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에 숨은 불법 금융 백태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2.20 13:38:20
  • 호수 14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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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단계 끄나풀’ 뒤봐주는 변호사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불법 금융사기가 판치는 세상이다. 이런 사기에 당한 피해자가 인터넷에 글을 올려도 소용이 없다. 바로 ‘명예훼손죄’로 걸려 게시글이 사라지기 일쑤기 때문이다. 불법 금융사기와 피해자의 싸움은 온라인에서도 지속되지만, 보통은 명예훼손으로 피해자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실정이다. 

명예훼손이란 ▲이름 ▲신분 ▲사회적 지위 ▲인격 등에 해를 끼쳐 손해를 가하는 것을 말한다. 명예를 법적으로 말하면 사람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다. 즉, 외부적 명예를 가르킨다. 결국 명예훼손은 사람의 ▲품성 ▲덕행 ▲명성 ▲신용 등에 대한 객관적인 사회적 평가를 위법하게 저하하는 행위다. 단순히 주관적으로 명예 감정이 침해됐다는 건 명예훼손이 성립되지 않는다.

주관적이냐
객관적이냐

형법상 명예훼손은 형법 307조에 ‘공연히 사실이나 허위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라고 규정한다. 여기서 명예의 주체는 개인뿐만 아니라 단체도 포함된다. 또 ‘공연히’라는 말은 불특정 또는 다수를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해, ‘훼손’은 개인 또는 단체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할 수 있는 상태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명예훼손의 대표적인 사건으로 장선우 선수 사건이 있다. 2015년 10월9일 KT wiz인 장 선수의 전 여자친구가 장 선수가 사석에서 프로야구 관계자와 팬을 비하했다며 장 선수의 상반신 나체 사진을 개인 SNS에 올렸다.

이 사건은 선수 개인의 연애사로 시작해서 동료 뒷담화, 팬들 성적 모욕, 감독 뒷담화, KT 회장 뒷담화 등으로 이어졌다. 게다가 인터뷰어를 인신공격하거나 롯데 치어리더와 KT 치어리더를 욕하는 등 사생활도 함께 폭로했다. 이 글에는 치어리더 박기량에 대한 노골적인 성적 비하가 담겨 있어 더 큰 충격을 안겼다.


이 같은 사생활 폭로는 4탄까지 이어졌고, 결국 구단은 “사실 확인 중”이라고 대응했다.

결국 장 선수와 전 여자친구는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죄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2016년 1월25일 수원지법서 열린 1심 재판에서 장 선수는 징역 8개월, 전 여자친구는 징역 10개월에 구형됐으며 같은 해 2월24일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았다.

2016년 5월26일 열린 항소심 첫 공판서 검찰은 1심 때와 같은 형량을 구형했다. 해당 사건에서 대법원은 형법상 명예훼손의 공연성에 대해 “개별적으로 한 사람에게 사실을 유포했다고 해도 불특정 또는 다수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면 요건을 충족하게 된다”고 판시했다. 

정보통신망법 판례서도 SNS는 개인과 개인의 대화로 기록이 남을 수 있고 쉽게 전달될 수 있어 사적 비밀이 아닌 외부로 전파될 위험성이 항상 있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명예훼손은 개인과 단체의 명예를 지키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7월14일 오픈넷(opennet)은 명예훼손·모욕의 형사 고소·고발 건수가 시간이 지날수록 급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실 요청으로 법무부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명예훼손‧모욕으로 접수된 사건은 2010년 2만2777건에서 2020년 7만9910건으로 약 4배가량 급증했다. 

피해사실 SNS에 올리면 법으로 입막음
사실이라도 성립…악성 업체 보호 역할


이에 비해 동 기간 접수 사건 중 기소로 처리된 건수는 연간 7000건에서 약 1만2000건 사이로 평균 약 1만1000건 수준을 기록해 꾸준한 수치에 유지했다. 이는 대부분 명예훼손·모욕의 고소·고발이 심각한 수준의 인격권 침해가 아니어도 남발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명예훼손·모욕의 고소·고발로 불법·다단계업체가 관계될 수 있는 점이다. 또 현행 명예훼손죄는 친고죄가 아닌 ‘반의사불벌죄’로 규정돼있어 피해자가 아닌 제3자도 얼마든지 고발할 수 있다. 결국 공인에 대한 비판적 표현물에 대해 팬덤, 지지단체, 종교단체, 대리단체 등이 고발을 남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은 불법 업체에서 금전적 피해에 빠져 있는 피해자를 두 번 힘들게 한다. 불법 금융(금융사기, 투자사기, 유사수신행위, 금융피라미드)을 없애기 위해 만들어진 네이버 ‘백두산’ 카페에는 이런 상황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 카페는 지난해부터 ‘명예훼손 게시물’로 지정돼 ‘게시 중단 요청’이 들어간 게시물이 늘어나고 있다. 네이버 게시 중단 요청 서비스는 네이버 서비스상에서 다른 회원의 게시물이 고객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생각되는 경우 그 게시물을 임시로 게시 중단 요청을 하는 서비스다.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에는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자는 자신이 운영·관리하는 정보통신망 제1항에 따른 정보가 유통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제44조의 2에는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자는 삭제 등을 요청받으면 바로 삭제·임시 조치 등의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즉시 신청인 및 정보 게재자에게 알려야 한다. 이 경우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자는 필요한 조치를 한 사실을 해당 게시판에 공시하는 등의 방법으로 이용자가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게재돼있다.

