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특집 특별 인터뷰> ‘불교계 큰 어른’ 여수 향일암 주지 연규 스님이 본 속세 이야기

“우리나라 종교 지도자들 부끄럽지만 게을러졌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아직 어둠이 다 가시지 않은 시간. 사람들은 해무가 잔뜩 낀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손을 모아 쥐고 해를 기다리던 이들은 예정된 일출 시간이 넘어가자 하나둘씩 사라졌다. “오늘은(해를) 안 보여 주시려나 보네.” 아쉬움 섞인 한탄과 함께 돌아서는 발걸음 뒤로 “어, 어!” 하는 목소리가 울렸다. 짙은 안개를 뚫고 해가 삐져나왔다.

“향일암으로 가주세요.” 여수EXPO역에 도착한 시간은 지난달 10일 오후 6시30분. 따뜻한 기온 때문인지 눈 대신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 잡은 택시는 빠른 속도로 달렸다. 향일암으로 가는 길은 굽이친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굴곡졌다. 40여분을 내달려 향일암 입구에 내렸을 때는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바다와 접한
산속의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금오산 향일암. 신라 선덕여왕 때인 644년 원효대사가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현재의 관음전 자리에 ‘원통암’이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사찰이다. 금오암, 책육암, 영구암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1949년 편찬된 <여수지>에는 ‘100년 전에 지금 이곳으로 옮겨 건축하고 기해년에 이름을 향일암으로 바꿨다. 암자가 바위 끝에 붙어 있고 계단 앞은 벼랑인데, 동쪽으로 향하고 있어 일출을 바라볼 수 있어서 향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쓰여 있다. 

가만히 서있어도 뒷걸음질이 쳐질 만큼 경사진 길을 걷고 또 걸어야 향일암에 다다를 수 있다. 일출 명소로 알려지면서 매년 100만명이 경사 40도의 향일암 돌계단을 오른다. 향일암 관계자에 따르면 코로나19로 비대면 문화가 확산됐을 때도 연 70만명이 해돋이를 보기 위해 향일암을 찾았다. 

지난달 11일, 여수의 일출 시간은 오전 7시26분. 7시부터 향일암 종무소 주변이 해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가득 찼다. 바다를 뒤덮은 해무가 걷히지 않자 안타까운 탄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휴대폰 카메라를 들고 기다리던 사람이 하나둘 자리를 떴다.

붉은 해가 해무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시간은 오전 7시37분. 해가 뜨기 시작하자 거짓말처럼 사위가 고요해졌다. 

향일암 주지 연규 스님은 “향일암의 일출은 특별하다. 대부분 일출 명소라고 하면 바다를 마주하는 높이에서 해돋이를 볼 수 있는 곳이 많다. 향일암은 바다보다 100~200m 이상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수평선과 눈높이가 맞다. 이렇게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은 전국에 많지 않을 것”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본사 지리산 대화엄사에서 출가한 연규 스님은 지난해 6월29일 향일암 주지로 취임했다. 취임식 대신 자비행으로 취임을 알렸다. 2021년 화엄사의 말사로 등록된 부산 해동용궁사의 주지를 맡기도 했다. 바다와 맞닿아 있는 용궁사 역시 일출 명소로 유명하다.

용궁사 이어 지난해 6월 취임
취임식 대신 ‘자비행’부터

“용궁사는 바로 눈앞에 바다가 있어요. 용궁사 앞바다는 바람이 많이 불고 파도도 많이 칩니다. 변화무쌍하고 거칠어요. 반면 향일암 앞바다는 ‘은빛 바다’라는 표현이 어울립니다. 일렁임이 거의 없는 고요한 호수 같다고 해야 할까요. 밀물과 썰물의 차이도 심하지 않고 잔잔합니다. 두 사찰에서 보는 일출은 각기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지난달 11일 오후 향일암에서 연규 스님과 마주했다. 그는 지난해 6월 향일암 주지로 온 이후 5개월 동안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연규 스님은 취임 직후 향일암에서 숙식하고 있는 20여명의 ‘식구’(직원)와 불자를 위한 건물 개‧보수 등 시설정비에 나섰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사찰인 만큼 안전사고를 대비해 CCTV도 늘렸다. 

