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 클럽 의혹’ 검찰 수사 급물살 내막

정영학 녹취록 공개 ‘발등에 불’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대장동 의혹 핵심 증거로 꼽히는 ‘정영학 녹취록’ 전문이 공개됐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로 연결되는 지점 외에도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씨의 로비 행위까지 드러났다. 50억 클럽 의혹에 대해 소극적 수사로 일관하던 검찰은 대외적 비판을 의식한 분위기다. 급작스레 박영수 전 특검에 대한 소환조사에 나선 것이다. 검찰이 박 전 특검을 시작으로 김수남 전 검찰총장과 최재경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향해서도 칼날을 들이밀지는 아직 미지수다.

‘50억 클럽’은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씨의 로비 의혹으로 둘러싸여 있다. 지금까지 50억 클럽에 대한 검찰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국민의힘 곽상도 전 의원을 제외하면 재판에 넘겨진 인물이 없다. 50억 클럽으로 거론된 이는 박영수 전 특검과 권순일 전 대법관, 김수남 전 검찰총장, 곽 전 의원, 최재경 전 청와대 민정수석, 홍선근 <머니투데이> 회장 등이다. 

지지부진
물밑으로

검찰은 소극적 입장을 밝히고 있으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한 이후 이들에 대해 핀셋 수사를 이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 수사1부(부장검사 김명석)는 최근 박 전 특검 등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뇌물수수 및 공여 혐의 사건을 배당받아 고발장을 분석하는 등 수사 착수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이는 지난달 17일,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가 박 전 특검과 권 전 대법관 등 ‘50억 클럽’으로 지목됐던 이들을 공수처에 고발한 건이다.

홍 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은 공수처 수사 대상에 속한다.


다만 공수처 안팎에서는 이미 검찰 수사가 진행됐던 점을 고려해 서울중앙지검에 사건을 넘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공수처는 사건의 내용과 규모 등에 비춰 볼 때 다른 수사기관이 고위공직자범죄를 수사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하면 사건을 이첩할 수 있다.

검찰은 지난해 초 ‘정영학 녹취록’에 50억 클럽으로 거론된 박 전 특검을 불러 조사하고, 그다음 달인 2월 아들 퇴직금 등 명목으로 대장동 민간사업자 쪽에게 50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곽 전 의원을 구속 기소했다. 오랜 시간 동안 관련 사건을 진행해온 검찰에 사건을 넘길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다만, 검찰 수사가 대장동 민간사업자들과 당시 성남시청의 의사 결정 과정을 중심으로 한 배임 의혹을 중심으로 급물살을 타면서, 50억 클럽 관련 수사가 사실상 멈춰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수처가 직접 수사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공수처가 사건 이첩을 요청하면 다른 수사기관은 이에 응해야 한다.

이미 재판에 넘겨진 곽 전 의원 측은 “법원에서도 녹취록의 문제점이 확인됐다. 녹취록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해명되는 중”이라고 밝히면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김 전 총장과 최 전 수석은 “대장동 사업에 관여한 바가 일체 없다. 따라서 금품을 받거나 약속한 사실도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이어 “녹취록은 그 내용이 사실과 다름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사실 확인이나 검증 절차 없이 녹취록 또는 실명을 보도하는 것은 심각한 법적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부장판사 양철한)도 녹취록만으로는 유무죄를 따질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재판부는 “녹취록이 중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피고인 결백이나 공소사실이 입증되기는 어렵다. 객관적 증거가 중요하다”고 했다.

소극적 수사 비판 의식했나…박영수 급소환
홍선근 회장까지 소환…김수남·최재경 검토


다만 50억원 클럽을 수사하는 검찰의 소극적 태도를 두고는 ‘제 식구 봐주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곽 전 의원과 달리 구체적 돈거래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더라도 실명이 거론된 검찰 고위직 출신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박 전 특검과 홍 회장은 중앙지검 수사를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3부(부장검사 강백신)는 박 전 특검의 딸 박모씨의 주택법 위반 혐의 사건을 지난해 10월 중순 수원지검으로부터 넘겨받아 배당한 뒤 자료 검토 등 본격적인 수사를 진행 중이다.

