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 따라’ 역대 정권과 헌재 변천사

대통령 바뀌면 흔들흔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헌법재판소는 법원과 함께 우리나라 사법부를 아우르는 헌법기관이다. 헌법기관의 생명은 공정성과 중립성이다. 헌재 재판관 지명 주체가 각기 다른 것도 권력의 외풍에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다. 그럼에도 헌재 판결의 방향성은 정부 성향에 따라 좌지우지되곤 한다.

지난 25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 심판 결과가 나왔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이날 오후 대심판정서 열린 선고 재판서 재판관 9명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탄핵 기각
이례적 일치

지난 2월8일 국회는 이 장관의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지난해 10월29일 발생했던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사전 예방조치 ▲사후 재난대응 ▲사후 발언이 부적절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헌재는 3가지 모두 탄핵 사유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피청구인(이 장관)은 행정안전부의 장이므로 사회재난과 인명 피해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면서도 “헌법과 법률의 관점서 재난안전법과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해 국민을 보호해야 할 헌법상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태원 참사가 어느 하나의 원인이나 특정인에 의해 발생·확대된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각 정부 기관이 대규모 재난에 관한 통합 대응 역량을 기르지 못한 점 등이 총체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점에서 그 책임을 이 장관에게 돌리기 어렵다고 봤다. 


참사 원인이나 ‘골든타임’과 관련해 국회나 언론 질의에 부적절하게 대답한 부분을 두고서는 “전체적으로 국민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는 것으로 부적절하다”면서도 탄핵할 정도의 잘못은 아니라고 봤다. 

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이 장관의 사후 재난 대응이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한 것은 맞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정정미 재판관 등 4명은 이 장관의 사후 발언 일부가 국민의 신뢰를 실추시키는 국가공무원법상 품위유지 의무 위반 행위라고 봤다. 그러면서도 이 같은 부분이 탄핵 사유가 될 정도는 아니라는 점에 동의했다.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기각 판결이 나오면서 정치권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이 장관의 탄핵 심판 청구에 기각 혹은 인용 가능성을 논하는 과정서 불거진 재판관의 성향을 가지고도 말이 나오는 중이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승원 의원은 탄핵 심판 판결 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기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탄핵이 인용되기 위해서는 6명 이상 재판관의 찬성이 필요한데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것. 그러면서 김 의원은 재판관의 정치적 성향을 언급했다.

1987년 개정헌법 후 현재 모습
국회·대법원장·대통령 3명씩

현재 헌재 재판관 9명 가운데 이은애·이종석·이영진·김형주·정정미 재판관은 중도·보수 성향으로, 유남석 헌재소장·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중도·보수 5, 진보 4로 구성돼있는 셈이다. 이 장관에 대한 탄핵 심판 청구 결과가 전원 일치 기각으로 나온 점을 두고 이례적이라고 보는 이유다.

헌재는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에 와서야 현재의 ‘헌법재판소 제도’가 도입되면서 신설됐다. 제헌헌법에 따르면 헌법위원회가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사했다. 1960년 개정헌법에 헌법재판소 제도가 도입돼 1961년 헌법재판소법이 제정됐지만 5·16 군사정변으로 설립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제3공화국 때인 1962년 헌법에서는 법원과 탄핵심판위원회가 헌법재판권과 탄핵심판권을 행사했다. 1972년과 1980년 헌법에서는 헌법위원회가 그 기능을 담당했다.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 건 1988년 헌법재판소법이 발효되고 재판관 9명이 임명되면서부터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헌재는 ▲법원의 제청에 의한 법률의 위헌 여부 심판 ▲탄핵 심판 ▲정당의 해산 심판 ▲국가기관 상호 간,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간 및 지방자치단체 상호 간의 권한쟁의에 관한 심판 ▲헌법소원에 관한 심판을 담당한다. 

헌재는 법관 자격을 가진 9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되는데 이 가운데 3명은 국회가 선출하고, 다른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사람을 대통령이 임명한다. 나머지 3명은 대통령의 권한으로 지명한다. 헌재 소장은 재판관 가운데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다. 임기는 6년이다. 

정치 성향
판결 영향

국회·대법원장·대통령 등 재판관을 지명하는 주체가 다른 것은 헌재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정부가 바뀔 때마다 재판관의 구성이 변화하는 부분을 두고 ‘정치적’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정부의 색깔이 가장 진하게 드러나는 기관이 헌재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1988년 9월 조규광 헌재소장 체제로 1기 재판부가 출범한 뒤 1994년 9월 김용준 소장이 헌재소장을 맡으면서 2기 재판부가 들어섰다. 당시까지만 해도 헌재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는 높지 않았다. 헌재가 큰 주목을 받기 시작한 시점은 참여정부 시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 및 심판 사건, 신 행정수도 문제를 맡아 높은 관심을 받았다. 

2013년 4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활동한 박한철 소장 체제의 5기 재판부는 역대 재판부 중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한 기수로 평가받는다. 2014년 12월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 사건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당시 통합진보당이 해산되고 소속 국회의원이 자격을 상실하면서 정치적 파장이 일었다. 