머리 꼭대기에 있던 해가 오후 시간이 되면서 찬찬히 넘어가 햇살이 길게 들이쳤다. 찻물을 데우고 거르고 따르기를 반복하는 연규 스님의 손놀림은 조심스러우면서도 거침없었다. 질문에 대한 답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사다난했던 2022년에 대한 소회를 밝힐 때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고 2023년 새해를 맞는 국민에게는 따뜻한 당부를 건넸다. 

“올해(2022년)는 참 힘들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에서 아직 못 벗어나다 보니 사람들이 전부 마음을 닫고 사는 것 같아요. 경쟁 구도도 더욱 심해졌고요. 얼마 전에는 이태원 참사로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올해뿐만 아니라 내년(2023년)도 대한민국이 그렇게 밝아질 것 같진 않습니다.”

매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 해’라고 표현하지만 지난해는 유독 사회 전체가 들썩일만한 사건 사고가 많았다. 대통령선거(3월)와 지방선거(6월)라는 대형 이벤트가 연이어 열리면서 여야, 진보·보수 등 정치적 갈등이 극에 달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이태원 참사로 159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일출 보러
100만명씩

연규 스님은 “코로나는 종식 단계로 가는데 사람들의 마음 속 코로나는 종식되지 않은 것 같다. 밝은 사회를 만들려면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다 보니 곳곳에서 부작용이 자꾸 생긴다. ‘빨리빨리’ 문화가 조급증으로 이어지고 여유가 없어지면서 불안감이 늘었다”고 진단했다.

특히 세대를 넘나드는 불안감을 갈등의 제일 큰 원인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갈등 해소에 나서야 할 정치인과 종교인의 행태를 비판했다. 정치인은 사회 갈등을 야기하고 있고 종교인 역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연규 스님은 “정치인이 제일 반성해야 한다. 가끔 정치인을 만날 기회가 있으면 ‘정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묻곤 한다. 그럼 한결같이 정치학적 답변을 한다. 나는 그게 정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국민을 잘 살도록 하는 게 정치인데 대부분의 정치인이 편 가르기를 하면서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종교집단이 세속화되고 종교인들이 부패하면서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소신을 밝혔다. 종교인이 나서서 국민에게 잘사는 방법이 무엇인지 이해시키고 가르쳐 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종교에 대한 불신이 날로 커지고 종교 인구가 줄어드는 현 상황에 종교인의 책임도 있다는 작심 발언이다. 

실제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2021년 3월18일부터 4월7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1500명을 상대로 조사한 종교 현황에 따르면 국민의 60%는 ‘무교’다. 20대(78%), 30대(70%), 40대(68%) 등 젊은 층의 탈종교 현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속되는 양상이다. 호감 종교가 없다는 응답도 61%에 달한다. 

종교 불신
종교인 책임

“종교를 믿는 사람의 수가 줄어드는 이유로 출산율 하락을 꼽기도 하는데 그 부분도 분명히 영향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종교인이 국민에게 이정표가 돼주지 못한 게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인은 청렴해야 하며 국민에게 길을 열어주고 물음표가 아니라 느낌표를 줘야 합니다. 그런데 계속 물음표만 던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국민이 ‘종교도 별 거 없구나’ 생각하는 거죠.”

종교인이 갖는 말의 파급력이 일반인과 비교해 1000배 정도 큰데, 일부 종교인이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사회를 아프게 하고 병들게 하고 갈라치고 있다고 일갈했다. 또 종교가 국민과 함께 발맞춰 걸어야 하는데 실제 대중 속으로 뛰어드는 종교인이 많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종교인, 종교 지도자가 ‘우리(국민)와 같이 가는구나’라는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국민이 아픔을 드러내고 의지할 수 있도록 국민과 마주하고 나눔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교와 국민 사이에 있는 괴리를 종교인과 종교 지도자의 활동을 통해 좁혀 나가자도 했다. 

연규 스님은 “부처님도 그렇게 하셨다. 길 위에서 태어나 길 위에서 45년간 설법을 하시다 돌아가셨다. 그 훌륭한 분도 그렇게 살다 갔는데 부처님의 발뒤꿈치에도 못 따라가면서 그분의 행동보다 훨씬 못한 모습으로 있다는 자체가 참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게을러서 아니겠나”라고 반문했다. 

코로나로 비대면이 확산되면서 마음을 닫은 사람이 많아진 한국 사회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눈치를 보는 사회가 돼야 한다. 나쁘고 무시하는 눈치가 아니라 스스로를 경계할 수 있는 눈치가 필요하다. 내가 하고 싶은 게 있고 욕심을 채우고 싶어도 조금씩 덜어낼 수 있는 눈치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다”고 지적했다.

