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무실 ‘간호간병서비스’의 이면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1.02 16:11:54
  • 호수 14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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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400만원’ 있으나마나 간병 앱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가족 중 큰 병을 가진 환자가 발생하면 가정의 삶이 무너지면서 가족의 일상은 환자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이제는 가족 중 누군가의 희생으로 환자를 간병할 수 있다면 다행인 상황이다. 무서울 정도로 비싼 간병비 때문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국내 코로나19 환자는 2020년 1월20일에 처음 발생했다. 첫 번째 확진자는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들어온 중국인 여성이었다. 이후 약 한 달여간 30명에 불과했던 확진자는 같은 해 2월18일, 신천지 대구 교회 신도인 ‘31번째 환자’가 나온 이후 급증했다. 확진자 수가 하루에 수십, 수백명 단위로 가파르게 증가해 한 달 만에 약 8000명으로 늘었다.

모친 암 말기
슬퍼할 겨를도

국내 코로나의 1차 대유행이 있었던 이 시기, 누적 확진자 수는 코로나가 시작된 중국에 이어 전 세계 2위를 기록했다. 각국은 중국과 함께 한국을 위험국으로 분류했다. 상황이 급박해지면서 비상이 걸린 것은 국내 병원들이었다. 

코로나 사태가 지속되자 환자들은 병원을 방문하지 않았다. 가장 많이 감소한 것은 외래진료다. 환자들이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동안 감염에 대한 불안감을 느껴 병원 방문을 꺼렸던 탓이다.

실제로 병원을 찾았다가 코로나에 감염된 사례가 발생했다. 코로나 확진자가 자택에 대기해야 하는 의무를 위반하고 병원에 입원 중인 가족을 면회한 경우였다.


코로나 확진자가 30분 이상 대학병원 다인실에 머물며 입원 중인 가족과 그 동료 환자, 의료진 등 10여명을 접촉했다. 접촉자는 코로나 진단 검사에서 모두 1차 음성 반응을 보였지만, 백신 접종 후 방호복을 착용했던 의료진을 제외한 다인실 입원환자 6명은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2021년 7월부터는 종합병원, 대학병원, 요양병원에서 코로나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의료기관 내 집단감염이 발생하면 재원 환자의 확진으로 이어져, 병동이 폐쇄되거나 의료 종사자가 접촉자로 격리되는 등 의료 인력과 병상 운영에 부담을 초래하기 시작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의료기관 감염이 백신 미접종자 위주로 발생하고 있다며, 접종하지 않은 입원환자와 간병인, 돌봄 인력 등에 대해 최대한 빠른 접종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상황이 이쯤되자, 대학병원들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은 2020년 12월14일부터 입원환자의 보호자에게 코로나 음성 확인서를 받는 등 감염 여부를 확인했다.

그동안 신규 입원환자 등에 국한해 코로나 검사를 했으나 계속되는 병원 내 집단감염으로 보호자에 대한 검사도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더욱이 무증상 감염자가 적지 않은 탓에 병원들은 경계 태세를 높였다.

간병 일당 최소 14만원∼최고 25만원
해당 서비스는 호스피스 병동만 가능

서울성모병원은 기존 검사 대상이었던 입원환자와 간병인뿐만 아니라 보호자의 코로나 검사를 의무화했다. 환자의 보호자는 코로나 음성 확인서 등을 제출해야 하고, 환자의 보호자가 교대할 경우에도 적용됐다.


특히 재활병원은 요양병원에 머물다 오는 환자가 많은 편이고 대개 입원 기간이 한 달에서 석 달 가까이 되는 편이라 환자, 보호자, 간병인 모두 코로나 확진 여부를 검사했다.

시간이 흘러 코로나가 발생한 지 3년이 지났다. 이미 일상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됐고,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는 오는 3월부터 조건부 해제된다. 100% 원격 근무와 재택근무를 시행했던 기업은 다시 내근으로 지침을 바꿨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종교시설은 사회적 거리두기 없는 예배를 시작했다.

