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현 정치권에 염증을 느낀 이들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태동을 일으키고 있다. ‘제3지대’로 불리는 신당들이 줄줄이 생겨났거나 창당을 예고하고 있는 것. 하지만 이들이 무당층을 온전히 흡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장 이번 총선서 거대 양당을 꺾으며 돌풍을 일으킬 수 있을지 정치권의 이목이 쏠린다.
제3지대란 거대 양당이 국회를 양분하는 것을 비판하는 집단을 일컫는 말로, 한국 정치 지형상 ‘중도’를 뜻한다. 최근 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정치계의 새로운 불씨가 될 수 있을지에 이목이 쏠린다. 아직은 인재풀이 충분치 않고, 구체적인 비전도 없다는 등 회의적인 시각이 여럿 존재한다.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불리는 데다,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게 정치판인 만큼 현역 의원들은 섣불리 나서지 못하면서 곁눈질만 하는 모양새다.
눈치 보기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 몇 달 동안 20%를 맴돌던 무당층의 지지율이 최근 들어 29%까지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국민 약 3명 중 1명은 국민의힘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지지하지 않고 있다는 셈이다. 국민의힘이 35%, 민주당이 31%인 점을 고려하면 무당층과 엇비슷한 규모다. 이를 토대로 새 정치세력에 대한 국민적 갈망이 크다는 게 창당을 주도하고 있는 인사들의 진단이다.
첫 깃발은 무소속 양향자 의원이 주도하는 ‘한국의희망’이 꽂았다. 양 의원은 지난달 26일, 창당발기인대회를 열고 신당이 차별화되는 핵심 지점으로 ‘블록체인 기술’을 내세웠다.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밀실 공천’ 등 기성정치의 허점을 메우겠단 취지였다.
행사 도중 양 의원은 캐치프레이즈인 ‘이제는 건너가자!’를 거듭 강조했다. ‘건너가다’는 워딩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이냐는 <일요시사> 취재진의 질문에 양 의원은 “당의 성격이나 체제를 고치는 건 ‘바꾼다’의 의미”라며 “반면 ‘건너가다’는 기존 정치 시스템과 환경을 말 그대로 ‘건너’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함께 손을 잡고 건너갈 이들이 충분치 않다는 점은 이들의 최대 해결과제로 꼽힌다. 거대 양당과 결을 달리하는 제3당이 출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흡인력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그만한 동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인 셈이다.
정치권에선 ‘선거’라는 경쟁서 기존의 여야 정치인을 꺾을 수 있는 깜짝 후보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당장 254개의 지역구에 후보를 구성하는 것 역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양 의원은 창당에 관심을 보이는 현역 의원이 5명 정도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기대와는 달리 이날 행사에는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만이 10여분간 자리에 머물렀다. 함께하기로 했던 민주당 의원은 참석하지 않은 것이다.
양향자 주도 ‘한국의희망’ 첫 깃발
금태섭·김종인 이끄는 신당도 꿈틀
이와 관련해 양 의원은 당일 기자회견을 통해 “관심을 보이는(현역 의원) 분이 상당히 많았지만, 지금 소속된 정당의 알을 깨고 나올 분은 없을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이날 창당발기인대회를 두고 정가에선 현실 정치의 문제를 요목조목 짚어낸 점은 ‘사이다’라는 평가가 나왔다. 다만 긍정적으로 운을 띄웠던 현역 의원은 찾아볼 수 없었고 신당 동력의 지표도 제시되지 않았던 점은 숙제로 남게 됐다. 결국 용두사미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이 이끄는 신당 준비 모임인 ‘다른 미래를 위한 성찰과 모색’(이하 성찰과모색)서도 비슷한 문제가 대두됐다. 집권 계획이 모호하고 대권주자와 맞먹는 인물의 합류 없이는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란 시선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 같은 여론이 형성되자 성찰과모색은 지난달 27일, ‘성찰과 반성 없이 미래는 오지 않는다’라는 제안문을 통해반박 논평을 냈다. 이들은 “지금 이대로가 좋다고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모두가 말한다”면서도 “그러나 어떤 변화가 필요하고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누구도 정답을 갖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 20여년간 정권은 수차례 바뀌었지만 과제들은 늘 정치적으로 포장되고 강조됐던 반면 해법은 유예되거나 모호함만 반복했다”며 “정치적 퇴행의 반복과 정상화, 진영 갈등의 극단화, 적대와 혐오의 사회적 확산 등 방향성을 잃고 동요하는 시간이었지만 이런 논리와 장벽의 언어들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단절해야 할 폐해와 계승해야 할 역사를 구분해야 한다. 다른 미래를 위한 성찰과 모색을 시작하고자 한다. 대화는 생각과 가치가 다르기에 이뤄지는 것”이라며 “공존을 전제로 우리의 고민이 작은 파문의 물결을 만들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또 언론을 통해 ‘관계자’라는 익명으로 인재 부족이라는 폄하를 멈추라면서 현역 의원의 입당이나 공천 탈락자 영입에는 일절 관심이 없다고도 했다.
성찰과모색에 합류한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인물 부재론’에 대해 시대와 정치 환경이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무에서 시작해 집권당을 만들어내고 대통령이 된 것처럼 국민을 위한 ‘새 정치 환경’을 만들겠다는 포부다.
우선 지켜보는 분위기
‘인재 부족’ 해소될까
기존 정당 중에서도 제3지대와 궤를 함께할 이들이 등장했다. 정의당은 노동당과 녹색당 등 제3정치세력을 중심으로 연대와 통합을 통한 재창당을 선언했다.
정의당은 현재의 노선을 강화해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자강론’과 세력 확장을 도모하는 ‘재창당론’을 두고 갈등을 겪어왔다. 결국 장고 끝에 지난달 24일 전국위원회를 열고 ‘제3세력과의 신당 추진안’을 채택했다.
정의당은 제3정치세력과의 신당 창당을 모색하면서도 무분별한 연대나 통합은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은 만큼, 양 의원이나 금 전 의원 등 신당과의 통합은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날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두 분(양향자·금태섭)의 정치적 이력은 정의당이 걸어왔던 길과 좀 다른 사이드서 진행됐다”며 “지금 같이 해봐야 한다고 답을 당장 내리기 어렵다”고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케케묵은 정치 굴레를 반대한다는 창당 이념은 신당 대표들의 동상이몽이자 교집합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뜻을 함께할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 일각에선 거대 양당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공천을 받지 못한 인사들이 ‘헤쳐 모여’식으로 흘러가게 된다면 결말은 뻔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 박성민 전 최고위원은 “두 분(양향자·금태섭) 다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목적을 내거셨다”면서도 “결국엔 본인의 대선캠프를 꾸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창당을 대선주자로서 본인들의 몸집 키우기를 위한 디딤돌처럼 쓴다는 주장이다.
국민의힘은 이들 움직임을 우선은 지켜보겠다는 분위기다. 내년 총선서 민주당과의 박빙 승부가 예상되는 만큼 이들을 마냥 배제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공천 양상에 따라 제3지대가 탄력을 받을 가능성도 열려 있다. 하지만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치명적인 실수를 하지 않는 한, 현재로선 크게 주목받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공천권 따내기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여야가 제3지대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는 <일요시사> 취재진 질의에 “아직 큰 움직임은 없다”면서도 “현재 권력을 쥐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과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향한 각 당의 충성 경쟁이 심화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장 소장은 “‘내가 좀 더 아부하면, 충성 경쟁하면 나에게 (공천을)주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더욱 그쪽으로 쏠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며 “아직 현역 의원이 의미 있는 선택이나 움직임을 보이기는 어려운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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