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 클럽 의혹’ 검찰 수사 급물살 내막

정영학 녹취록 공개 ‘발등에 불’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대장동 의혹 핵심 증거로 꼽히는 ‘정영학 녹취록’ 전문이 공개됐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로 연결되는 지점 외에도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씨의 로비 행위까지 드러났다. 50억 클럽 의혹에 대해 소극적 수사로 일관하던 검찰은 대외적 비판을 의식한 분위기다. 급작스레 박영수 전 특검에 대한 소환조사에 나선 것이다. 검찰이 박 전 특검을 시작으로 김수남 전 검찰총장과 최재경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향해서도 칼날을 들이밀지는 아직 미지수다.

‘50억 클럽’은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씨의 로비 의혹으로 둘러싸여 있다. 지금까지 50억 클럽에 대한 검찰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국민의힘 곽상도 전 의원을 제외하면 재판에 넘겨진 인물이 없다. 50억 클럽으로 거론된 이는 박영수 전 특검과 권순일 전 대법관, 김수남 전 검찰총장, 곽 전 의원, 최재경 전 청와대 민정수석, 홍선근 <머니투데이> 회장 등이다. 

지지부진
물밑으로

검찰은 소극적 입장을 밝히고 있으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한 이후 이들에 대해 핀셋 수사를 이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 수사1부(부장검사 김명석)는 최근 박 전 특검 등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뇌물수수 및 공여 혐의 사건을 배당받아 고발장을 분석하는 등 수사 착수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이는 지난달 17일,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가 박 전 특검과 권 전 대법관 등 ‘50억 클럽’으로 지목됐던 이들을 공수처에 고발한 건이다.

홍 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은 공수처 수사 대상에 속한다.


다만 공수처 안팎에서는 이미 검찰 수사가 진행됐던 점을 고려해 서울중앙지검에 사건을 넘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공수처는 사건의 내용과 규모 등에 비춰 볼 때 다른 수사기관이 고위공직자범죄를 수사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하면 사건을 이첩할 수 있다.

검찰은 지난해 초 ‘정영학 녹취록’에 50억 클럽으로 거론된 박 전 특검을 불러 조사하고, 그다음 달인 2월 아들 퇴직금 등 명목으로 대장동 민간사업자 쪽에게 50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곽 전 의원을 구속 기소했다. 오랜 시간 동안 관련 사건을 진행해온 검찰에 사건을 넘길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다만, 검찰 수사가 대장동 민간사업자들과 당시 성남시청의 의사 결정 과정을 중심으로 한 배임 의혹을 중심으로 급물살을 타면서, 50억 클럽 관련 수사가 사실상 멈춰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수처가 직접 수사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공수처가 사건 이첩을 요청하면 다른 수사기관은 이에 응해야 한다.

이미 재판에 넘겨진 곽 전 의원 측은 “법원에서도 녹취록의 문제점이 확인됐다. 녹취록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해명되는 중”이라고 밝히면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김 전 총장과 최 전 수석은 “대장동 사업에 관여한 바가 일체 없다. 따라서 금품을 받거나 약속한 사실도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이어 “녹취록은 그 내용이 사실과 다름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사실 확인이나 검증 절차 없이 녹취록 또는 실명을 보도하는 것은 심각한 법적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부장판사 양철한)도 녹취록만으로는 유무죄를 따질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재판부는 “녹취록이 중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피고인 결백이나 공소사실이 입증되기는 어렵다. 객관적 증거가 중요하다”고 했다.

소극적 수사 비판 의식했나…박영수 급소환
홍선근 회장까지 소환…김수남·최재경 검토


다만 50억원 클럽을 수사하는 검찰의 소극적 태도를 두고는 ‘제 식구 봐주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곽 전 의원과 달리 구체적 돈거래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더라도 실명이 거론된 검찰 고위직 출신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박 전 특검과 홍 회장은 중앙지검 수사를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3부(부장검사 강백신)는 박 전 특검의 딸 박모씨의 주택법 위반 혐의 사건을 지난해 10월 중순 수원지검으로부터 넘겨받아 배당한 뒤 자료 검토 등 본격적인 수사를 진행 중이다.

