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파만파’ 민주당 전대 돈봉투 파문

송영길 이대로 끌려가나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악재에 악재가 또 겹쳤다. 잇따른 악재에 곤욕을 치르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에 이번엔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이 터져나왔다. 한 언론 매체 보도에 따르면, 2021년 전당대회 당시 민주당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이 송영길 전 대표의 당선을 위해 수십명의 의원들에게 돈봉투를 뿌렸다.

더불어민주당 이정근 전 사무총장이 2021년 전당대회서 송영길 전 대표의 당 대표 당선을 위해 건넨 돈봉투가 최종 표결에까지 영향을 미쳤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당시 약세 후보였던 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의 당선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던 것은 사실이다. 

당시 전당대회를 기억하는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친문(친 문재인)계의 지지를 받았던 홍영표 의원과 원내대표를 지냈던 우원식 의원, 그리고 송 전 대표 간의 3파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녹취록 
들어보니…

이 관계자는 “친문 세력과 비문(비 문재인) 세력의 대립 구도서 송 전 대표는 다소 생뚱맞게 ‘중도 후보’를 자처하고 나섰고, 우여곡절 끝에 당선됐다. 처음엔 의아했지만, 당원들이 ‘당내 화합’에 지지를 보내준 것인 줄만 알았다”고 주장했다.

이때 치러진 전당대회로 뽑히는 대표는 20대 대선과 제8회 지방선거를 치러야 하는 막대한 임무를 떠안아야 했다. 어깨가 무거운 자리였던 만큼 눈독을 들이던 인사도 많았다. 다음 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지방선거 공천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각 계파에서는 놓칠 수 없는 자리라고 인식했고, 각자 본인이 지지하는 후보를 선거에 밀어 넣었다. 이 중에서 눈에 띄었던 후보는 홍영표 의원이다. 홍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다고 알려진 친문계의 좌장 역할을 해오던 인물로 당시 당선 가능성이 매우 높은 후보로 점쳐지고 있었다. 

홍 의원은 이전 전당대회서부터 당 대표가 되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바 있으나 당시 이낙연 전 총리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차기 당권을 노리고 있던 참이었다. 그는 개혁국민정당 출신으로 친문 정치인들과 더러 인연을 쌓아왔고, 2012년 당시 조심스러웠던 분위기 속에서 안철수 의원을 공개 저격하며 대표 친문계로 자리매김했다. 

원내대표 시절 공수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법을 통과시켜 당내 의원들로부터 리더십을 인정받기도 했다. 당시 정계 전문가들은 친문계의 조직력을 바탕으로 홍 의원이 선거전을 잘 치룬다면 대표에 당선될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송 전 대표는 막강한 인지도를 바탕으로 선거전에 참여했다. 그는 인천시장을 역임한 경력이 있었고, 그 이전에 두 차례나 당권에 도전했던 적도 있었던 만큼 동정표도 존재했다. 또 당시 개혁을 강력하게 요구하던 당원들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점도 매력적으로 인식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람으로 차기 대선이 힘들다고 판단한 민주당원들은 새로운 인물을 내세워 당의 혁신을 요구한 바 있다. 그렇다고 강한 비문 노선을 띤 인물은 경계했다.

문 전 대통령의 개인 지지율은 임기 마지막까지도 높게 나왔기 때문이다. 당원들은 문 전 대통령과 지나치게 반기를 들지도, 또 그의 정치적 메시지를 그대로 수용하지도 않을 인물을 찾고 있었다.

그 틈을 송 전 대표가 파고든 것이다. 송 전 대표는 당초 친노(친 노무현)계에 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인물이었으나 분당 사태 당시 문 전 대통령과 힘을 합쳐 민주당을 끝까지 이끈 공적을 인정받았다. 그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에도 정부와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며 의원들에게 범친문계로 인식돼왔고, 이때 여러 계파로부터 신임을 얻기도 했다.


2021년 당선된 송 전 대표, 어떻게 이겼나?
대의원 영향력 약세였는데…돈발로 역전승?

다만 그의 리더십에 대한 의구심은 당원들 마음속 깊이 자리했다. 인천광역시장을 역임한 이력이 있지만, 송 전 대표는 중앙정치서 의원들을 이끈 경험이 전무했던 탓이다. 그가 꾸준히 ‘유력한 당 대표 후보’라고 평가받았음에도, 당원들이 단 한 번도 그를 대표로 뽑아주지 않았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우 의원은 민평련계로 오랫동안 손학규계 정치인으로 인식돼온 인물이다. 2016년까지도 손학규 전 대표의 측근으로 알려진 그는 비문계의 대표 주자로 당시 전당대회를 뛰어들었다. 당원들이 원하던 ‘개혁’을 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했고, 원내대표 경험을 바탕으로 당원들에게 리더십을 인정받기도 했다.

