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비운의 농구스타 김영희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2.06 12:16:02
  • 호수 14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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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가…비참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한국화장품의 장신 센터 김영희가 점보시리즈 개막 이래 최고의 스타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205㎝에 98㎏의 거구 김영희는 점보 1차 시리즈서 센터답게 1게임에서 한국 여자농구 사상 최고 기록인 52점을 올렸으며 리바운드도 17개나 뽑아내 공수 양면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경향신문>, 공포의 최장신 김영희, 1983)

지난 1일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은 충북 청주체육관에서 열린 청주 KB와 부천 하나원큐 경기 시작에 앞서 추모하는 묵념을 15초간 진행했다. 추모의 대상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LA)올림픽 여자농구 은메달리스트 김영희다. 김영희는 지난달 31일 향년 60세로 세상을 떠났다. 김영희의 별세 소식에 농구계가 슬픔에 잠겼다.

대한민국
최장신

김영희는 대한민국 역대 최장신 여자농구선수다. 205㎝ 키로 한국 여성 중에서도 최장신으로 알려졌다. 김영희가 아기 때부터 컸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작게 태어나 할머니가 백일기도를 할 정도였다. 김영희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165㎝ 정도로 크지 않았다.

장신으로 눈에 띄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에는 맨 뒤에 설 정도로 키가 작았지만, 5학년 때는 175㎝가 넘었다. 

운동선수에게 있어 큰 키는 그 자체로 좋은 자질이 될 수 있지만, 운동선수가 아닌 사람에게는 콤플렉스가 될 수 있다. 김영희는 “어려서부터 외계인 취급을 받았다. ‘장군감’이라고 말하던 동네 어른들을 피해 멀리 돌아다녔다. 경기도 부천으로 이사 갔을 때 아이들이 집 앞에 몰려와 ‘거인 나와라’고 외쳐댔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키가 커서 운동을 시작한 것은 맞다. 중학생 때 감독님이 ‘너는 서서 그물망에 공만 집어넣으면 된다’고 말했다. 큰 키 때문에 고등학교 때는 러브콜을 많이 받기도 했다”고 유년 시절을 회상했다. 

학교에서는 김영희 때문에 배구팀을 만들 정도였다. 중학교 2학년부터는 공부를 중단하고 서울로 상경해 1년 동안 실업 배구팀 생활을 했다. 당시 아버지는 결핵으로 요양 중이었고, 어머니는 생선 행상을 했다. 가난한 집에서 밥 구경도 못하다 서울 실업 배구팀으로 간 후 키는 187㎝까지 컸다.

결국 그가 운동을 선택한 것도 돈 때문이었다. 어릴 때부터 집안 형편이 어려워 1년 간 국수만 먹은 적도 있었다. 집안에 보탬이 되고 싶어 시작한 운동이었다. 어린 나이에 제안받은 월급은 김영희에게 큰돈이었다.

김영희가 처음부터 농구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농구와 배구선수를 전전하던 그는 동주여자중학교 농구부 시절 실업팀 한국화장품과 전속계약을 맺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큰 키는 축복이었다. 하지만 축복의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1981년 한국화장품 여자농구단에 입단한 김영희는 대회 엠블럼에 코끼리 그림이 들어간 점보시리즈가 출범하면서 주목받았다. 1983년 12월11일 한국화장품 대 조흥은행 경기에서 최다인 52점을 넣으며 개인 타이틀 5관왕을 차지했다. 득점상, 리바운드상, 야투투사율상, 최우수상, 인기상이었다. 

큰 키로 고등학교 때부터 러브콜
84년 올림픽 은메달 쾌거 주인공

1984년 LA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의 쾌거를 이룬 주역으로 활약했다. 그 공로로 이후 체육훈장 백마장과 맹호장 등을 받기도 했다.


언론은 김영희를 두고 “물찬 코끼리가 나르는 코끼리로 변했다”고 비유했다. 이때가 최전성기로 힘들어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면도 존재했다. 김영희는 성적 지상주의로 인한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받았다. 특별히 컸던 키는 뇌하수체서 분비되는 호르몬인 성장호르몬이 비정상적으로 과잉 분비되면서 발현된 결과였다. ‘거인증’이라고도 불리는 말단비대증은 초기에는 증상이 없고, 증상도 점진적으로 진행돼 최종 진단을 받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김영희는 고교 시절부터 병마에 시달렸다. 극심한 두통에 밤새 눈물을 흘린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너무 고통스러워 감독에게 훈련 및 경기를 빼달라고 사정하면 어린 선수의 꾀병으로 받아들였다. 아프다고 말하면 사우나에 들어가 몇 시간씩 러닝을 해야 했다. 

통증은 진통제로 해소했다. 경기에 나서기 전에는 독한 진통제를 먹어야 했고, 경기에 뛸 때는 고통을 잊었지만, 밤만 되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힘든 선수 시절이었다. 

이런 상황에 스피드가 느리다는 지적을 받았다. 3점슛 제도 도입으로 농구 전술이 바뀐 것도 악재였다. 김영희는 “경기에 지면 모든 게 내 탓이었다. 대표팀에서도 벤치에 자주 앉아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체중이 120㎏까지 불어났다.

