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BBQ 밑줄 쫙’ BHC 음해작전 전말

국회에 뿌린 라이벌 비방 문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국정감사는 ‘정기국회의 꽃’으로 불리는 대형 정치 이벤트다. 매년 하반기마다 진행되는 국감은 국회의원들에게는 무대로, 몇몇 사람들에게는 무덤으로 여겨진다. 기업 입장에서는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는 시기이기도 하다. ‘총성 없는 전쟁터’인 국감서 한 기업이 경쟁사 수장을 국감장에 세우기 위해 일종의 ‘공작’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우리나라 헌법 61조에는 ‘국회는 국정을 감사하거나 특정한 국정사안에 대해 조사할 수 있으며 이에 필요한 서류의 제출 또는 증인의 출석과 증언이나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의원에게 주어진 가장 강력한 권한 중 하나로 국감 기간 동안 피감기관은 말 그대로 ‘죽어난다’는 농담 같은 진실이 떠돈다. 

10년째
치킨전쟁

프랜차이즈, 특히 치킨업계는 국감 시기마다 언급되는 이른바 ‘단골손님’이다. ‘치킨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닭 소비량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치킨 관련 이슈는 화제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교촌, bhc, 제너시스BBQ 등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 3대장은 국감 때마다 골머리를 앓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국감도 마찬가지였다. 고물가 시대에 치킨 가격도 크게 오르면서 불매운동의 움직임이 포착될 정도로 소비자들의 불만이 높아졌다. 프랜차이즈 업계의 숙명인 본사와 가맹점 사이의 논란에 대해서도 질문이 쏟아졌다.

‘상생’이 사회적 키워드로 활발하게 논의되면서 ‘갑을’ 관계로 비치는 본사와 가맹점 간의 관계를 두고 질타가 나왔다.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 2~3위를 다투고 있는 bhc와 BBQ 역시 이 같은 공격을 피해가지 못했다. 지난해 국감에는 임금옥 bhc 대표와 정승욱 BBQ 대표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당시 양사 대표는 더불어민주당 김한규 의원으로부터 가맹점과 논란이 된 문제를 두고 집중 질의를 받았다.

두 대표가 가맹점과의 상생을 약속하면서 국감서 논의된 치킨 이슈는 마무리되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bhc가 BBQ를 공격하는 내용이 담긴 문서를 만들어 몇몇 의원실을 찾아다녔다는 의혹이 뒤늦게 제기됐다. 지난해 국감 시기(10월4~24일)를 전후해 박현종 bhc 회장, 윤홍근 BBQ 회장 등 치킨 프랜차이즈 수장을 증인으로 채택할지 여부가 관심사로 떠올랐던 때다.

<일요시사>는 ‘치킨 프랜차이즈 매출 분석 및 이익에 대한 분석 자료’라는 제목의 A4용지 한 장 분량의 문서를 단독으로 입수했다. 문서 첫머리에는 “#bhc 치킨 높은 영업이익의 know-how”라고 기재돼있다.

bhc 측은 ▲자체 물류와 주요 파우더, 소스 공장 등을 직접 보유로 내재화해 효율성 ▲경영혁신을 통한 전산 시스템 투자와 불필요한 비용 절감 판매관리비의 효율화 ▲특수관계인 운영회사나 자회사가 없는 단일한 독립적인 법인으로 운영 등을 언급했다. 

요청한 적 없는데 문서 들고 의원실 찾아
타사 문제점 제기 “이런 경우 처음 봤다”

여기에 bhc 측은 ▲주요 5대 치킨 프랜차이즈 매출 및 이익 분석 ▲주요 5대 치킨 프랜차이즈 판관비(판매비 및 관리비) 분석 등 번호를 매겨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 6곳(교촌·bhc·BBQ·굽네·푸라닭·네네)의 매출 등의 자료로 표를 만들었다. 지난해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2021년 각 기업의 감사보고서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표에는 6개 업체의 매출, 매출원가, 매출총이익, 판관비, 영업이익, 광고선전비, 판매촉진비, 접대비, 지급수수료, 연구개발비, 인건비 등의 수치가 담겼다. 타 업체와의 비교를 통해 bhc 영업이익을 분석하려는 시도로 파악된다.

