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없다면…’ 민주당 새 리더 자천타천 하마평

사공은 많은데 선장이 안 보인다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불안한 리더를 내세운 집단은 힘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렵다. 국회 최대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요즘 제1야당의 위엄을 좀처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연일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탓이다. 검찰 수사가 남욱 변호사와 유동규 전 성남개발도시공사 기획본부장의 폭로로 빠르게 진척되자 이 대표가 이끌고 있는 민주당은 크게 흔들리는 모양새다.

당선된 지 반년도 안 된 당 대표에게 “물러나라”고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광경이다. 아무리 문제가 있는 리더라도 일정 기간 리더십을 존중해주는 게 그동안 정치권의 관례였다. 더욱이 친명(친 이재명) 지도부가 처음 출범했을 때, 비명(비 이재명)계 의원들조차 ‘비주류로 살아온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기회를 주자’는 응원의 메시지를 내놨고, 친명계도 계파 갈등을 청산하겠다며 자신감을 드러내던 참이었다.

불안한 리더
다시 비대위?

이 대표의 리더십이 흔들거린 건 전당대회가 끝난 지 몇 달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유동규 전 성남개발도시공사 기획본부장이 풀려나고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구속되더니, 곧이어 정진상 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까지 구속된 것이다.

검찰은 이제 몸통만 남은 이 대표에게 언제 칼끝을 겨눌지 고심 중이다. 정계 관계자들의 제보에 따르면 검찰은 민주당이 가장 아파할 시점을 계산해 몸통을 칠 계획을 하고 있다. 민주당이 가장 아파할 때를 골라 이 대표를 본격적으로 수사하겠다는 것이다.

어수선한 당내 분위기 속에서 이 대표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점차 거세지고 있다. 특히 비명계 의원들 사이에서 차례대로 이 대표를 압박하고 나서는 모양새다.


민주당 설훈 의원은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이재명 대표는 이 상황에서 결백하다고 선언하고 ‘당에 더 이상 누를 끼치지 않겠다. 나는 떳떳하기 때문에 혼자 싸워서 돌아오겠다’고 선언하고 대표직을 내놓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며 “그러면 상당히 많은 우리 당 지지자와 국민이 ‘역시 이재명이구나’라며 박수 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응천 의원도 이 대표의 직접적인 해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조 의원은 “이 대표가 (대장동 의혹과)무관한지 솔직히 잘 알 도리가 없다. 무관하다고 믿고 싶은 것”이라며 “최측근 2명이 연이어 구속된 데 대해 최소한의 유감 표시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압박했다.

다만 이 대표의 퇴진과 관련된 주장에 대해선 “(이 대표 퇴진에 대한)당내에 그런 움직임은 없다”며 “클릭 수 늘리는 기사에 주력하는 언론의 병폐”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조 의원의 발언과 내부 분위기는 사뭇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시기가 언제가 됐든 이 대표의 사퇴는 막을 수 없는 파도로 보고 있다. 

만일 이 대표의 퇴진이 현실화된다면 민주당은 또 다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할 계획이다. ‘또다시 비대위’라는 오명을 감수해야 하지만, 이들은 그 정도의 리스크까지 감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어렵게 주류 됐는데…흔들리는 민주당
이 대표 사퇴 시점은? 실권 행사 미지수


민주당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아직은 섣부른 단계지만,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더 나아간다면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이 비대위를 구성해야 한다”며 “정상적인 지도부가 들어선 기간보다 비대위 기간이 더 길다는 것은 뼈아픈 지적이다. 그러나 달리 방도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비대위를 구성하기 위해선 여러 가지 난관을 해결해야 한다. 친명계의 거센 반발을 이겨내야 하고, 중도층까지 비대위에 합세시켜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균형감과 무게감을 갖춘 비대위원장을 리더로 내세워야 한다.

여차 저차 비대위 구성에 합의한다고 해도 막상 리더에 걸맞지 않은 인물이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될 경우, 또 다시 당 대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미 한차례 비대위원장 물색에 진통을 겪은 바 있다. 지난 6월 민주당에는 인력난이 불어닥쳤다. 대선을 치르며 민주당 중진 의원들이 대거 잠행에 들어가게 됐고, 지방선거에서 낙선한 의원까지 줄줄이 1선에서 물러났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전당대회를 앞둔 시점에서 민주당은 재빨리 비대위를 구성해 당의 안정을 도모해야만 했지만, 비대위원장 자리를 맡겠다는 사람들은 좀처럼 등장하지 않았다.

당시 민주당은 계파색이 옅고, 의원들을 아우를 카리스마 있는 리더를 원했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나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 문희상 전 국회의장, 정세균 전 국무총리 등이 물망에 올랐고, 민주당은 이들에게 비대위원장 자리를 권유했다.

