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리지 않는 양평 수수께끼

꼬이고 또 꼬이는 2조 국책사업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1조7695억원. 2조원 가까이 되는 국책사업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됐다. 여전한 ‘네 탓’으로 특혜 의혹서 정치권 싸움으로 번지며 이전투구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15년 동안 추진해온 국책사업은 짧은 한마디에 무너져버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의문점이 쌓여만 갈 뿐 해결되는 건 없다.

서울양평고속도로를 두고 여전히 여야가 첨예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이른바 ‘김건희 고속도로’ 의혹으로 시작해 현재는 ‘김건희 게이트’ ‘더불어민주당 게이트’로 나뉘어 여론전으로 비화되는 모양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 리스크로 확정짓고 또다시 국정조사 카드를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똥 볼’을 찬 민주당이 가짜뉴스를 쏟아낸다며사과 없이는 국회 일정 재개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날이 갈수록
쌓이는 의문

여야의 쏟아지는 네거티브 속에서 김건희 여사와 윤석열 대통령은 해외순방을 진행했고,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먼저 의혹을 제기한 측은 민주당이다. 앞서 민주당은 국토부가 김 여사 일가 땅이 있는 양평군 강상면으로 고속도로 노선 변경을 추진한 것을 이유로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민주당의 정치공세로 몰아붙이며 물러서지 않자 여야 인사들과 관련된 의혹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온다. 떠오른 핵심 사안으로 김 여사의 토지 보유 시점, 노선 변경 당시의 상황 등이다. 캐면 캘수록 자꾸만 김 여사 일가에 대한 의혹이 터져나오자 원 장관은 양평 고속도로 전면 백지화를 선언해버렸다. 

그러면서 민주당에 “간판과 직을 걸고 한판 붙자”는 식으로 맞불을 놨다. 그도 그럴 것이 원 장관은 대선 당시 윤석열 대선캠프서 공약을 담당하는 정책본부장을 맡았었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는 기획본부장을 역임했다.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는 탓이다.


이 같은 발언은 대선주자로 나서기에 앞서 정치적 부담을 지우기 위한 발언이라고 해석된다. 

서울양평고속도로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로 중부내륙고속도로 양평IC~중앙고속도로 홍천IC 간 약 40㎞ 구간의 고속도로 건설을 약속했다. 해당 사업은 경기 양평군 옥천면 일대에 있는 양평 IC와 강원 홍천군 홍천읍 일대 홍천 IC를 잇는 사업이다. 

현재 국민의힘 전진선 양평군수 역시 서울양평고속도로 조기 완공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바 있다. 민주당이 이런 사안을 지적하자 국민의힘은 현재 민주당 시절에도 해당 공약이 변경됐다는 식으로 맞받아쳤다.

서울양평고속도로 사업이 처음 제안된 시기는 2008년으로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이다. 2017년 당시 제1차 고속도로 건설 5개년 계획에서는 중점 추진사업에 포함되기도 했다. 

누가 왜 갑자기 바꿨나
예비조사 뭉갠 인물은?

당초 예비타당성(이하 예타) 평가 조사와 관련해 2021년 5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서울양평고속도로 예타 평가 조사안(양서면 종점안)을 냈다. 조사안에 따르면 상습 정체구간인 6번 국도(경기 남양주~양평)의 교통정체 해소를위해 인근 경기 양평군 양서면에 분기점을 만들어 교통량을 분산할 필요성이 언급됐다.

경기 동남권 간선 도로망 확보 등 서울과 양평의 접근성 향상이 목적에 담겨있다. 양서면을 종점으로 한 이유도 이 같은 목적에 가장 부합했기 때문이다. 해당 조사안은 기획재정부 장관에게까지 보고됐던 사안이다.


발주는 문재인정부서 시작됐으나 윤석열정부 들어 당초 KDI의 예타 평가 조사안은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면서 여러 쟁점들이 추가됐다. 이 지점서 드는 의심은 예타 평가 조사안을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어낸 게 과연 누구인지다. 

일각에선 예타 조사, 변경안 등 사안이 모두 문정부서 이뤄졌다는 주장이 나온다. 실제로 따져보면 양평고속도로의 예타 조사 착수가 시작된 시점은 지난해 3월이다. 이 시기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막 가동된 때다.

이후 윤 대통령이 취임한 시점인 지난해 5월경 양평 예타 조사 착수 보고회가 열렸다. 당시에는 예타 조사 결과 노선의 문제점 분석 및 검토 방향이 보고된 시기다. 