훈련받기 어려울 정도로 몸이 무거워지자, 소속팀에선 체중감량을 요청해 물 한 방울조차 먹을 수 없었다.

1987년 11월 말단비대증 진단을 받았고 운동을 그만둬야 했다. 뼈 성장으로 손발과 얼굴 등은 물론 혀와 같은 연부 조직까지 커졌다. 저혈당 및 갑상선 질환, 장폐색 등 합병증도 김영희를 괴롭혔다. 

1987년 11월은 두통이 극심해졌다. 샤워할 때 머리에 감각이 없어질 정도였다. 이때가 스물다섯살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는 뇌종양 판정을 받아 꿈을 접어야 했다.

거인병
뭐길래…

김영희는 “망연자실한 상태로 수술실에 들어가려는데 간호사가 기쁜 소식이 왔다고 전했다. 신문에 ‘김영희, 점보시리즈 1000득점 돌파’라고 보도됐다”고 했다. 병원에서도 농구공을 손에 놓지 않으며 재기 의지를 이어갔지만 끝내 선수 생활을 접었다.

그렇다고 농구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수술 직후 훈련을 시작했지만 다시 쓰러졌다. 병원에선 ‘생명이 위독하다’고 우려했다. 이렇게 김영희의 선수 생활이 막을 내렸다.

불행은 파도처럼 찾아왔다. 아버지가 방광암 판정을 받았고, 그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뇌출혈로 1998년 세상을 떠났다. 이어 2000년 세 차례의 암 수술 끝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김영희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7개월 가까이 곡기를 끊었다. 130㎏ 나가던 체중이 70㎏까지 빠졌다. 목숨을 끊으려 한 적도 있다. 남동생의 간곡한 설득 때문에 다시 살기로 했다”며 “말단비대증으로 매달 150만원 넘게 드는 성장호르몬 억제 주사를 평생 맞아야 한다. 나를 왜 이렇게 크게 만들어 힘들게 하는지. 하늘을 수도 없이 원망했다”고 회상했다.

김영희를 가장 괴롭힌 것은 다름 아닌 돈이었다. 은메달리스트로 체육 연금 20만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 돈으로 한 달을 연명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부산의 8평 남짓한 아파트서 홀로 거주하며 계속되는 생활고를 겪었다. 어떤 때는 보름도 안 지났는데 7000원만 남은 적도 있었다. 

한 번 입원하면 2개월 넘게 했다. 안 좋은 일이 겹치면서 불안증, 우울증이 심해져 3~4년간 집 밖을 나가지 않을 때도 있었다. 영하 15도까지 내려가는 추운 날씨에 난방을 틀지 않고 울기도 했다. 

2002년 KBS <추적 60분> 방송팀이 김영희를 찾아왔다. 국가대표였던 김영희의 어려운 삶을 카메라에 담기 위한 것이었다. 방송팀과 함께 병원에 간 김영희는 자신이 거인병에 걸렸단 사실을 몰랐다. 은퇴 당시까지도 뇌하수체 종양으로 몸이 불편한 줄만 알았다.

당장 수술을 받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말은 김영희를 좌절시켰다. 이유는 결국 돈 때문이었다.

지독한 병마
나눔의 시작


김영희는 “당시 국가대표 선수 연금으로 매달 받는 20만원이 전 재산이었다. 당연히 수술비도 없었고, 간병해줄 사람도 없었다. 너무 서러워서 주저앉아 울었다. 병원에선 3일 동안 수술 여부를 결정해달라고 했다. 3일 뒤 그냥 죽음을 택하겠다”고 했다.

당시 그는 “밖에 나가도 사람들이 다 저를 피한다. 너무 큰 몸 때문에. 지금 제 모습이 너무 싫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김영희는 “그랬더니 병원에서 저와 비슷한 거인증을 앓던 남성이 약물치료로 나은 사례가 있다면서 수술 말고 치료를 권했다. 매달 주사 한 번 맞고 약 타는 데 300만원씩 들었다”며 “감사하게도 병원에서 ‘10년간 국가대표 선수로 국위 선양한 만큼 도움을 주자’고 결론내렸다. 이분들의 나눔으로 생명이 연장된 것”이라고 감사의 마음을 표하기도 했다.

도움의 손길은 또 이어졌다. 한 택시기사는 10년 넘게 몸이 불편한 김영희의 운전기사 역할을 자처했고, 집주인은 “평생 전세금을 올리지 않을 테니 이곳에서 편하게 오래오래 살라”고 배려했다.

쌀과 음료 등 식재료가 떨어질 때마다 몰래 채워주기도 했다. 제주도서 겨울마다 한라봉을 보내주는 따뜻한 이웃도 있었다. 선수 시절 혼자 경기를 보러 왔던 한 장애인은 김영희의 소식을 들은 뒤 매달 5만원의 성금을 보냈다. 

이런 김영희의 머릿속에 떠오른 말이 있다. 바로 어머니의 유언이다.