현재 바뀌지 않은 것은 병원뿐이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됐지만, 병원은 환자 간 집단감염이 발생할 경우,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환자와 보호자가 간병인을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간병인이 환자를 맡기 전 코로나 검사를 통해 음성 판정을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음성 판정 기간이 72시간으로 짧아 지속적인 검사 비용 부담의 고충이 늘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 간병인은 12시간 등 단기 환자의 간호, 체중이 많이 나가는 환자 간호 등을 거부한다. 

간병인협회 측은 코로나 상황이라 어쩔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간병인협회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간병인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4개월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코로나에는 간병인 교육조차 할 수 없었다. 환자를 위한 간병인 매칭에 어려운 부분이 많다.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가장 피해를 많이 보는 것은 환자와 보호자다. A씨는 지난달 어머니가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A씨의 어머니는 수술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항암치료를 준비하고 있다. A씨는 어머니의 병을 알게 된 후 큰 충격을 받았지만 ‘슬픈’ 충격은 오래가지 않았다.

결국 A씨에게 가장 문제가 된 것은 돈이었다. 암 환자는 암 진단 시 ‘본인 일부 부담금 산정특례 제도’와 ‘본인 부담 상한제’를 지원받을 수 있다. 본인 일부 부담금 산정특례 제도는 암 산정특례로 등록된 건강보험 환자에 대해 해당 질환 진료비 중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부분의 5%만 본인이 부담하도록 하는 제도다.

충격적인
비용 보니…

단, 전액 본인 부담 혹은 선별 급여, 비급여 항목은 제외된다.

‘본인 부담 상한제’는 1년간 환자가 부담한 건강보험 본인 부담 진료비의 총액이 소득수준에 따라 본인 부담 상한액을 초과하는 경우 건강보험공단서 일부를 부담하는 제도다.

여기서 본인 부담 상한액은 지난해 기준 598만원으로 비급여, 선별 급여 등의 항목은 제외된다.


즉, A씨는 어머니의 병원 검사비 및 항암치료비가 아닌 간병비 때문에 경제적인 문제가 생겼다. A씨의 어머니는 걸을 수 없는 상태로 항암치료 외 재활치료도 병행해야 한다. 이로 인해 하루 간병비는 14만원이 훌쩍 넘었는데 이마저도 가장 싼 비용이다.

환자와 환자 보호자에게 간편한 간병 서비스를 제공하는 어플(앱)은 A씨 어머니의 상황을 보고 3명의 간병인을 추천했다. 

이 어플은 보호자에게 ▲24시간 간병인지, 24시간 미만 간병인지 ▲간병 장소 ▲코로나 검사의 필요 여부 ▲간병 일수 ▲환자 나이 및 신체 정보 ▲환자 질환 ▲간병이 필요한 이유 ▲병실 종류 ▲전염성 질환자 여부 ▲의식 상태 ▲식사 유무 ▲대소변 해결 상태 ▲마비가 있는지 ▲거동 및 운동 상태 ▲욕창 유무 ▲석션 필요 여부 등을 물었고 바로 간병인을 추천했다.

간병 서비스 제공 어플은 ‘일급 14만3100원’ ‘일급 15만9000원’ ‘일급 26만5000원’의 금액을 제시했다. 세 명은 다른 사람이었고, 이름, 나이, 국적 정보가 함께 기재돼있었다. 이 중 가장 저렴한 일급 14만3100원은 일당 13만원, 하루 식사비 5000원, 거래 업체 수수료 6%(8100원)를 포함한 금액이다. 

이 금액으로 A씨 어머니가 4주 동안 간병을 받으려면 429만3000원을 지불해야 한다. 여기에 병원비까지 더하면 한 달 부양비는 800만원을 육박했다.

물론 A씨가 어머니 간병을 직접 해도 된다. 하지만 A씨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를 보살펴야 하는 입장이고, A씨의 형제는 직장을 다니고 있어 오후 6시까지는 간병이 불가능하다. 24시간 간병 서비스가 아닌 시간제 간병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다면 경제적으로 훨씬 여유로워진다.


불가능한
통증 케어

A씨 형제가 퇴근 후 간병하려고 해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코로나 이전에는 필요한 시간에 따라 간병인을 고용하는 시간제가 있었지만, 지금은 대체로 24시간 상주하는 종일제로만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학병원은 보호자 간병 자체를 막는 경우도 많다.