영업이익은 매출총이익서 판관비를 차감한 이익이다. 기업의 영업활동, 즉 본업서 생기는 이익으로 회사의 장기적인 수익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실제 2021년 bhc의 영업이익은 1538억원(매출 대비 32%)으로 나머지 5개 업체를 압도했다. 교촌이 280억원(6%), BBQ가 608억원(17%), 굽네가 146억원(7%), 푸라닭이 151억원(9%), 네네가 89억원(19%)으로 나타났다. 치킨 3대장으로 좁혀도 bhc의 영업이익은 교촌과 비교해 최소 5배, BBQ와는 2.5배가량 높다. 

여기까지만 보면 bhc의 높은 영업이익에 대한 홍보자료처럼 비춰진다. 타 업체와 비교해 크게 높은 영업이익에 대한 일종의 해명이 담긴 문서처럼도 보인다. 하지만 눈길을 끄는 대목은 따로 있다. 문서 곳곳에 등장하는 BBQ에 대한 언급이다. 더 흥미로운 부분은 대부분의 언급이 부정적이라는 점이다. 

국감장에 
세우려고?

BBQ와 bhc는 ‘한 지붕 두 가족’ 사이서 철천지원수로 변한 관계다. 2014년부터 시작된 소송전은 ‘치킨전쟁’이라는 이름으로 1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업계 2~3위의 오래된 갈등은 이제 봉합도 어려울 만큼 골이 깊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bhc 측이 만든 문서 역시 그 갈등의 연장선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bhc가 BBQ를 공격하기 위해 문서를 만들었다는 것.

실제 문서에는 “정상적인 업계 평균 판관비를 BBQ에 반영하면 영업이익이 25%(894억) 즉, 판관비의 투명성에 의문점 시사” “가맹점 광고 분담금 86억, 판관비 중 업계 평균보다 높은 지급수수료 200억(제너시스 컨설팅 103억+업계 평균치 97억) 적용” 등 BBQ를 콕 집어 강조한 부분이 눈에 띈다. 

또 “BBQ-매출에 가맹점이 지출한 광고 분담금 86억으로 실제 가맹본부가 지출한 광고선전비는 35억으로 가장 작은 비용 집행” “BBQ-매출규모가 1000억 이상 높은 bhc보다 4배 이상의 접대비를 사용” “BBQ-교촌이나 bhc보다 200억 정도 더 사용하며 이 금액은 제너시스라는 오너가의 회사로 수수료를 지급” “제너시스BBQ(지급 수수료) > 제너시스 = 영업이익 103억(제너시스의 경우 매출 대부분이 용역매출로 제너시스BBQ가 제너시스로 보내는 지급수수료는 경영자문 수수료로 추정”이라고 언급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매출의 규모가 높은 bhc와 교촌의 경우 10%대 판관비 사용을 유지하나, 성장성이 작은 BBQ 등의 경우 매출 대비 판관비를 20% 이상을 지출해 판관비 통제와 관리, 기업의 투명성에 의문점을 시사한다”고도 했다.

문서의 내용대로면 BBQ의 사업 능력이 bhc나 교촌에 비해 떨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BBQ 오너가에서 부당한 방법으로 이익을 취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될법하다.

