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참사 항소심 ‘게임 체인저 ’부상, 왜?

스모킹건 발견…1심 무죄 뒤집히나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가습기살균제 재판에 변수가 생겼다. 피해자들에게 1심 무죄라는 참담한 선고가 내려진 이후 “이제 끝”이라는 평가를 뒤집을 수 있는 새로운 근거가 발표됐다. 가습기살균제 성분 물질 중 하나인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MIT)이 호흡기를 통해 폐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입증된 것이다.

가습기살균제 재판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검사들도 분주하다.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MIT)이 호흡기를 통해 폐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입증된 보고서를 증거로 제출한다 해도 통상 사실심인 1심과 2심의 결론이 다른 경우는 드물다. 검찰도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어 1심 재판부가 판단한 논리의 허점을 파고들 전망이다.

새로운 사실
그리고 입증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은 지난 8일 CMIT·MIT가 호흡기를 통해 폐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입증하는 연구 보고서를 공개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10년이 지나서야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며 탄식 섞인 기대감을 품게 됐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앞서 옥시와 롯데마트 등은 2018년 대법원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으나 SK케미칼을 포함한 애경, 이마트 등 가해 기업 관계자 13명은 지난해 1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즉시 항소를 통해 공판을 이어나가고 있다.

옥시와 롯데마트 등은 인체 유해성이 확실하게 입증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을 사용·판매해 빠른 유죄가 선고될 수 있었다. 반면 SK케미칼과 애경 등은 지금까지 법적으로 인체 유해성이 인정되지 않은 CMIT·MIT를 제조·판매했다.


SK케미칼은 ‘가습기 메이트’를 만들었다. 애경산업이 이를 판매했고, 이마트는 이 제품을 납품받아 자체 브랜드 상품을 출시했다.

2006년부터 원인 미상 폐 손상 주범으로 가습기살균제를 지목한 질병관리본부는 CMIT·MIT 제품 제조사들에 대해 검찰에 고발하지 않았고 PHMG·PGH 계열 제품들에 대해서만 강제 수거 명령을 내렸다. 당시 실험에서 PHMG·PGH에 노출된 쥐들은 이상 소견을 보였으나 CMIT·MIT에 노출된 쥐들은 명확한 ‘폐 섬유화’ 증상이 나오지 않았다는 게 질본의 설명이다.

문제는 CMIT·MIT 계열제품을 사용했다가 병을 얻거나 사망한 피해자가 상당하다는 사실이다. 지난달 30일 기준으로 정부에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신고한 사람은 7799명이다. 정부가 구제급여 지급을 결정한 사람이 4417명인데, 이 중 SK케미칼·애경·이마트의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사람은 1581명으로 집계됐다.

정부가 지원을 결정한 피해자 3명 중 1명이 CMIT·MIT 계열제품을 사용한 셈이다.

지금도 CMIT·MIT는 법적으로 인체 유해성이 인정되지 않고 있다. 검찰이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진행된 동물실험을 근거로 SK케미칼 등을 재판에 넘겼으나 법원은 10여건에 달하는 CMIT·MIT 동물실험을 단 한 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CMIT·MIT 노출과 건강 영향 간의 인과성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3가지 기준이 충족돼야 한다고 봤다. ▲CMIT·MIT가 폐 질환이나 천식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어야 함 ▲CMIT·MIT가 흡입으로 폐에 도달한다는 사실이 확인돼야 함 ▲폐에 도달해 폐 질환을 일으킬 정도의 양이 축적돼야 함 등이다.

환경부 산하 국립연구원 보고서 검찰 증거로 쓰여
불명확 CMIT·MIT 위험성 확인…폐 손상 깊은 연관


검찰이 고전하는 상황에서 국립환경과학원이 경북대학교 연구진(전종호 교수), 한국화학연구원 안전성평가연구소(이규홍 단장)와 함께 CMIT·MIT가 비강이나 기도를 통해 폐까지 도달한다는 새로운 동물실험 결과를 내놓은 것은 굉장히 의미 있는 성과라고 볼 수 있다.

1심 재판부가 판단한 ‘CMIT·MIT의 폐 도달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논리를 반박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앞서 1심 재판부는 물리화학적 특성상 CMIT·MIT가 폐까지 도달하기 어렵다고 봤다.

