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검찰이 결국 쥐고 있던 꽃놀이패 중 하나를 법원으로 보내버렸다. 지난 22일 검찰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기소하면서 이 대표는 대장동·위례 개발사업 비리와 성남FC 후원금 의혹을 재판에서 직접 밝혀야 하는 신세가 됐다. 이로써 2021년 민주당 경선 과정부터 터져 나왔던 대장동 특혜 의혹은 1년6개월 만에 사법부에 넘어가게 됐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번 기소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이후로 두 번째다. 이 대표는 지난해 9월 초 헌정 사상 최초로 야당 대표 신분으로 검찰로부터 기소당했다. 앞서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였던 2021년 12월 말경 방송 인터뷰서 이 대표가 “대장동 사업 핵심 관계자인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알지 못한다”고 언급한 게 이유였다.
사법의 칼날
같은 해 10월 말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경기도 국정감사에 출석해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변경 특혜 의혹에 대해 “국토부가 직무유기를 문제 삼겠다고 협박했다”고 답해 관련 부처 공무원들의 거센 반발을 산 바 있다.
국토부 직원들의 의견을 경청한 검찰은 그들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봤고, 선거법에 저촉된다고 판단했다.
현직 당 대표가 사법의 칼날을 맞는 것이 처음이었던 만큼 당시 민주당 내부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 대표를 지켜야 한다는 친명(친 이재명)계와 당헌 80조를 근거로 이 대표를 제명시켜야 한다는 비명(비 이재명)계의 목소리가 정면으로 충돌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당헌 80조는 당원들의 청렴성을 강조한 조항으로, 사무총장이 뇌물과 불법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에 연루된 당직자의 직무를 정지하고 윤리심판원에 회부할 수 있는 내용의 당헌이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당직자에 걸려 있는 혐의가 부정부패인지, 해당 혐의로 검찰로부터 기소를 당했는지 여부다.
지난해 이 대표의 기소 당시만 해도, 선거법에 대한 민주당 지지자들의 시각은 ‘부정부패는 아니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선거법에 대한 검찰의 무리한 기소라는 데 민주당 내 중도층 역시 동의했고, 조정식 사무총장도 그런 내부 지지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이 대표에 대한 징계를 논의조차하지 않았다.
검, 두 번째 기소…이번엔 부패 혐의
예전 같지 않은 영향력 “힘 못쓴다?”
이 대표도 선거법 기소 당시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서 “(당헌 80조는)우리가 여당일 때는 상관없지만 야당일 때는 문제다. 현재 ‘검찰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지나친 권력 행사가 문제인데 (야당을 향한)검찰권 남용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며 “(80조 개정 논란은)나 때문인 게 전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선거법이라는 다소 약한 혐의 때문에 큰 논란없이 넘어갔던 이 대표는 이번 대장동 기소로 다시 한번 민주당 내 당심 심판대에 서게 됐다. 당헌 80조 논란이 재점화된 것이다. 대장동 건은 정확히 뇌물죄와 연관돼있다.
이 대표가 성남시장으로 재직하던 당시인 2013년 위례신도시 사업 내부비밀과 2014 대장동 개발 내부정보를 측근들과 결탁해 민간 사업자들에게 흘린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김만배씨와 남욱 변호사 등이 해당 정보들을 활용해 약 7886억원이 넘는 부당 이익을 챙겼다고 의심하고 있다. 성남FC 후원금 의혹도 부패 범죄와 연루돼있다. 이 대표는 네이버와 두산, 차병원 등 성남시 소재 기업들에 인허가 건을 해결해주고 성남FC에 후원금을 받아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당헌80조가 명시하고 있는 부정부패범죄와 정확히 일치하는 죄목들인 것이다. 그러나 지난 22일 민주당 지도부는 당무위를 열고, 이 대표의 기소 건은 당헌80조 3항에 예외규정으로 명시하고 있는 ‘정치탄압’이기 때문에, 이 대표의 윤리심판원 회부는 없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자 비명계가 즉각 반발했다. 민주당이 문재인 대표 시절에 만들어 놓은 당헌·당규를 이 대표에 유리하도록 사문화했다는 것이다.
‘당헌 80조?’ 그대로 패스
비명계 “이젠 결단할 시기”
비명계 관계자는 한 인터뷰서 “당의 청렴성을 담보하기 위해 만든 혁신 방안이 완전히 허물어졌다”며 “민주당 윤리규정이 완전히 사문화됐다”고 주장했다.
비명계의 다소 수위 높은 압박에 부글대는 것은 친명계 의원들과 이 대표의 강성 팬덤으로 알려진 개딸(개혁의 딸)들이다. 앞서 지난 체포동의안 부결 처리 당시 이 대표의 팬덤은 “배신자를 찾아내자”며 혈안이 된 바 있고, 실제로 몇몇 의원들을 특정해 ‘제명운동’까지 펼쳤다.
일각에선 이번 기소 건으로 불거진 당헌 논란서 민주당 의원들이 개딸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몇몇 민주당 의원들이 개딸들의 거센 공격이 두려워 제대로 할 말을 하고 있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일요시사>가 만난 민주당 관계자들은 그런 개딸들의 위용이 점점 퇴색되고 있다고 전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던 개딸들도 1년이 지나고 나니 어느 정도 숫자와 실체가 파악되고 있다”며 “생각했던 것보다는 적은 규모고, 전체 민주당 당원 숫자에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의 영향력인 것으로 파악된다. 몇몇 민주당 의원들은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다음에 있을 체포동의안 처리, 다음 기소 건 등에서 이 대표가 징계를 받거나 구속될 가능성은 희박하겠지만, 그의 강성 팬덤이 우리당의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끼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성 팬덤? 글쎄…
팬덤에 기대 오락가락하는 정치는 민주당의 지지율을 갉아먹어왔다. 이번 당헌 80조 예외규정을 구체적인 회의 없이 결정한 민주당 지도부는 결국 당심을 한차례 더 잃었다. 과연 과거처럼 이 대표의 개딸들이 이런 비명계의 반발을 막아낼 수 있을지 민주당 의원들은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