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특집 특별 인터뷰> ‘불교계 큰 어른’ 여수 향일암 주지 연규 스님이 본 속세 이야기

“우리나라 종교 지도자들 부끄럽지만 게을러졌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아직 어둠이 다 가시지 않은 시간. 사람들은 해무가 잔뜩 낀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손을 모아 쥐고 해를 기다리던 이들은 예정된 일출 시간이 넘어가자 하나둘씩 사라졌다. “오늘은(해를) 안 보여 주시려나 보네.” 아쉬움 섞인 한탄과 함께 돌아서는 발걸음 뒤로 “어, 어!” 하는 목소리가 울렸다. 짙은 안개를 뚫고 해가 삐져나왔다.

“향일암으로 가주세요.” 여수EXPO역에 도착한 시간은 지난달 10일 오후 6시30분. 따뜻한 기온 때문인지 눈 대신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 잡은 택시는 빠른 속도로 달렸다. 향일암으로 가는 길은 굽이친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굴곡졌다. 40여분을 내달려 향일암 입구에 내렸을 때는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바다와 접한
산속의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금오산 향일암. 신라 선덕여왕 때인 644년 원효대사가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현재의 관음전 자리에 ‘원통암’이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사찰이다. 금오암, 책육암, 영구암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1949년 편찬된 <여수지>에는 ‘100년 전에 지금 이곳으로 옮겨 건축하고 기해년에 이름을 향일암으로 바꿨다. 암자가 바위 끝에 붙어 있고 계단 앞은 벼랑인데, 동쪽으로 향하고 있어 일출을 바라볼 수 있어서 향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쓰여 있다. 

가만히 서있어도 뒷걸음질이 쳐질 만큼 경사진 길을 걷고 또 걸어야 향일암에 다다를 수 있다. 일출 명소로 알려지면서 매년 100만명이 경사 40도의 향일암 돌계단을 오른다. 향일암 관계자에 따르면 코로나19로 비대면 문화가 확산됐을 때도 연 70만명이 해돋이를 보기 위해 향일암을 찾았다. 


지난달 11일, 여수의 일출 시간은 오전 7시26분. 7시부터 향일암 종무소 주변이 해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가득 찼다. 바다를 뒤덮은 해무가 걷히지 않자 안타까운 탄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휴대폰 카메라를 들고 기다리던 사람이 하나둘 자리를 떴다.

붉은 해가 해무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시간은 오전 7시37분. 해가 뜨기 시작하자 거짓말처럼 사위가 고요해졌다. 

향일암 주지 연규 스님은 “향일암의 일출은 특별하다. 대부분 일출 명소라고 하면 바다를 마주하는 높이에서 해돋이를 볼 수 있는 곳이 많다. 향일암은 바다보다 100~200m 이상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수평선과 눈높이가 맞다. 이렇게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은 전국에 많지 않을 것”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본사 지리산 대화엄사에서 출가한 연규 스님은 지난해 6월29일 향일암 주지로 취임했다. 취임식 대신 자비행으로 취임을 알렸다. 2021년 화엄사의 말사로 등록된 부산 해동용궁사의 주지를 맡기도 했다. 바다와 맞닿아 있는 용궁사 역시 일출 명소로 유명하다.

용궁사 이어 지난해 6월 취임
취임식 대신 ‘자비행’부터

“용궁사는 바로 눈앞에 바다가 있어요. 용궁사 앞바다는 바람이 많이 불고 파도도 많이 칩니다. 변화무쌍하고 거칠어요. 반면 향일암 앞바다는 ‘은빛 바다’라는 표현이 어울립니다. 일렁임이 거의 없는 고요한 호수 같다고 해야 할까요. 밀물과 썰물의 차이도 심하지 않고 잔잔합니다. 두 사찰에서 보는 일출은 각기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지난달 11일 오후 향일암에서 연규 스님과 마주했다. 그는 지난해 6월 향일암 주지로 온 이후 5개월 동안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연규 스님은 취임 직후 향일암에서 숙식하고 있는 20여명의 ‘식구’(직원)와 불자를 위한 건물 개‧보수 등 시설정비에 나섰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사찰인 만큼 안전사고를 대비해 CCTV도 늘렸다. 


