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악악’ 한국타이어 최악의 삼중고

심각한 오너 리스크 사면초가 MB 사위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한국타이어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했다. MB(이명박 전 대통령) 사위인 회장이 잡혀간 것만 해도 정신없는 마당에, 공장을 집어삼킨 거대 불길로 수백억대 손실을 떠안아야 하는 처지에 내몰렸다. 화재가 예고된 인재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신뢰도 추락도 불가피해졌다. 연달아 터진 초대형 사건 탓에 골치를 썩이던 노사 갈등 사안은 뒷전으로 밀린 모양새다.

지난 9일 계열사 부당지원과 횡령·배임 혐의를 받는 조현범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하 한국타이어) 회장이 검찰에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윤재남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조 회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마친 뒤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로써 조 회장은 2019년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된 이래 3년4개월여 만에 재수감되는 처지로 전락했다. 

저지른 짓
또 한 번?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차남인 조 회장은 1998년 한국타이어에 입사해 2018년 대표에 선임됐고, 지난해 회장 자리에 올랐다. 2001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셋째 딸 수연씨와 결혼해 이 전 대통령의 사위가 됐다.

조 회장은 2020~2021년 현대자동차 협력사 리한의 경영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개인적인 친분을 내세워 계열사인 한국프리시진웍스(MKT)의 자금 130억원가량을 빌려준 혐의를 받는다. 이 과정에서 회사에 일정 부분 손해를 끼쳤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조 회장은 한국타이어가 2014~2017년 타이어몰드를 경쟁사보다 비싸게 사는 방식으로 계열사 MKT를 부당 지원하는 데 관여한 혐의도 받는다. 타이어몰드는 타이어의 패턴을 새기는 데 사용하는 틀을 말한다. 


MKT에 대한 부당 지원 혐의는 앞서 공정거래위원회가 문제삼았던 것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11월 계열사 부당 지원 의혹으로 한국타이어에 과징금 80억300만원을 부과하고 계열사와 함께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한국타이어는 MKT를 인수한 직후부터 2013년까지 기존 단가 체계를 유지한 채 거래물량을 늘렸다. 그 결과 2008년부터 2011년 사이 연평균 145억원이었던 MKT 매출은 2012년 50억원 이상 확대됐다. 영업이익률은 2010~2013년 연평균 13.8%에서 2014~2017년 32.5%로 높아졌고, 시장점유율은 2014년 43.1%에서 2017년 55.8%로 상승했다.

검찰 역시 한국타이어가 타이어몰드의 가격을 산정 과정에서 제조원가를 과다 반영해 MKT가 40% 이상의 매출이익률을 올리도록 설계했다는 입장이다. 그 결과 총수 일가가 배당을 통해 사익을 편취하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평행선 긋는
노조 달래기

MKT 지분은 ▲한국타이어(50.1%) ▲조 회장(29.9%) ▲조현식 한국앤컴퍼니 고문(20.0%) 등이 나눠 갖는 구조다. 당시 MKT는 배당금으로 조 회장과 조 고문에게 각각 65억원, 43억원 등 총 108억원을 지급했다. 이 외에도 조 회장은 회삿돈으로 집을 수리하고 외제차를 구입하는 등 회사 자금 약 200억원를 유용한 혐의도 있다. 

조 회장 구속으로 한국타이어는 당장 신사업 계획이 전면 중단될 전망이다. 조 회장은 경영 전권을 잡은 이후 신사업에 대한 의지를 수차례에 걸쳐 표출했던 전례가 있다. 

총수 구속이라는 대형 악재는 노조와의 줄다리기 싸움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점쳐진다. 총수가 부재한 상태에서 노사 갈등 문제의 타협점을 찾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타이어는 지난해부터 한국노총 산하 노조와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이하 민주노총 지회)로 이뤄진 복수 노조 체제를 갖췄다.

당초 한노총 산하 노조가 대표 노조 역할을 맡았으나, 2021년부터 한노총 산하 노조에서 조합원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지난해 금속노조 지회가 제1노조로 올라섰다. 현재 민주노총 지회는 2000여명의 조합원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총 지회가 제1노조로 올라서면서 사측과 노조 사이에 갈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현재 사측과 제1노조 간 갈등은 메꾸기 힘들 정도로 깊어졌다. 한국타이어와 한국노총 산하 노조는 ▲기본금 5.0% 인상 ▲생산 격려금 100만원 지급 등의 내용에 합의하며 임단협을 타결한 반면, 민주노총 지회는 더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1년 못 채우고 구속된 회장
여기저기서 펑펑 ‘벼랑 끝’ 

양측의 갈등은 장기전 양상이다. 지회는 기본급 인상을 요구하며 지난해부터 대전과 금산 공장에서 게릴라 파업을 벌이고 있다. 당장 내달로 다가온 올해 임단협은 더 복잡한 국면으로 치닫게 될 수 있다. 올해 임단협 임금 인상 기준이 되는 전년도 임금안이 아직까지 타결 기미조차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민주노총 지회는 지난해 11월 공정위의 과장금 부과 방침이 정해진 이후 비판적 목소리를 키워온 상황이다. 이 무렵 민주노총 지회는 성명을 발표하고 부당이익 환수와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을 촉구했다.

