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만난 노동운동의 한계

‘단결 투쟁’은 이제 옛말?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단결’ ‘투쟁’으로 대표되는 한국 노동운동사가 큰 변곡점을 맞았다. 바로 사회 주류로 발돋움하는 MZ세대와의 조우다. 기성세대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MZ세대의 성향이 강성 노조의 활동 전략마저 뒤흔들 것이란 전망이다. 노동계 안팎에선 최근 민주노총의 ‘총력투쟁’이 별 소득 없이 일단락된 원인 중 일부도 여기에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야말로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노동계의 수난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그렸던 ‘총파업 시나리오’는 시작도 전에 막을 내린 반면 정부의 반격은 멈출 기미가 없다. 아울러 노동계 안팎에서는 “더 이상 단일대오는 없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MZ세대를 필두로 노동계 분화가 본격화됐다는 의미다. 

노동계 
지각변동

민주노총이 총파업 첫 단추로 삼았던 화물연대는 집단 운송거부를 결행했다가 빈손으로 물러났다. 이들은 지난 9일 전 조합원 총투표를 거쳐 파업을 전격 철회했다. 지난달 24일 ‘안전운임제 품목 확대’를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한 지 16일 만이었다.

정부는 시종일관 법과 원칙을 내세웠다. 정부는 “불법 파업과는 타협할 수 없다”며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민주노총은 파업 막바지 물밑협상을 타진했지만, 정부의 ‘선복귀·후대화’ 기조를 깰 수는 없었다.

결국 우려했던 장기전은 없었다. 그 배경을 두고 다양한 분석이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국민 여론 악화 ▲내부 분화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언급된 두 요인의 중심에는 모두 MZ세대가 있다. MZ세대는 국민 여론에서도, 노동계 안에서도 이번 파업을 등졌다. 


우선 여론은 전반적으로 화물연대 파업에 부정적이었다. 지난 9일 공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화물연대가 우선 복귀한 뒤 협상해야 한다’는 응답이 71%에 달했다. 반면 ‘주장이 관철될 때까지 파업을 계속해야 한다’는 응답은 21%에 그쳤다.

어려운 경제 상황 속 파업이 물가 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강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화물연대가 국민들 지지를 얻을 마땅한 명분을 찾지 못한 게 원인이라는 시각도 있다. 화물연대는 지난 6월에도 14일간 총파업을 벌인 바 있다. 화물연대가 한 해 두 번 이상 파업을 벌인 건 올해가 2003년 이후 처음이다. 

MZ세대 여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응답자 중 20대의 67%가, 30대의 72%가 우선 복귀 협상을 골랐다. 이는 노년층(60대 82%·70대 이상 84%)보다는 낮지만 기성세대(40대 59%·50대 69%)를 상회하는 수치다.

하지만 MZ세대가 노동운동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파업 대응에 관한 다른 항목에서 20대와 30대의 ‘잘하고 있다’ 응답 비율은 각각 17%, 19%에 불과했다. 이는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낮은 수치였다.

반면 ‘안전운임제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지속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응답은 52%와 57%에 달했다. 전체 응답자 평균(48%)을 가뿐히 넘긴 비율이다.

민주노총과 ‘궤 안 맞는’ 세대?
투쟁 일선서 이탈…새 노조 조직


결국 MZ세대는 파업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파업 강행에는 부정적 의견을 내비친 셈이다. 학계는 일견 모순적인 결과를 놓고 “MZ세대는 파업 여부보다도 투쟁 방식에 불만을 가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노동사회학 전공의 A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통계자료를 보면 MZ세대는 파업 명분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그럼에도 복귀를 원하는 여론이 높은 이유는 총파업 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MZ세대는 그 누구보다도 노동 이슈에 관심이 많은 세대다. 다만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세대 특성상 집단주의적 투쟁을 강조하는 민주노총 방식은 수용하기 꺼리는 것”이라며 “단순히 젊은 세대의 정치 성향 우경화를 파업 반대의 원인으로 꼽는 건 설득력 없는 갈라치기”라고 덧붙였다.