머리 꼭대기에 있던 해가 오후 시간이 되면서 찬찬히 넘어가 햇살이 길게 들이쳤다. 찻물을 데우고 거르고 따르기를 반복하는 연규 스님의 손놀림은 조심스러우면서도 거침없었다. 질문에 대한 답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사다난했던 2022년에 대한 소회를 밝힐 때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고 2023년 새해를 맞는 국민에게는 따뜻한 당부를 건넸다. 

“올해(2022년)는 참 힘들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에서 아직 못 벗어나다 보니 사람들이 전부 마음을 닫고 사는 것 같아요. 경쟁 구도도 더욱 심해졌고요. 얼마 전에는 이태원 참사로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올해뿐만 아니라 내년(2023년)도 대한민국이 그렇게 밝아질 것 같진 않습니다.”

매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 해’라고 표현하지만 지난해는 유독 사회 전체가 들썩일만한 사건 사고가 많았다. 대통령선거(3월)와 지방선거(6월)라는 대형 이벤트가 연이어 열리면서 여야, 진보·보수 등 정치적 갈등이 극에 달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이태원 참사로 159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일출 보러
100만명씩

연규 스님은 “코로나는 종식 단계로 가는데 사람들의 마음 속 코로나는 종식되지 않은 것 같다. 밝은 사회를 만들려면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다 보니 곳곳에서 부작용이 자꾸 생긴다. ‘빨리빨리’ 문화가 조급증으로 이어지고 여유가 없어지면서 불안감이 늘었다”고 진단했다.

특히 세대를 넘나드는 불안감을 갈등의 제일 큰 원인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갈등 해소에 나서야 할 정치인과 종교인의 행태를 비판했다. 정치인은 사회 갈등을 야기하고 있고 종교인 역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연규 스님은 “정치인이 제일 반성해야 한다. 가끔 정치인을 만날 기회가 있으면 ‘정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묻곤 한다. 그럼 한결같이 정치학적 답변을 한다. 나는 그게 정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국민을 잘 살도록 하는 게 정치인데 대부분의 정치인이 편 가르기를 하면서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종교집단이 세속화되고 종교인들이 부패하면서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소신을 밝혔다. 종교인이 나서서 국민에게 잘사는 방법이 무엇인지 이해시키고 가르쳐 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종교에 대한 불신이 날로 커지고 종교 인구가 줄어드는 현 상황에 종교인의 책임도 있다는 작심 발언이다. 

실제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2021년 3월18일부터 4월7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1500명을 상대로 조사한 종교 현황에 따르면 국민의 60%는 ‘무교’다. 20대(78%), 30대(70%), 40대(68%) 등 젊은 층의 탈종교 현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속되는 양상이다. 호감 종교가 없다는 응답도 61%에 달한다. 

종교 불신
종교인 책임


“종교를 믿는 사람의 수가 줄어드는 이유로 출산율 하락을 꼽기도 하는데 그 부분도 분명히 영향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종교인이 국민에게 이정표가 돼주지 못한 게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인은 청렴해야 하며 국민에게 길을 열어주고 물음표가 아니라 느낌표를 줘야 합니다. 그런데 계속 물음표만 던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국민이 ‘종교도 별 거 없구나’ 생각하는 거죠.”

종교인이 갖는 말의 파급력이 일반인과 비교해 1000배 정도 큰데, 일부 종교인이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사회를 아프게 하고 병들게 하고 갈라치고 있다고 일갈했다. 또 종교가 국민과 함께 발맞춰 걸어야 하는데 실제 대중 속으로 뛰어드는 종교인이 많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종교인, 종교 지도자가 ‘우리(국민)와 같이 가는구나’라는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국민이 아픔을 드러내고 의지할 수 있도록 국민과 마주하고 나눔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교와 국민 사이에 있는 괴리를 종교인과 종교 지도자의 활동을 통해 좁혀 나가자도 했다. 

연규 스님은 “부처님도 그렇게 하셨다. 길 위에서 태어나 길 위에서 45년간 설법을 하시다 돌아가셨다. 그 훌륭한 분도 그렇게 살다 갔는데 부처님의 발뒤꿈치에도 못 따라가면서 그분의 행동보다 훨씬 못한 모습으로 있다는 자체가 참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게을러서 아니겠나”라고 반문했다. 

코로나로 비대면이 확산되면서 마음을 닫은 사람이 많아진 한국 사회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눈치를 보는 사회가 돼야 한다. 나쁘고 무시하는 눈치가 아니라 스스로를 경계할 수 있는 눈치가 필요하다. 내가 하고 싶은 게 있고 욕심을 채우고 싶어도 조금씩 덜어낼 수 있는 눈치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다”고 지적했다.