네이버 명예훼손 게시물 게시 중단 요청은 ▲카페 ▲블로그 ▲지식iN ▲예약 ▲쇼핑 ▲플레이스 ▲뉴스(댓글) ▲증권(댓글) 등에 신청할 수 있다. 게시물 게시 중단을 하면 작성자는 이의신청을 할 수 있고, 이때 게시중단 요청자에게 관련 내용이 통보된다. 이의신청 검토가 완료되면 게시 중단 조치 30일 뒤 복원된다.

복원된 게시물은 다시 중단할 수 없으나, 추가로 게시물 조치가 필요한 경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 심의를 신청할 수 있다.

진실?
허위?

네이버 백두산 카페서 중단된 게시물도 이 같은 맥락으로 결정됐다. 물론, 모든 불법 업체가 게시 중단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특정 불법 업체가 상습적으로 게시물 중단을 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백두산 카페 대표 대마불사에 따르면, 게시물 중단을 신청하는 불법 업체는 4개다. A 업체는 백두산 카페를 고소했다며 피해자들이 작성한 관련 게시글 삭제를 요청했다. 황당한 것은 연락해 온 곳이 A 업체 대표가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를 언론사 대표라고 지칭했고, 통화하면서 게시글을 삭제하라고 욕하기도 했다.

B 업체는 변호사를 선임해 ‘전문적으로’ 게시물 중단을 요청했다.

B 업체 변호사는 백두산 카페에 “대마불사님의 실명이나 주소를 알 수 없어 부득이 상담용으로 공개된 본 이메일로 보낸다. 귀하가 운영하는 카페의 게시판에 발신 의뢰인이 운영하는 B 업체가 사기업체 카테고리로 분류/등재되어 별도 게시판이 운영되고 있고, 위 게시판에는 B 업체를 비방하는 여러 게시글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중 대부분은 허위 정보를 기재해 B 업체를 비방한 글이거나, 기존 회원 중 일부가 빠른 출근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한 글 또는 경쟁업체 직원이 고객을 빼돌리기 위해 작성한 글이며, 명예훼손 또는 영업방해에 해당하는 불법 게시물이다. 이는 귀하가 카페를 운영하는 공익 목적과 부합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메시지와 함께 해당 업체는 ▲네이버 본사에 게시물에 대한 삭제 청구 ▲게시자에 대한 형사 고소 경고 ▲자사 비방 유튜버를 강남경찰서에 형사 고소했다고 협박했다.

하지만 해당 카페의 피해자는 “B 업체는 전형적인 폰지사기다. 상식적으로 100만원을 투자해서 1년 내에 돌려받고 이후부터 순수익을 낸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이게 사실이라면 은행, 대부업에 받을 수 있는 만큼 대출을 받더라도 해야 하는 것이지 않냐. 투자는 본인이 선택해서 하는 것이지만, 이런데 속아서 피 같은 돈 날리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비판했다.

C 업체는 2020년 2월과 2021년 3월에 본사 메일로 자신들은 절대 사기 업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백두산 카페 내 게시글을 삭제하지 않으면 고소, 소송 등의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운영자를 협박했다.

불법 업체
방어 수단

운영자 대마불사도 “C 업체의 사업설명회서 교육받고 이미 투자했다”는 등의 비방과 모함을 일삼았다.


지난해 6월17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해당 업체는 사기 등 혐의로 고소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업체 피해자는 “C 업체가 비트코인처럼 가격이 오른다는 상위 사업자 말을 듣고 1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그런데 코인 가격이 너무 떨어져서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D 업체는 피해자가 게시글을 올리면 바로 게시 중단 처리하곤 했는데 게시판 전체가 게시 중단 글로 채워질 정도였다.

