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93사단 잔군’의 교훈

  •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
  • 등록 2023.07.03 16:24:54
  • 호수 1434호
  • 댓글 8개

우리나라 정당사를 보면 대선서 패한 제1야당의 일부 세력이 ‘이대론 다시 정권을 잡을 수 없다’는 명분으로 신당을 창당한 예가 종종 있다. 그러나 성공한 예는 거의 없고 성공해도 힘이 없는 정당에 불과했다. 

그나마 대선서 진 제1야당서 나와 창당한 신당 세력이 총선이나 지선서 패한 후 제1야당에 합류하면 나름대로 정치력을 갖고 정권교체라는 비전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신당이 소수 정당으로 남아 계속 정권 탈환을 목표로 강성 정치를 지향하면 힘이 없는 정치 미아 신세가 되거나 얼마 가지 못해 정당의 존재마저 사라지고 만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친정이나 다름없는 제1야당마저 외면한다는 것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최근 신당 창당 소식이 곳곳서 들리고 있지만, 국민적 최대 관심사는 지난해 대선서 진 더불어민주당의 일부 세력의 창당 움직임에 있다. “이대로는 민주당이 내년 총선서 패해 다음 대선서도 정권을 되찾을 수 없고, 윤석열정부 후반기에 제1야당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표면적인 창당 이유다. 

언뜻 보기엔 그럴싸한 이유 같지만, 한편으론 현 지도부의 사법 리스크와 지도력 문제가 불거져 총선 전 민주당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핑계 삼아, 이때 진보진영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속내를 드러내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의 싸움인 국공내전서 나온 ‘93사단 잔군’의 이야기가 대선서 진 제1야당서 나와 창당한 소수 정당의 운명을 잘 보여주고 있다.


원래 대만과 중국은 중화민국이라는 한 나라였다. 그러나 1949년 장개석이 국공내전서 패한 후 대만으로 쫓겨나면서 모택동은 대륙에 공산당의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웠다. 장개석은 대만에 국민당을 세운 중화민국은 둘로 갈라진 분단국가가 됐다. 

당시 공산당이 국민당을 밀어내고 중원을 차지했지만 서남부 운남성에는 장개석을 따라 대만으로 가지 않고 대륙을 다시 찾겠다는 세력이 남아 있었다. 93사단을 주축으로 한 소위 국민당의 ‘93사단 잔군’이다. 그러나 이들도 결국은 1950년 공산당의 해방군에 의해 중국서 쫓겨나고 말았다.

93사단 잔군이 쫓겨난 곳은 미얀마(버마)의 정글이었다. 당시 미얀마도 이들을 내쫓으려 했지만, 독립(1948)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미얀마가 국공내전으로 단련된 93사단 잔군의 전투력을 감당하지 못했다. 93사단 잔군은 중국 대륙을 찾겠다는 구국대까지 만들어 한국전쟁이 발발한 틈을 타 2년 동안 7차례나 운남성을 공격하기도 했다.

그 후 구국대가 미얀마 산악지대까지 영역을 넓히면서 ‘동남아인민반공연군’을 결성하자 미얀마는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이에 미얀마정부가 앞장서 국제사회에 호소하면서 결국 대만의 장개석 총통이 ‘운남반공구국군’의 해산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장개석 총통의 선포에도 일부만 해산했을 뿐 대부분은 잔군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장개석 총통의 지속적인 철군 요구와 미얀마의 공격에 못 이긴 93사단 잔군은 다시 산을 넘어 태국의 매살롱으로 거점을 옮겼다. 태국도 처음엔 이들을 몰아내기 위해 노력했으나, 전투력이 강한 이들을 당해낼 수 없었다. 

한편 태국과 계속 싸워선 안 되겠다는 걸 인식한 93사단 잔군은 현지 정착을 위해 태국 정부에 협조하는 노선을 택했다. 태국 북부의 ‘공산군 빨치산’ 토벌에 앞장섰던 것이다. 결국 1982년 완전히 공산군 빨치산을 진압한 태국 정부는 93사단 잔군이 큰 공을 세운 사실을 인정해 이들에게 태국 국적을 부여했다. 


무엇보다 태국이 한반도나 베트남, 중국처럼 분단되지 않은 게 93사단 잔군 덕분이라고 태국 국왕이 인정했기 때문에 93사단 잔군의 후손이 지금까지 한정된 지역이지만 태국 매살롱에 정착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장개석의 국민당이 패해 대만으로 쫓겨 가면서 중국이 분단된 지 74년이 됐는데도 매살롱에 사는 93사단 잔군의 후손은 아직 국공내전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게 안타까운 일이다. 93사단 잔군에게 더 치명적인 아픔은 중국과 대만이 이들의 귀국을 불허하며 방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93사단 잔군의 후손은 태국 북부 치앙라이에 살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93사단 박물관이나 민족촌을 지어 자신들이 흘러들어와 살게 된 사연 등을 기록해 보존하고 있다. 그러나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상처는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한다.

애초에 93사단 잔군은 해산됐거나 장개석을 따라 대만으로 갔어야 했다. 그랬다면 93사단 잔군과 그 후손이 74년 동안 타국의 산간지역을 돌아다니며 유리걸식하지 않았을 것이다.   

