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 클럽 의혹’ 검찰 수사 급물살 내막

정영학 녹취록 공개 ‘발등에 불’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대장동 의혹 핵심 증거로 꼽히는 ‘정영학 녹취록’ 전문이 공개됐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로 연결되는 지점 외에도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씨의 로비 행위까지 드러났다. 50억 클럽 의혹에 대해 소극적 수사로 일관하던 검찰은 대외적 비판을 의식한 분위기다. 급작스레 박영수 전 특검에 대한 소환조사에 나선 것이다. 검찰이 박 전 특검을 시작으로 김수남 전 검찰총장과 최재경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향해서도 칼날을 들이밀지는 아직 미지수다.

‘50억 클럽’은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씨의 로비 의혹으로 둘러싸여 있다. 지금까지 50억 클럽에 대한 검찰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국민의힘 곽상도 전 의원을 제외하면 재판에 넘겨진 인물이 없다. 50억 클럽으로 거론된 이는 박영수 전 특검과 권순일 전 대법관, 김수남 전 검찰총장, 곽 전 의원, 최재경 전 청와대 민정수석, 홍선근 <머니투데이> 회장 등이다. 

지지부진
물밑으로

검찰은 소극적 입장을 밝히고 있으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한 이후 이들에 대해 핀셋 수사를 이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 수사1부(부장검사 김명석)는 최근 박 전 특검 등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뇌물수수 및 공여 혐의 사건을 배당받아 고발장을 분석하는 등 수사 착수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이는 지난달 17일,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가 박 전 특검과 권 전 대법관 등 ‘50억 클럽’으로 지목됐던 이들을 공수처에 고발한 건이다.

홍 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은 공수처 수사 대상에 속한다.


다만 공수처 안팎에서는 이미 검찰 수사가 진행됐던 점을 고려해 서울중앙지검에 사건을 넘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공수처는 사건의 내용과 규모 등에 비춰 볼 때 다른 수사기관이 고위공직자범죄를 수사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하면 사건을 이첩할 수 있다.

검찰은 지난해 초 ‘정영학 녹취록’에 50억 클럽으로 거론된 박 전 특검을 불러 조사하고, 그다음 달인 2월 아들 퇴직금 등 명목으로 대장동 민간사업자 쪽에게 50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곽 전 의원을 구속 기소했다. 오랜 시간 동안 관련 사건을 진행해온 검찰에 사건을 넘길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다만, 검찰 수사가 대장동 민간사업자들과 당시 성남시청의 의사 결정 과정을 중심으로 한 배임 의혹을 중심으로 급물살을 타면서, 50억 클럽 관련 수사가 사실상 멈춰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수처가 직접 수사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공수처가 사건 이첩을 요청하면 다른 수사기관은 이에 응해야 한다.

이미 재판에 넘겨진 곽 전 의원 측은 “법원에서도 녹취록의 문제점이 확인됐다. 녹취록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해명되는 중”이라고 밝히면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김 전 총장과 최 전 수석은 “대장동 사업에 관여한 바가 일체 없다. 따라서 금품을 받거나 약속한 사실도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이어 “녹취록은 그 내용이 사실과 다름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사실 확인이나 검증 절차 없이 녹취록 또는 실명을 보도하는 것은 심각한 법적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부장판사 양철한)도 녹취록만으로는 유무죄를 따질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재판부는 “녹취록이 중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피고인 결백이나 공소사실이 입증되기는 어렵다. 객관적 증거가 중요하다”고 했다.

소극적 수사 비판 의식했나…박영수 급소환
홍선근 회장까지 소환…김수남·최재경 검토


다만 50억원 클럽을 수사하는 검찰의 소극적 태도를 두고는 ‘제 식구 봐주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곽 전 의원과 달리 구체적 돈거래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더라도 실명이 거론된 검찰 고위직 출신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박 전 특검과 홍 회장은 중앙지검 수사를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3부(부장검사 강백신)는 박 전 특검의 딸 박모씨의 주택법 위반 혐의 사건을 지난해 10월 중순 수원지검으로부터 넘겨받아 배당한 뒤 자료 검토 등 본격적인 수사를 진행 중이다.

