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무원’ 윤정부 무너진 외교라인 막전막후

사라진 외교 수장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윤석열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이 시험대에 올랐다. 한일, 한미 등 정상외교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던 상황에 제동이 걸리는 모양새다. 일단 외교라인 곳곳에서 들려오던 잡음이 현실화됐다.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하던 수장이 ‘자진 사퇴’ 형식으로 물러났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외교가가 술렁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문재인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실패’로 규정했다. 문정부가 지향했던 ‘미중 균형 외교’를 ‘한‧미‧일 공조 강화’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을 드러냈다. 문정부서 약화됐던 한미동맹 회복을 최우선 현안으로 잡고 일본과의 관계도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한미·한일
드라이브

지난달 9일 윤 대통령은 당선 1주년을 맞았다. 윤석열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은 ‘자유 가치연대’ ‘세일즈 외교’ 등으로 요약된다. 한미동맹을 확대, 강화하고 한일관계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잡았다. 스스로를 ‘1호 영입사원’이라고 자청하며 외연 확장에 공들인 점도 눈에 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열흘 만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한국서 한미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짧은 취임 기간 안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이었다. 지난해 6월에는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도 바이든 대통령과 별도로 만남을 가졌다. 

이어 지난해 11월에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관련 정상회의서 바이든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양자회담, 3자회담을 연이어 진행했다. 당시 한‧미‧일 3국 정상은 ‘프놈펜 성명’을 채택해 공고한 연대를 드러냈다. 프놈펜 성명에는 미국의 대북 억제력 강화, 경제안보대화체 가동 등의 내용이 담겼다.


윤 대통령은 한미동맹 강화만큼이나 한일관계 회복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문정부 들어 한일관계는 ‘단절’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으로 치달았다. 윤 대통령은 잔뜩 꼬인 한일관계를 풀겠다는 의지를 지난해 광복절 축사, 올해 3·1절 기념사 등에 담았다. 

‘일본은 세계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하는 이웃’(광복절 축사)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안보와 경제,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됐다’(3‧1절 기념사) 등의 내용은 ‘굴욕적’이라는 야당의 비판을 받았지만 윤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집권 2년 차 들어 윤 대통령은 ‘한‧미‧일 공조 강화’라는 외교안보 정책 방향을 더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점차 수위를 높이고 있는 북한의 도발에 한미일 공조로 대응하려는 모양새다. 실제 북한은 연일 미사일을 쏘고 핵어뢰를 개발했다고 주장 중이다.

교체설 불거졌다 자진 사퇴
1시간 만에 후임 인사 지명

전술핵탄두 ‘화산-31’ 사진을 공개하는 등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다. 7차 핵실험 가능성도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외교안보 정책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기 위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 진행된 한일정상회담은 그 후폭풍이 여전히 이어지는 중이다. 이달 말에는 한미정상회담, 5월에는 일본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과 한미일 정상회담 일정이 잡혀 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외교안보 정책 구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산적해 있는 현안과 외교 일정을 소화해야 할 외교라인이 삐걱거리고 있다. 처음에는 멀리서 들리던 잡음이 점차 커지더니 현실로 나타났다. 외교라인에서 하나둘 구멍이 생기다가 어느 새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하는 수장까지 자리에서 물러났다.

한미 정상회담을 한달여 앞둔 상황에서 급작스럽게 외교라인의 교체가 진행된 것이다.

지난달 29일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전격 사퇴했다. 한 차례 교체설이 불거졌다가 가라앉은 시점에서 일어난 일이라 뒷말이 무성하게 번지고 있다. 김 전 실장은 이날 오후 본인 명의 언론 공지를 통해 “오늘부로 국가안보실장직에서 물러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1년 전 대통령님으로부터 보직을 제안받았을 때 한미동맹을 복원하고 한일관계를 개선하며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한 후 다시 학교로 돌아가겠다고 말씀 드린 바 있다”고 말했다. 

북한 도발
한미일 공조

그러면서 “그런 여건이 어느 정도 충족됐다고 생각한다”며 “미국 국빈 방문 준비도 잘 진행되고 있어 새로운 후임자가 오더라도 차질 없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본다. 저로 인한 논란이 더 이상 외교와 국정운영에 부담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김 전 실장의 사퇴는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김일범 의전비서관과 이문희 외교비서관이 교체된 뒤 김 전 실장까지 물러나면서 외교라인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는 의구심이 가득하다. 김 전 의전비서관은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윤 대통령에게 사표를 제출했다. 일신상의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과 관련한 실책으로 사실상 경질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대통령실 관계자는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외무고시 33회로 공직에 입문한 김 전 비서관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당선인 보좌역으로 합류해 대통령실에서 첫 의전비서관을 맡았다. 