민주당의 일부 세력이 나와 강성 진보정당을 창당해 그 세력이 나중에 정치 미아로 떠돌면서 우리 국민에게 정치적 피로감을 줘선 안 된다. 아울러 국민의힘이나 자칭 제3지대 세력도 각각 중도보수정당이나 중도정당을 창당해 그 세력이 나중에 정치 미아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의 양대 정당은 무너지지 않고 굳건히 우리나라 정치를 견인해왔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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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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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풀어주느냐, 마느냐, 이재명 대통령이 깊은 고심에 빠졌다. 8·15 특별사면·복권 명단에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의 이름이 올라오면서다. 한때 아군이었던 조 전 대표의 정치 생명이 용산의 선택에 달렸다. 조국혁신당은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계까지 사면론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7일 이재명정부의 첫 특별사면을 준비하기 위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특별사면 명단에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관심이 급상승했다. 사면심사위원회가 사면·복권 건의 대상자를 검토하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이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오는 12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설에 부채질 조 전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실형을 확정받았다. 조 전 대표의 만기 출소 예정일은 내년 12월15일이다.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이 이뤄질 경우 출소 시기는 앞당겨질 수 있다.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기소 자체가 검찰의 무리한 시도였다고 보는 만큼 이번 정권에서 검찰개혁을 이뤄내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혁신당 신장식 의원은 지난 대선 정국서 “조 전 대표가 보고 싶지 않느냐”며 “(이재명 후보가) 그냥 이기는 게 아니라 크게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 곧 조 전 대표의 사면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 것이다. 조 전 대표의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또한 비슷한 시기에 ‘더1찍 다시 만날 조국’이라는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이 후보의 당선과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동일시했다. 이렇듯 혁신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 등에서 일궈낸 업적을 청구서 삼아 은근한 눈치를 보냈고, 최근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 친문(친문재인)까지 목소리를 키우면서 이 대통령을 전방위로 둘러쌌다. 지난달 30일 친문계인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조 전 대표와의 접견 사실을 알리며 “특유의 미소가 여전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많을 법도 한데 오히려 긍정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자꾸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이어 “조국의 사면을 많은 이들이 바라는 이유는 검찰개혁을 요구했던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그의 사면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마음 아닐까”라며 “야수의 시간과 같았던 지난 겨울 우리가 함께 외쳤던 검찰개혁이 틀리지 않았음을, 서로 생각은 달라도 통합과 연대라는 깃발 아래 모두가 함께 있었음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민통합 일환? 이 결정만 남아 친문계에 문까지 팔 걷어붙여 친명(친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 역시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통합을 위한 측면에서 넓게 사면 복권에 관한 판단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든다”면서도 “이 문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통령께서 판단할 문제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문 전 대통령이 용산 측에 조 전 대표의 사면 의견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5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은 우상호 정무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고, 우 수석은 “뜻을 전달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김원기·임채정·정세균·문희상·박병석·김진표 등 민주당 출신인 전 국회의장도 가세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책임을 수용한 이들에 대한 절제된 관용”이라며 “대통령께서 국민 통합의 뜻을 담아 조 전 대표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한 개인의 구제가 아니라 극한 대립과 갈등의 시기를 겪어내며 상처 입은 우리 사회 공동체에 건네는 ‘공정한 매듭과 위로’의 손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방에서 사면 요청이 쇄도하자 대통령실은 막판 고심에 빠졌다. 앞서 지난 5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사회적 약자와 민생 관련 사면에 대해 일차적으로 검증 및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정치인 사면에 관해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 중”이라며“아직 최종적인 검토 내지는 결정에는 이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혁신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조 전 대표가 수감 된 지 8개월이 지났는데 혁신당은 아직도 권한대행 체제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 대표를 뽑을 만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뭐겠느냐”며 “이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조 전 대표가 사면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가 돌아와서 혁신당이 이전 같은 명성을 되찾길 기다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혁신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대표가 궐위된 때에는 최고위원 가운데 가장 많은 득표로 선출된 최고위원이 남은 임기 동안 당대표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선민 권한대행이 내년 7월까지 조 전 대표의 임기를 대신해 자리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당초 조 전 대표가 자신의 수감 생활을 예측하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이러한 당헌·당규를 개정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8개월째 대행 체제 혁신당 “확신” 믿을 구석 있었나 내년 지방 선거를 위해서라도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사면이 필요하다. 구심점이 없고 ‘조국’혁신당이라는 이름만 존재하는 지금으로서는 지난 보궐선거만큼의 역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민주당은 딜레마에 빠졌다. 국정 초기부터 자녀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으로 법의 심판을 받고 복역 중인 인사를 사면했다가는 ‘범죄자 프레임’에 함께 걸려들 수 있다. ‘조국 사태’에 거부감을 느낀 지지자들의 이탈도 고려해야 하는 지점이다. 반면 사면 요청을 거절할 경우 오히려 조 전 장관의 정치력을 키우는 등 일종의 서사를 부여할 수 있다. 조 전 대표는 본인의 사면에 대해 큰 뜻을 밝히지 않아 오히려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 것이란 해석이다. 민주당에 있어 조 전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의 ‘변수’다. 지난 총선서 호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혁신당이기에 조 전 대표가 정치권에 돌아온다면 진보진영 텃밭을 둘러싼 두 정당 간의 경쟁과 그로 인한 잡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그의 행보를 예측하고 나섰다. ‘자유의 몸’이 될 경우 이른 시일 안에 전당대회를 치러 다시 한번 당대표직을 거머쥐고 내년 지방 선거를 진두지휘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일각에서는 조 전 대표가 부산 시장 등으로 직접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도 보고 있다. 어디로 튈까 민주당은 최종 사면 명단이 공개되기 전까지 별다르 입장을 내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7일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지만, 이날 조 전 대표의 사면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제 공은 이 대통령에게 넘어왔다. 단 한 사람의 정치 인생이 걸린 문제지만 그의 복권은 정치 진영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여러 가지 변수와 상수가 존재하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최종 선택에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