고분자중합체로 체내에 잔류하기 쉬운 PHMG·PGH와 달리 저분자 화학물질인 CMIT·MIT는 물에 잘 녹고, 몸에서 잘 분해돼 몸 밖으로 쉽게 배출된다는 변호인 측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호흡기로 흡입한 물질은 상기도와 하기도를 거쳐 폐로 전달된다.

재판부는 CMIT·MIT를 흡입하더라도 대부분 비강 등 상기도에서 흡수돼 폐까지 전달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환경과학원은 몸속에서 CMIT·MIT가 실제 어떻게 이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CMIT·MIT에 방사성 추적자를 합성했다. 방사성 추적자는 방사성 동위원소가 포함된 화합물이다. 방사성 동위원소가 붕괴될 때 방출하는 에너지를 측정하면 해당 물질이 몸속에서 어디로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방사성 추적자를 합성한 CMIT·MIT를 실험용 쥐의 비강과 기도에 노출시킨 결과, CMIT·MIT가 비강과 기관지를 거쳐 폐까지 이동하는 것이 시각적으로 확인됐다. 폐를 통해 전달된 물질이 간과 신장, 위장과 심장, 뇌 등 전신으로 퍼져나간 사실도 추가로 확인했다.

환경과학원은 이들 물질이 체내에 얼마나 머무는지 확인하기 위해 5분, 6시간, 1주일 단위로 방사능 농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최초 노출 후 1주일이 지난 후에도 기관지와 폐에서 CMIT·MIT 성분이 검출됐다. 특히 지금까지 불명확했던 CMIT·MIT의 위험성도 확인됐다.

논란의 성분
폐 도달 확인

CMIT·MIT를 반복 노출한 후 실험용 쥐의 기관지 폐포세척액을 분석한 결과, 폐 손상과 관련 있는 염증 및 섬유화 지표가 노출 농도에 따라 증가했다.

연구진의 이번 연구 결과는 환경과학 분야 상위 5% 수준의 국제학술지인 <국제환경>에 ‘비강 및 기관 내 투여 후 CMIT·MIT의 체내 거동 및 호흡독성’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CMIT·MIT가 호흡기를 통해 폐로 전달돼 폐 손상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첫 번째 보고서”라며 “이 연구의 결과는 CMIT·MIT 노출과 폐 손상 사이의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했다.

연구진은 “최근 한국에서 진행된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의 노출이 폐 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재판에서 제조사들은 무죄를 선고받았다”며 “법원 판결문에는 현재까지 CMIT·MIT 노출과 폐 손상 사이의 연관성을 나타내는 과학적 증거가 없다고 명시됐다. 그러나 이번 연구 결과를 고려하면 이러한 결론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SK케미칼 등의 항소심 재판에서 기존 판단을 충분히 뒤집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판단한다. 앞서 밝힌 대로 재판부가 제시한 3가지 판단 기준을 모두 충족하기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규홍 안전성평가연구소 인체유해인자 흡입독성연구단 단장은 “이번 연구는 가습기살균제에 사용된 CMIT·MIT가 호흡기 노출을 통해 폐까지 도달돼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을 체내 분포와 독성연구 결과로 종합 분석해 입증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며 “CMIT·MIT가 함유된 제품이 호흡기 이외의 장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근거로 건강영향 평가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단장은 “1심 재판부가 판단 근거로 들었던 3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연구”라며 “CMIT·MIT가 폐 손상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음이 확인됐고, 물질이 코를 통해 폐까지 이동하며, 폐 내에서 꽤 오래 잔류하는 것도 확인됐다”고 했다.

골머리를 썩고 있던 검찰도 상황이 한결 나아졌다고 전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담당했던 변호사는 “이번 연구로 앞으로 열리는 공판에서 검찰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으로 기대한다”며 “검찰도 이번 연구 결과를 재판에 증거로 제출했고 1심 재판부의 논리를 정면 반박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라고 본다”고 말했다.

상해사망
인과관계

그러나 상황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통상적으로 형사소송은 민사소송보다 피고의 책임을 입증하기 힘들다. 1심에서도 CMIT·MIT의 위해성을 보여주는 동물실험 결과가 증거로 제출된 바 있다. 한 실험에서는 CMIT·MIT에 노출된 실험용 쥐가 6일 만에 사망했고, 또 다른 실험에서는 CMIT·MIT에 노출된 임신한 암컷 쥐가 사산하거나 체중이 감소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실험용 쥐에 사용한 용량이 지나치게 과도했다 ▲코로 물질을 흡입한 게 아니라 기관에 물질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사망의 원인이 폐 손상에 의한 것인지 불분명하다는 등의 이유로 이 실험 결과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것과 같은 환경에서 동물실험을 진행했을 때, 폐 섬유화 등 명확한 증거가 있는지 확인하려 했다. 반면 학자들은 CMIT·MIT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증거 확보에 집중하면서 물질의 노출 농도와 실험 방식 등을 바꿨다. 결국 1심은 검찰의 패배로 끝났다.