정치·종교인에 쓴소리…국민에 덕담
“욕심 버리세요, 절대 못 가져갑니다”

‘아무거나 막 해도 되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해 의무와 책임을 저버리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 

패륜 범죄가 늘어나는 등 가족관계가 위험하다고도 우려했다. 연규 스님은 “모든 게 연결돼있다고 생각한다. 인용하지 못하는 마음, 하고자 하는 욕심, 의무와 책임은 버려버리고 ‘내가 하고 싶은 건 무조건 한다’는 생각이 사회현상으로 나타나면서 통제가 안 되고 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가수 김국환의 노래 ‘타타타’를 언급했다.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라는 부분이다. 태어날 때는 옷 없이 태어나지만 죽을 땐 옷(수의)을 입고 간다는 뜻이다. 살아생전 아무리 큰 부귀영화를 누렸어도 세상을 떠날 때는 무엇 하나 가져갈 수 없다. 가져가고 싶어도 가져갈 수 없다는 것. 

“욕심이 없으면 사람이 살 수 없습니다. 욕심이 없으면 미래가 없고 미래가 없으면 오늘이 없어요. ‘이걸 하겠다’는 마음이 욕심이잖아요. 제 말은 무게를 잘 달자는 겁니다. 요즘 사람은 저울에 너무 많은 것을 올려두고 있어요. 못 가져갑니다. ‘한 만큼만 가져가자’ 이게 제 생각입니다.”

막힘없이 쓴소리를 이어가던 연규 스님은 계묘년을 맞아 국민에게 덕담을 해달라는 요청에 잠시 머뭇거렸다. 덕담이 가장 어렵다면서 잠깐 말을 골랐다. 그는 “매일매일 같은 날이면 참 좋을 것 같다. 365일이 왜 이렇게 다른지 모르겠다. 늘 선물 같은 날이면 얼마나 좋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구시화문’(입은 화의 근원이라는 뜻)이다. 계묘년에는 구시화문이 아니라 구시화복이 됐으면 한다. 서로에게 따뜻한 말을 건넴으로써 누군가에겐 의사가 되고 약사가 되고 배고픈 자에게는 식당 주인이 되는 그런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이 많아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SNS나 메신저가 발달하면서 보여주기식으로 자신을 가꾸는 과정에서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한테 보여주기 위해 자신을 꾸미는 게 아니라 나를 꾸며서 남들이 따라올 수 있게 하는 사람이 늘었으면 좋겠어요. 지식보다는 배려하는 마음, 같이 가려는 마음으로 계속 노력하다 보면 희망찬 내일, 희망찬 미래가 오지 않을까요?” 

남이 나를 
따르도록

연규 스님 등에 닿았던 햇살이 기자에게까지 다다를 무렵에야 인터뷰가 마무리됐다. 마지막으로 부처님 말씀 중 좋아하는 구절을 소개해달라는 요청에 연규 스님은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고 답했다. ‘어디를 가든지 그곳에서 주인이 되면 서 있는 그곳이 진리가 되리라’.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명승지 향일암 왜? “역사·학술적 가치 있다”

전남 여수 향일암 일대가 국가지정문화재가 됐다.

문화재청은 지난달 20일 ‘여수 금오산 향일암 일원’을 명승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향일암은 강원 양양 낙산사, 경남 남해 보리암, 강화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4대 관음 기도처로 알려져 있다. 

금오산 기암괴석 절벽에 세워진 암자는 마치 거북이가 경전을 등에 짊어지고 남해 용궁으로 들어가는 듯한 지형적 형상과 거북의 등껍데기 무늬를 닮은 암석, 울창한 숲 등이 조화를 이룬다는 평가다. 

백도 이어 43년 만에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문화재청 관계자는 “인근에 돌산군관청, 돌산향교, 은적암, 방답진성 등 문화유적들이 다수 있어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향일암 일원의 명승 지정은 1979년 ‘상백도와 하백도 일원’이 명승으로 지정된 이후 여수에서는 43년 만이다.

향일암 주지 연규 스님은 “향일암 곳곳이 명승이 아닌 게 없고 문화재가 아닌 게 없다. 대한민국의 보물”이라며 “아주 의미 있고 크게 축하받을 일이고 경사스러운 일”이라고 기쁨을 드러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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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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