박씨는 지난해 6월 화천대유가 보유하던 성남시 대장동 ‘판교 퍼스트힐 푸르지오(A1·2블록)’ 아파트(84㎡)를 비정상적으로 분양받은 혐의를 받는다. 주택법상 분양 계약이 해지돼 미분양으로 전환된 아파트는 공모 절차를 다시 거쳐야 하지만, 화천대유는 이런 절차 없이 박씨 등 2명에게 아파트를 분양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 전 특검의 인척으로 알려진 대장동 분양대행사 대표 이모씨는 김씨로부터 109억원을 전달받아 이 중 100억원을 2019년경 토목업자 나모씨에게 전달한 데 대해 검찰은 이 과정에서 돈의 일부가 박 전 특검에게 흘러갔을 가능성도 의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 사건을 수사한 경기남부경찰청은 지난 9월 화천대유 이성문 대표와 박씨, 박씨와 같은 경위로 아파트를 분양받은 일반인 1명 등 3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중앙지검은 수원지검으로부터 이 사건을 넘겨받아 지난 10월 중순 대장동 수사를 진행 중인 반부패수사3부에 배당했다.

홍 회장 사건도 마찬가지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지난해 11월 홍 회장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수원지검에 송치했다. 홍 회장은 2019년 10월 김씨로부터 아내와 아들 명의로 총 50억원을 빌렸다가 약 두 달 뒤 이자 없이 원금만 갚은 혐의를 받는다.

소극적 태도
식구 봐주기?

수원지검은 같은 달 29일, 해당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첩했다. 50억 클럽 관련 사건이 대장동을 수사하는 중앙지검으로 모이고 있는 것이다.

대장동 의혹 핵심 인물인 남욱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출소 후 대장동 사건에 대한 폭로를 이어갔다. 그는 최근 대장동 공판서 “김만배씨가 최윤길 전 성남시의회 의장의 뇌물 수수 사건을 잘 봐달라고 김수남 전 검찰총장에게 얘기했다는 것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김씨가 (내게) 사업에서 빠지라고 할 때 ‘재경이형이나 수남이형도 네가 있으면 문제가 되니까 빠지라고 했다’”고도 했다.

검찰도 최근 남 변호사를 불러 권 전 대법관과 관련된 의혹에 대해 다시 물은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검찰은 남 변호사에게 “김만배씨가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과 성남 제1공단 공원화 무효 소송 등 두 사건을 대법원에서 뒤집었다’고 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가 대법관에게 부탁해 사건을 해결했다는 취지의 전언 진술이다. 앞서 남 변호사는 2021년 10월 검찰 조사에서도 같은 취지의 진술을 했다.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은 2020년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사건이다. 2019년 9월 항소심은 이 대표에게 경기도지사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상태였다. 당시 현직이던 권 전 대법관은 이 대표 사건에 대한 유무죄 의견이 대법관 사이에서 팽팽히 엇갈리던 가운데 무죄 취지 의견을 밝히면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2020년 9월 퇴임한 권 전 대법관은 그해 11월부터 화천대유 고문으로 재직했는데, 이 같은 재판거래의 대가로 고문이 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남 변호사가 언급한 성남시 제1공단 공원화 무효 소송은 성남시와 민간사업자 사이에 제기된 행정소송이다. 2010년 성남시장에 당선된 이 대표가 제1공단 개발을 취소하고 공원화에 나서자, 시행사가 성남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걸었다.

당시 2심은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는데, 2016년 대법원은 원심을 뒤집고 성남시의 승소 판결을 냈다. 검찰은 남 변호사의 전언 진술의 진위와 더불어 권 전 대법관이 화천대유 고문직에 오른 경위에 대해서도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시간 끌기”
지적 부담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검찰은 최 전 수석과 김 전 총장에 대해 지난해 7월 50억 클럽 관련 서면조사를 진행했다. 박 전 특검과 홍 회장, 권 전 대법관에 대해 자세한 사건 파악을 진행하고 있어 최 전 수석과 김 전 총장에 대한 소환조사도 곧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검찰도 50억 클럽에 대한 시간 끌기 비판을 듣고 부담을 느끼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검찰 관계자는 “박 전 특검과 홍 회장에 대한 소환조사는 지난해부터 진행됐고 권 전 대법관은 조만간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며 “수사가 답보 상태였다기보다는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가 강도 높게 진행되다 보니 50억 클럽 수사가 대외적으로 속도감이 없어 보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재경지검 검사도 “중앙지검 내부에서 50억 클럽에 대해 수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대장동 수사팀도 이 대표 수사를 마무리지으면 순차적으로 현재까지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검증하고 문제가 된다면 수사에 나설 것이다. 박 전 특검과 김 전 총장, 최 전 수석 등에 대해 아예 손을 놓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했다.