타업체 비해
유독 강조해


BBQ 측은 문서의 존재와 내용에 크게 반발했다. BBQ 관계자는 “bhc서 경쟁사(BBQ)를 음해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며 “내용도 마치 BBQ가 불법행위를 하고 있는 것처럼 교묘하고 악의적으로 적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가공의 문서로 이슈를 만들어 국감서 언급되게 하고 BBQ 경영진을 증인으로 세우기 위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어 “세 회사(교촌·bhc·BBQ)는 사업구조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감사보고서에 나온 수치만으로는 비교가 어렵다”며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를 제대로 줄 세우려면 가맹점의 수익을 비교해야 하는데 감사보고서에는 그런 부분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영업이익이나 당기순이익 등으로 비교하기엔 그 이면에 복잡한 부분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실제 교촌은 본사와 지역본부로 나뉘어 운영된다. 회계장부 역시 분리돼있기 때문에 가맹점만의 수익을 알 수가 없다. bhc 측이 만든 문서에도 “교촌 등의 브랜드는 가맹본부-가맹점의 직접 거래가 아닌 가맹본부-지사-가맹점으로 한 단계 추가돼 거래하는 형태 때문에 지사와 가맹점과의 매출총이익은 알 수 없다”고 명시했다.

bhc는 물류사업 부문과 생산공장사업 부문, 그리고 가맹 부문이 감사보고서에 포함돼있다. BBQ의 경우 가맹·직영·유통사업 부문만 운영돼 일원화돼있는 구조다. 다시 말해 각 업체의 영업이익이 동일한 구조에서 산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과정서 파생된 투명성 문제 등은 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bhc 측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방식의 해석으로 BBQ를 몰아가고 있다는 주장이다.

bhc 측에서 제기한 제너시스BBQ로 가는 지급수수료 200억원의 불투명성에 대해서는 더 강하게 언급했다.


BBQ 관계자는 “BBQ를 비롯한 계열 브랜드는 영업본부·운영본부·마케팅실·운영지원팀 등 가맹사업의 현장업무를 위주로 편성돼있다. 각 계열 브랜드의 경영지원 부문은 제너시스에 편제돼있는 인사전략실, 재무전략실, 구매전략실 등에서 담당한다”고 설명했다.

감사보고서 토대로 제멋대로 분석
BBQ 측 “악의적이고 교묘한 해석”

현장경영은 각 브랜드에서 전담하고 경영지원 업무는 제너시스에서 일원화해 지원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BBQ와 제너시스는 경영관리 지원에 대한 용역계약이 체결돼있다. 제너시스BBQ그룹 전체 계열사가 동일한 구조”라며 “브랜드마다 경영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를 따로 둘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중복 비용을 없애기 위해 이 같은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bhc 측은 지급수수료가 오너가로 흘러 들어가는 ‘검은 돈’처럼 말했지만 용역계약을 통해 정당하게 지급하는 비용이라는 설명이다. 

BBQ 측은 “bhc는 한때 BBQ와 같은 회사였기 때문에 사업구조에 대해 잘 안다. 그런데도 이런 내용의 문서를 만들어 의원실을 찾아 다녔다는 건 나쁜 의도가 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박현종 회장이 기소되고 국감에 불려가는 일이 반복되니까 이걸 무마하기 위해 우리 쪽에 대한 부정적인 이슈를 퍼트려 (윤홍근)회장님을 국감장에 (증인으로)세우려 했던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복수의 의원실서 bhc 측이 작성한 문서를 받아본 것으로 확인됐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해 치킨 이슈가 워낙 컸기 때문에 bhc뿐만 아니라 교촌, BBQ 등에 관련 자료를 요구했다. 그때 (bhc가)가져온 자료”라고 설명했다. 의원실서 국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요청한 자료였다는 것. 

다른 의원실 관계자는 “자료를 요청한 적이 없는데 bhc 측에서 먼저 (문서를)가지고 찾아와 BBQ의 문제점에 대해 말했다”며 “BBQ 측이 이와 관련해 나름의 설명을 했고 대응 논리가 있었다. bhc나 BBQ나 모두 경쟁사에 대해 언급했지만 BBQ와 달리 bhc는 문서를 만들어왔다. 이런 경우는 처음 봤다”고 말했다.

불리한 이슈
덮으려고?

bhc 관계자는 “문서를 보지 못해 bhc서 만들었다고 확답할 순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만일 공시 내용을 토대로 문서를 만들었다면 의원실의 요청에 따라 했을 것이다. 의원실서 경쟁업체와의 비교를 요구한 부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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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