권정환 고려대학교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는 “항소심도 1심처럼 검찰의 입증 책임을 강하게 요구한다면 똑같은 상황이 유지될 수 있다. CMIT·MIT가 폐에 도달한 것이 확인됐다고 해도, 실험용 쥐에게 얼마나 많은 양을 노출했는지, 노출량 대비 얼마만큼의 양이 폐 조직으로 들어갔는지를 피고인 측 변호인이 따질 수 있다”며 “폐에서 염증 지표가 증가했다고 해도 폐 섬유화까지는 여러 단계가 있기에 1심 재판부처럼 완벽한 증거를 요구한다면 여전히 상황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일 수 있다. 결국 항소심 재판부의 시각이 가장 중요할 것 같다”고 했다.

CMIT·MIT의 물리화학적 특성에 대한 1심 재판부의 오해로 인해 부득이 이번 연구가 수행됐다는 견해도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는 “CMIT·MIT를 비강에 노출했을 때 폐까지 간다는 결과는 과학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사실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다. PHMG·PGH가 폐로 들어가서 석회층을 일으킨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한다. 그런데 PHMG·PGH는 고분자인 반면, CMIT·MIT는 단분자로 크기가 훨씬 작다. PHMG, PGH가 폐까지 들어가는데 그보다 작은 CMIT·MIT가 폐까지 들어가지 않는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연구원, 잘못된 잣대에 추가 연구 “2심 기대”
과학적 결론·증거 채택 안 될 시 논란 예상

항소심 재판부가 1심과 같은 시각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학자들은 추가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일부 연구자들은 CMIT·MIT 성분의 동물흡입시험을 수행 중이다. 시험 결과가 나오면 비강과 기도에 물질을 묻혀 체내 반응을 관찰한 이번 실험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해당 실험에서는 염증이 일어나기 전 단계의 면역반응을 관찰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가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사망 원인의 인과관계가 아닌 CMIT·MIT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판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진행되는 SK케미칼 등 재판의 주요 혐의는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인데 가습기살균제와 상해 간 인과관계 입증의 어려움으로 검찰의 어깨가 무거운 상황이다.

실제 전문가들은 가해 기업의 주의 의무 위반행위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간 인과관계도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10월25일 서울고등법원 제5형사부는 홍지호, 안용찬 등 SK케미칼, 애경산업, 이마트, 필러물산 전·현직 임직원 13명에 대한 항소심 공판을 진행했다.

재판부 변경 이후 첫 공판인 이날 검찰과 변호인단은 변론을 통해 사안의 쟁점을 짚었다. 검찰은 “2019년 기소돼 2022년까지 3년에 걸친 이 사건의 본질은 살균제 사건이라는 것”이라며 “세균을 죽이는 독성의 살균제가 가습기를 매개로 호흡기를 통해 제약 없이 인체에 들어와 집단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이라고 했다.

CMIT·MIT 원료는 원래 페인트 섬유 제품 등 공업용 살균 방부제로 사용된다. 검찰은 “살균제를 초음파 가습기 수조에 넣어 분무하는 제품은 1994년 우리나라 유공이 최초로 개발하기 전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던 제품”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제품판매 중에도 소비자들이 호흡기 불편, 피부 과민 등 불만을 접수했고 영유아와 산모에게 안전한지 문의가 많았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결국 본인들이 화학물질 제조 판매업자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주의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고 했다.

검찰은 “피해자 박나원, 박다원 등 44명에게 폐 손상을 입히고 피해자 4명에게 천식 상해를 입혔다는 게 이 사건의 공소 사실 요지”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동물과 인간 간 종간 차이 등을 무시한 채 동물실험만으로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등 원심 오류도 지적했다.

막판 뒤집기
가능할까?

