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산’ 이재명 선거법 재판 막전막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疎而不漏), 하늘의 그물은 크고도 넓어서 성긴 듯하지만 결코 놓치는 법이 없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격언이다. 최근 검찰총장이 검찰 간부 앞에서 이 격언을 인용했다. 검찰 수사에 맞서 ‘방탄’에 나선 야당 대표를 겨냥한 말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국회의원, 당 대표 등 겹겹이 입은 방탄조끼의 위력이 확인됐다. 검찰의 창은 방탄조끼를 뚫고 급소 바로 앞까지 밀려들어갔다. 내부 반란이 검찰의 창에 힘을 더했다. 대선 패배 이후 주변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방탄조끼를 챙겨 입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사면초가’ 상태에 빠졌다. 

예상치 못한
반란표 당혹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진행된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초 ‘압도적 부결’을 예상했던 민주당 지도부는 ‘가결 같은 부결’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169석을 갖고도 당 대표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비판이 지지층에서 터져 나왔다. 

민주당에서만 31표의 이탈표가 나왔다. 기권과 무효표를 더하면 반란표 수는 더욱 늘어난다. 민주당 비명계(비 이재명)는 이 대표의 사퇴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번 표결에서 실력 행사를 한 만큼 다음 표결을 무기로 삼고 있다. 반면 이 대표와 친명계(친 이재명)는 ‘대표 사퇴는 없다’고 못 박았다. 

이 대표는 ‘진퇴양난’ 상태다.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이라 본인 의지로 내릴 수도 없다는 의견까지 나온다. 대표직을 사퇴한다는 것은 공천권을 내려놓는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 대표로선 공천권이 가장 큰 무기나 다름없다. 하지만 검찰이 또 한 번의 구속영장 청구를 예고한 상황에서 이 대표의 입지는 이미 좁아질 대로 좁아진 상태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재명 3대 사법 리스크’인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로비 의혹 ▲성남FC 후원금 의혹 ▲변호사비 대납 의혹에 앞서 선거법 위반 혐의가 이 대표의 발목을 단단히 옭아매고 있기 때문. 검찰은 지난해 이 대표를 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바 있다. 이 대표는 지난 3일 재판에 출석했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는 지난해 9월8일 대선 과정에서 허위 발언을 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이 대표를 재판에 넘겼다. 공소시효 만료를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이 대표는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2021년 12월22일 방송 인터뷰서 대장동 개발사업 관련자인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이하 성남도개공) 개발1처장에 대해 “하위 직원이라 시장 재직 때는 알지 못했다”고 발언했다. 

2020년 대법원 판결로 ‘기사회생’
변호사비 대납·사법거래 의혹으로

김 전 처장은 검찰 조사를 받던 중 2021년 12월21일 성남도개공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대표는 2018년 경기도지사 당선 후 선거법 소송이 시작된 뒤에야 김 전 처장을 소개받아 알게 됐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검찰은 김 전 처장의 휴대전화와 노트북, 유동규 전 성남도개공 기획본부장의 진술, 유가족이 공개한 사진 등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이 대표가 변호사 시절부터 김 전 처장을 알고 있었다고 봤다. 

검찰은 ▲2009년 김 전 처장의 휴대전화에 이 대표를 ‘이재명 변호사’로 저장한 점 ▲이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인 2015년 호주·뉴질랜드 출장에 동행하면서 골프를 친 점 ▲이 대표가 김 전 처장에게 대장동 개발사업, 제1공단 공원화 사업 관련 대면보고를 여러 차례 받은 점 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대표의 백현동 특혜 의혹과 관련한 발언도 문제로 떠올랐다. 이 대표는 2021년 10월2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변경 특혜 의혹과 관련해 “국토부가 용도변경을 요청했고 공공기관 이전 특별법에 따라 저희가 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또 “용도변경을 해 수천억원의 수익을 취득하는 것은 성남시에서 수용할 수 없으므로 성남시가 일정 수익을 확보하고 업무시설을 유치하겠다고 했는데 국토부가 직무유기를 문제 삼겠다고 협박했다”고도 말했다.

검찰은 관련자 조사를 통해 성남시가 국토부로부터 4단계 종상향 용도변경 요청을 받은 사실 자체가 없다고 했다. 성남시의 자체 판단이었다는 것이다. 

모른다더니…
증거 나왔다

서울중앙지검과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두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 일괄 기소했다. 앞서 검찰은 이 대표의 소명을 듣기 위해 출석을 요구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혐의와 관련한 재판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당이 연계돼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를 대선후보로 낸 민주당으로도 불똥이 튀게 되는 것.

당장 재판에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되면 이 대표는 공직선거법과 국회법에 따라 의원직을 잃게 된다. 5년간 피선거권도 제한되기 때문에 차기 대선은 물 건너가는 셈이다. 민주당 역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보전받은 대선 선거비용 434억원(선거비용 431억원+기탁금 3억원)을 토해내야 한다. 

