위에 관해서는 엄정하게 조치할 예정”이라며 “대구은행이 본 건 사실을 인지하고도 금감원에 신속히 보고하지 않은 경위를 살펴보고 문제가 있다면 이에 책임을 물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은행권 사고를 막고자 은행장 책임을 묻기로 했다. 이를 위해 은행장 확인서명이 들어간 내부통제체계 자체점검을 지시했다. 추후 내부통제 사고 발생 시 책임소재를 확실히 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금감원은 지난 17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서 시중은행, 지방은행 등 17개 은행장과 함께 ‘내부통제 강화 방안을 위한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날 금감원은 금융사고 발생에 따른 내부통제 강화 방안을 주문했다. 간담회에 앞서 이재근 KB국민은행장은 최근 드러난 금융사고와 관련해 “심려를 끼쳐드려서 대단히 죄송하다”고 말했다.
앞으로 은행권은 내부통제체계 전반에 관한 종합점검을 은행장 주관하에 실시해야 한다. 점검 항목은 내부통제 혁신방안 이행 상황, 최근 사고 관련 유사사례 점검, 사고예방을 위한 내부통제 현황 등이다. 특히, 금감원은 단기 실적 위주의 성과지표(KPI) 개선, 위법·부당사항에 관한 관용 없는 조치 등 내부통제에 대한 자체 유인체계 마련도 요청했다.
이날 이준수 금감원 부원장은 “은행이 국민의 재산을 지켜준다는 신뢰가 유지될 수 있도록 내부통제 강화를 위한 특단의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당부했다.
횡령액 환수 고작 12%
실효성 없는 ‘셀프준법’
지난해 우리은행 횡령 사건 이후 은행권은 여전히 비리의 온상이다. 횡령사고 규모에 비해 횡령액의 환수는 저조한 실정이다. 최근 7년간 횡령액 중 환수된 금액은 224억6720만원으로 환수율은 12.4%에 그친다. 특히 은행의 경우 환수율은 7.6%(114억9820만원)에 불과하다.
금융당국은 은행권 임직원의 준법의식이 취약하고 내부통제의 실효성이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민국 의원은 “금융권 내부통제 제도개선을 발표했음에도 횡령사고가 더 증가했다는 것은 대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입증한다”며 “셀프 준법경영 문화 정착에만 집중한다면 횡령은 만연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은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8월 ‘금융권 내부통제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가동했지만, 비리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내부통제 시스템을 충분히 갖추고 있어도 직원이 신고를 누락하면 이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며 “결국 직원들의 윤리의식이 결여된 것”이라고 말했다.
내부통제 부실이 비단 일부 은행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원장이 법령상 최고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만큼 최고경영자들은 제재를 피하기 어렵다. 비단 은행권만이 아닌 금융업 전반에 걸쳐 찬바람이 몰아칠 전망이다.
금감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특사경)은 지난 10일 SM엔터테인먼트 주가 시세조종 혐의와 관련해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증권선물위원회는 카카오의 SM 주가 시세조종 의혹 사건을 패스트트랙으로 검찰에 이첩했다. 금감원 특사경이 검찰 지휘를 받아 수사하고 있는 사안이다. 특사경은 검찰과 4월6일 카카오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같은 달 18일에는 SM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카카오는 올해 초 하이브의 SM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SM 주식을 대량 매입해 시세를 조종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카카오와 하이브는 SM 지분경쟁을 하고 있었다.
막중한
책임감
주가 상승으로 공개매수에 실패한 하이브는 공개매수 기간에 SM 발행 주식 총수의 2.9%에 달하는 비정상적 매입 행위가 발생했다며 금감원에 진정을 냈다.
이 원장은 지난달 17일 취재진에게 SM 수사와 관련해 “역량을 집중해 여러 자료를 분석하고 있고 수사가 생각보다 신속하게 진행 중”이라며 “실체 규명에 자신감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금감원은 최근 경영평가서 A 등급을 받았다. 이 원장이 취임 후 강조해온 금융시장 안정과 상생 금융, 내부혁신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A 등급 평가는 올해 금융사고와 무관하지만, 막중한 책임감에 마냥 기뻐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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