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창문 여는 법을 잊고 살았던 사람들이 창문 앞에서 용기를 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오랫동안 소똥 냄새를 내뿜던 폐수처리장 문제가 이제야 원만하게 마무리된 덕분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100% 해결됐다는 회사 측의 자신만만한 태도와 달리, 시골 거름 냄새는 여전히 사방을 뒤흔들고 있다. 계속 괜찮다가 마침 그때만 악취가 났다는 게 공식적인 회사 입장이다.
집값이 떨어졌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서민의 내 집 마련은 쉽게 이루기 힘든 꿈이다. 특히 서울이라면 난도가 끝도 없이 올라간다. 어쩌면 눈을 돌리는 게 차라리 마음 편한 현실이다.
기자는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전세 매물을 찾기로 마음먹고, 이래저래 최대한 정보를 모아 새 은신처가 돼줄 곳을 선정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수원시 장안구 이목동 인근에 위치한 한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기막힌 타이밍
“집은 좋습니다. 위치도 좋고 교통도 편리하고 이 가격에 이 정도 물건이면 어딜 가도 쉽게 찾기 힘들어요. 지금은 빈집이라 이사하기도 편해요.”
과장은 섞였을지언정 부동산 중개업자가 소개한 아파트는 꽤나 매력적인 매물임에 틀림없었다. 인근 지역이 택지개발을 거쳐 수만명이 거주하는 곳으로 탈바꿈했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있을 건 다 있으니 살기도 딱 좋아 보였다.
그런데 귓가를 스치는 중개업자의 말 한마디가 마음에 걸렸다. “가끔 인근 공장에서 악취가 새 나와서 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했는데 그쪽(공장)에서 냄새를 차단했다고 하니 이젠 그런 불편함은 없을 거예요.”
곧바로 불안감이 엄습했다. 괜한 얘기를 들은 건가 싶다. 듣기 전엔 몰랐는데 불현듯 동네에서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편으로는 괜한 기우로 이 동네를 외면하면 나만 후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동네 사정에 훤한 부동산 중개인이 괜찮다는데 믿어볼까’라는 긍정회로를 돌려본 끝에, 직접 확인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름 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이 정도 번거로움 쯤이야 업무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니까.
부동산 중개소에서 7~8분 차를 타고 이동하니 악취의 원인이라던 ‘동원F&B 수원공장’이 눈에 들어왔다. 중개업자에 따르면 원래 동원F&B 수원공장 인근 지역은 공장이 제법 많았다. 현재는 택지개발로 대다수 공장이 이전했는데, 이 와중에도 동원F&B 수원공장은 이 지역을 꿋꿋하게 지켰다. 1968년 설립됐으니 어느덧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다.
차에서 내리고자 문을 연 직후 조건반사처럼 어릴 적 살던 고향을 떠올렸다. 기자는 유년 시절을 전형적인 농촌 마을에서 보냈다. 초등학생 때 선생님이 부모님 직업을 조사하면 반 학우 40명 중 30명이 농부라고 적어냈던 환경이었다.
코딱지만한 면 내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널따란 논밭이 펼쳐졌고, 곳곳에서 그윽하게 코를 스치는 구수한 거름 향기를 느끼곤 했다. 둘러 표현해서 거름이지,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소똥 냄새였다.
주거지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공장 인근에서 어릴 적 고향을 회상한 건, 코끝을 찌르는 냄새 때문이었다. 조금만 걸어가도 아파트가 빼곡하게 들어선 인구 100만명 수원특례시 귀퉁이에서 도시 상경 20여년 만에 농촌의 똥냄새를 맡게 된 것이다.
거액 들여 조치했다더니…
손썼어도 여전한 수원공장
동원F&B 수원공장 인근을 서성이던 중 악취가 어디까지 따라올지 지켜보자는 생각으로 조금씩 공장에서 멀어져봤다. 30~50m를 걸어가도 고향의 냄새는 가시지 않았고, 100m 가까이 떨어져서야 냄새의 잔상이 희석된 듯했다. 선천적으로 둔감한 후각을 지녔기에 이 정도였지, 만약 조향사급 후각이었다면 1km는 족히 떨어진 인근 지하철역까지 걸어가야 했을지 모른다.
현장 답사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실감한 기자는 중개업자를 책망하며, 또 다른 중개소를 찾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충격적인 진실을 접하기에 이르렀다.
“그 공장에서 우리 부동산 인근까지 대충 700~8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데, 지난해까지는 밤에 창문도 못 열었어요. 특히 여름이면 역한 냄새가 더 들끓었는데, 오죽했으면 아파트 거주자들이 여름 내내 창문을 못 열었을까.”
외지인인 기자가 새 거주지 찾기 프로젝트를 전면 수정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은, 동원F&B 수원공장은 폐수처리장 문제로 오래전부터 주민들에게 불편함을 안겼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2016년 이후 동원F&B 수원공장 폐수처리장 악취 관련 민원은 1400건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게 끝이 아니었다. 2020년 12월에는 동원F&B 수원공장 폐수처리장이 수원시 최초로 ‘악취배출시설’로 지정·고시되는 촌극이 빚어졌고, 수원시는 2021년부터 무인악취측정기를 설치·운영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했다. 또 40회에 걸친 악취 오염도(기준 초과 9회) 검사, 개선권고(3회)·조치명령(1회)·개선명령(2회) 등 행정처분 6차례, 고발(악취저감조치 미이행) 등이 종합선물세트처럼 뒤따랐다.
이렇듯 압박이 계속되고 나서야 겨우 해결이 실마리가 풀린 상황이다. 지역민들의 숙원사업이 돼버린 동원F&B 수원공장 폐수처리장 악취 개선 설비는 지난 3월 말이 돼서야 정상 가동을 알렸다.
악취를 뿜어낸 당사자였던 동원F&B 측은 악취 개선 공사비로 67억원을 들였다며 공을 내세웠다. 산과 알칼리를 이용한 화학반응과 물리적인 흡수법을 이용해 악취를 제거하는 기본 방식에 오존수가 강력한 산화력으로 잔류 악취물질의 분자구조를 파괴하는 공법을 도입해 악취가 외부로 새어 나오는 것을 막는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거금을 들여 처리 공정을 만들었으니 이젠 악취가 없을 거란 말을 굳이 어렵게도 풀어냈다.
눈여겨볼 부분은 기자가 동원F&B 수원공장 인근을 둘러본 게 지난달 중순 무렵이라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공사가 완료되면 악취는 100% 제거될 것”이라던 동원F&B 관계자의 자신감 가득한 언급과는 달리, 개선공사가 사실상 완료된 지 50일 가까이 지나도록 악취가 해소되지 않았음을 뜻한다.
가는 날이 장날
그렇다면 ‘가는 날이 장날’이었던 걸까? 동원F&B 측은 기자가 방문했던 시기가 생각지 못하게 절묘한 타이밍이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지금껏 악취가 전혀 없었지만, 유독 기자가 방문한 주간에만 예외적인 환경이었다는 것이다.
동원F&B 관계자는 “수원공장 폐수처리장 악취 개선 설비는 지난 3월 말부터 일부 도색 등 몇 가지 부분을 제외하면 정상 가동 중”이라며 “단, 방문했던 그 주간에만 마침 소소하게 처리할 부분이 있었고, 부득이하게 악취가 새 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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