박씨는 지난해 6월 화천대유가 보유하던 성남시 대장동 ‘판교 퍼스트힐 푸르지오(A1·2블록)’ 아파트(84㎡)를 비정상적으로 분양받은 혐의를 받는다. 주택법상 분양 계약이 해지돼 미분양으로 전환된 아파트는 공모 절차를 다시 거쳐야 하지만, 화천대유는 이런 절차 없이 박씨 등 2명에게 아파트를 분양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 전 특검의 인척으로 알려진 대장동 분양대행사 대표 이모씨는 김씨로부터 109억원을 전달받아 이 중 100억원을 2019년경 토목업자 나모씨에게 전달한 데 대해 검찰은 이 과정에서 돈의 일부가 박 전 특검에게 흘러갔을 가능성도 의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 사건을 수사한 경기남부경찰청은 지난 9월 화천대유 이성문 대표와 박씨, 박씨와 같은 경위로 아파트를 분양받은 일반인 1명 등 3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중앙지검은 수원지검으로부터 이 사건을 넘겨받아 지난 10월 중순 대장동 수사를 진행 중인 반부패수사3부에 배당했다.

홍 회장 사건도 마찬가지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지난해 11월 홍 회장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수원지검에 송치했다. 홍 회장은 2019년 10월 김씨로부터 아내와 아들 명의로 총 50억원을 빌렸다가 약 두 달 뒤 이자 없이 원금만 갚은 혐의를 받는다.

소극적 태도
식구 봐주기?

수원지검은 같은 달 29일, 해당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첩했다. 50억 클럽 관련 사건이 대장동을 수사하는 중앙지검으로 모이고 있는 것이다.

대장동 의혹 핵심 인물인 남욱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출소 후 대장동 사건에 대한 폭로를 이어갔다. 그는 최근 대장동 공판서 “김만배씨가 최윤길 전 성남시의회 의장의 뇌물 수수 사건을 잘 봐달라고 김수남 전 검찰총장에게 얘기했다는 것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김씨가 (내게) 사업에서 빠지라고 할 때 ‘재경이형이나 수남이형도 네가 있으면 문제가 되니까 빠지라고 했다’”고도 했다.

검찰도 최근 남 변호사를 불러 권 전 대법관과 관련된 의혹에 대해 다시 물은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검찰은 남 변호사에게 “김만배씨가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과 성남 제1공단 공원화 무효 소송 등 두 사건을 대법원에서 뒤집었다’고 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가 대법관에게 부탁해 사건을 해결했다는 취지의 전언 진술이다. 앞서 남 변호사는 2021년 10월 검찰 조사에서도 같은 취지의 진술을 했다.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은 2020년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사건이다. 2019년 9월 항소심은 이 대표에게 경기도지사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상태였다. 당시 현직이던 권 전 대법관은 이 대표 사건에 대한 유무죄 의견이 대법관 사이에서 팽팽히 엇갈리던 가운데 무죄 취지 의견을 밝히면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2020년 9월 퇴임한 권 전 대법관은 그해 11월부터 화천대유 고문으로 재직했는데, 이 같은 재판거래의 대가로 고문이 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남 변호사가 언급한 성남시 제1공단 공원화 무효 소송은 성남시와 민간사업자 사이에 제기된 행정소송이다. 2010년 성남시장에 당선된 이 대표가 제1공단 개발을 취소하고 공원화에 나서자, 시행사가 성남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걸었다.

당시 2심은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는데, 2016년 대법원은 원심을 뒤집고 성남시의 승소 판결을 냈다. 검찰은 남 변호사의 전언 진술의 진위와 더불어 권 전 대법관이 화천대유 고문직에 오른 경위에 대해서도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시간 끌기”
지적 부담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검찰은 최 전 수석과 김 전 총장에 대해 지난해 7월 50억 클럽 관련 서면조사를 진행했다. 박 전 특검과 홍 회장, 권 전 대법관에 대해 자세한 사건 파악을 진행하고 있어 최 전 수석과 김 전 총장에 대한 소환조사도 곧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검찰도 50억 클럽에 대한 시간 끌기 비판을 듣고 부담을 느끼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검찰 관계자는 “박 전 특검과 홍 회장에 대한 소환조사는 지난해부터 진행됐고 권 전 대법관은 조만간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며 “수사가 답보 상태였다기보다는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가 강도 높게 진행되다 보니 50억 클럽 수사가 대외적으로 속도감이 없어 보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재경지검 검사도 “중앙지검 내부에서 50억 클럽에 대해 수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대장동 수사팀도 이 대표 수사를 마무리지으면 순차적으로 현재까지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검증하고 문제가 된다면 수사에 나설 것이다. 박 전 특검과 김 전 총장, 최 전 수석 등에 대해 아예 손을 놓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했다.

