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시 쓰는 법의학자’ 김윤신 조선대 의대 교수

“사체 마주할 땐 얼음처럼 냉정하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아침 햇살이 세상을 비추기도 전에 / 차가운 해부대 위에 / 벗은 몸으로 누우신 당신, / 우리 날마다 그대 영혼을 만나 / 버림받은 당신의 감추인 사연을 듣고 / 모진 삶의 이면을 보지요, <3일간의 진실> 중 ‘서삼 가는 길’.

김윤신 조선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교수는 ‘시 쓰는 법의학자’다. 2014년 10월 <3일간의 진실>이라는 시집을 냈다. 고등학생 때 이육사 선생의 ‘광야’를 외우고 다녔던 문학소년이 ‘시인’이 된 순간이다. 

따뜻한 시인

김 교수가 제일 좋아하는 시인 ‘서삼 가는 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 광주과학수사연구소 유족 대기실에 걸려 있다. 시를 읽은 유족은 부검을 맡은 법의학자에게 신뢰의 눈빛을, 형사는 공감을 보낸다. 한 형사는 그의 시를 베껴 출동 전 읽고 나간다고 한다. 

<3일간의 진실>이라는 제목은 김 교수의 법의학 입문 배경과 닿아있다. 김 교수를 법의학의 세계로 이끈 선배 법의학자는 황적준 고려대 교수.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에서 부검을 맡은 부검의다. 김 교수는 1987년 당시 내용이 담긴 다큐멘터리를 보고 법의학에 관심을 가졌는데, 그 프로그램 제목이 <3일간의 진실>이었다. 

“황 교수님이 은퇴한다고 해서 ‘헌시’를 준비했어요. 그 시가 ‘3일간의 진실’이었습니다. 한 청년의 죽음에 얽힌 법의학자의 고뇌를 담았지요. 시를 봐주신 문병란 교수님이 시집 제목으로 골라주셨습니다. 만약 제가 골랐으면 ‘서삼 가는 길’이라고 했을 겁니다.”


그날, 죽은 자의 가슴을 열어 / 본 것을 보았다 말하였을 따름이나 / 불의한 권력의 심장이 꿰뚫렸습니다 / 정의를 열변함도 아니었으나 / 압제의 갑문이 무너졌습니다. /  …중략… / 난폭한 권력 앞에 신음하던 온 세상을 채우고 / 끝내 정의의 횃불로 타올랐습니다. <3일간의 진실> 중 ‘3일간의 진실’.

망자·유가족 위해 끊임없이 물어
“사람 적으니 더 그만둘 수 없어”

지난 7월19일 조선대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다음날 스쿠버다이빙을 위한 출국 일정을 잡아둔 상태였다. 그는 “법의학을 처음 접했을 때 다이버가 익사한 사건을 맡았다. 당시 익사 원인에 대해 의문을 품다가 직접 다이빙을 해보기로 했다. 그 이후로 매년 (다이빙을 위해)외국에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학구열은 놀라운 수준이다. 국과수 재직 때부터 납득이 가지 않는 사건이 있으면 관계자를 만나 끊임없이 묻곤 했다. 부검 과정에서 본 것에 그치지 않고 조언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전문가를 만났다. 특히 법의학자는 경찰·검찰 등 수사기관 관계자와 협업을 하는 일이 많다.

김 교수는 이를 위해 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해 법을 공부했다. 

‘시인이 된 법의학자’라고 불리지만 사체를 마주할 때의 김 교수는 얼음처럼 냉정하다. 김 교수는 “법의학자는 (사체에 대해) 불쌍하고 측은한 마음이 있더라도 그걸 드러내면 안 된다. 연쇄살인 피해자를 보면서 연쇄살인범을 미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보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된다. 감상은 곧 직무유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체를 부검하면서 ‘철저히 살펴라. 가능한 있는 것을 다 보려고 하고 기록으로 남겨라. 결론은 냉정하게 그리고 간결하게 내려라’는 원칙을 세웠다.


김 교수는 “‘사인불명’이 정답인 죽음이라면 냉정하게 누가 나를 비난하더라도 그걸 두려워 말고, 부담도 갖지 말고 ‘모른다’고 결론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신 안다고 뭔가를 썼다면 그 근거를 가능한 ‘아, 이 결론이 맞겠네’라고 동의할 수 있는 논리적인 묘사와 기술을 해야 한다"는 다짐으로 살고 있다. 