결국 A씨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400만원이 넘는 간병비를 지불하거나, 대학병원이 아닌 요양병원에 어머니를 모셔서 통원치료를 받는 것이다. A씨는 두 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이는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다. 말기 암 환자인 A씨의 어머니는 일상생활 중 심각한 암성 통증이 동반되는데, 해당 통증은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아야 해결이 가능했다. 하지만 요양병원에서는 마약성 진통제 처방 자체가 불가능하다. A씨 어머니는 상황에 맞는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말기 암 환자의 치료는 기한을 알 수 없다. 결국 간병비 등의 경제적인 이유로 치료를 중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한다. 코로나로 인한 피해가 환자와 보호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었다.

A씨 어머니가 내원하는 대학병원에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이 있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보호자나 간병인이 병원에 상주하지 않고, 병원에 있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24시간 전문 간호(간병)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서비스는 처음부터 환자의 간병비 부담을 줄이고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은 A씨 어머니와 같은 입장에서 환영할만한 서비스다. 해당 병원은 지난해 5월16일 일반병동 525개의 병상 중 총 344개 병상의 간호간병서비스 병상을 갖추게 됐다고 전했다. 또 부속병원 본관 61개 병동(대장암)에 45개 병상, 신관 5A 병동(혈액암)에 41개 병상의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시설을 완비했다.

해당 병원장은 “이번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상 확대로 이제 일반 병상 대비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상이 3분의 2에 달하는 수준이다. 암 환자들에게 질 높은 간호간병 서비스를 원활하게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한 만큼 간호·간병 걱정 없는 암 전문 병원이 되겠다”고 밝혔다.

가족 아프면 ‘간병 실직’ ‘간병 파산’
간병인 구하려도 없는 상황까지 발생

하지만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상에 A씨 어머니는 입원할 수 없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상은 호스피스 병동으로 말기 암 환자의 육체적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치료를 중점으로 한다. 결국 항암치료 중인 A씨의 어머니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상에 입원할 수 없는 것이다. 

A씨는 “현실적으로 대학병원에 어머니가 입원해 있을 수 없다. 암 치료는 얼마나 오랜 기간 치료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지 않냐. 그런데 치료비보다 간병비가 너무 비싸서 통증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에 입원할 수도 없다”며 “간병비 보험이 있다고 듣긴 들었는데, 간병비가 이렇게 심각할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 돈 때문에 어머니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지난달 15일,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해 국가인권위원회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전면 확대하고 간병인력 법적 근거·관리체계를 마련하라고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간병은 일부 법적·제도적 범주하에서 제공되는 통합서비스를 제외하고 가족 등 민간 간병인 중심으로 제공되고 있다.

지난해 6월 기준 의료기관 633곳(약 6만7000병상)에서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이는 전체 통합서비스 제공 대상 의료기관의 25.6%(병상 기준 26.8%)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인권위는 “이런 상황에서 환자 당사자의 경제적 능력이나, 가족 구성원의 돌봄 여력 등에 따라 간병 자체를 포기하거나 ‘간병 실직’ ‘간병 파산’ 등 간병으로 인해 가족 구성원 전체의 건강과 삶의 질 저하는 물론 생존마저 위협받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인권위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보편적 의료서비스로 전면 확대할 것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간병은 전 생애 과정에서 모든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보편적 현상이라는 점에서 이에 대한 지원체계가 적절하고 충분하게 마련돼야 한다”며 “건강 상태나 경제적 능력에 관계없이 누구나 돌봄을 받을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점에서, 개인의 간병 부담을 사회적 연대로 전환시키고 사적 간병을 제도권 내로 포함해 공적 형태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간병인의 자격 기준·업무 범위·인력 수급 방안 등 간병 인력에 관한 법적 근거·관리체계를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간병이 필요한 사람의 안전과 건강권, 간병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지원체계
마련해야

이 밖에 통합서비스 전면 확대 정책 추진 시 ▲거주지서의 의료와 돌봄 서비스를 확대하는 등 요양병원의 사회적 입원을 줄이기 위한 정책 추진 ▲공공의료기관 중심의 단계적 전면 확대 방안 수립 ▲지역 간 간호 인력 확보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간호 인력 수급 방안을 함께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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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