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록 법무사의 쉬운 경매> 묵시적 갱신, 2년간 더 살아야 하나요?

[Q] 임차인입니다. 임대인에게 계약갱신 거절 통지를 하지 못해 묵시적 갱신이 됐습니다. 앞으로 2년간 더 살아야 하나요?

[A]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해지 통지를 하면 됩니다. 계약 해지 통지가 임대인에게 도달하면 3개월 후 계약 해지의 효력이 발생합니다. 

먼저 임차권이 종료하는 경우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주택임대차나 상가건물임대차는 기간의 만료로 종료됩니다. 임대차는 원칙적으로 기간이 만료되거나 합의해지 또는 법정 해지가 되지 않는 한 종료되지 않습니다.

주택임대차에 있어서 기간의 정함이 없거나 기간을 2년 미만으로 정한 경우에는 그 기간을 2년으로 보고, 다만 임차인은 2년 미만으로 정한 기간이 유효함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주택임대차보호법 제4조 제1항). 따라서 임차기간을 1년으로 정한 경우 임차인은 약정기간의 만료를 주장해 임차보증금의 반환을 구할 수 있습니다(95다22283). 

상가건물임대차에 있어서 기간의 정함이 없거나 기간을 1년 미만으로 정한 경우 그 기간을 1년으로 보고, 다만 임차인은 1년 미만으로 정한 기간이 유효함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상가임대차보호법 제9조 제1항). 


다만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받은 경우의 주택 및 상가건물임대차에 관해서는 2년 또는 1년의 임대차기간이 보장되지 않습니다(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70조 제5항).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의 시행으로 임차권의 설정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때에는 임차인은 계약을 해지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임차보증금의 반환청구는 사업시행자에게 행사할 수 있습니다(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70조). 

임차권은 임차주택 또는 임차상가건물에 대해 ‘민사집행법’에 따른 경매가 행해진 경우 그 임차주택 또는 상가건물의 경락에 따라 소멸합니다. 다만 보증금이 모두 변제되지 않은, 대항력이 있는 임차권은 소멸하지 않습니다(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5,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제8조). 

임차주택이 임대차기간의 만료 전에 경매되는 경우, 대항력을 갖춘 임차인의 배당요구를 임대차계약 해지의 의사 표시로 볼 수 있습니다(97다28407).

상가건물임차인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49조 제1항 제2호에 따른 집합 제한 또는 금지 조치(같은 항 제2호의2에 따라 운영시간을 제한한 조치를 포함한다)를 총 3개월 이상 받음으로써 발생한 경제사정의 중대한 변동으로 폐업한 경우에는 임대차계약을 해지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의 해지는 임대인이 계약해지의 통고를 받은 날부터 3개월이 지나면 효력이 발생합니다(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11조의2).

임차인이 파산선고를 받은 경우에는 임대차기간의 약정이 있는 때에도 임대인 또는 파산관재인은 계약 해지의 통고를 할 수 있고, 임차인이 통고를 받은 날로부터 6월이 경과하면 해지의 효력이 생깁니다. 이 경우에 각 당사자는 상대방에 대해 계약 해지로 인해 생긴 손해의 배상을 청구하지 못합니다(민법 제637조). 


그러나 대항력 있는 임차인이 있는 경우 파산관재인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335조에 의한 계약  해지를 할 수 없습니다(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340조 제4항).

따라서 대항력 있는 임차인이 있는 부동산을 파산절차에서 매각할 때의 임대차계약의 종료는 파산관재인이 임차인과 사이에 임차인이 보증금반환청구권을 포기하고, 파산관재인이 보증금 상당액의 퇴거 비용을 지급하는 취지의 화해를 하고, 위 퇴거 비용을 재단채권(위 법 제473조 제4호)으로서 지급하는 방법으로 하고 있습니다(개인파산·회생실무, 서울회생법원 재판실무연구회 저, 제5판, 제214면). 

재단채권은 파산절차에 의하지 않고 수시로 변제하고, 파산채권보다 먼저 변제합니다(위 법 제475조, 제476조). 

다음은 주택임대차계약의 묵시적 갱신(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임대인이 임대차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의 기간에 임차인에게 갱신거절의 통지를 하지 않거나 계약조건을 변경하지 않으면 갱신하지 않는다는 뜻의 통지를 하지 않은 경우에는 그 기간이 끝난 때에 전 임대차와 동일한 조건으로 다시 임대차한 것으로 봅니다. 

임차인이 임대차기간이 끝나기 2개월 전까지 통지하지 않은 경우에도 같습니다. 이 경우 임대차의 존속기간은 2년으로 봅니다. 다만 2기의 차임액에 달하도록 연체하거나 그 밖에 임차인으로서의 의무를 현저히 위반한 임차인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같이 계약이 묵시적으로 갱신된 경우 임차인은 언제든지 임대인에게 계약 해지를 통지할 수 있고, 이 경우의 해지는 임대인이 그 통지를 받은 날부터 3개월이 지나면 그 효력이 발생합니다(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2). 

임차인이 임대인을 상대로 임대차보증금반환청구의 소를 제기한 것은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2 제1항 소정의 해지 통지에 해당하므로, 묵시적 갱신이 된 경우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2 제2항에 따라 임대인이 소장부본을 송달받은 날로부터 3개월이 경과하면 해지 통지의 효력이 발생합니다.

