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무원’ 윤정부 무너진 외교라인 막전막후

사라진 외교 수장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윤석열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이 시험대에 올랐다. 한일, 한미 등 정상외교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던 상황에 제동이 걸리는 모양새다. 일단 외교라인 곳곳에서 들려오던 잡음이 현실화됐다.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하던 수장이 ‘자진 사퇴’ 형식으로 물러났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외교가가 술렁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문재인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실패’로 규정했다. 문정부가 지향했던 ‘미중 균형 외교’를 ‘한‧미‧일 공조 강화’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을 드러냈다. 문정부서 약화됐던 한미동맹 회복을 최우선 현안으로 잡고 일본과의 관계도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한미·한일
드라이브

지난달 9일 윤 대통령은 당선 1주년을 맞았다. 윤석열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은 ‘자유 가치연대’ ‘세일즈 외교’ 등으로 요약된다. 한미동맹을 확대, 강화하고 한일관계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잡았다. 스스로를 ‘1호 영입사원’이라고 자청하며 외연 확장에 공들인 점도 눈에 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열흘 만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한국서 한미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짧은 취임 기간 안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이었다. 지난해 6월에는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도 바이든 대통령과 별도로 만남을 가졌다. 

이어 지난해 11월에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관련 정상회의서 바이든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양자회담, 3자회담을 연이어 진행했다. 당시 한‧미‧일 3국 정상은 ‘프놈펜 성명’을 채택해 공고한 연대를 드러냈다. 프놈펜 성명에는 미국의 대북 억제력 강화, 경제안보대화체 가동 등의 내용이 담겼다.


윤 대통령은 한미동맹 강화만큼이나 한일관계 회복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문정부 들어 한일관계는 ‘단절’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으로 치달았다. 윤 대통령은 잔뜩 꼬인 한일관계를 풀겠다는 의지를 지난해 광복절 축사, 올해 3·1절 기념사 등에 담았다. 

‘일본은 세계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하는 이웃’(광복절 축사)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안보와 경제,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됐다’(3‧1절 기념사) 등의 내용은 ‘굴욕적’이라는 야당의 비판을 받았지만 윤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집권 2년 차 들어 윤 대통령은 ‘한‧미‧일 공조 강화’라는 외교안보 정책 방향을 더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점차 수위를 높이고 있는 북한의 도발에 한미일 공조로 대응하려는 모양새다. 실제 북한은 연일 미사일을 쏘고 핵어뢰를 개발했다고 주장 중이다.

교체설 불거졌다 자진 사퇴
1시간 만에 후임 인사 지명

전술핵탄두 ‘화산-31’ 사진을 공개하는 등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다. 7차 핵실험 가능성도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외교안보 정책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기 위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 진행된 한일정상회담은 그 후폭풍이 여전히 이어지는 중이다. 이달 말에는 한미정상회담, 5월에는 일본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과 한미일 정상회담 일정이 잡혀 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외교안보 정책 구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산적해 있는 현안과 외교 일정을 소화해야 할 외교라인이 삐걱거리고 있다. 처음에는 멀리서 들리던 잡음이 점차 커지더니 현실로 나타났다. 외교라인에서 하나둘 구멍이 생기다가 어느 새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하는 수장까지 자리에서 물러났다.

한미 정상회담을 한달여 앞둔 상황에서 급작스럽게 외교라인의 교체가 진행된 것이다.

지난달 29일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전격 사퇴했다. 한 차례 교체설이 불거졌다가 가라앉은 시점에서 일어난 일이라 뒷말이 무성하게 번지고 있다. 김 전 실장은 이날 오후 본인 명의 언론 공지를 통해 “오늘부로 국가안보실장직에서 물러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1년 전 대통령님으로부터 보직을 제안받았을 때 한미동맹을 복원하고 한일관계를 개선하며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한 후 다시 학교로 돌아가겠다고 말씀 드린 바 있다”고 말했다. 

북한 도발
한미일 공조

그러면서 “그런 여건이 어느 정도 충족됐다고 생각한다”며 “미국 국빈 방문 준비도 잘 진행되고 있어 새로운 후임자가 오더라도 차질 없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본다. 저로 인한 논란이 더 이상 외교와 국정운영에 부담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김 전 실장의 사퇴는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김일범 의전비서관과 이문희 외교비서관이 교체된 뒤 김 전 실장까지 물러나면서 외교라인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는 의구심이 가득하다. 김 전 의전비서관은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윤 대통령에게 사표를 제출했다. 일신상의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과 관련한 실책으로 사실상 경질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대통령실 관계자는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외무고시 33회로 공직에 입문한 김 전 비서관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당선인 보좌역으로 합류해 대통령실에서 첫 의전비서관을 맡았다. 