친문의 홍영표, 비문의 우원식, 중도의 송영길의 싸움은 매우 치열했다. 제21대 국회의원선거서 압승을 기록한 민주당은 180석의 슈퍼 여당이 돼있었고, 이때 뽑힌 신임 대표에게는 슈퍼 여당의 대통령 후보와 지방선거 공천권 등이 걸려 있었다. 향후 당내 권력, 더 나아가 차기 정부에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자리였던 것이다. 

당시 전당대회에서는 권리당원들의 의견이 40% 반영됐다. 민주당 권리당원들은 특히 당내 정보에 관심이 많고 적극적으로 현안을 해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매달 당비를 내는 그들은 그동안 정부와 민주당의 주요 정책을 좌지우지해왔으며 전당대회서도 막강한 화력을 자랑해왔다.

몇몇 전당대회서 대의원 투표를 이긴 후보가 권리당원 투표로 뒤집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실제로 2020년 전당대회 대의원 투표서 미미한 표를 얻었던 김종민 의원은 권리당원 투표서 압도적 1위를 차지해 전체 1위로 최고위원에 당선된 바 있다. 

2021년 전당대회 역시 권리당원을 얼마나 본인 쪽으로 끌고 오느냐의 싸움이었다. 당시 권리당원은 안철수계가 탈당한 뒤 당에 들어온 이들이 주를 이뤘다. 즉, 적극적인 ‘친문 강성 당원’들이었던 셈이다. 권리당원들이 친문 성향이 강했던 터라 당시 송 전 대표는 사태를 반전시킬 무언가가 반드시 필요했다.

송 전 대표는 방송 토론회에 출연해 “두 분 원내대표가 잘했으면 민주당이 이렇게 (2021년 재보궐선거서)참패했겠는가”며 “원내대표를 해보신 두 분이 아닌 당 지도부를 해보지 않은 제가 해야 쇄신의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두 후보를 압박했다.

분위기 
뒤숭숭

‘무계파 약점’을 오히려 강점으로 들고나와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이 메시지는 쇄신을 바라고 있었던 당내 권리당원들에게 큰 울림을 줬고, 송 전 대표는 반전의 계기를 맞게 됐다.

점차 당내 이미지가 좋아지더니 홍 의원의 지지율을 따라잡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선거 당일이 찾아왔고, 상승세를 타던 송 전 대표는 홍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최종 득표율에서 송 전 대표는 35.60%를 받았고, 홍 의원은 35.01%를 받았다. 두 사람간의 격차는 약 0.60%p 었으며 우 의원 역시 29.38%를 받아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이는 민주당 출범 이래 가장 낮은 1위 득표율이자, 가장 높은 3위 득표율이었다. 그만큼 경선이 치열했다는 사실을 방증한 셈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전당대회서 많은 사람들은 송 전 대표가 드라마를 써내려간 줄 알았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돈봉투 사태는 그런 송 전 대표의 역전 드라마가 비리의 의한 것이라는 의혹을 보내고 있다. 당시 송 전 후보 캠프서 일했던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이 돈봉투를 의원들에게 뿌려 송 전 대표의 당선을 도왔다는 주장이 터져나온 것이다.

즉, 권리당원들과 대의원들이 송 전 대표의 메시지를 받고 울림을 얻은 것이 아니라, 이 전 부총장이 건넨 돈봉투를 받고 울림을 얻었다는 것이다.

송 전 대표는 권리당원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다가갔지만, 당내 세력이 다른 후보들보다 약하다고 평가받고 있던 참이었다. 당시 45%의 득표권을 갖고 있었던 대의원들 중 송 전 대표 세력은 거의 없었다는 게 당시 민주당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당시 전당대회에 참여했던 한 의원실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이번 돈봉투 사건은 대의원표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생각된다”며 “대의원 표는 현역 국회의원들의 통제가 가능한 범위에 있다. 다시 말해, 현역 의원들을 세력 안으로 끌어들이면 전당대회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것이다. (송 전 대표 측이)돈봉투를 현역 의원들, 대의원들에게 전달해 전당대회서 반전을 꾀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약세에도…
결과 영향?

민주당 대의원들은 최소 5명 이상의 권리당원 추천을 받아 2년에 한 번씩 선발된다. 지역위원회서 서류를 받아 신청을 받고 지역위원회와 중앙당서 소정의 심사를 거친 후 뽑히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는 각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며 정치에 뜻이 있는 대의원들은 의원들의 말 한마디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이 전 부총장이 살포했다고 알려진 돈봉투는 적게는 50만원에서 많게는 300만인 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내에선 금액이 다소 적은 점을 들어, 국회의원이 통솔하는 대의원들에게 쓰였을 가능성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 