지난달 27일에는 이문희 외교비서관이 교체된 사실이 알려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해당 비서관은 1년 동안 맡은 임무를 다했고 굉장히 격무했다. 그래서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것”이라고 교체 사실을 확인했다. 이 전 비서관은 외무고시 30회로 윤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5월부터 외교비서관을 맡아 일했다. 

윤 대통령의 첫 일본 방문에 동행했고 한일 확대정상회담에 배석했다. 이 전 비서관의 교체를 두고도 문책설이 제기됐으나 대통령실은 일축한 바 있다. 그러던 중 김 전 실장까지 자진 사퇴 형식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것.

특히 김 전 실장의 사퇴는 언론 보도를 통해 교체설이 불거지고 대통령실이 이를 부인한 뒤에 진행돼 더 많은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경질이냐
갈등이냐


대통령실 관계자는 “안보실장 교체를 검토한 바는 없었다. 그러나 김 실장이 외교와 국정운영에 부담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여러 차례 피력했고 대통령도 만류한 걸로 아는데 본인이 거듭 이 같은 바람을 피력해 고심 끝에 수용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윤석열정부 최대 이벤트로 꼽히는 한미 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외교라인의 교체는 뜻밖이라는 반응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김 전 실장이 자진 사퇴 형식으로 나갔지만 실제로는 경질된 것이라는 의혹이 나온다. 한미 정상회담 조율 과정에서 중대한 실책을 범했다는 이유다. 특히 그 배경으로 걸그룹 블랙핑크가 언급돼 눈길을 끈다. 

방미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블랙핑크와 미국 가수 레이디 가가의 합동 공연을 제안하는 서신을 여러 차례 보냈는데, 우리 외교라인에서 확답을 하지 않고 윤 대통령에게 보고도 하지 않은 점이 문제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배경이 석연치 않다는 목소리도 있다. 문화행사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부분이 정상회담을 한 달 앞둔 상황에서 외교라인 수장을 교체할만한 이유로 적합한지를 두고 의문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언론에 공개하기 어려운 외교적 실책이 있는데 이를 밝히지 않기 위해 블랙핑크를 앞세우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김 전 실장과 김태효 안보실 1차장과의 갈등설도 부각됐다. 한미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두 사람의 의견 교환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말이 나온다. 김 전 실장과 김 차장과의 갈등을 두고는 정치권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국민의힘 이철규 사무총장은 지난달 30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그것은 아니다”라고 갈등설에 관해 언급했다. 


한미 정상회담 한달 앞두고
비서관 2명까지 3명 갈렸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은 “(알력설이)정설이라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 의원은 지난달 30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정통파 외교관이 지금 다 그만둔 것”이라며 “저런 경우는 보통 갈등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 정통 외교관 출신이 일제히 그만두고 있고 비외교관 라인은 그대로 건재하지 않나. 그러면 정통 외교관 라인이 비외교관 라인에 졌다고 봐야 된다”고 부연했다. 사퇴 배경으로 거론되는 블랙핑크‧레이디 가가 초청 행사 보고 누락에 대해서는 “그것 때문에 한 나라의 안보실장을 교체했다면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된다”고 밝혔다. 

한일 정상회담 후폭풍이 외교라인 교체로 이어졌다는 말도 있다. 한일 정상회담 이후 긍정적인 반응보다는 부정적인 반응이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의 3월4주(지난달 21~23일) 조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 직무와 관련해 긍정과 부정평가 이유로 모두 일본‧외교 관계 언급이 크게 늘었다.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제3자 변제안 발표(지난달 6일), 한일 정상회담(지난달 16~17일)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이 과정에서 외교라인이 한일 정상회담의 성과를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는 의견이 있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김 전 실장의 후임으로 조태용 주미대사를 지명했다. 조태용 신임 국가안보실장은 대미·북핵 문제에 정통한 외교관 출신으로 2020년 미래한국당 비례대표로 21대 국회의원을 지내다 윤정부 초대 주미대사를 맡았다. 대통령실은 주미대사 후임자를 신속히 선정해 미국 백악관에 아그레망(타국의 외교사절을 승인하는 일)을 요청하겠다는 입장이다. 

신임 실장
봉합 단계?

조 신임 실장은 “중차대한 시기인데 안보실장이란 자리를 맡게 돼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11개월 동안 윤정부의 국정 목표인 ‘글로벌 중추 국가’ 건설을 위해 주춧돌을 잘 놨다고 생각한다”며 “그 주춧돌 위에 좋은 내용으로 집을 지어 윤정부의 국정 목표를 완성할 수 있도록 보답하는 게 임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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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