모친은 “엄마, 아빠 다 죽고 너 혼자 되면 남에게 먼저 베푸는 삶을 살아라. 너가 나중에 늙어 걷기도 힘들 때 누가 널 도와주지 않는다”며 “힘들어도 누군가를 부축하고 일으켜야 너도 살 수 있다. 너가 먼저 고개 숙이고 베풀어야만 다른 사람들도 너를 돌봐주는 것”이라는 유언을 남겼다.

기초연금과 메달 포상연금 등으로 생활한 김영희는 면도날 끼우기, 양말 실밥 제거, 전자제품 조립 등 가내 부업으로 장애인과 소년소녀 가장 등을 도왔다. 자신에게 들어오는 쌀 같은 구호품 등도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줬다. 그렇게 하루 버는 돈은 1만원도 되지 않았지만, 김영희는 행복했다.

장애인 자원봉사는 김영희를 부끄럽게 했다. 불편한 몸으로 양말을 신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홀몸 노인에게 팥죽을 끓여주기도 하고 자신을 놀리던 꼬마들에게는 과자와 사탕을 건네기도 했다.

승합차에 과자, 음료수, 떡, 양말을 가득 싣고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중증장애인 시설을 찾았다. 김영희가 문에 들어서자 50명의 장애 아이들이 겁을 내며 달아났다. 처음엔 쭈뼛거리며 다가오지 않던 아이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가까워져 결국 친구가 됐다.

말단비대증 합병증으로 선수 생활 중단
“장애인 봉사 시작으로 우울증 치료해”

김영희는 아이들이 신고 있던 낡은 덧버선을 예쁜 수면양말로 바꿔 신겼다. 다리와 발가락이 휘어져 양말을 신기조차 어려운 친구를 만났을 땐 눈물이 흘렀다. 

이런 경험은 그의 삶을 바꿨다. 자신이 가진 아픔으로 끙끙 앓던 과거 모습을 부끄럽게 느꼈다. 헤어질 때면 손을 꼭 잡고 가지 말라고 외치던 아이들의 모습이 항상 눈에 아른거렸다.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 시설이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양손 가득 물품을 들고 찾아갔다. 그렇게 김영희가 다녀간 장애인 시설 및 보육원만 4곳이다.

김영희의 모습을 본 동네 주민들도 나눔에 동참했다. 인근 중국집 사장은 “혼자 좋은 일 하지 말고 같이하자”며 70인분 자장면을 들고 장애인 시설을 방문했다.

성금을 걷어 전달하는 이들도 있었다. 증상이 악화된 이후부터는 독거노인을 위한 나눔을 시작했다. 장애인 시설을 방문하기엔 걷는 것조차 버거웠기 때문이다.

동네에는 혼자 사는 노인이 많았다. 김영희는 보름을 굶었다는 할아버지를 위해 갈비탕을 사 드렸다. 동네 노인이 김영희의 집에 오면 호박죽도 만들고 가락국수도 만들어 대접했다. 남은 음식은 용기에 담아 싸드리기도 했다.

먼저 다가가니 사람들도 그에게 다가왔다. 이때부터 김영희의 별명은 ‘거인 아줌마’에서 ‘이쁜이’로 바뀌었고, 집은 동네 사랑방이 됐다. 이웃은 “아픈 데 없냐” “밥은 먹었냐”며 매일 찾아와 음식을 나눠줬다. 김영희는 혼자 사는 어른과 한 가족처럼 의지하며 지냈다. 덕분에 심각했던 외로움과 우울증을 떨쳐낼 수 있었다.

평생을 미혼으로 살아온 김영희지만, 아이들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아래층에서 조부모와 함께 사는 어린 자매에게 김영희는 또 다른 엄마였다. 성금이 들어올 때마다 생활비, 병원비는 물론 컴퓨터 등 필요한 학용품도 사줬다.

그렇게 8년간 아이들을 키웠고 고민 상담도 했다. 김영희는 “학교서 친구들이 계속 돈을 가져오라고 한다고 울었다. 안 그러면 엄청나게 맞는다면서 우는데, 나는 안 되겠다 싶었다. 학교 교장 선생님께 전화해 학교폭력을 해결해 달라고 강력하게 항의했다”며 “담임 선생님이 찾아와서 아이 이야길 천천히 듣고는 해결을 약속했다. 아이는 이제 성인이 됐고, 지금도 ‘이모 보고 싶다’며 연락이 온다”고 따뜻한 미소를 보였다.

따뜻하게
기억되길

김영희는 떠났다. 하지만 그가 남긴 따뜻함은 여전하다. “제가 좋아하는 시에 이런 문구가 있다. ‘사랑도 훨~훨, 미움도 훨~훨, 하늘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훨~훨, 성냄도 훨~훨, 물같이 바람같이 그렇게 살라 하네.’ 저도 그렇게 살고 싶다.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에 키가 큰 여자가 있었는데, 마음은 솜사탕이더라’는 기억을 남기고 싶다. 그거면 충분하다. 이 덩치에 마음이 좋으면 안 된다. 이웃을 향한 작은 관심이야말로 나눔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절망 속에 있던 제가 일어선 것처럼.”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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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