D 업체 피해자는 “이곳은 매월 8~10% 배당금을 지급하는 고수익 투자상품이라는 홍보를 한다. 이에 60대 이상 장년층이 노후자금을 전부 투자한 경우가 많다. 특히 해지나 환불을 원하는 가입자에게 인감도장을 요구하는 등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탈퇴를 막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마불사는 <일요시사>에 “지난해 11월 게시글 300개가 사라졌다. 글이 많이 올라오면 하루에 100개 정도인데, 3일 치 글이 다 사라진 것이다. 네이버 정책이 그러니 방법이 없다”며 “언론중재위원회에 민원을 넣어도 방법이 없다. 네이버도 게시글이 많으니 진위 여부를 다 확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이의신청을 하면 한 달 만에 글이 복구된다. 백두산 카페를 만든 이유가 사기 피해를 알려서 예방하려고 하는 건데, 이런 식으로 하니 의욕이 떨어진다”며 “그렇다고 네이버 정책을 없앨 순 없지 않냐. 반대로 정말 명예훼손이 되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만 게시글 복구기간을 더 빠르게 하고, 당사자들이 법적으로 싸우면 좋겠다. 이런 업체들의 뒤엔 변호사들이 있는데, 돈을 받고 일을 하는 거겠지만 꼭 이런 식으로 돈을 벌어야 하나 싶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같은 사례는 ‘표현의 자유와 알권리’라는 헌법상의 권리를 침해하게 된다는 문제의식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명예훼손이 성폭력 가해자가 피해자의 입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무더기로 사라지는 게시글 알고 보니…
폰지사기 피해자들도 ‘벙어리 냉가슴’

해당 문제에 대해 박주민·김용민·정필모·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및 사단법인 두루, 사단법인 오픈넷 주취로 2021년 12월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의실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이대로 괜찮은가? 사례를 중심으로 보는 사실적시 명예훼손 죄의 문제점’ 토론회가 열렸다. 

당시 토론회서 공개된 사례들은 아래와 같다.

삼촌은 미성년인 조카의 몸을 마음대로 만진 성폭력 가해자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인 조카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괴롭혔다. 결국 조카는 성인이 된 후 심한 우울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를 앓았다.

삼촌은 도청 고위공직자로 일했다. 조카는 30년이 지났지만, 늦게나마 삼촌의 잘못을 묻고 싶었다. 2008년 9월 조카는 삼촌이 근무 중인 도청 인터넷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삼촌의 과거를 남겼다.

조카는 “그런 놈이 우리나라 고위공무원으로 살아도 되는 걸까요? 불쌍한 고아 조카를 6년 동안이나 철저히 유린하고 가족들 앞에서 고개도 못 들고 죄인으로 살게 만든 사람”이라고 폭로했다.

그러자 삼촌은 조카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법원은 조카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1심 판결문에는 “피고인(조카)이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된 동기에 참작할 바가 없는 것은 아니나,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에 이르기 전에 가족들과 대화나 확인 절차를 거치는 등 다른 해결 수단이나 방법이 있음에도 이런 절차가 없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인터넷 사이트와 삼촌이 근무하는 도청 홈페이지에 글을 바로 게시했다. 공무원인 삼촌이 이 사건으로 겪었을 사회적 평가절하와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김성돈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명예훼손죄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주장한다. 명예훼손이 사실적시 그 자체를 금지하기 때문에 ‘명예가 훼손될 가능성 사전 차단’을 방법으로 ‘명예 보호를 도모’하는 동시에 사실을 적시하는 행위를 형벌로 금지해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명예훼손죄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할 경우에 비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 추구하는 목적의 정당성 및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필요성 측면서 볼 때 과잉금지에 해당할 소지가 다분하다”며 “진실한 사실의 적시는 사회적으로 명예를 재조정하는 기능을 해서 사회적 의미 차원에서 불법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저울대 오른
두 가지 가치

이어 “이 같은 차원의 사실적시 금지는 추구되는 목적이 과장된 명예나 허명의 보호이지, 진정한 의미의 명예의 보호가 아니다. 과장된 명예, 허명, 체면, 위신을 보호하기 위해 헌법적으로 국가에 의미 지워진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 보장을 후퇴시키는 태도는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에 반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허위 사실을 적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구성요건의 경우가 아닌, 진실한 사실을 적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구성요건의 경우에까지 균형성 심사의 저울대에 ‘명예’와 ‘표현의 자유’라는 두 가치를 올려놓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alsw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다단계 IDS홀딩스 고문변호사 기소, 왜?

1조원대 다단계 투자사기 사건을 벌인 IDS홀딩스의 고문변호사가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해 12월28일,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신대경 부장검사)는 현직 변호사 A씨를 사기방조죄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A씨는 IDS홀딩스 김성훈 전 대표의 변호인이자 회사 고문변호사로 일했다.

검찰은 A씨가 2016년 4~8월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와 지점장 등을 상대로 김성훈 대표를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고 IDS홀딩스가 정상적으로 운영돼 상당한 수익이 기대된다고 여러 차례 강연해 사기 범행을 방조했다고 보고 있다.

‘제2의 조희팔’로 불린 김 전 대표는 2011년 11월∼2016년 8월 고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속여 피해자 1만여명에게 1조원 넘는 투자금을 가로챈 혐의로 징역 15년이 확정돼 복역 중이다.

김 전 대표는 IDS홀딩스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관에게 뇌물 6390만원을 준 혐의로도 기소돼 1·2심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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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