B 교수는 MZ세대식 사고가 이 같은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봤다. 그는 <일요시사>에 “MZ세대에게 맹목적인 지지란 없다. 같은 대상에게도 사안별로 지지 여부가 달라진다. 이게 기성세대와의 차이점”이라며 “이 때문에 명분에는 공감하면서도 파업을 지지하지 않는 입장이 더 명확히 드러난다. 같은 입장의 기성세대였다면 결국 지지·합류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MZ세대의 특징은 사회적으로 익히 알려진 대로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수평적인 소통을 추구한다. 필요성이 확실히 입증되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는 실용성과 합리성도 엿보인다. 이 같은 특징들은 기존 노조 문화와 여러 지점에서 충돌한다.

민주노총의 연대·총파업은 주된 투쟁 전략 중 하나다. 이들은 다른 사업장·산업의 이슈에도 함께 목소리를 내고,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왔다. ‘민주노총’이라는 단위 아래에서 서로를 ‘동지’로 여기는 인식도 강하다.

빈손 복귀
더 큰 위기?

하지만 MZ세대는 그렇지 않다. 이들은 다른 사업장·산업 이슈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 때문에 확실한 동기 부여 없이는 연대·총파업 참여율이 저조할 수밖에 없다. 일단 파업에 참여했더라도, 그 동력이 유지되지 않으면 중도 이탈하는 사례도 목격된다.

이번 화물연대 파업에서도 젊은 조합원 다수가 조기 이탈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토부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 직후 일부 화물 기사는 국토부에 먼저 연락해 “명령서를 빨리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이 중 상당수가 20~30대의 젊은 기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맥락에서 MZ세대는 기존 노조의 경직된 분위기를 기피한다. 조직 내 복잡한 조직관계와 강한 위계질서에 불만을 느끼는 젊은 조합원들이 많다는 것이다. 

주된 활동층인 기성세대와의 세대 차이·갈등도 불만의 한 축이다. MZ세대 조합원은 의견 개진·간부 선발 등에서 기성세대에 밀려 소외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이와 관련된 문제 제기가 나왔다.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은 지난해 2월 ‘청년 조합원의 경험과 노동조합의 대응과제’ 보고서를 발표했다. 노동연구원 역시 보고서에서 청년층 조합원의 참여율이 저조한 이유로 ▲세대 차이 ▲노조의 빈약한 동기 부여 ▲투쟁 방식에 대한 의견 차이 등을 꼽았다.


노동연구원은 특히 투쟁 방식에 대한 세대별 의견 차이에 관해 “면접 내용에 따르면 젊은 조합원일수록 예전과 달리 언론을 이용하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투쟁하는 온건한 전략을 선호한다”며 “(젊은 조합원 사이에서)‘사회 분위기가 변화하면서 노조가 과거와 같은 투쟁을 하면 큰일 날 수 있다’거나 ‘과격한 투쟁으로 문제가 생기면 아무도 책임져 줄 수 없다’는 인식이 있다”고 짚었다.

또 “MZ세대 조합원들이 집회 일변도를 벗어나 유튜브 활용 등 새로운 투쟁 방식을 제시해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불만이 많다”는 분석도 언급됐다.

쌓인 불만
떠나는 MZ

민주노총을 비롯한 기존 노조를 향한 불만은 MZ세대가 직접 새로운 노조를 조직하려는 시도로 귀결됐다. 이 중 일부는 민주노총 산하 노조의 ‘대안세력’으로 떠오르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올바른노조’가 대표적인 예다. 올바른노조는 지하철 1~8호선 및 9호선 일부 구간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의 제3노조다. 지난해 8월 결성됐으며, 조합원의 약 90%가 MZ세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교통공사의 제1노조는 민주노총 소속의 공사 노조다.

이들은 지난달 30일 서울교통공사 양대 노조가 6년 만에 총파업에 돌입하자 이를 ‘명분 없는 정치파업’으로 규정하며 불참했다. 그런데 교섭 기간 중 젊은 직원 상당수가 공사 노조에서 올바른노조로 옮겨왔다. 노사 교섭이 진행되던 한 달 사이 조합원 수가 1250여 명에서 1900여 명으로 52%가량 증가했다는 게 노조 측 설명이다. 