50억 클럽 멤버는 아니지만 수원지검 성남지청장을 역임한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도 정영학 녹취록에서 여러 번 언급된다. 윤 전 고검장은 2013년 4월까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을, 그해 4월부터 12월까지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를 맡았는데, 김씨가 직전 성남지청장이었던 윤 전 고검장을 통해 어떤 사건을 해결했다는 내용의 대화가 오간다.

2012년 8월18일, 남 변호사는 김씨와의 대화 내용을 정영학 회계사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윤갑근 차장이 검사장인데, 검사장이 직접 계장(성남지청 계장)한테 전화하는 예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차장님도 (계장에게) 전화를 하셨다고, 얼마나(김만배씨가 윤갑근 전 지청장을) 달달 볶았으면 전화했겠어요. 그래서 그것도 그렇게 정리를 했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잘 마무리해서 무혐의로 종결하겠다고 저한테 대놓고 얘기했으니까, 다시 안 부르겠다고”고 말했다.

즉, 김씨가 윤 전 고검장에게 수사를 무마해달라고 청탁했고, 윤 전 고검장이 압력을 행사해 무혐의 종결로 처분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남 변호사는 “보니까 만배형이 고생을 많이 했네”라며 고마워하기도 했다.

이재명 마무리 후 속도 높일 듯
재판부, 누구의 말 더 신뢰할까

‘박근혜 청와대’ 정보를 입수해, 수사 등에 미리 대비했던 흔적도 보인다. 2014년 7월28일, 남 변호사는 김씨가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민정비서관과 만나 대화한 내용이라고 전하며, 청와대가 대장동 사업자들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한다.

김씨가 “다 스톱하라”고 했다며, 남 변호사도 “휴대폰을 다 부수고, 아무도 만나지 말자”고 얘기했다. 정 회계사는 “저도 웬만하면 자료를 다 없애야겠다”고 강조했다.

현재까지 정영학 녹취록에서 언급된 이들은 연관성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김씨도 최근 곽 전 의원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사회적으로 권력 있는 분들을 팔아서 얘기한 측면이 있어 죄송하다”며 “남 변호사와 정 회계사에게 화천대유 직원들 인센티브를 부담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허언이었다”고 해명했다.

이들의 주장대로 허언인지, 실체가 있는 혐의인지는 검찰 수사에 속도감이 붙으면 밝혀질 전망이다. 특히 제한된 기간의, 제한된 대화 내용이 담긴 만큼 녹취록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50억 클럽 멤버들에 대한 청탁 의혹은 검찰 수사를 통해 추가로 밝혀져야 한다.

정영학 녹취록 속 대화들이 일부 허언일 가능성 때문인지 검찰은 곽 전 의원의 재판을 지켜보고 있다. 향후 50억 클럽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고 50억원의 성격 및 김씨 진술의 신빙성 등에 대한 법원 판단에 따라 다른 인물에 대한 수월한 수사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당초 지난달 25일 1심 선고기일로 정했다가 오는 8일로 변경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대장동 비리사건에서 중요한 부패의 한 축”이라고 규정하며 곽 전 의원에게 징역 15년형과 벌금 50억여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곽 전 의원은 “왜 재판받고 있는지 납득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곽 전 의원 아들에게 지급된 50억원의 정체를 두고 대장동 일당 등은 엇갈리는 진술을 내놨다. 재판부가 누구의 말을 더 신뢰할만하다고 판단하는지가 관건이다.

검찰은 정 회계사의 녹취록을 토대로 곽 전 의원의 혐의를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녹취록에는 화천대유 대주주 김씨가 정 회계사, 유동규 전 본부장 등과 대화하면서 ‘(곽 전 의원이)아들을 통해 돈 달라고 한다’고 말한 것, 곽 전 의원에게 돈을 전달할 방법을 논의한 상황 등이 담겼다.

남 변호사도 “곽 전 의원이 컨소시엄 무산을 막아줬다는 이야기를 김씨한테 들었다”며 검찰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언을 했다.

대장동 사건
중요한 한 축

곽 전 의원이 자신의 몫을 요구해 김씨와 다툼이 있었다는 서울 서초동 한 식당에서의 식사 자리도 재판에서 여러 번 다뤄졌다. 검찰은 당시 저녁 식사에서 곽 전 의원이 “돈을 많이 벌었으면 나눠야지”라며 자신의 몫을 요구해 김씨와 다툼이 벌어졌다고 봤다. 정 회계사와 남 변호사도 “당시 둘 사이 언쟁이 있었다”고 공통적으로 증언했다. 검찰은 이를 곽 전 의원과 김씨 사이에 50억원 약정이 사전에 있었음을 뒷받침하는 주요한 근거로 내세웠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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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