검찰은 “전문가 진술, 증거 등을 종합해 인과관계 인정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것이 법률가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원심은 단편적인 접근으로(과학적인 연구 결과 등) 증거를 개별적으로 분리하고 비합리적인 근거로 주요 증거를 배척했다”며 “증거 전체 취지를 왜곡하고 공소 사실에 부합하는 시험 결과와 전문가 진술 등에 대한 판단을 누락했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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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시가 돛을 올린 한강버스가 고장 끝에 결국 멈췄다. 과거 ‘아라호 사업’도 재조명되고 있다. 아라호 사업은 2010년대 초반 경인 아라뱃길을 중심으로 관광 활성화와 교통난 해소를 위해 인천시와 공동으로 수백억원을 들여 기획한 수상 교통 프로젝트였다. 아라호는 시민들의 외면과 운영 적자로 인해 자취를 감췄다. ‘반면교사’로 삼았던 걸까? 서울시는 한강을 따라 운행되는 수상 교통수단으로, 서울 전역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통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으로 지난 18일 한강버스 운항을 시작했다. 여의도, 잠실, 뚝섬 등 주요 한강변 거점과 지하철역을 연계해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게 핵심이다. 관광이냐 출퇴근이냐 서울시는 한강버스를 통해 관광 교통수단을 넘어 서울을 ‘한강 중심의 스마트 모빌리티 도시’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열흘 만에 운항이 중단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9일 오전 시청에서 열린 주택 공급 대책 관련 브리핑 도중 “한강버스 관련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며 “시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열흘 정도 운행 통해 기계적·전기적 결함이 몇 번 발생하다 보니 시민들 사이에서 약간 불안감 생긴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기회에 (운항을) 중단하고 충분히 안정화시킬 수 있다면 그게 바람직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시는 이날부터 10월 말까지 한강버스 시민 탑승을 중단하고 성능 고도화와 안정화를 위한 무승객 시범 운항을 한다. 시는 국내 최초로 한강에 친환경 선박 한강버스를 도입해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22일에는 잠실행 한강버스가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고, 같은 날 마곡행도 운항 준비 중 전기 계통에 문제가 생겨 결항했다. 26일에도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운항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자 운항 중단을 결정했다. 과거 아라호의 값비싼 교훈을 남겼지만, 실패 요인을 분석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결과다. 한강버스 역시 또 하나의 혈세 낭비 사례가 될 수 있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아라호 사례를 철저히 분석해 이번에는 실질적인 시민 편익을 제공하고 지속 가능한 운영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강버스가 서울의 새로운 교통 패러다임으로 자릴 잡을지, 아라호의 전철을 밟을지는 향후 몇 년간의 운영 성과에 달려 있다. 서울시 아라호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첫 임기 때인 2010년 서울시가 예산 112억원을 들여 만든 2층 유람선으로 지난 2009년 5월부터 1년5개월을 들여 건조됐다. 오 시장의 지시로 건조된 아라호는 시민들에게 저렴한 요금으로 공연과 한강특화공원 관람이 동시에 가능한 선상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한다는 영리 목적보다 공공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민자 유치 대신 재정이 투입된 사업이었다. 당초 아라호를 한강에서 인천 앞바다까지 운항하는 관광 크루즈선으로 활용하려 했으나 여덟 차례 시범 운항과 21회 시험 운항만 했을 뿐 사실상 사업은 중단됐다. 제작 당시부터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논란을 빚었던 아라호는 정식 취항도 해보지 못한 채 팔렸다. 실제 운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보험료와 유지비 등 관리 비용에만 연간 1억원이 들어간다는 점도 매각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12억원 들여 29억원에 판 아라호 출항 나흘 만에 고장…오, 좌불안석 아라호가 정식 운항에 나서지 못했던 배경에는 서해뱃길 사업을 둘러싼 서울시와 시의회의 갈등도 있었다. 오 시장의 아라호 활용 계획에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시의회가 이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10월 고 박원순 전 시장이 취임 후 사업 타당성 문제로 매각을 결정하면서 오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 백지화됐다. 결국 서울시는 아라호 매각을 결정한 후 지난 2013년 5월, 106억원의 예정 가격으로 매각 입찰에 나섰으나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이후 2차 입찰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알만한 이들은 알겠지만, 선박 사업은 수요를 찾기 어려운 사업 중 하나다. 