민주노총 지회는 “한국타이어는 압도적인 국내 타이어업계 1위, 글로벌 6위의 기업으로 성장을 이뤄왔지만 그 과정에서 총수 일가는 매해 수십에서 수백억원을 자신들의 곳간에 채웠다”며 “직접 타이어를 만드는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직업성 암, 뇌심혈관 질환 등을 비롯해 골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총수 구속과 노사 갈등이라는 겹악재에 신음하던 한국타이어는 대전공장 화재 사건을 계기로 더욱 깊은 수렁에 내몰린 형국이다. 경제적 손해는 물론이고 신뢰도가 추락한 결정적 사태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지난 12일 오후 10시경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 발생한 화재는 58시간이 지나서야 완전 진화됐다. 지난 15일 소방당국은 인력 26명과 소방장비 10대를 투입해 오전 8시 진화작업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은 34만2000㎡ 면적에 하루 6만개가량 타이어를 생산할 수 있다. 이 불로 대전공장 2공장의 대부분과 옆으로 이어진 3물류창고가 전소됐고, 보관된 타이어 약 21만개가 불에 탔다. 현재 대전공장은 가동을 잠정 중단한 상태다.

소방당국은 지난 13일 오전 11시 주불 진화를 완료하고 대응 단계를 하향 조정했다. 그러나 무너진 공장 잔해 등을 전부 들춰 잔불을 정리하면서 완진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화재는 2공장 가류공정 내 컨베이어벨트 아래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류공정은 반고체 상태의 타이어 모양을 쪄내는 공정으로, 타이어 성형기 등이 설비돼있다.


얼마 됐다고
또 불이냐

소방당국은 벨트 아래에 쌓인 분진 때문에 불길이 더 빠르게 확산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대전공장은 컨베이어벨트가 불이 난 2공장과 1공장, 3물류창고 등으로 이어진 구조여서 피해 확산이 컸다는 분석이다.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방당국, 전기안전공사, 노동청 등 관계기관들은 지난 14일 오전 10시 40명을 투입해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화재 원인에 대한 합동감식에 착수했다. 다만 불이 시작된 2공장이 모두 불에 타 무너져 정확한 원인 규명까지는 시간이 다소 소요될 전망이다.

증권가에서는 한국타이어가 이번 화재 사고 여파로 수백억원대 손실을 보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은 회사 전체 생산량의 20%를 담당하는 주요 시설이다. 일평균 4만5000여본의 타이어를 생산하며 생산 물량의 65%가 해외로 수출된다. 

대전공장 생산중단에 따른 손실도 문제다. 대신증권은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의 가동중단에 따라 하루 1만6000본, 생산 및 매출액 12억원의 손실(2공장 기준)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1, 2공장으로 구성된 대전공장 전체가 가동 및 배분에 차질을 빚을 경우 일매출 손실이 최대 32억원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이 화재 사고 이전으로 돌아가기까지 최소 6개월에서 1년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공장 자체가 노후화됐고, 화재로 인한 시설 재정비 작업을 단기간에 마무리하기 어려운 탓이다.


대전공장 화재가 예고된 인재였다는 점에서 한국타이어는 신뢰도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 양상이다. 대전공장에서는 9년 전인 2014년 9월30일에 화재 사고가 발생해 수십억원대 손실이 불가피했던 전례가 있다.

당시 화재로 대전 1공장 물류창고 4627㎡와 재고 18만본이 모두 불에 탔다. 당시 소방당국은 화재 사고로 인한 한국타이어 측의 피해 규모를 66억원으로 추산했다.

절체절명
위기 봉착

대전공장은 지난해 실시한 법적 의무 소방시설 점검에서 불량 사항이 240건 제기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지난 1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정우택(국민의힘) 의원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한국타이어 소방시설 자체 점검 실시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대전공장에서는 지난해 상반기 169건, 하반기 71건의 불량 사항이 드러났다.

대전공장은 2020년 소방점검에서도 284건을 지적받았고 2021년에도 382건의 개선사항이 적발됐다. 특히 이번 화재로 전소된 2공장은 최근 3년간 옥외 소화전, 스프링클러 설비, 경보설비 등에 문제가 있던 것으로 조사됐다.

<heaty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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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