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전야’ 이동관 청문회 쟁점

“탈탈 털어 끌어내린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보수 우파의 제대로 된 분들은 지상파 안 봅니다.” 2019년 이동관 대통령 대외협력특별보의 발언이다. 그런 그가 신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물망에 올랐다. 김영호 통일부 신임 장관 임명에 이은 두 번째 인사 강행이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인사청문회를 벼르면서 포문을 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신임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위원장에 이동관 대통령 대외협력특보를 지명했다. 현재 방통위 구성원의 임기는 오는 23일 종료된다. 방통위 의사 정족수인 3인 이상 등을 고려할 때 남은 임기 내에 후임 방통위원장을 선임해야 한다.

또 MB맨

이 후보는 소위 ‘MB 키즈’로 불리는 친이(친 이명박)계 기자 출신 인사다. 2007년 대통령선거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공보특별보좌역을 시작으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이후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위해 2012년, 2016년 출마를 선언했지만 여의도에 입성에는 실패했다.

윤정부에 출범 이후에는 대통령 대외협력특별보좌관을 지냈고 지난달 28일 방통위원장으로 공식 지명됐다. 대통령실은 이 후보가 언론계서 쌓은 경험과 리더십 등을 바탕으로 방송통신분야 국정과제를 추진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 후보의 과거를 재조명하면서 윤 대통령의 인사 지명에 날을 세웠다. 특히 이 후보가 윤정부의 ‘언론장악 기술자’로서 든든한 뒷배를 자처하고 있다고 보고 공직자로서의 윤리성, 도덕성 자질 검토에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이 후보는 2016년 한 방송에 출연해 박근혜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두고 “조금 시끄럽다” “개인들이 많이 농락당했지만 전체적인 국가가 뒷걸음질 치면 안 되지 않느냐”는 김장환 목사에 “전적으로 동감한다”고 답했다.

2019년 6월 한 유튜브에서는 “보수 언론은 과거보다 통제가 심해지고, 종편 재허가를 무기로 압박을 가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상파는 말할 것도 없다”며 “보수 우파의 제대로 된 분들은 지상파를 안 본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민주당은 방통위원장은커녕 대통령 특보도 불가능한 언론관이라고 비판했다.

이 밖에도 민주당은 이 후보의 지명 철회를 위해 세 가지 쟁점을 꼽았다.

먼저 이 후보 아들의 학교폭력 리스크다. 이 후보 아들은 2011년께 하나고등학교 재학 시절 동급생 여러명을 폭행해 문제를 일으켰지만 별다른 징계 조치를 받지 않아 논란이 됐다. 피해 학생이 작성한 진술서에 따르면 “책상에 머리를 300번 부딪치게 했다” “작년 3~4월부터 이유 없이 팔과 가슴을 여러 차례 때렸다”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교사가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폭력대책위원회조차 열리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면서 논란은 커졌다. 당시 이 후보가 이 전 정부 청와대의 언론특보를 맡고 있었던 만큼 권력으로 사건을 덮으려고 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뒤늦게 검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1년 만에 무혐의 처분된 것 역시 당시 수사 검사가 손준성 검사 등 현재 여당에 가까운 인물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세 가지 논란…제2 정순신 사태?
김영호 이어 두 번째 인사 강행?


‘제2의 정순신 사태’라는 꼬리표가 붙자 이 후보는 지난달 8일, 입장문을 통해 물리적 폭력이 있었던 점은 인정했지만 당사자 간의 사과와 화해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다만 폭력의 행태는 ‘일방적 가해 상황’이 아니었으며 인터넷에 떠도는 말 역시 사실과 동떨어진 주장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 후보의 부인을 상대로 한 인사청탁 시도 사건 역시 새로운 쟁점이다. 2010년 한 불교 종파 신도회장이 이 후보 부인에게 지인의 이력서와 2000만원이 든 쇼핑백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보 부인은 경찰 진술을 통해 돈을 발견한 뒤 곧바로 가져가라는 연락을 취했으며 그날 밤 돌려줬다고 전했다.