그러나 제안받은 사람은 모두 고사했다. 실익도 없고 비판만 받을 자리라는 계산 아래서다. 당의 실권이라고 할 수 있는 공천권은 차기 대표가 가져갈 것이고, 극에 달해 있던 갈등을 반감 없이 해결하리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당외에서 인물을 물색하던 민주당 지도부는 결국 4선 중진 우상호 의원에게 민주당의 키를 맡겨야 했다. 이 대표가 물러설 민주당은 그때의 민주당과 매우 닮아 있다. 우선 비대위원장에게 실권이 주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 대표의 사퇴 시점이 앞당겨진다면 이후의 전당대회를 개최할 시간이 생기겠지만, 시기가 늦어진다면 비대위원장이 실권을 갖게 된다.

중진 의원
대거 잠행

한 비명계 의원실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비대위가 구성되는 시기는 필연적으로 이 대표의 사퇴 시점과 맞물리게 된다. 그 시점이 언제냐에 따라 비대위원장의 권한이 크게 차이날 것”이라며 “알다시피 내후년 4월쯤 22대 총선이 있다. 그 전에 전당대회를 계획하고 준비하려면 수개월이 걸린다”고 주장했다.

즉, 이 대표의 사퇴 시점이 총선에 얼마나 바투 있느냐에 따라 비대위원장의 권한이 차이난다는 것이다. 총선 직전의 사퇴라면 비대위원장이 ‘실질적 리더’가 될 것이고, 전당대회 전의 비대위원장이라면 ‘식물 리더’가 될 것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또 비대위가 구성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는 친명계가 그 역할을 대신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 한 사람만 사퇴한 뒤 친명계 지도부 중 한 사람이 직무를 대행해 대표로 일할 수 있다. 민주당 당헌·당규엔 당 대표 궐위 시 어떻게 지도부가 구성되는지 자세히 기재돼있다.

당헌 제23조 3항에는 ‘당 대표가 선출될 때까지는 원내대표, 선출직 최고위원 중 득표율 순으로 당 대표의 직무를 대행한다’고 적시돼있다.

당헌·당규상 현재 원내대표인 박홍근 의원이나 수석 최고의원인 정청래 의원이 당 대표를 대행할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 다만 여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뒤따른다. 이 대표를 중심으로 불통을 이어온 친명계가 리더를 잃는다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비명계 의원들의 원성이 더욱 거세지기 마련이다.

거세질 비명계의 ‘지도부 총사퇴’ 요구를 친명계가 버텨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대표가 대표직을 내려놓을 시점에 민주당의 계파 갈등은 이미 극에 달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비대위원장 자리에 올 인물은 이런 계파 갈등의 부담까지 떠안아야 한다. 실익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리스크만 커 보이는 자리에 누가 오려고 할까? 또, 민주당이 생각하는 리더감은 누구일까?


<일요시사>가 취재 중 가장 많이 들었던 인물은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이었다. 벌써 일부 세력에서는 조 의원과의 소통을 시작했고, 민주당에 비상상황이 생기면 그를 데려올 준비를 하고 있다. 조 의원 측 또한 이런 움직임을 감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위원장 자리
독이 든 성배

조 의원실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의원실에 비난과 비판 전화가 많이 왔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민주당에 당 대표나 비대위원으로 와달라는 전화가 많이 온다”며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다. 민주당 의원님들이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요시사>와 만난 다수의 민주당 의원들은 조 의원이 새로운 리더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민주당 의원은 민주당의 새로운 리더는 우선 현재 지도부인 친명계와 색이 달라야 하고, 본인 나름대로의 뚝심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몇몇 의원은 계파색이 없는 당 외의 새로운 인물이어야 한다는 조건도 덧붙였다. 

조 의원은 그동안 수차례 현 민주당 주류 세력과 마찰을 빚어왔다. 시작은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검법 도입 반대였다. 민주당 입장에선 특검법 도입을 위해서 패스트트랙을 이용해야 했지만, 이를 위한 법사위원의 숫자가 부족했다.

조 의원은 그런 민주당을 도와줄 수 있는 법사위의 ‘키맨’으로 통했다. 그러나 그의 태도는 민주당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조 의원은 김여사에 대한 특검법 도입을 주장하는 민주당의 시도를 “쪼잔한 정치쇼”라고 비판한 바 있다. 조 의원은 민주당이 추석 전 김 여사에 대한 특검을 주장한 것을 두고 “추석 민심을 그쪽(김 여사 특검) 쪽으로 가져오려 한 것으로 보이는데, 정치는 그렇게해서는 안 된다”며 “특검법 도입은 보다 진중한 자세로 접근할 문제”라고비판했고, 이때 친명계 지지자들은 조 의원에게 원색적인 비난을 가하는 등 매섭게 몰아붙였다.