박씨는 지난해 6월 화천대유가 보유하던 성남시 대장동 ‘판교 퍼스트힐 푸르지오(A1·2블록)’ 아파트(84㎡)를 비정상적으로 분양받은 혐의를 받는다. 주택법상 분양 계약이 해지돼 미분양으로 전환된 아파트는 공모 절차를 다시 거쳐야 하지만, 화천대유는 이런 절차 없이 박씨 등 2명에게 아파트를 분양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 전 특검의 인척으로 알려진 대장동 분양대행사 대표 이모씨는 김씨로부터 109억원을 전달받아 이 중 100억원을 2019년경 토목업자 나모씨에게 전달한 데 대해 검찰은 이 과정에서 돈의 일부가 박 전 특검에게 흘러갔을 가능성도 의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 사건을 수사한 경기남부경찰청은 지난 9월 화천대유 이성문 대표와 박씨, 박씨와 같은 경위로 아파트를 분양받은 일반인 1명 등 3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중앙지검은 수원지검으로부터 이 사건을 넘겨받아 지난 10월 중순 대장동 수사를 진행 중인 반부패수사3부에 배당했다.

홍 회장 사건도 마찬가지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지난해 11월 홍 회장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수원지검에 송치했다. 홍 회장은 2019년 10월 김씨로부터 아내와 아들 명의로 총 50억원을 빌렸다가 약 두 달 뒤 이자 없이 원금만 갚은 혐의를 받는다.

소극적 태도
식구 봐주기?

수원지검은 같은 달 29일, 해당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첩했다. 50억 클럽 관련 사건이 대장동을 수사하는 중앙지검으로 모이고 있는 것이다.

대장동 의혹 핵심 인물인 남욱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출소 후 대장동 사건에 대한 폭로를 이어갔다. 그는 최근 대장동 공판서 “김만배씨가 최윤길 전 성남시의회 의장의 뇌물 수수 사건을 잘 봐달라고 김수남 전 검찰총장에게 얘기했다는 것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김씨가 (내게) 사업에서 빠지라고 할 때 ‘재경이형이나 수남이형도 네가 있으면 문제가 되니까 빠지라고 했다’”고도 했다.

검찰도 최근 남 변호사를 불러 권 전 대법관과 관련된 의혹에 대해 다시 물은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검찰은 남 변호사에게 “김만배씨가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과 성남 제1공단 공원화 무효 소송 등 두 사건을 대법원에서 뒤집었다’고 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가 대법관에게 부탁해 사건을 해결했다는 취지의 전언 진술이다. 앞서 남 변호사는 2021년 10월 검찰 조사에서도 같은 취지의 진술을 했다.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은 2020년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사건이다. 2019년 9월 항소심은 이 대표에게 경기도지사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상태였다. 당시 현직이던 권 전 대법관은 이 대표 사건에 대한 유무죄 의견이 대법관 사이에서 팽팽히 엇갈리던 가운데 무죄 취지 의견을 밝히면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2020년 9월 퇴임한 권 전 대법관은 그해 11월부터 화천대유 고문으로 재직했는데, 이 같은 재판거래의 대가로 고문이 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남 변호사가 언급한 성남시 제1공단 공원화 무효 소송은 성남시와 민간사업자 사이에 제기된 행정소송이다. 2010년 성남시장에 당선된 이 대표가 제1공단 개발을 취소하고 공원화에 나서자, 시행사가 성남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걸었다.

당시 2심은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는데, 2016년 대법원은 원심을 뒤집고 성남시의 승소 판결을 냈다. 검찰은 남 변호사의 전언 진술의 진위와 더불어 권 전 대법관이 화천대유 고문직에 오른 경위에 대해서도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시간 끌기”
지적 부담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검찰은 최 전 수석과 김 전 총장에 대해 지난해 7월 50억 클럽 관련 서면조사를 진행했다. 박 전 특검과 홍 회장, 권 전 대법관에 대해 자세한 사건 파악을 진행하고 있어 최 전 수석과 김 전 총장에 대한 소환조사도 곧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검찰도 50억 클럽에 대한 시간 끌기 비판을 듣고 부담을 느끼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검찰 관계자는 “박 전 특검과 홍 회장에 대한 소환조사는 지난해부터 진행됐고 권 전 대법관은 조만간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며 “수사가 답보 상태였다기보다는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가 강도 높게 진행되다 보니 50억 클럽 수사가 대외적으로 속도감이 없어 보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재경지검 검사도 “중앙지검 내부에서 50억 클럽에 대해 수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대장동 수사팀도 이 대표 수사를 마무리지으면 순차적으로 현재까지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검증하고 문제가 된다면 수사에 나설 것이다. 박 전 특검과 김 전 총장, 최 전 수석 등에 대해 아예 손을 놓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했다.