2015년 2월에는 간통죄를 위헌으로 판단했다. 간통 행위를 처벌하도록 한 형법 241조에 대해 재판관 7대2 의견으로 위헌 결정한 것. 1990년부터 2008년까지 4차례 합헌 결정을 내렸다가 5번째 위헌 판결이 나면서 간통죄는 62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헌재가 전 국민적 관심을 받은 사안은 따로 있다.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에 관한 탄핵소추를 심리하고 판단한 사건이다. 2016년 12월9일 국회서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박 전 대통령에 관한 탄핵 심판 절차가 개시됐다. 

이후 2017년 3월10일 헌재가 박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하면서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파면되는 일이 일어났다. 당시 재판관 8명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결정됐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밝힌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한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심판 과정서 가장 유명한 말로 남았다.

문정부 때
성향 뚜렷

헌재는 2018년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문재인정부 시기로 같은 해 헌재소장을 비롯해 재판관 5명이 교체되면서 6기 재판부가 출범했다. 헌재의 판결이 재판관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크게 움직였다는 지적이 나온 때다. 재판관 구성 자체가 진보 인사로 채워지면서 판결 관점이 좌로 치우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실제 2019년 4월 낙태죄와 관련해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왔다. 헌법불합치 결정은 위헌이지만 해당 조항이 바로 무효가 될 경우 사회적 혼란이 야기될 수 있어 일시적으로 법을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낙태죄 위헌법률심판서 재판관 7대2의 의견으로 2020년 12월31일까지 법률을 개정하라고 판결했다.

2012년 합헌 결정 이후 7년 만에 위헌으로 판결이 뒤집혔다. 

이보다 앞서 2018년 6월에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병역거부자 처벌 규정 자체는 합헌으로 결정하면서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처벌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뜻을 밝혔다.

2004년과 2011년 두 차례의 헌법소원 당시에는 재판관 7대2의 의견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을 합헌으로 결정했다.

재판관의 성향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사안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에 관한 권한쟁의 심판 선고 때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명수 대법원장, 민주당이 지명한 진보 성향 재판관 5명과 보수․중도보수 성향의 재판관 4명의 판단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노무현정부서 큰 주목
박근혜 탄핵 인용 결정


국회는 지난해 4~5월 민주당 주도로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기존 6대 범죄(부패·경제·선거·공직자·방위사업·대형참사)서 2대 범죄(부패·경제)로 축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민의힘 의원은 민주당이 입법을 위해 민형배 의원을 ‘위장 탈당’시켜 비교섭단체 안건조정위원회 몫으로 표결을 행사하게 해 법안 심의·표결권을 침해당했다며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법무부와 검찰은 이와 별개로 검수완박 법안이 헌법과 법률에 의해 부여된 검사의 수사·소추권을 침해한다며 국회의 입법 행위와 법안의 무효 확인을 구하는 권한쟁의 심판과 법안의 효력 정지를 요청하는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유남석 소장과 이석태·김기영·문형배·이미선 등 진보 성향의 재판관 5명은 국회 본회의서 국민의힘 의원의 심의·표결권에 침해가 없었으며 국회의장의 가결 선포 행위도 유효했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법무부와 검찰의 권한쟁의 청구에 관해서도 각하 결정을 내렸다. 

반면 보수·중도보수 성향의 재판관 4명은 정반대의 의견을 냈다. 이선애·이종석·이은애·이영진 재판관은 검수완박 법안 입법 과정서 민형배 의원이 당시 민주당을 탈당한 것, 최장 90일간 법안 검토를 해야 하는 안건조정위 논의를 17분 만에 끝낸 것, 법사위서 8분 만에 가결시킨 것 등이 헌법 49조(다수결 원칙)와 국회법 57조 2, 58조(위원회 심사 절차) 등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진보 성향의 재판관은 법무부 장관이 수사·소추권을 직접 행사하지 않기 때문에 청구인 자격이 없고 검수완박 법안이 수사·소추권을 국가기관 사이서 조정·배분한 것이기 때문에 검사의 권한을 침해한 게 아니라고 판단했다. 반면 중도·보수 성향의 재판관은 법무부 장관의 청구인 적격과 검사의 권한 침해 가능성을 인정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 3월 이선애 재판관의 후임으로 김형두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난 4월 퇴임한 이석태 재판관의 후임으로 정정미 대전고법 판사를 추천했다. 이석태 재판관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참여연대 등에서 활동한 진보 성향으로 꼽힌다. 이석태 재판관의 퇴임으로 진보 성향 재판관이 4명으로 줄어들고 중도·보수 성향 재판관이 5명이 됐다.

2년 안에
지형 바뀐다

김형두·정정미 재판관의 취임은 윤석열정부의 헌재 지형 재편의 시발점으로 여겨졌다. 두 재판관의 교체를 시작으로 윤석열 대통령 임기 내에 재판관 모두가 물갈이된다. 이 장관에 대한 탄핵 심판 사건은 헌재 지형이 바뀐 뒤 나온 첫 주요 결정이다. 이 사건서 헌재가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기각 판결을 낸 것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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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