결국 서울시는 3차 매각 입찰에서 최초 예정 가격에서 10% 인하된 95억원으로 깎았지만 이마저도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같은 해 11월, 4차 매각에서 15% 인하된 90억원에 입찰을 시도했지만 응찰자가 없어 가격 인하의 효과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지 못하자 결국 임대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아라호가 정식 운항도 못한 채 6년 넘게 여의도 한강공원 선착장에 방치되면서다. 서울시가 제시한 사업 기간은 연말까지 8개월이고 한 차례 1년간 계약을 연장할 수 있었다. 당시 최저 임대료는 2억6300만원이었다. 아라호는 임대 사업을 시작해 건조 6년 만에 빛을 봤지만, 운항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강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아라호는 지난 2016년 민간업체인 레츠고코리아가 임대사업권을 낙찰받아 3년간 운영하다가 2018년 이랜드그룹 계열사 이랜드크루즈로 사업권을 넘겨줬다. 이랜드크루즈가 사업권을 따낸 시점은 지난 2018년 3월이지만 실제 운영은 2019년 6월부터 시작됐다. 이전 사업자인 레츠고코리아가 서울시의 계약 위반을 주장하며 유람선과 시설물 반환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랜드크루즈는 1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지난 2019년 6월부터 운영을 시작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아라호의 임대 운영 사업을 1년 만에 접어야 했다. 애물단지 전락하나 이랜드크루즈는 임대계약 갱신청구권(1년)마저 포기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무렵부터는 주식회사 수가 임대사업권을 이어받았다. 이후 마지막으로 인더라인25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사업하는 조건으로 서울시와 지난 2022년 12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1년 단기 임대계약이 종료된 이후에도 인더라인25가 철거하지 않아 서울시는 골머리를 앓았다. 아라호 운항은 멈췄지만, 선착장을 한 달째 무단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더라인25는 계약 연장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서울시는 인더라인25를 상대로 명도소송, 점유 이전 금지 가처분, 행정 가처분 등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아라호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수요 예측 실패와 운영비 부담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아라호가 연간 수십만명의 승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예상했으나, 실제 이용객은 예측치의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노선 설계가 시민들의 일상적인 통근이나 이동과 잘 맞지 않았고, 요금 역시 육상 교통수단에 비해 비쌌다. 결과적으로 관광객 유치에도 한계가 있었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아라호는 철수될 수밖에 없었다. 아라호는 건조한 지 15년 만에 민간에 팔렸다. 지난 1월 서울시 한강 유람선 아라호는 5차례 입찰 끝에 약 28억5780만원에 팔려 민간업체에 인도됐다. 2013년부터 총 9번의 입찰을 시도한 결과 3분의 1 가격에 달하는 헐값에 팔린 셈이다. 당시 서울시에 따르면 아라호는 2024년 11월 말 공개입찰을 진행한 뒤 지난달 주식회사 마이랜드와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길이 58m에 688톤 규모의 아라호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과 서강대교 남단을 오갔다. 승객은 총 310명까지 태울 수 있다. 음악회, 공연, 결혼식, 영화 상영을 위한 시설도 보유했다. 선착장에는 편의점, 치킨집 등 부대시설도 있었다. 아라호는 건조 후 15년 만에 매각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후임 고 박원순 시장이 2012년 사업을 백지화하면서 5년간 방치됐다. 2013년 5월 처음으로 공개입찰에 넘겨졌다. 시는 같은 해에만 총 4번의 입찰을 추진했으나, 입찰자가 없어 매번 무산됐다. 실패했지만 이번엔 달라? 서울시는 수의계약 방식으로도 매각을 시도했으나, 매각사의 자금 동원 문제로 불발됐다. 이에 시는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는 대신 민간 위탁하는 방향을 택했고, 2017년부터 민간 위탁을 통해 운영했다. 하지만 임대계약이 만료되면서 지난해 5월 말부터 운항이 중단됐다. 그러자 시는 다시 매각을 시도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총 5차례의 입찰을 진행했고, 같은 해 11월 말 입찰자가 나와 12월 매각 계약을 맺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간 아라호의 위탁 운영은 선박 운항이 아닌 선착장 내 치킨집 등 부대시설 위주로 돌아갔다”며 “자연스레 선박도 노후화되고, 전반적으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다시 매각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법적 분쟁으로 얼룩진 아라호를 통해 한강에 배 띄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지만, 이번엔 다르다고 한다. 