50억 클럽 멤버는 아니지만 수원지검 성남지청장을 역임한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도 정영학 녹취록에서 여러 번 언급된다. 윤 전 고검장은 2013년 4월까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을, 그해 4월부터 12월까지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를 맡았는데, 김씨가 직전 성남지청장이었던 윤 전 고검장을 통해 어떤 사건을 해결했다는 내용의 대화가 오간다.

2012년 8월18일, 남 변호사는 김씨와의 대화 내용을 정영학 회계사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윤갑근 차장이 검사장인데, 검사장이 직접 계장(성남지청 계장)한테 전화하는 예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차장님도 (계장에게) 전화를 하셨다고, 얼마나(김만배씨가 윤갑근 전 지청장을) 달달 볶았으면 전화했겠어요. 그래서 그것도 그렇게 정리를 했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잘 마무리해서 무혐의로 종결하겠다고 저한테 대놓고 얘기했으니까, 다시 안 부르겠다고”고 말했다.

즉, 김씨가 윤 전 고검장에게 수사를 무마해달라고 청탁했고, 윤 전 고검장이 압력을 행사해 무혐의 종결로 처분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남 변호사는 “보니까 만배형이 고생을 많이 했네”라며 고마워하기도 했다.

이재명 마무리 후 속도 높일 듯
재판부, 누구의 말 더 신뢰할까

‘박근혜 청와대’ 정보를 입수해, 수사 등에 미리 대비했던 흔적도 보인다. 2014년 7월28일, 남 변호사는 김씨가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민정비서관과 만나 대화한 내용이라고 전하며, 청와대가 대장동 사업자들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한다.

김씨가 “다 스톱하라”고 했다며, 남 변호사도 “휴대폰을 다 부수고, 아무도 만나지 말자”고 얘기했다. 정 회계사는 “저도 웬만하면 자료를 다 없애야겠다”고 강조했다.

현재까지 정영학 녹취록에서 언급된 이들은 연관성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김씨도 최근 곽 전 의원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사회적으로 권력 있는 분들을 팔아서 얘기한 측면이 있어 죄송하다”며 “남 변호사와 정 회계사에게 화천대유 직원들 인센티브를 부담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허언이었다”고 해명했다.

이들의 주장대로 허언인지, 실체가 있는 혐의인지는 검찰 수사에 속도감이 붙으면 밝혀질 전망이다. 특히 제한된 기간의, 제한된 대화 내용이 담긴 만큼 녹취록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50억 클럽 멤버들에 대한 청탁 의혹은 검찰 수사를 통해 추가로 밝혀져야 한다.

정영학 녹취록 속 대화들이 일부 허언일 가능성 때문인지 검찰은 곽 전 의원의 재판을 지켜보고 있다. 향후 50억 클럽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고 50억원의 성격 및 김씨 진술의 신빙성 등에 대한 법원 판단에 따라 다른 인물에 대한 수월한 수사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당초 지난달 25일 1심 선고기일로 정했다가 오는 8일로 변경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대장동 비리사건에서 중요한 부패의 한 축”이라고 규정하며 곽 전 의원에게 징역 15년형과 벌금 50억여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곽 전 의원은 “왜 재판받고 있는지 납득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곽 전 의원 아들에게 지급된 50억원의 정체를 두고 대장동 일당 등은 엇갈리는 진술을 내놨다. 재판부가 누구의 말을 더 신뢰할만하다고 판단하는지가 관건이다.

검찰은 정 회계사의 녹취록을 토대로 곽 전 의원의 혐의를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녹취록에는 화천대유 대주주 김씨가 정 회계사, 유동규 전 본부장 등과 대화하면서 ‘(곽 전 의원이)아들을 통해 돈 달라고 한다’고 말한 것, 곽 전 의원에게 돈을 전달할 방법을 논의한 상황 등이 담겼다.

남 변호사도 “곽 전 의원이 컨소시엄 무산을 막아줬다는 이야기를 김씨한테 들었다”며 검찰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언을 했다.

대장동 사건
중요한 한 축

곽 전 의원이 자신의 몫을 요구해 김씨와 다툼이 있었다는 서울 서초동 한 식당에서의 식사 자리도 재판에서 여러 번 다뤄졌다. 검찰은 당시 저녁 식사에서 곽 전 의원이 “돈을 많이 벌었으면 나눠야지”라며 자신의 몫을 요구해 김씨와 다툼이 벌어졌다고 봤다. 정 회계사와 남 변호사도 “당시 둘 사이 언쟁이 있었다”고 공통적으로 증언했다. 검찰은 이를 곽 전 의원과 김씨 사이에 50억원 약정이 사전에 있었음을 뒷받침하는 주요한 근거로 내세웠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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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