지난달 27일에는 이문희 외교비서관이 교체된 사실이 알려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해당 비서관은 1년 동안 맡은 임무를 다했고 굉장히 격무했다. 그래서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것”이라고 교체 사실을 확인했다. 이 전 비서관은 외무고시 30회로 윤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5월부터 외교비서관을 맡아 일했다. 

윤 대통령의 첫 일본 방문에 동행했고 한일 확대정상회담에 배석했다. 이 전 비서관의 교체를 두고도 문책설이 제기됐으나 대통령실은 일축한 바 있다. 그러던 중 김 전 실장까지 자진 사퇴 형식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것.

특히 김 전 실장의 사퇴는 언론 보도를 통해 교체설이 불거지고 대통령실이 이를 부인한 뒤에 진행돼 더 많은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경질이냐
갈등이냐


대통령실 관계자는 “안보실장 교체를 검토한 바는 없었다. 그러나 김 실장이 외교와 국정운영에 부담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여러 차례 피력했고 대통령도 만류한 걸로 아는데 본인이 거듭 이 같은 바람을 피력해 고심 끝에 수용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윤석열정부 최대 이벤트로 꼽히는 한미 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외교라인의 교체는 뜻밖이라는 반응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김 전 실장이 자진 사퇴 형식으로 나갔지만 실제로는 경질된 것이라는 의혹이 나온다. 한미 정상회담 조율 과정에서 중대한 실책을 범했다는 이유다. 특히 그 배경으로 걸그룹 블랙핑크가 언급돼 눈길을 끈다. 

방미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블랙핑크와 미국 가수 레이디 가가의 합동 공연을 제안하는 서신을 여러 차례 보냈는데, 우리 외교라인에서 확답을 하지 않고 윤 대통령에게 보고도 하지 않은 점이 문제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배경이 석연치 않다는 목소리도 있다. 문화행사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부분이 정상회담을 한 달 앞둔 상황에서 외교라인 수장을 교체할만한 이유로 적합한지를 두고 의문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언론에 공개하기 어려운 외교적 실책이 있는데 이를 밝히지 않기 위해 블랙핑크를 앞세우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김 전 실장과 김태효 안보실 1차장과의 갈등설도 부각됐다. 한미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두 사람의 의견 교환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말이 나온다. 김 전 실장과 김 차장과의 갈등을 두고는 정치권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국민의힘 이철규 사무총장은 지난달 30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그것은 아니다”라고 갈등설에 관해 언급했다. 


한미 정상회담 한달 앞두고
비서관 2명까지 3명 갈렸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은 “(알력설이)정설이라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 의원은 지난달 30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정통파 외교관이 지금 다 그만둔 것”이라며 “저런 경우는 보통 갈등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 정통 외교관 출신이 일제히 그만두고 있고 비외교관 라인은 그대로 건재하지 않나. 그러면 정통 외교관 라인이 비외교관 라인에 졌다고 봐야 된다”고 부연했다. 사퇴 배경으로 거론되는 블랙핑크‧레이디 가가 초청 행사 보고 누락에 대해서는 “그것 때문에 한 나라의 안보실장을 교체했다면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된다”고 밝혔다. 

한일 정상회담 후폭풍이 외교라인 교체로 이어졌다는 말도 있다. 한일 정상회담 이후 긍정적인 반응보다는 부정적인 반응이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의 3월4주(지난달 21~23일) 조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 직무와 관련해 긍정과 부정평가 이유로 모두 일본‧외교 관계 언급이 크게 늘었다.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제3자 변제안 발표(지난달 6일), 한일 정상회담(지난달 16~17일)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이 과정에서 외교라인이 한일 정상회담의 성과를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는 의견이 있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김 전 실장의 후임으로 조태용 주미대사를 지명했다. 조태용 신임 국가안보실장은 대미·북핵 문제에 정통한 외교관 출신으로 2020년 미래한국당 비례대표로 21대 국회의원을 지내다 윤정부 초대 주미대사를 맡았다. 대통령실은 주미대사 후임자를 신속히 선정해 미국 백악관에 아그레망(타국의 외교사절을 승인하는 일)을 요청하겠다는 입장이다. 

신임 실장
봉합 단계?

조 신임 실장은 “중차대한 시기인데 안보실장이란 자리를 맡게 돼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11개월 동안 윤정부의 국정 목표인 ‘글로벌 중추 국가’ 건설을 위해 주춧돌을 잘 놨다고 생각한다”며 “그 주춧돌 위에 좋은 내용으로 집을 지어 윤정부의 국정 목표를 완성할 수 있도록 보답하는 게 임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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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