한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매달 세후 1000만원 이상 받고 있는 현역 국회의원들이 해당(최대 300만원) 금액에 본인의 정치적 소신을 바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금액의 규모를 보아 하니) 전당대회에 이래저래 참석한 대의원들에게 밥이나 거마비 정도로 쓰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의원실은)실제 받아보지는 못했으나 이 돈봉투가 돌고 있다는 소문은 당시 들어본 것 같다”고 주장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전당대회서 이 같은 성격의 돈봉투는 그동안 ‘관행처럼’ 계속 돌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돈봉투 의혹이’ 이번에 한 번 걸려 들어온 것일뿐 갑자기 생겨난 문화가 아니라는 점을 꼬집었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송 전 대표 입장에서는 진짜 황당하고 억울할 것 같다”며 “지난 수십년 간 돈봉투를 돌리는 문화는 계속 행해져온 것으로 안다. ‘다들 그랬는데 왜 나만 잡냐’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선거가 한쪽으로 급격히 쏠려있는 판세에서는 돈봉투가 조금 적게 기승을 부렸겠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2021년 전당대회는 1, 2, 3위 후보의 격차가 매우 적었다. 이 떄문에 돈봉투 살포가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부연했다.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을 최초 보도한 기자 주장에 따르면, 이 전 부총장은 본인의 통화를 모두 녹음해 핸드폰에 저장했는데 그의 휴대폰서 나온 통화 녹음만 3만건에 달한다.

“억울한 것 알지만…”오래된 관행 증언
‘불똥 튈라’ 이 대표 측 꼬리자르기 결심

폭로된 통화 내용에 따르면 이 전 부총장은 강래구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과 윤관석 의원 등과의 전화 통화서 돈봉투를 어디서 누구에게 줄지를 긴밀히 상의했고, 이 과정서 송 전 대표의 이름도 수차례 거론됐다. 

치열했던 선거, 송 전 대표의 당선, 관련자들의 통화. 3년 전에 벌어졌던 이 3개의 칼날은 현재 송 전 대표의 정치적 생명을 위협하는 흉기가 되어 돌아왔다. 여기에 돈봉투를 송 전 대표가 직접 의원들에게 전달했다는 의혹과 돈봉투 스폰서의 자녀가 이재명 대표의 선거캠프서 일했다는 의혹까지 더해지고 있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파리 정치대학원에서 특강 등을 이어가고 있던 송 전 대표는 돈봉투 살포 의혹이 터져나온 뒤 지난 24일, 귀국했다. 국민의힘은 송 전 대표가 하루빨리 사건 진상을 밝히고 책임이 있으면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주장하는 책임질 사람에는 이재명 대표도 포함된다.

지난 20일 국민의힘 최고회의서 김기현 대표는 “(이재명 대표와 송영길 전 대표가)30분간 전화 통화를 했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슨 대화를 하신 겁니까? 서로 말 맞춰서 진실을 은폐하기로 모의라도 한 것이냐?”며 비판 수위를 높였다.

이날 장예장 청년 최고위원은 “저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청년들을 대표해 이 돈봉투를 찢어버리겠다”며 본인이 직접 준비한 돈봉투를 꺼내 들어 찢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는 “돈봉투나 돌리는 민주당의 86운동권은 그만 정치서 퇴장하라”고 요구했다.

다만 민주당 내부 분위기는 아직 송 전 대표를 감싸는 쪽으로 쏠려 있다. 그동안 전당대회서 오랜 관례로 자리 잡아온 돈봉투 건을 그에게만 문제삼아서 되겠냐는 동정 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우상호 의원은 한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서 “전혀 큰 문제가 아니고 이슈거리도 아니다”라며 “해당 논란이 이번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이나 내부 분위기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여당이나 언론서 침소봉대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친명(친 이재명)계 의원실 관계자는 이 문제가 지속된다면 이 대표 입장에서는 계속 난처한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송 전 대표 입장도 난처하겠지만, 제일 큰일난 것은 이 대표 쪽”이라며 “이 대표와 송 전 대표의 연결고리까지 의심받고 있는 만큼 사안을 계속 끌면 끌수록 칼날은 결국 이 대표에게까지 향하게 된다. 최근에 터져나온 스폰서 자녀 취업 문제도 현상 중 하나”라고 우려했다.

자르기?
버티기?

이어 “이 대표 쪽도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송 전 대표를 잘라내려 한다고 들었다. 송 전 대표가 대통령 후보로 이 대표 쪽을 이끌어준 것도, 여의도 정치에 영향력이 적었던 그를 도와준 것도 송 전 대표지만, 이번 사건이 크게 문제된 만큼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고, 그것을 송 전 대표에게 떠밀려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심-송심이라고 불렸던 둘의 관계는 돈봉투 살포 의혹으로 산산조각 날 위기에 처해있다. 최근 이 전 부총장 측 정철승 변호사는 “민주당이 이 전 부총장을 손절하려는 태도에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과연 이번 사건으로 송 전 대표가 이 대표에게 배신감마저 들게 될지 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다. 꼬리를 자르려하는 친명계 쪽과, 어떻게든 붙어있으려는 송 전 대표 사이의 수싸움이 이제 막 시작하려 한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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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