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없는’ 버스비 인상론 막전막후

여긴 올리고 저긴 공짜로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이젠 ‘서민의 발’마저 무거워지는 것일까. 물가가 계속 올라가면서 대중교통 요금 인상 논의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정부와 지자체 사이 ‘불협화음’이 수차례 관측된다. 이들은 인상 시기와 정부 지원 여부 등을 놓고 이견을 보인다. 이 가운데 세종시는 시내버스 요금 전면 무료화 계획을 꺼내 들었다. 300원 인상 방침을 고수하던 서울시와는 정반대 행보라 눈길을 끈다.

서울시가 대중교통 요금 인상안을 꺼내 들었다가 사회 각계의 반발에 직면했다. “인상이 불가피하다”며 강행 돌파 의지를 내비쳤던 서울시는 결국 계획을 하반기로 미뤘다. 일단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다. 서울시는 이달 들어 “오는 4월 말을 목표로 서울 대중교통 요금을 300원 인상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8년 만에
추진하다…

계획대로라면 8년 만에 대중교통 요금이 인상되는 셈이다. 구체적으로는 ▲지하철과 간·지선 버스 300~400원 ▲순환차등버스 400~500원 ▲광역버스 700원 ▲심야버스 350원 ▲마을버스 300원이다.

서울시가 내건 명분은 ‘적자 심화’다. 누적적자가 심화되면서 대중교통 안전 서비스 제공이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는 설명이다. 지난 7년간 물가와 인건비가 꾸준히 상승하는 동안에도 요금을 동결한 데다, 코로나 유행까지 겹치며 적자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는 것.

이와 관련해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8일 “8년 동안 요금을 올리지 못해 적자 폭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며 인상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오늘날 서울시의 지하철 적자 규모는 연간 1조원 남짓이다. 이렇다 보니 서울시 지하철 운영기관인 서울교통공사의 누적적자는 2021년 기준 17조원을 넘어섰다. 준공영제로 운영 중인 서울시 시내버스도 누적 부채가 같은 시점 86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까지 서울시는 중앙정부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요금 인상 계획을 유보해왔다. 중앙정부의 예산 지원을 통해 적자를 줄일 구상이었지만, 끝내 좌절됐다. 

기획재정부는 국회의 2023년도 정부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지하철 무임승차 손실 지원 예산 반영 등을 반대했다. 특정 지자체에 한정돼 운영되는 만큼, 지자체가 자체 예산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에 서울시는 올해 들어 마지막 수단인 요금 인상안을 꺼내들었다. 서울시는 대중교통 요금을 300원 인상하면 평균 적자 규모가 지하철 3162억원·버스 2481억원, 400원 인상하면 지하철 4217억원·버스 3308억원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이 같은 서울시 사정에도 정부, 시민단체 등은 계속해서 요금 인상을 반대하고 있다. 이들의 주된 논리는 ‘서민 부담 가중’이다. 특히 문제 당사자인 시민의 반대가 거세다. 

서울시, 대중교통 요금 인상 추진하다 일단 연기
서민 부담 가중 VS 적자 해결 불가 ‘진퇴양난’

지난 10일, 서울시는 ‘서울시 대중교통 요금 인상 및 재정난 해소방안 논의를 위한 시민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때 요금 인상에 반대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기습시위를 감행하면서 공청회는 개최 무산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공청회 내에서도 서울시 결정을 겨냥한 강도 높은 비판이 쏟아졌다. 이날 김상철 공공네트워크 정책위원장은 “대중교통 요금의 원가 보전율을 높이기 위해 요금 인상이 아니라 대중교통 이용자를 늘려야 한다”며 “서울시가 가장 쉬운 방법을 택한 것으로 (인해)부담을 왜 시민들이 져야 하는 것인가”라고 발언했다. 

유미화 녹색소비자연대 전국협의회상임위원장은 “소비자는 (요금인상안에 대해)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라며 “대중교통 요금의 인상을 이야기하기 전에 정부와 서울시, 버스 운송업체가 책임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학생과 직장인들이 대중교통 요금 인상에 큰 부담을 느낀다는 설문 결과도 나왔다. HR테크 기업 인크루트는 지난 15일, 대학생과 직장인 등 자사 회원 1335명을 대상으로 ‘대중교통 기본요금 부담도’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대중교통 요금 인상폭이 현 물가 대비 적절한지 묻자, 응답자의 95.3%가 ‘많이 올랐다’고 답변했다. 서울시 인상안이 그대로 시행되면 요금이 단번에 기존 대비 25%가량 상승한다. 

또 이들 중 81.3%는 추가 질문에서 ‘그래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이라고 답했다. 대중교통 요금 인상이 부담되면서도, 별다른 대안이 없어 이를 감수해야 하는 이가 대다수인 셈이다.

중앙정부도 서울시 말리기에 나섰다. 앞서 행정안전부는 물가가 급등할 조짐이 보이던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자체에 대중교통 등 공공요금 동결을 수차례 당부해왔다. 지난 7일에도 ‘지방공공요금 안정관리 점검회의’를 열어 각 지자체에 대중교통 요금 인상 시기를 늦추고 인상폭을 최소화할 것을 요청했다.