임대인도 묵시의 갱신을 주장할 수 있고, 갱신된 임대차의 존속기간은 2년으로 됩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2는 민법 제635조의 특칙에 해당하므로,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 민법 제635조에 의한 해지는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임차인은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2에 의해 해지 통지를 할 수 있고, 3개월이 지나면 그 효력이 발생합니다.

반면 임대인에 대해서는 임대차의 존속기간이 2년으로 간주되고,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2 반대해석상 임대인은 임대차계약을 해지할 수 없습니다.

임차인이 묵시적 갱신을 원하지 않을 때는 계약 종료 2개월 전까지 임대인에게 계약 종료에 따른 해지 통지를 해야 합니다. 통지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통지서를 교부하고 영수증을 받거나 내용증명우편을 보내는 것입니다.


내용증명은 우체국에서 ‘어떤 내용의 문서’를 ‘언제’ ‘누구’에게 발송했는지를 증명해준다는 점 때문에 내용증명이라고 불립니다. 우체국에서 그 등본을 3년간 보관하고, 이 기간 동안 재증명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우편법 시행규칙 제54조).

임대인의 잠적 등으로 임대인에 대한 내용증명 송달이 불능될 것으로 예상되면 계약만료 7~8개월 정도 전에 미리 보내는 것이 좋습니다. 내용증명을 보낼 때 임대인의 계약서상 주소지와 등기부상 주소지가 서로 다른 경우에는 각각 보내고, 임대인이 법인인 경우에는 법인주소지 및 대표자의 최후주소지에 각각 보내야 합니다. 

그래도 송달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법원에 의사표시 공시송달을 신청하면 됩니다. 의사표시 공시송달을 신청할 때는 표의자가 과실 없이 상대방의 소재를 알지 못함을 소명해야 하므로(민법 제113조) 위와 같은 절차를 미리 거쳐야 하는 것이고, 법원이 공시송달을 하기 전에 법원에서 다시 거쳐야 하는 우편집배원에 의한 송달, 주소보정명령에 대한 주소보정, 집행관에 의한 송달 등을 하려면 시간이 또 몇 개월 더 걸립니다. 

다음은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주택임대차 계약갱신요구권에 관한 내용입니다(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3).

① 임차인이 임대차기간이 끝나기 전 2개월 전까지 계약갱신을 요구할 경우 임대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지 못합니다. 다만, 임차인이 2기의 차임액에 해당하는 금액에 이르도록 차임을 연체한 사실이 있는 경우, 임대인(임대인의 직계존속·직계비속을 포함한다)이 목적 주택에 실제 거주하려는 경우 등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② 임차인은 위 계약갱신요구권을 1회에 한해 행사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갱신되는 임대차의 존속기간은 2년으로 봅니다.

③ 갱신되는 임대차는 전 임대차와 동일한 조건으로 다시 계약된 것으로 봅니다. 다만, 차임과 보증금은 제7조의 범위(증액이 있은 후 1년 이내에는 증액청구를 할 수 없고, 약정한 차임이나 보증금의 20분의 1을 초과하지 못한다)에서 증감할 수 있습니다.

④ 계약갱신요구에 의해 갱신되는 임대차의 해지는 묵시적 갱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임차인은 언제든지 계약 해지를 통지할 수 있고, 임대인이 통지받은 날로부터 3개월이 지나면 그 효력이 발생합니다(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3 제4항).

다음은 상가건물 계약갱신요구권(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제10조)에 관한 내용입니다.

① 임대인은 임차인이 임대차기간이 만료되기 6개월 전부터 1개월 전까지 사이에 계약갱신을 요구할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지 못합니다. 다만, 임차인이 3기의 차임액에 해당하는 금액에 이르도록 차임을 연체한 사실이 있는 경우, 임대차계약 체결 당시 공사 시기 및 소요기간 등을 포함한 철거 또는 재건축 계획을 임차인에게 구체적으로 고지하고 그 계획에 따르는 경우 등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②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은 최초의 임대차기간을 포함한 전체 임대차기간이 10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행사할 수 있습니다. 

③ 갱신되는 임대차는 전 임대차와 동일한 조건으로 다시 계약된 것으로 봅니다. 다만, 차임과 보증금은 제11조에 따른 범위(증액이 있은 후 1년 이내에는 증액청구를 할 수 없고, 약정한 차임이나 보증금의 100분의 5의 금액을 초과하지 못한다)에서 증감할 수 있습니다.

④ 임대인이 제1항의 기간 이내에 임차인에게 갱신 거절의 통지 또는 조건 변경의 통지를 하지 않은 경우에는 그 기간이 만료된 때에 전 임대차와 동일한 조건으로 다시 임대차한 것으로 봅니다. 이 경우에 임대차의 존속기간은 1년으로 봅니다. 

⑤ 제4항의 경우 임차인은 언제든지 임대인에게 계약 해지 통고를 할 수 있고, 임대인이 통고를 받은 날부터 3개월이 지나면 효력이 발생합니다(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제10조 제5항).


<02-535-3303 · www.김기록법무사공인중개사.com>

 
[김기록은?]

법무사·공인중개사
전 수원지방법원 대표집행관(경매·명도집행)
전 서울중앙법원 종합민원실장(공탁·지급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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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