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보름가량 지났다. 시민들에게 보름이라는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지만, 유족들은 인생에서 가장 느린 보름을 보냈다. 그런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매주 시청 앞 광장에서 대규모 추모집회가 열린다. 수만명의 시민들은 유족들의 마음에 공감하고자 위해 추모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촛불을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 ‘순수’했던 추모집회가 ‘정치집회’로 변질되고 있다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극성 시민단체들이 집회를 본인의 입맛대로 주도하고 있는 탓이다.
“행태를 보고 있자니 ‘죽음팔이 소년들’ 같다. 이제 진짜 그만했으면…” 이달 초 <일요시사>와 만난 한 여권 인사는 다소 격앙된 말을 내뱉더니 이내 말끝을 흐렸다. 지난 5일부터 매주 진행되고 있는 촛불시위를 두고 여권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들 몇몇은 한숨 섞인 토로와 함께 ‘촛불’의 본질이 흐려질까 걱정하는 중이다. 야권 인사들이 안타까운 국가적 대참사를 본인의 입맛대로 정치에 이용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입맛대로?
지난 12일 오후 6시34분, 평소라면 어둑어둑해져 있을 거리가 환하게 밝아졌다.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일대에 모인 수만명의 시민이 휴대전화 불빛을 켰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자 모인 수만명의 시민은 대낮부터 모여 첫 신고전화 시각인 6시34분이 되기를 함께 기다렸다.
비가 제법 내렸지만, 이들의 추모 열기를 막을 순 없었다.
주최 측 추산에 따르면 이날 현장엔 약 5만명의 시민들이 모였고 대부분 2030세대의 ‘자발적인’ 시위 참여자들이었다. 시위 현장에서는 ‘책임자 처벌’ ‘미안하다’ ‘진상규명’ 등의 구호가 넘쳐났고, 시간이 흐르자 이윽고 ‘정권 퇴진’ ‘윤석열 OUT’ 같은 구호가 등장했다.
참사를 막지 못한 책임이 국가와 정부 관계자들에게 있다는 공감 아래 정권 퇴진과 관련된 정치 구호가 나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러나 여권 측 관계자는 정치적으로 ‘의도된’ 쇼라고 읽었다.
여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저런 피켓 자체를 거리에 추모하러 나온 시민들이 준비할 리는 없지 않나”라며 “조직적이고 치밀한 계산하에서 저런 걸(퇴진 운동)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요시사>는 지난 5일 오후 4시부터 현장에 나가 시위 참여 과정을 취재했다. 시작은 종교계 인사들의 주도로 다소 경건하게 시작됐다. 한국 4대 종교(불교·천주교·개신교·원불교) 인사들은 추도 의식을 거행하며 “이것이 진정한 추모다. 오늘로써 국가 추모 기간은 끝이 났지만 우리의 추모는 이제 시작”이라고 외치며 촛불 집회의 서막을 올렸다.
매주 추모집회 “늘 성공적”
정치구호 등장은 우연? 필연?
시위에 모인 시민 몇몇은 눈시울을 붉히며 조용히 애도했고, 거리를 지나가던 시민들도 자연스럽게 합류하면서 시위대의 규모는 점차 커졌다.
참사 당시 구조활동에 참여했던 시민 등이 연단에 올라와 자신의 소회를 밝히고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의 뜻을 전하면서 몇십 분 동안 나름 평화적인 분위기는 이어졌다.
그러나 정권 퇴진으로 바뀌는 과정은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행사를 주최했다고 알려진 촛불승리전환행동(이하 촛불행동) 측은 준비한 정권 퇴진 문구들이 적힌 피켓과 리본, 양초 등을 일반 시민에게 나눠줬다. 피켓에는 ‘윤석열 퇴진’ ‘정권교체’ ‘이게 나라냐’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고, 시민들은 피켓을 받아들고 시위를 이어나갔다.
빈손으로 갔던 <일요시사> 기자도 촛불과 시위 피켓을 받아들 수 있었고, 다른 사람들의 구호에 맞춰 시위 노래 등을 함께 불렀다.
현장에서 만난 한 시위자는 정권 퇴진 구호에 대해 “사실 큰 뜻 없이 맞춰 외치는 거고, 상징적인 구호라 생각한다”며 “이번 참사에 정부의 책임이 분명히 있는 만큼 시위를 보며 각성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시위를 주도한 시민단체 촛불행동은 지난 4월19일 출범한 신생 단체다.
김민웅 전 경희대 교수와 은우근 전 광주대 교수 등 지식인들이 상임공동대표를 지내고 있으며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과 명진 평화의길 이사장 등이 고문을 맡고 있다.
촛불행동은 4월 출범식 이후 매월 정권 타도 운동을 펼쳐온 진보성향의 단체다. 지난 5월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거처인 서초구 아크로비스타 앞에서 화물연대 등과 함께 집회를 연 바 있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배우자, 장녀 등을 업무방해 및 저작권법 위반 등의 혐의로 법원에 고발하기도 했다.
촛불행동 필두 진보성향 6개 단체 주목
여권 “죽음 이용한 정치장사 그만해라”
촛불행동이 그동안 윤석열정부에 비판적인 활동을 펼쳐온 터라, 여권 관계자들은 이들이 촛불시위를 주도하는 ‘저의’를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이 단체가 더불어민주당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김 의원은 본인의 SNS를 통해 “겉으로는 추모지만 행동은 추태”라며 “민주당이 조직적으로 이 추악한 집회를 부추기고 노골적으로 합세하기까지 하고 있으니 민주당 역시 금단현상 때문에 이성을 잃은 모양”이라고 수위 높게 비난했다.
김 의원실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민주당이 외치는 구호와 시위대가 외치는 구호가 매우 흡사하다고 생각됐다”며 “정권 퇴진이나 탄핵 같은 것은 민주당 쪽에서 매일 쓰고 있는 문장들이다. 민주당 의원님들도 비공식적으로 몇몇 분 참가한 것으로 안다. 아예 관계가 없지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집회를 주최하는 시민단체는 촛불행동 말고도 더러 있다.
그러나 이들 또한 집회 주최의 저의를 의심받고 있는 단체들뿐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진보대학생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여연대,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등 현재 이태원 집회를 주도하는 주요 단체들은 하나같이 진보성향으로 분류되는 곳이다.
이들은 지난 10일 서울 서대문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시민추모 촛불 제안’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날 이들은 “책임 회피를 펼치며 실망만을 안겨줬다”며 “윤석열정부가 지정한 ‘국가 애도 기간’은 ‘가짜 추모 기간’”이라고지적했다.
“자발적”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가 주도하고 있는 촛불시위에 시민들은 매주 참여하고 있다. 적어도 수천에서 수만명의 사람들이 이들의 의도대로 구호를 외치고, 탄핵을 주장하고 있다. 시민단체가 불순한 의도로 시위를 계속 주도한다면 시위는 쉽게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