민주당은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소리 높였지만 국민의힘은 자진해서 돈을 돌려줬으므로 더 이상 걸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고 받아쳤다. 현재 민주당으로서는 이 후보자를 낙마시킬 ‘결정적 한 방’이 없는 상황이다.

이로써 민주당의 마지막 패는 ‘언론통제’가 될 전망이다. 가장 치명적으로 꼽히는 이 리스크는 이 후보자가 이 전 정부 당시 홍보수석비서관과 언론특별보좌관 등을 역임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이 후보가 여러 차례 국정원을 통해 언론 동향을 파악하고 방송사 등을 과도하게 통제하려고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정 언론사를 상대로 청와대 지시를 잘 따르는 경영진을 구축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에 가담된 이들을 모두 퇴출시켰다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 방안’ 문서 역시 청와대 홍보수석실이 실질적인 작성 지시자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한국기자협회 등 7개 언론단체는 이 후보 지명에 관해 “헌정파괴 인사 참극”이라며 지명철회를 요구했다. 그가 위원장으로 오르게 된다면 윤정부를 등에 업고 제2의 ‘방송장악’ ‘언론통제’ 시대를 열어젖힐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이 후보가 또다시 언론을 상대로 물밑 작전을 펼친다면 그 다음은 무엇이 됐든 쉽게 쥐고 휘두를 것이라는 시각 역시 존재한다.

윤 대통령의 ‘밀어붙이기식’ 인사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윤정부의 정치는 ‘멸망 공식’ 절차를 그대로 밟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윤정부가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은 채 김영호 교수를 통일부 장관으로 임명하고 이 후보 역시 방통위원장으로 강행하려는 행보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이 후보자 임명이 강행될 경우 윤정부서 국회 동의 없이 임명된 장관급 인사는 16명에 달하게 된다. 이미 인사 낙제점을 받은 윤정부에 이 후보까지 합류하면 ‘홍위병 집합소’라는 꼬리표를 떼기는 어렵다는 게 민주당의 지적이다.

밀어붙인 인사만 15명
내 갈 길 가는 대통령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자 지난 1일, 이 후보가 ‘언론통제 의혹’에 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 후보자는 이날 인사청문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던 길에 기자들과 만나 “언론은 장악될 수 없고 또 장악해서도 안 되는 영역이지만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전 선동을 능수능란하게 했던 공산당의 신문이나 방송을 언론이라고 얘기하지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언론의 공정성’을 강조하면서도 일부 언론을 공산당 기관지에 비유한 셈이다. 공산당 발언에 민주당은 ‘썩은 언론관’이라고 질타했다. 윤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 불리한 보도는 공산당 기관지 취급을 받을 것이란 설명이다.

반면 국민의힘에서는 이 후보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게 아니냐는 입장이다. 과거 민주노총 등 노동조합으로 생긴 편파 보도를 바로잡는 데에는 이 후보가 적임자라는 뜻이다. 이 후보에 관해 합리적인 반대 사유가 있으면 청문회 때 밝히면 된다는 자신감 있는 태도를 보였다.

민주당의 압박 수위가 강해지자 국민의힘에선 정쟁을 멈추고 청문회 절차와 목적에 따라 이 후보의 역량을 검증하자며 방어 태세로 돌입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요청안을 국회로 보냈다. 국회는 인사청문요청안을 받은 뒤 20일 안에 인사청문회를 마쳐야 한다. 정치권에서는 청문회 일정으로 20일 안팎이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마이웨이


현재 거론되는 여러 쟁점을 두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민주당은 ‘송곳 청문회’로 전략을 정했다. 국민의힘은 이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에 초점을 맞춰 견고한 방패막을 구축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야의 거친 공방이 이어지면서 ‘이동관발 후폭풍’은 장시간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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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