정치·종교인에 쓴소리…국민에 덕담
“욕심 버리세요, 절대 못 가져갑니다”


‘아무거나 막 해도 되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해 의무와 책임을 저버리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 

패륜 범죄가 늘어나는 등 가족관계가 위험하다고도 우려했다. 연규 스님은 “모든 게 연결돼있다고 생각한다. 인용하지 못하는 마음, 하고자 하는 욕심, 의무와 책임은 버려버리고 ‘내가 하고 싶은 건 무조건 한다’는 생각이 사회현상으로 나타나면서 통제가 안 되고 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가수 김국환의 노래 ‘타타타’를 언급했다.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라는 부분이다. 태어날 때는 옷 없이 태어나지만 죽을 땐 옷(수의)을 입고 간다는 뜻이다. 살아생전 아무리 큰 부귀영화를 누렸어도 세상을 떠날 때는 무엇 하나 가져갈 수 없다. 가져가고 싶어도 가져갈 수 없다는 것. 

“욕심이 없으면 사람이 살 수 없습니다. 욕심이 없으면 미래가 없고 미래가 없으면 오늘이 없어요. ‘이걸 하겠다’는 마음이 욕심이잖아요. 제 말은 무게를 잘 달자는 겁니다. 요즘 사람은 저울에 너무 많은 것을 올려두고 있어요. 못 가져갑니다. ‘한 만큼만 가져가자’ 이게 제 생각입니다.”

막힘없이 쓴소리를 이어가던 연규 스님은 계묘년을 맞아 국민에게 덕담을 해달라는 요청에 잠시 머뭇거렸다. 덕담이 가장 어렵다면서 잠깐 말을 골랐다. 그는 “매일매일 같은 날이면 참 좋을 것 같다. 365일이 왜 이렇게 다른지 모르겠다. 늘 선물 같은 날이면 얼마나 좋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구시화문’(입은 화의 근원이라는 뜻)이다. 계묘년에는 구시화문이 아니라 구시화복이 됐으면 한다. 서로에게 따뜻한 말을 건넴으로써 누군가에겐 의사가 되고 약사가 되고 배고픈 자에게는 식당 주인이 되는 그런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이 많아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SNS나 메신저가 발달하면서 보여주기식으로 자신을 가꾸는 과정에서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한테 보여주기 위해 자신을 꾸미는 게 아니라 나를 꾸며서 남들이 따라올 수 있게 하는 사람이 늘었으면 좋겠어요. 지식보다는 배려하는 마음, 같이 가려는 마음으로 계속 노력하다 보면 희망찬 내일, 희망찬 미래가 오지 않을까요?” 

남이 나를 
따르도록

연규 스님 등에 닿았던 햇살이 기자에게까지 다다를 무렵에야 인터뷰가 마무리됐다. 마지막으로 부처님 말씀 중 좋아하는 구절을 소개해달라는 요청에 연규 스님은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고 답했다. ‘어디를 가든지 그곳에서 주인이 되면 서 있는 그곳이 진리가 되리라’.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명승지 향일암 왜? “역사·학술적 가치 있다”

전남 여수 향일암 일대가 국가지정문화재가 됐다.

문화재청은 지난달 20일 ‘여수 금오산 향일암 일원’을 명승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향일암은 강원 양양 낙산사, 경남 남해 보리암, 강화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4대 관음 기도처로 알려져 있다. 

금오산 기암괴석 절벽에 세워진 암자는 마치 거북이가 경전을 등에 짊어지고 남해 용궁으로 들어가는 듯한 지형적 형상과 거북의 등껍데기 무늬를 닮은 암석, 울창한 숲 등이 조화를 이룬다는 평가다. 

백도 이어 43년 만에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문화재청 관계자는 “인근에 돌산군관청, 돌산향교, 은적암, 방답진성 등 문화유적들이 다수 있어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향일암 일원의 명승 지정은 1979년 ‘상백도와 하백도 일원’이 명승으로 지정된 이후 여수에서는 43년 만이다.

향일암 주지 연규 스님은 “향일암 곳곳이 명승이 아닌 게 없고 문화재가 아닌 게 없다. 대한민국의 보물”이라며 “아주 의미 있고 크게 축하받을 일이고 경사스러운 일”이라고 기쁨을 드러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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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