파업에 불참하고도 조합원이 급증한 진풍경이 연출됐다. 이와 관련해 송시영 올바른노조 위원장은 “공사 노조가 주도하는 불합리한 정치투쟁에 염증을 느낀다며 올바른노조로 넘어오는 직원이 많다”고 설명했다.

올바른노조는 독자적인 활동 방향을 구축했다. 이들은 ▲상급단체 없는 직원만을 위한 노동조합 ▲합리적인 조합비 ▲다양한 소통 채널과 빠른 피드백 ▲수평적 문화 구축 등을 내세우고 있다. 

때로는 공사 노조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한다. 2018년 서울교통공사가 무기계약직 노동자 1300명의 정규직 전환을 두고 갈등을 빚은 문제는 올바른노조의 설립 계기가 됐다.

송 위원장은 “당시 정규직 전환에 주도적으로 나선 것이 공사 노조다. 정규직 증가로 기존 직원의 피해는 없다고 했는데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충분한 소통 없이 이뤄진 불공정한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답답했다. 앞으로 직장생활을 오래 이어가야 하는 젊은 직원 중심으로 새로운 노조를 결성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강성 대신 온건 교섭 선호 성향 
정부 압박 커지면 복귀할 수도 

실제로 2019년 감사원은 ‘비정규직의 채용 및 정규직 전환 등 관리실태’ 감사보고서에서 “서울교통공사가 관련 법령에 따른 능력 실증 절차 없이 2018년 3월 무기계약직 1285명 전원을 일반직으로 신규 채용했다”고 지적했다. 당시 감사원 감사로 이 중 192명이 기존 재직자의 친인척으로 드러나 논란이 인 바 있다.

다만 ‘MZ노조’가 마주한 현실은 그리 녹록지만은 않다. 단체교섭권 확보, 기존 노조와의 관계 설정 등 난제가 산적했다. 

2011년 개정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라 사업장별로 복수 노조를 설립할 길이 열린 건 맞지만, 단체교섭권을 행사할 수 있는 노조는 여전히 1곳으로 제한된다. ‘기존 노조 소속 근로자와 근로 조건 등이 크게 다른 경우’에는 노동위원회에 교섭 단위 분리를 신청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이 있긴 해도 제대로 인정되지 않는 실정이다.

기존 노조의 견제도 견뎌야 한다. 코레일네트웍스 일반직 노동조합은 지난해 4월 기존 노조와 별개로 단체교섭권을 획득했다. 이 노조 역시 조합원 90% 이상이 MZ세대 직원이다. 

그런데 지난해 7월 민주노총 전국철도노동조합이 서울행정법원에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코레일네트웍스 일반직 노조 교섭단위 분리결정을 취소하기 위해서였다.

일반직 노조 측에서는 “노조에 의한 노동3권 침해”라며 “복수 노조 시대에 다른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회사와 교섭창구를 독점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당시 법원은 일반직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제3부는 지난 6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철도노조가 항소하지 않으면서 판결은 확정됐다. 

노동현장 속 MZ세대 비율이 점차 늘어나는 만큼 ‘노동계 대격변’은 앞으로 더욱 활발히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 가지 변수는 남아 있다. 정부의 노동정책에 따라 MZ세대의 노동운동 방향이 변화할 여지는 상존한다. 

독자 활동
과제 산적

현 정부는 강도 높은 노동개혁과 함께 반(反)노조 의사를 분명히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3일 국무회의에서 “우리 경제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2차례의 업무개시명령이 발동된 후에야 이 파업이 끝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파업기간 중 발생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사태가 일단락됐다고 해서 과정 중에 있었던 각종 불법·폭력행위에 대해 그냥 넘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후 정부의 노조 압박강도가 임계점을 넘어가면, MZ세대의 강성 투쟁 합류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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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