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서울 한복판에서도 신선한 공기를 쐴 수 있으니 즉 새벽 시간이다. 설령 고농도 매연과 미세먼지가 잠복해 있더라도 삶의 목적을 향해 나서는 사람들의 마음에 붙은 코엔 시골 산촌의 해맑은 공기보다 더 상쾌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하긴 그건 인간 속에 웅크려 또아리 튼 욕망이 빚어낸 착각에 불과하리라. 하지만 우리는 언뜻 알면서도 대도시 시민이란 몽상에 젖어 살아가는지 모른다.
잠시 후 여명이 비치고 햇빛이 실상을 드러내 놓는 순간 실망감에 빠져 허덕거릴 텐데도 말이다.
밤과 새벽
하지만 아직은 그 누구도 오늘 하루의 성패를 알 수 없기에 구더기처럼 변소 위로 기어 오르려 애쓰는지 모른다. 그것 자체로 좋지 않겠는가!
아마 여의도 의사당 왕궁의 국회의원 나리들보다 구더기의 마음을 이해하는 게 우리 보통 국민의 삶을 훨씬 더 향상시킬 수 있으리라. 아니, 하숙생의 하루를….
새벽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은 식빵 두 쪽 사이에 금방 프라이해 놓은 달걀을 끼워 무료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 또는 우유와 함께 급히 삼키곤 터벅터벅 뛰어나갔다. 좀 더 나은 삶을 향하여!
도시의 잿빛 거리 거리와 일터로 통하는 좁은 골목길을 걸어다니는 동안 아마 그의 의식 속에 하숙집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하숙을 무시하면서 언젠가 중류를 지나 상류의 고급 자택속에 깃들 날을 꿈꿀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연 짙은 시멘트 빌딩 내부에도 삭막한 아스팔트 길은 존재한다. 사막과도 같고 정글과도 같은 도시의 길목을 헤매다 보면 얼핏 한 번쯤 하숙집이 떠오를지 누가 알겠냐만 애써 짐짓 고개를 흔들 터이다.
그러곤 급히 선술집으로 들어가 허겁지겁 목(숨줄)을 축이겠지.
마침내 곤드레만드레로 취해 길도 모른 채 겨우 하숙으로 기어들어 허무한 잠에 빠진다.
자정이 넘도록 하숙집은 완전히 조용해지진 않는다. 어디선가 주정뱅이의 넋두리, 잠꼬대, 한숨 소리 따위가 들려오기도 한다.
쥐새끼들처럼 조심스레 찍찍거리며 계단을 밟는 소리와 쟁그랑거리는 소음이 불현듯 날 때도 있다.
언젠가 궁금증을 못 이긴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본 적이 있다. 주방 쪽에서 수런수런 기척이 났다. 그건 쥐가 아니라 두 명의 재수생이었다. 한 놈은 키가 크고 다른 녀석은 보통보다 작은 편이었다.
평소에 둘은 꼭 붙어 다녔다. 마치 콤비 코미디언인 훌쭉이와 똥땡이 같기도 했다. 성격은 서로 달랐다. 아니, 정반대라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가끔 티격태격할 뿐 사촌 간처럼 잘 어울려 돌았다. 공부는 꽤 열심히 했다.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의 모습
콤비 코미디언 같은 재수생 둘
다만 키다리 녀석은 벌써부터 ‘인생이 무엇인지’ 하는 존재론적 문제에 관심이 깊었고 땅꼬마는 높은 경제와 연애의 본질에 더 관심을 보였다.
내가 짐짓 슬쩍 그런 건 대학에 가서 전공하고 지금은 학업에 전념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조언하면 그들은 함께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공부 로봇이 아니다!”라면서.
하나 더 특이한 점은, 키다리는 전라도 땅꼬마는 경상도 출신이란 사실이었다. 세파에 찌들어 고지식하게 지역 감정을 들먹이고 부추기는 철부지 싸가지 꼴통들을 그들은 비웃으며 경멸했다. 청년의 진취적 순수성으로….
어떤 노털 왈 “아직은 모를 거야. 직접 겪어 봐야 알겠지”라고 충고하면 재수생 녀석들은 “우리가 지금 함께 겪고 있잖아요. 과거의 망령을 불러들여서 현재를 망치려고 하지 마세요”라고 대꾸했다.
그러면 노털은 우스운 녀석들이라고 비웃으며 지나가 버렸다. 우스운 녀석들은 남들이 목숨 걸고 들어가려 애쓰는 서울대를 무시했다.