문제는 이때부터다. 지난해 7월 국토부는 사업 추진을 위해 예타 평가에 대한 관련 부처, 해당 지자체와 협의에 들어갔다. 양평군은 국토부에 강하IC가 포함된 3개의 노선을 제안했는데 이때 종점 강상면 안이 등장한다. 서울양평고속도로의 원안은 경기 하남시 감일동서 양평군 양서면까지 27㎞를 건설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올해 5월 발표한 환경영향평가 보고서에는 종점을 강상면으로 바꾸는 안이 등장했다. 

지난해 3월 예타 조사에 착수한 뒤 조사기관을 통해 조사와 검토를 거쳐, 양평군이 강상면 종점 변경 대안을 제시했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국토부 수장인 원 장관은 여전히 민주당의 가짜 뉴스로 몰고 있다. 문정부서 민간업체에 맡겼고, 노선 변경이 문정부서 맡긴 결과물이라는 주장이다.

여야 평행선
첨예한 대립

올해 1월에는 국토부가 양평군에 대안 노선을 제시했고, 2월 초 양평군은 검토 의견을 회신한 바 있다. 양평군은 통과 노선에 IC 설치 등 양평군 주민이 직접적인 수혜를 받도록 노선 계획 수립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후 전략환경영향평가 초안 공람 및 설명회가 개최 공고가 났고, 지난 5일은 송파구와 하남시, 6일은 양평군과 파주시가 계획돼있었으나 설명회와 의견수렴은 중단된 상태다. 현재는 서울양평고속도로 사업을 다시 추진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여야가 대립 중이다. 처음 의혹이 터졌을 때는 여야 관련 인사들의 땅 문제로 불거졌다.

민주당이 최초 제기한 의혹도 변경안에 김 여사 일가의 땅이 있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변경안 일대 김 여사 일가 땅만 해도 축구장 5개 규모다. 강상면 IC와 양평JCT 반경 5㎞ 안 토지 29필지를 김 여사 일가가 소유했다는 게 드러났다.

이는 재산 공개 때보다 훨씬 많아졌으며, 12개 필지는 상속으로, 17개 필지는 매매를 통해 취득했다. 또 지목 대부분이 변경돼있고 김 여사, 김 여사의 모친인 최은순씨 등이 소유하고 있다. 앞서 특혜 논란이 불거진 부동산 개발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 역시 땅을 가지고 있다. 

이미 지난해 10월 국토부 국정감사에서는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김 여사 일가의 땅 일부가 접도구역으로 지정돼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접도구역이란 도로 구조의 손괴, 미관 보존, 교통사고 방지를 위해 지정한 구역을 뜻한다. 이 과정서 편법(변경한) 사례가 발견된 것.


돌고 돌아 다시 네 탓 공방만
“장관 혼자 결정할 사안 아냐”

토지의 지목 변경, 등록 전환 등을 위해서는 합당한 인허가를 받아야만 가능하다. 현재 지목은 창고 ‘용지’든, ‘대’든, 건축물대장 용도란에 다 표기가 돼있다. 지목 변경, 등록 전환을 위해서는 관할인 양평군청에 관련 서류들을 첨부해야만 한다. 따라서 김 여사 일가가 군 민원실에 어떤 방식으로 인허가를 받았는지 의문점이 생긴다. 

반면 원안 종점에는 전 양평군수인 정동균 전 양평군수(민주당)와 정 전 군수 친척들의 땅이 있는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었다. 정 전 군수와 친척들 소유 토지 중 상당수가 원안상 종점을 기점으로 1.6㎞ 정도 거리에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선대로부터 증여·상속받아 공동 소유 중인 땅과 함께 정 전 군수가 1998, 2004년에 각각 매입한 땅도 일부 포함돼있다고 전해진다. 이런 탓에 결국 원안과 변경안을 두고 서로 특혜 시비가 벌어졌고 정치적 문제로까지 확전됐다. 결국 피해는 오롯이 양평군민의 몫이 됐다.

국토부의 해명이 오락가락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종점 변경안을 제시한 게 양평군이라고 밝혔다가 이후 용역 의뢰를 받은 설계 회사라며 자신들의 주장을 다시 뒤집었다. 개발 가능성이 없다는 선산이라고 해명했던 부분도 거짓 해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 소장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건희 일가에 막대한 이익을 주려고 작정하고 저지른 범죄로 본다.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 된다”며 “원안 백지화냐 아니냐를 두고 민주당 책임으로 몰아가고 있다. 윤 대통령 김 여사가 답을 해야 하는 사안인데, 백지화 논란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방식으로 
인허가 받았나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 지점은 또 있다. 여전히 왜 종점이 바뀌었는지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서로 변경하려고 했다며 주장하고 있지만, 변경 이유는 여전히 베일에 쌓인 상태다. 