공직선거법 제265조(선거사무장 등의 선거범죄로 인한 당선무효), 제265조2(당선무효된 자 등의 비용 반환)에 따라 대선후보가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형(벌금 100만원 이상)을 확정받으면 중앙선관위로부터 보전받은 선거비용을 후보 추천 정당이 다시 돌려줘야 한다. 

이 대표는 과거 대선후보로 가는 길목에서도 ‘선거법 위반 혐의’라는 산을 만난 바 있다. 항소심까지 벌금 300만원으로 벼랑 끝에 섰던 이 대표는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을 결정하면서 기사회생했다. 대법원의 판단으로 이 대표는 민주당 대선후보로 결정돼 링 위에 올라갈 수 있었다. 

문제는 그때와 지금 상황이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다. 이 대표(당시 경기도지사)는 성남시장 재임 시절인 2012년 6월 보건소장, 정신과 전문의 등에게 친형 이재선씨를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키도록 지시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로 기소됐다.

또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 TV 토론회에서 ‘친형을 강제입원시키려고 한 적이 없다’는 취지의 허위 발언을 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도 받았다.

대선후보
발판 됐다

쟁점이 된 건 선거법 위반 혐의였다. 1‧2심 모두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반면 선거법 위반 혐의는 1심과 2심의 판단이 엇갈렸다. 1심은 무죄, 2심은 유죄였다. 특히 2심은 당선무효형인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경기도지사로 재임하면서 대선을 준비하던 이 대표에겐 치명타인 결과였다. 


당시 이 대표는 TV 토론회서 “형님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하셨죠?”라는 상대방의 질문에 “그런 일 없다”며 모친 등 다른 가족이 진단을 의뢰한 것이고 자신이 “최종적으로 못 하게 했다”고 답변했다.

실제 이 대표의 가족이 2012년 이재선씨에 대한 조울증 치료를 의뢰하는 문서를 작성하고 서명한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다만 이 대표가 이재선씨의 강제입원 절차 개시를 지시한 것도 재판 과정에서 사실로 밝혀졌다. TV 토론회 발언이 허위였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7대5로 무죄 취지에 손을 들었다.

이 대표의 발언이 “상대 후보자의 공격적 질문에 소극적으로 회피하거나 방어하는 취지의 답변 또는 일부 부정확하거나 다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표현”이라며 “적극적으로 반대 사실을 공표했다거나 전체 진술을 허위라고 평가할 수 없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당시 이 대표는 대선후보 지지율이 수직 상승하면서 이낙연 전 국무총리를 바짝 뒤쫓고 있던 때였다. 대법원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을 결정한 이후 이 대표는 지지율이 상승곡선을 그린 끝에 민주당 최종 대선후보로 결정됐다. 대법원의 판단이 이 대표를 정치적 거물로 만들어준 셈이다. 

당선무효면 민주당도 폭망
선거비용 434억원 물어내야


흥미로운 대목은 당시 선거법 위반 재판과 관련해 ‘나비효과’가 일고 있다는 사실이다. 해당 재판을 둘러싸고 변호사비 대납 의혹이 불거진 데 이어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참여한 권순일 전 대법관은 ‘사법거래’ 의혹을 받고 있다.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인 김만배씨가 재판 전후로 권 전 대법관을 만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또 대법원이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을 하는 과정에서 권 전 대법관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권 전 대법관은 퇴임 이후 화천대유 고문으로 일하면서 매월 1500만원을 받은 사실이 알려졌다.

대장동 개발사업에 도움을 주고 거액을 받았다는 ‘50억 클럽’의 멤버로도 지목된 상태다. 

쌍방울그룹이 연루된 변호사비 대납 의혹은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을 맡은 변호사 수임료를 쌍방울이 전환사채 20억원, 현금 3억원 등으로 대신 지불했다는 내용이다. 이 대표는 ‘변호사비로 3억원가량 지급했다’고 밝혔는데, 이 발언이 허위라며 시민단체 ‘깨어있는 시민연대당’이 2021년 10월 이 대표를 고발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해당 사건에 대한 수사는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과 금고지기 김모씨가 구속 기소되면서 속도가 붙은 모양새다. 여기에 대북송금 의혹까지 함께 불거졌다. 김 전 회장이 검찰 조사에서 ‘이 대표의 방북을 위해 북한에 300만 달러를 보냈다’고 진술한 것이다. 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에서 비롯된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모양새다. 

첩첩산중
벼랑 끝

이 대표는 지난 3일에 이어 격주로 금요일마다 선거법 위반 혐의 관련 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공판준비기일과 달리 정식 공판에는 피고인이 법정 출석을 해야 한다. 재판부는 오는 17일과 31일도 공판기일로 지정했다. 공직선거법 재판은 공소제기 후 6개월 안에 1심 선고를 권고하고 있다. 재판과 검찰 수사, 구속영장 청구 등 이 대표 앞에 놓인 산은 매우 험난해 보인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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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