하지만 국내 검시 현실에서 법의학자에게 주어진 권한은 그리 많지 않다. 전국적으로 60여명에 불과한 법의학자 사이에서 검시제도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다. 김 교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현행 검시제도에서 법의학자의 역할에 대해 ‘사인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책임만 주어진 전문가’라고 정의했다. 

“사망사건이 일어났을 때 ‘부검이 필요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법의학자에게 의견을 물어보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방적으로 또는 어떤 관행이나 훈령에 의해 정해지는 부검 결정이 아닌 법의학자의 의견이 반영되고 그 내용이 반영될 수 있는….”

<3일간의 진실> 시집 펴내
“사회 위한 아름다운 역할”

현장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김 교수는 “죽음의 모습은 늘 현장과 상관관계 속에 있다. 사람의 몸에 가해지는 손상은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공간이라는 삼각관계에서 결정된다. 그만큼 현장이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2005년 이후 총 7건의 검시제도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1건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임기 만료 폐기’ 수순을 밟았다. 중대 사건이 일어나면 국과수나 법의학자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진다. 수사기관도 ‘전문가 의견’을 위해 법의학자를 찾는다. 하지만 법의학자가 처한 현실이나 주변 제도는 늘 뒷전이곤 했다. 

“20여년간 검시 업무를 하면서 느끼는 게 감정 결과에 대한 수사기관의 요구와 기대, 또 사회적인 요구와 기대 수준이 점점 높아진다는 느낌이 옵니다. 사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거나 설명을 요구하는 게 제 세대의 부검이라면 후배 세대는 ‘그것이 왜 그런 결론이 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요구 수준이 높아지고 요구사항이 구체화된다면 그에 걸맞은 여건도 함께 보장해줘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감정 업무를 적정 수준으로 조절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정보를 전달받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 여기에 의무기록에 대한 접근 권한을 덧붙였다.

“(의무기록은)심지어 가족도 볼 수 없습니다. 의무기록을 보기 위해서는 위임장을 받아야 하고 당사자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살아있는 환자에 대해서는 그런 절차가 필요하다, 필요하겠다고 인정합니다. 그런데 당사자가 사망하면 전혀 다른 법률관계가 적용됩니다. 사람이 사망했는데 사인을 몰라 부검이 필요하면 ‘변사체’가 됩니다. 그때부터는 압수의 대상이 됩니다.”

김 교수는 압수의 대상이 된 사체와 살아있는 환자를 동일한 기준으로 보는 것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고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어떤 방식이 유가족과 당사자에게 더 유용하고 유익한 방법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현실은 뒷전