불협화음
계속 엇박자

행안부는 전기·가스를 비롯한 공공요금의 인상폭이 전년 동기 대비 30%에 육박하고, 최근 택시요금까지 오르는 등 서민 부담이 단기간에 가중됐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인상 계획 중 일부였던 ‘시내버스 거리 비례제’ 도입을 철회했을 뿐, 주된 인상 계획은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내버스 거리 비례제 도입을 철회한 것은 행안부 요청을 고려한 것”이라고 전했다. 부가 제도 도입 철회를 넘어서는, 인상안 보류·인상 폭 조정 등의 조치는 어렵다는 취지로 읽힌다.

이 가운데 오 시장이 최근 윤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중앙정부 지원을 다시 건의한 사실이 알려졌다.

지난 14일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행안부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오 시장이 지난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대통령께 건의했다”며 “대중교통 요금을 400원 올릴 수밖에 없는데 기획재정부가 도와주면 200원만 올릴 수 있다고 대통령께 말씀드렸다”고 전했다.


오 시장은 지난 10일, 윤 대통령이 전북 전주에서 주재한 중앙지방협력회의에 참석했다. 이 도지사가 밝힌 대화는 시기상 이 자리에서 이뤄졌을 공산이 크다. 다만 윤 대통령은 오 시장 건의에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서울시가 먼저 백기를 들었다. 며칠간 난항을 겪은 서울시는 요금 인상을 올해 하반기로 미루기로 결정했다.

결국엔
미뤘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시는 “지속되는 고물가로 인해 가중되는 서민 가계부담을 완화하고, 정부의 공공요금 상반기 동결 기조에 호응해 대중교통 요금 인상 시기를 올해 하반기로 조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만 서울시는 시의회 의견청취 등 요금 인상을 위한 행정절차를 당초 계획대로 추진해나간다.

하반기 들어 곧바로 요금 인상을 단행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관계자는 “인상과 관련한 구체적인 하반기 일정은 아직 확정된 바가 없다”면서도 “대중교통 요금 인상은 불가피한 상황이기 때문에 내년까지 넘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반기에는 (반드시)인상이 이뤄질 예정”이라고 전했다.

서울시가 뜻을 접은 배경에는 윤 대통령이 직접 공공요금 동결 기조를 강조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국민의 대중교통 이용 부담을 완화할 각종 대책을 논의했다.


윤 대통령은 회의 중 “도로·철도·우편 등 중앙정부가 관리하는 공공요금은 최대한 상반기 동결 기조로 운영하겠다”며 “지방정부도 민생 안정의 한 축으로서 지방 공공요금 안정을 위해 노력해줄 것을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회의서 이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 안팎을 기록해 정점을 찍고, 다음 달부터는 서서히 내림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버스·택시 등 지자체 공공요금 인상이 안정세에 접어들 물가를 밀어 올리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정부는 서민 교통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알뜰교통카드 지원을 늘릴 방침이다. 알뜰교통카드는 대중교통 이용 때 걷거나 자전거로 이동한 거리에 비례해 최대 20% 마일리지를 지급하는 교통카드다. 여기에 카드사가 10% 내외의 추가 할인을 제공한다. 

말린 정부, 교통비 완화 정책
세종시는 ‘전면 무료화’ 선언

지금은 마일리지를 월 44회까지 쌓을 수 있는데, 정부가 나서 한도를 60회까지 늘려주겠다는 것. 저소득층 한정으로 적립단가를 건당 200원 올리는 조치도 더해졌다.

아울러 대중교통 이용에 대한 신용카드 소득공제 폭도 넓힌다. 공제율을 올해 내내 40%에서 80%로 올려 적용한다. 당초 올해 상반기까지만 적용 예정이었던 게 하반기까지 늘어난 것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심사소위원회는 올해 대중교통 소득공제율을 80%로 늘리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잠정 의결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세종시는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시내버스 요금 전면 무료화를 추진하고 있다. 요금 인상을 추진하는 서울시와는 정반대의 행보다. 세종시는 지난 13일 “시내버스 요금 무료화를 위해 추진한 ‘대중교통 효율화를 위한 연구 용역’을 이달 말 마무리한다”고 밝혔다.

세종시 시내버스 요금 무료화는 지난해 당선된 최민호 시장의 핵심 공약이다. 유세 당시 최 시장은 “대중교통 이용 활성화를 위해 시내버스 무료화를 추진할 것”이라며 “다른 예산을 절감해 시내버스 운영에 투입하면 요금 무료화가 가능하다”고 발언한 바 있다.

모든 연령을 대상으로 시내버스 무료화 정책을 펴는 건 세종시가 처음이다. 충남과 대구 등 일부 광역지자체가 어린이와 노인 등을 대상으로 요금 무료 정책을 시행하는 선례는 있다.

세종시는 이번에 마무리되는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오는 6월까지 요금 무료화를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대중교통 기본조례 개정도 하반기 중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세종시가 예상하는 시내버스 전면 무료화 시점은 2025년 1월로 알려졌다.

관건은
적자 보충

관건은 재원 확보다. 현재 세종시 시내버스 요금은 1400원(현금 1500원)이다. 무료화가 시행되면 매년 500억∼1000억원의 적자가 날 것으로 추산된다. 세종시가 막대한 적자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정책의 성패가 갈릴 전망이다. 세종시 관계자는 “예산을 어떻게 확보할지, 적자를 어떻게 보충할지는 연구용역과 재정 여건을 고려해 검토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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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