한동안 조 의원실은 업무가 안될 정도로 친명계 지지자들의 테러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의 지지자들은 매일같이 조 의원실에 항의 전화와 팩스를 보냈고, 간혹 의원실로 협박 택배를 보내 조 의원을 압박했다. 또, 조 의원이 등장한 게시글이나 정치 기사에 악플 세례를 퍼부으며 사이버 테러까지 저질렀다.

비명계, 뚝심 있는 외부인사 누가 있나?
조정훈, 유인태 등 유력 후보군 급부상

이런 어려움에도 조 의원은 굴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는 당시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힘들긴 하다. 그런데, 정치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쉬운 길을 가고 그 길을 관리하는 건 공무원들이 할 일이다. 정치는 어려운 길을 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 의원은 최근까지도 이 대표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고 있다.

최근 사법 리스크가 더욱 심하게 불거진 것에 대해 “소속 정당을 위해 절벽에서 떨어지는 모습도 보여줘야 한다”며 당 대표직 사퇴를 촉구했다.

그는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로 인해 야권 진영 전체가 무너지는 경우를 걱정하며 “이 대표가 대표가 된 이후에 ‘나를 따르라’는 리더십보다는 ‘나를 막아달라’는 리더십을 보였다. 일단 멋있게 당대 당 대표직을 내려 놓아야 한다”며 친명 진영과 대립각을 세웠다.

한편, 하마평에는 야권의 원로 인사들도 함께 거론됐다. 지난 6월 이미 거론됐던 유 전 국회사무총장이 대표적이다. 유 전 사무총장은 당시 당 대표로 거론되는 상황에 대해 “터무니없는 소리다. (당 대표 제안에 대해)거절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고 주장했지만, 민주당에선 아직 그를 영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한 민주당 중진 의원실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유인태 전 사무총장 같은 인물 정도가 돌아와야 민주당이 재정비될 수 있다”며 “원로급 인사 중 아직 정치활동이 가능한 인물은 현재 그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유 전 사무총장은 1990년대 초반부터 정치활동을 해온 배테랑이다. 그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경험했던 민주당의 산증인이며 야권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친명계와 비명계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을 가졌다고 알려졌다.

민주당이 위기에 처했을 때 종종 원로급 인사들이 등판해 당을 재정비했었다. 그런 민주당의 역사를 보면 유 전 사무총장의 등판이 전혀 가능성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번엔
원로 인사?

여러 가지 위기를 겪고 있는 민주당은 고민을 없애줄 해결사를 찾고 있다. 조 의원과 유 전 사무총장이 유력한 당대표로 거론되는 가운데, 민주당이 적절한 리더를 찾을 수 있을지 정계가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새 리더가 누가 됐든, 현재 리더가 자리를 내려놓는 것이 민주당 재정비의 선결 조건이다. 이 대표는 당을 위해 본인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

<ingyun@ilyosisa.co.kr>


<기사 속의 기사> 친문 재정비? 김경수 컴백설

구심점을 잃었다고 평가받는 친문 진영에 최근 새로운 희망이 떠오르고 있다.

신년을 맞아 윤석열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를 '동시 사면'할 가능성이 떠오르는 것이다.

대통령 사면은 보통 쓸데없는 정쟁을 야기시키지 않기 위해 여야 진영의 인사를 가리지 않고 고루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윤핵관이라 알려진 인물 대부분이 친이명박계 의원들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신년 사면은 가능성이 매우 높아져있는 상태다.

정계에서는 윤 대통령이 이 전 대통령 한 명만 사면할 리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아무리 야당과의 협치를 포기한 정부라도 사면 카드를 일방적으로 쓸 수는 없을 거라는 정치적 계산 아래서다. 

김 전 도지사의 사면이 끝내 문재인정권에서 이루어지지 못했던 만큼, 현재 친문계의 기대는 한껏 올라가 있는 상황이다.

최근엔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을 비롯해 김두관 의원, 전해철 의원 등이 옥중에 있는 김 전 도지사를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계에서는 이를 두고, “구심점을 잃은 친문계가 다시 세를 합하려 꿈틀대고 있다”고 평가한다.

사면 카드는 윤 대통령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카드다.

야권의 분열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윤 대통령이 김 전 지사를 사면한다면 김 전 도지사는 피선거권을 즉시 되찾아올 수 있다.

본래대로라면 김 전 도지사는 2028년까지 피선거권이 박탈되지만, 대통령 사면은 그의 피선거권을 즉시 복구시킬 수 있다.

정계 전문가들은 총선 전후로 심각해질 민주당 계파 싸움에 김 전 도지사까지 합세하면 민주당의 분열이 가속화될 것이라 전망한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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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