서울시는 이번 한강버스 사업에서 아라호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3가지 전략적 과제를 내세우고 있다. 먼저, 실제 수요 기반의 노선 설계를 강조했다. 또 관광 중심이 아닌, 출퇴근·생활 교통을 고려한 정류장 배치, 그리고 지하철·버스 환승과의 연계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요금 체계를 내세우기도 했다. 기존 대중교통과의 환승 할인을 적용하고, 관광·레저용 프리미엄 서비스와 생활 교통 요금제의 이원화를 강조했다. 또 탄소 배출을 최소화한 전기·수소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했고, 실시간 교통 정보 제공 및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서울시가 한강버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들인 초기 사업비는 약 542억원으로 향후 발생할 총 사업비는 약 1500억~1750억원으로 예상된다. 아라호 사업비보다 10배가량 많은 혈세가 투입될 예정이다. 한강버스는 출·퇴근용 선박인 만큼 이용객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척의 선박이 필요하다. 지난해 3월 한강버스 운영사는 6척의 선박을 납품받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현재는 첫 출항 이후 3척이 운항 중이며, 향후 6척의 선박이 모두 납품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선착장 시설, 운영 시스템, 접근성 개선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가 포함돼 총사업비가 1000억원대 중반까지 증가한다. 묻지 마 10배로 베팅 6시에 나와야 9시 출근 아라호는 ‘유람선 제작’이 중심이고, 공연시설 등이 포함된 문화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의 선박이었다. 시설 설계가 크고 복잡한 부분이 있지만, 수량이 하나라 규모 면에서 제한적이기에 한강버스와 다르다는 결론이다. 반면, 한강버스는 여러 척의 선박을 건조해야 하고, 선착장 설치 또는 보수도 그만큼 갖춰져야 한다. 또 전기 또는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한 만큼, 유지비용도 클 뿐만 아니라 홍보, 안전, 시험 운항 등 여타 부대 비용에 민간투자금 및 보조금 등이 혼합돼있어 사업비 증액은 여러 원인으로 발생한다. 한강버스 사업비가 초기 대비 크게 증가한 이유로 업체 선정 과정에서 계약 조건, 예상보다 오래 걸린 공정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를테면 선박 제작 능력이 있는 업체와 없는 업체 간의 차이를 분석했는데, 일부 업체는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준비가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아 계약이 무산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강버스는 대중교통 기능이 강조되면서 ‘출퇴근 수단’ ‘교통망 보완’ 등의 역할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초기 투자비가 크더라도 지속 운영을 통한 수요 확보가 전제된다. 하지만 계획 대비 수요가 예상만큼 확보될지, 운영비와 적자 보전 부담이 얼마나 될지는 논란 중이다. 한편, 한강버스는 정식 운항 나흘 만에 선박의 방향타 고장 등으로 잇따라 멈춰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지난 23일 기준 누적 탑승객이 1만명을 돌파하는 등 시민들의 큰 관심을 받은 한강버스가 정시성 확보가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매체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7시쯤 옥수선착장을 출발한 잠실행 한강버스가 강 한가운데서 20여분간 멈춰섰다. 결국 승객들은 종착지까지 가지도 못하고 도중에 내려야 했다. 한강버스 운영사는 고장 선박을 뚝섬 선착장에 접안한 뒤 승객들을 모두 하선시켰고, 뚝섬에서 잠실까지 구간의 운항을 취소했다.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나흘 만에 발생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안내 방송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탑승객은 “20분이 넘게 서 있었고, 안내 방송이 안 나오고 승무원도 안 계시고…. (뚝섬 선착장) 도착하기 2~3분 전에 승무원이 ‘이 배 잠실까지 안 간다’고 뚝섬에 다 내리셔야 된다고…”라고 말했다. 이 사고와 별개로 같은 날 오후 7시30분에 잠실 선착장을 출발할 예정이었던 마곡행 한강버스는 선박 고장으로 아예 결항됐다. 그 바람에 강서 방향으로 이동하려던 시민들은 황급히 다른 교통수단을 찾는 등 불편을 겪어야 했다. 승부수? 무리수? 서울시는 두 선박 모두 전날 밤 안정화 조치를 거쳐 다음 날인 23일 운항에는 차질이 없다고 밝혔다. 또 선내 안내 방송이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한강버스 운영사가 이상을 감지한 뒤 원인을 파악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려 안내에 일부 지연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한강버스는 마곡-망원-여의도-압구정-옥수-뚝섬-잠실 28.9km 구간을 상하행 7회씩 총 14회(첫차 11시) 운항하고 있다. 소요 시간은 마곡에서 잠실까지 127분이다. 여의도에서 잠실까지는 80분이다. 추석 연휴 이후인 다음 달 10일부터는 출퇴근 시간 급행 노선(15분 간격)을 포함, 평일 기준 왕복 30회로 증편한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