“사람이 적으니까 오히려 더 이 일을 그만둘 수 없어요. 사람이 없으니까 더 이 일을 할 수밖에 없다는 역설적인 대답이 나오는 거죠. 저는 그런 생각을 해요. ‘참 아름다운 일이다. 살아 있는 내가 이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역할 중에 하나’라고요. 죽음에 얽힌 진실을 찾고 그 진실에 근거해 그 다음 후속조치가 필요한지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는 것, 그게 제 일입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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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풀어주느냐, 마느냐, 이재명 대통령이 깊은 고심에 빠졌다. 8·15 특별사면·복권 명단에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의 이름이 올라오면서다. 한때 아군이었던 조 전 대표의 정치 생명이 용산의 선택에 달렸다. 조국혁신당은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계까지 사면론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7일 이재명정부의 첫 특별사면을 준비하기 위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특별사면 명단에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관심이 급상승했다. 사면심사위원회가 사면·복권 건의 대상자를 검토하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이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오는 12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설에 부채질 조 전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실형을 확정받았다. 조 전 대표의 만기 출소 예정일은 내년 12월15일이다.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이 이뤄질 경우 출소 시기는 앞당겨질 수 있다.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기소 자체가 검찰의 무리한 시도였다고 보는 만큼 이번 정권에서 검찰개혁을 이뤄내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혁신당 신장식 의원은 지난 대선 정국서 “조 전 대표가 보고 싶지 않느냐”며 “(이재명 후보가) 그냥 이기는 게 아니라 크게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 곧 조 전 대표의 사면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 것이다. 조 전 대표의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또한 비슷한 시기에 ‘더1찍 다시 만날 조국’이라는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이 후보의 당선과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동일시했다. 이렇듯 혁신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 등에서 일궈낸 업적을 청구서 삼아 은근한 눈치를 보냈고, 최근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 친문(친문재인)까지 목소리를 키우면서 이 대통령을 전방위로 둘러쌌다. 지난달 30일 친문계인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조 전 대표와의 접견 사실을 알리며 “특유의 미소가 여전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많을 법도 한데 오히려 긍정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자꾸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이어 “조국의 사면을 많은 이들이 바라는 이유는 검찰개혁을 요구했던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그의 사면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마음 아닐까”라며 “야수의 시간과 같았던 지난 겨울 우리가 함께 외쳤던 검찰개혁이 틀리지 않았음을, 서로 생각은 달라도 통합과 연대라는 깃발 아래 모두가 함께 있었음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민통합 일환? 이 결정만 남아 친문계에 문까지 팔 걷어붙여 친명(친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 역시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통합을 위한 측면에서 넓게 사면 복권에 관한 판단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든다”면서도 “이 문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통령께서 판단할 문제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문 전 대통령이 용산 측에 조 전 대표의 사면 의견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5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은 우상호 정무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고, 우 수석은 “뜻을 전달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김원기·임채정·정세균·문희상·박병석·김진표 등 민주당 출신인 전 국회의장도 가세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책임을 수용한 이들에 대한 절제된 관용”이라며 “대통령께서 국민 통합의 뜻을 담아 조 전 대표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한 개인의 구제가 아니라 극한 대립과 갈등의 시기를 겪어내며 상처 입은 우리 사회 공동체에 건네는 ‘공정한 매듭과 위로’의 손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방에서 사면 요청이 쇄도하자 대통령실은 막판 고심에 빠졌다. 앞서 지난 5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사회적 약자와 민생 관련 사면에 대해 일차적으로 검증 및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정치인 사면에 관해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 중”이라며“아직 최종적인 검토 내지는 결정에는 이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혁신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조 전 대표가 수감 된 지 8개월이 지났는데 혁신당은 아직도 권한대행 체제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 대표를 뽑을 만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뭐겠느냐”며 “이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조 전 대표가 사면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가 돌아와서 혁신당이 이전 같은 명성을 되찾길 기다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혁신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대표가 궐위된 때에는 최고위원 가운데 가장 많은 득표로 선출된 최고위원이 남은 임기 동안 당대표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선민 권한대행이 내년 7월까지 조 전 대표의 임기를 대신해 자리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당초 조 전 대표가 자신의 수감 생활을 예측하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이러한 당헌·당규를 개정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8개월째 대행 체제 혁신당 “확신” 믿을 구석 있었나 내년 지방 선거를 위해서라도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사면이 필요하다. 구심점이 없고 ‘조국’혁신당이라는 이름만 존재하는 지금으로서는 지난 보궐선거만큼의 역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민주당은 딜레마에 빠졌다. 국정 초기부터 자녀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으로 법의 심판을 받고 복역 중인 인사를 사면했다가는 ‘범죄자 프레임’에 함께 걸려들 수 있다. ‘조국 사태’에 거부감을 느낀 지지자들의 이탈도 고려해야 하는 지점이다. 반면 사면 요청을 거절할 경우 오히려 조 전 장관의 정치력을 키우는 등 일종의 서사를 부여할 수 있다. 조 전 대표는 본인의 사면에 대해 큰 뜻을 밝히지 않아 오히려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 것이란 해석이다. 민주당에 있어 조 전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의 ‘변수’다. 지난 총선서 호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혁신당이기에 조 전 대표가 정치권에 돌아온다면 진보진영 텃밭을 둘러싼 두 정당 간의 경쟁과 그로 인한 잡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그의 행보를 예측하고 나섰다. ‘자유의 몸’이 될 경우 이른 시일 안에 전당대회를 치러 다시 한번 당대표직을 거머쥐고 내년 지방 선거를 진두지휘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일각에서는 조 전 대표가 부산 시장 등으로 직접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도 보고 있다. 어디로 튈까 민주당은 최종 사면 명단이 공개되기 전까지 별다르 입장을 내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7일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지만, 이날 조 전 대표의 사면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제 공은 이 대통령에게 넘어왔다. 단 한 사람의 정치 인생이 걸린 문제지만 그의 복권은 정치 진영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여러 가지 변수와 상수가 존재하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최종 선택에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