자기들이 지망하는 연고대에 들어갈 실력이 되는지는 모르지만 서울대 지망 재수 삼수생에게 결코 꿀리지 않았다. 오히려 성적 점수 벌레라며 은근히 비웃었다.
사실상 자기들도 생각만 좀 바꾸면 점수 낮은 과를 택해 서울대생이 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정말 그럴까?
무한경쟁 시대에 시세는 늘상 바뀌는데…. 그래도 삭막한 세상에서 나름대로 꿈꾸는 녀석들이 기특해 보였다. 꼼수 허위보다는 정정당당하게, 허세보다는 정말 하고 싶은 공부를 해서 자리이타하고 싶다는 아이들….
문득 그들이 사막 속의 오아시스라기보다, 한국이라는 삭막한 오아시스 속의 맑은 사막처럼 느껴졌다.
난 슬슬 다가갔다. 녀석들은 어슴푸레한 주방 한구석에서 한창 정중동 중이었다. 한 놈은 계란 프라이를 하고 한 놈은 전기 밥솥에서 푼 밥을 큰 양푼에 담고 있었다.
내가 목청을 살짝 울려 기척을 내자 녀석들은 화들짝 놀랐다. 곧 소리 죽여 키득키득 웃었다.
“뭐 하는 거야?”
“배가 고파서 비빔밥이나 좀 만들어 먹으려구요.”
냉장고에서 꺼낸 나물 두어 가지에 계란을 얹고 고추장을 넣어 비비자 먹음직스러워졌다. 그걸 들고 녀석들의 합숙방으로 들어갔다.
둘이 하도 맛있게 먹는 바람에 나도 그 양푼 속에 숟가락을 가져다 댔다. 어릴 때 고향에서 수박이나 참외 서리를 하듯 스릴 넘치고 맛있었다.
옥탑방에도 하숙인이 들어 있었다.
꽤나 괴상스러워 보이는 노인네였다. 외양으로 내면까지 평가해서는 안 되겠으나, 너무 괴이하고 의뭉스러워서 속을 알 수 없기에 우선 보이는 외모부터 묘사해야겠다.
눈을 보면 사람이든 동물이든 웬만큼 파악할 수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눈만 보고서는 그가 인간인지 짐승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나도 꽤 많은 눈을 보아 왔지만 그런 눈은 처음이었다.
뱀, 너구리, 고양이, 나무늘보, 멧돼지, 여우, 늑대, 살쾡이, 들쥐 등이 보더라도 아마 조금쯤씩 놀랄 듯싶었다.
그 눈에 정기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죽은 건 아니고 모종의 사기(邪氣)를 은근슬쩍 내뿜는 낌새였다. 노인네는 눈을 전혀 깜박이지 않았다.
마치 땅꾼이 구렁이의 심리를 살피듯 자기 속내는 좀체 내보이지 않으면서 상대의 내심을 꿰뚫어 보려 했다. 또 능청스럽기는 너구리 찜쪄 먹을 정도였다. 피에로씨도 한 능청 떠는 사람인데 그 영감 앞에선 생쥐 꼴이었다.
때로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검붉은 입귀만 슬쩍 치올려 미소지었다. 그런 순간엔 과연 인간이란 존재의 표정, 즉 이를테면 얼굴 속 의식과 잠재의식이 얼마나 광대천변해질 수 있는지 마치 스마트폰 화면으로 은근슬쩍 보여 주는 성싶었다.
안경을 쓰지 않았건만 눈 둘레 피부에 거무스레한 달무리 같은 게 서려 있어 저승사자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젊은 사람 못지않게 입심은 강했다. 한번 지껄이기 시작하면 중언부언 끝이 없는데 그 요설이 잠시나마 중단되는 건 틀니가 튀어나올 때뿐이었다. 그럴 때조차 별로 당황스러워 하지 않았다.
능청을 떨며, 내용보다는 말투에 더욱 자신의 개성을 집어넣으려 거드름을 피웠다.
레드 몬스터
옥탑방 입구엔 철학관 표식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무허가라 그런지 판자대기에 붓펜으로 쪼그맣게 써붙여 놓아 잘 보이지도 않았다. 손님 자체가 없었다. 간혹 하숙생 중에 재미 삼아 인생 희롱 삼아 귤 봉지나 사이다 한 통 들고 슬쩍 들러 볼 뿐….
허연 머리를 길게 기르고 수염도 자라는 대로 놔뒀는데, 무슨 멋부리기보다 이발비가 좀 모자라거나 무관심 탓이 아닌가 싶은 기색이었다. 그래도 하숙비를 낼 만큼 복채는 들어오는지 피에로씨처럼 징징거리진 않았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