2017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등장하지 않고 있던 강상면 종점 노선이 예타 조사를 통과한 원안 대신 채택된 이유가 뚜렷하지 않다. 만일 사업이 대안 노선으로 추진된다고 해도 서울양평고속도로는 다시 예타 조사를 받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재예타가 필요 없다는 이유에 대해 국토부는 “단순히 변경되기 전에 이미 예타 조사가 끝난 사안이기 때문”이라는 이유 외에는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또 전국 고속도로 24건 중 14건이 시작점 또는 종점이 변경됐다는 부분을 강상면 종점 변경 가능 근거로 내세웠을 뿐이다. 

예타 조사는 국가재정법 38조 및 동법 시행령 13조 규정에 따라 예산편성과 기금 운용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실시하는 검증과 평가다. 사업 구간을 특정한 후 해당 구간에 대해서만 비용편익분석(B/C)을 하는 행위다. 

앞선 예타 조사는 변경안이 나오기 이전에 시작됐고, 완료된 사안으로 그 어디에도 강상면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후 등장한 변경안이 제시됐다면 변경된 부분에 대해 다시 예타 조사를 시행하는 게 마땅해 보인다.

게다가 양서면서 강상면으로 노선이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거리도 짧지 않으며 지나는 지역도, 도착 지점도 완전히 다르다. 큰 축이 흔들렸고, 노선의 방향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재예타가 필요한 셈이다.

“간판 걸고 한판 붙자”
종점 게이트 열리나 

일각에선 변경안의 경우 2㎞가 추가 연장되고, 사업비는 1000억원이 더 든다는 전망도 나왔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지난 6일 새 노선 사업비 증가액이 140억원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변경된 노선을 두고 예타 조사를 거치지도 않은 상황서 사업비 증가액이 산정된 경로도 의문이다. 

또 다른 의문점은 국토부가 전략환경영향평가 협의 고시 이전에 재예타 면제를 위해 종점 구간 변경 및 사업비 증액을 사유로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했는지다. 협의했다면 협의한 사유는 무엇인지, 기재부가 협의해준 내용인지를 밝혀야 한다.

그러나 기재부 역시 “노선 변경된 부분에 대해서 사전에 국토부와 기재부 사이에 협의는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해당 대목서 불거지는 의문점 중 하나는 과연 원 장관의 단독 결정이 맞느냐는 부분이다. 2조원에 육박하는 사업을 국토부 장관이 마음대로 백지화하겠다고 결정할 수 있느냐는 의구심을 배제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원 장관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었던 사안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본다. 임세은 전 청와대 대변인은 한 라디오에 출연해 “7월3일의 입장과 7월7일 입장이 너무 확연하게 다르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백지화를 선언했던 지난 6일에도 원 장관이 용산 대통령실에 출입했다는 증언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임 전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도 “계속 교감이 있었다는 제보와 증언이 있었다. 원 장관(제보에 대해) 반응이 있다면 동선을 공개하라고 하겠다”고 전했다. 

윤·김 부부
여전히 침묵

만일 원 장관이 대통령실에 출입했다는 게 사실로 밝혀진다면 혼자 내린 결정이 아닌 ‘지시’를 받고 한 결정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 원 장관은 대통령실 출입 여부에 대해선 여전히 묵묵부답이며, 대통령실도 마찬가지다. 특별한 해명 없이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현재까지 대통령실은 서울양평고속도로 의혹에 대해 거리를 두는 모습만 보인다. 

한 정가 관계자는 “사태의 본질을 다시 파악해야 한다. 현재는 원안 찬반 여부로 논쟁이 가고 있다. (국민의힘이) 김 여사 특혜 문제가 아니라 여야 간 책임으로 몰고 가고 있다”며 “제2의 바이든 날리면 사태와 다름없는 작전”이라고 말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양평 논란’ 민주당 작전은? 

서울양평고속도로 논란이 쉽게 정리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서로를 향해 연일 맹공을 퍼붓는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은 국민의힘에게 ‘국정조사’를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대통령 처가 고속도로 게이트의 진상을 은폐하려는 윤석열정부의 거짓말이 곳곳서 드러나고 있다”며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은 “정쟁을 확대하겠다는 뜻”이라며 사실상 국정조사 거부 의사를 밝혔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오히려 문재인정부를 걸고 넘어졌다.

그는 “양평 고속도로 국조가 필요하다면 대상은 문재인정부”라며 맞받아쳤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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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