50억 클럽 멤버는 아니지만 수원지검 성남지청장을 역임한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도 정영학 녹취록에서 여러 번 언급된다. 윤 전 고검장은 2013년 4월까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을, 그해 4월부터 12월까지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를 맡았는데, 김씨가 직전 성남지청장이었던 윤 전 고검장을 통해 어떤 사건을 해결했다는 내용의 대화가 오간다.

2012년 8월18일, 남 변호사는 김씨와의 대화 내용을 정영학 회계사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윤갑근 차장이 검사장인데, 검사장이 직접 계장(성남지청 계장)한테 전화하는 예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차장님도 (계장에게) 전화를 하셨다고, 얼마나(김만배씨가 윤갑근 전 지청장을) 달달 볶았으면 전화했겠어요. 그래서 그것도 그렇게 정리를 했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잘 마무리해서 무혐의로 종결하겠다고 저한테 대놓고 얘기했으니까, 다시 안 부르겠다고”고 말했다.

즉, 김씨가 윤 전 고검장에게 수사를 무마해달라고 청탁했고, 윤 전 고검장이 압력을 행사해 무혐의 종결로 처분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남 변호사는 “보니까 만배형이 고생을 많이 했네”라며 고마워하기도 했다.

이재명 마무리 후 속도 높일 듯
재판부, 누구의 말 더 신뢰할까

‘박근혜 청와대’ 정보를 입수해, 수사 등에 미리 대비했던 흔적도 보인다. 2014년 7월28일, 남 변호사는 김씨가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민정비서관과 만나 대화한 내용이라고 전하며, 청와대가 대장동 사업자들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한다.

김씨가 “다 스톱하라”고 했다며, 남 변호사도 “휴대폰을 다 부수고, 아무도 만나지 말자”고 얘기했다. 정 회계사는 “저도 웬만하면 자료를 다 없애야겠다”고 강조했다.

현재까지 정영학 녹취록에서 언급된 이들은 연관성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김씨도 최근 곽 전 의원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사회적으로 권력 있는 분들을 팔아서 얘기한 측면이 있어 죄송하다”며 “남 변호사와 정 회계사에게 화천대유 직원들 인센티브를 부담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허언이었다”고 해명했다.

이들의 주장대로 허언인지, 실체가 있는 혐의인지는 검찰 수사에 속도감이 붙으면 밝혀질 전망이다. 특히 제한된 기간의, 제한된 대화 내용이 담긴 만큼 녹취록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50억 클럽 멤버들에 대한 청탁 의혹은 검찰 수사를 통해 추가로 밝혀져야 한다.

정영학 녹취록 속 대화들이 일부 허언일 가능성 때문인지 검찰은 곽 전 의원의 재판을 지켜보고 있다. 향후 50억 클럽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고 50억원의 성격 및 김씨 진술의 신빙성 등에 대한 법원 판단에 따라 다른 인물에 대한 수월한 수사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당초 지난달 25일 1심 선고기일로 정했다가 오는 8일로 변경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대장동 비리사건에서 중요한 부패의 한 축”이라고 규정하며 곽 전 의원에게 징역 15년형과 벌금 50억여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곽 전 의원은 “왜 재판받고 있는지 납득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곽 전 의원 아들에게 지급된 50억원의 정체를 두고 대장동 일당 등은 엇갈리는 진술을 내놨다. 재판부가 누구의 말을 더 신뢰할만하다고 판단하는지가 관건이다.

검찰은 정 회계사의 녹취록을 토대로 곽 전 의원의 혐의를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녹취록에는 화천대유 대주주 김씨가 정 회계사, 유동규 전 본부장 등과 대화하면서 ‘(곽 전 의원이)아들을 통해 돈 달라고 한다’고 말한 것, 곽 전 의원에게 돈을 전달할 방법을 논의한 상황 등이 담겼다.

남 변호사도 “곽 전 의원이 컨소시엄 무산을 막아줬다는 이야기를 김씨한테 들었다”며 검찰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언을 했다.

대장동 사건
중요한 한 축

곽 전 의원이 자신의 몫을 요구해 김씨와 다툼이 있었다는 서울 서초동 한 식당에서의 식사 자리도 재판에서 여러 번 다뤄졌다. 검찰은 당시 저녁 식사에서 곽 전 의원이 “돈을 많이 벌었으면 나눠야지”라며 자신의 몫을 요구해 김씨와 다툼이 벌어졌다고 봤다. 정 회계사와 남 변호사도 “당시 둘 사이 언쟁이 있었다”고 공통적으로 증언했다. 검찰은 이를 곽 전 의원과 김씨 사이에 50억원 약정이 사전에 있었음을 뒷받침하는 주요한 근거로 내세웠다.


<hounder@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