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리는 이태원 국조’ 몰래 웃는 검찰 속내

구경하다 주워든 ‘꽃놀이패’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정치권에서 ‘10·29 참사’ 국정조사를 두고 여야 공방이 치열했다. 각자 손익 계산으로 분주했던 가운데, 관망만 하다 꽃놀이패를 거머쥔 이가 나타났다. 바로 검찰이다. 검찰에게 국정조사란 ‘검수완박’ 논리를 깨부술 열쇠다. ‘검수완박’을 주도한 민주당이 국정조사를 띄운 모습이 사뭇 역설적이다. 국정조사의 성패는 상관없다. 검찰은 이미 어느 쪽이든 반길 채비를 마친 듯하다.

여야는 치열한 공방 끝에 국정조사 실시에 합의했다. 더불어민주당·정의당·기본소득당 등 야 3당은 지난 9일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한 이래로 시종일관 국민의힘을 압박해왔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며칠간 여야 협의 상황을 지켜보다가 결국 지난 17일 야당에 특별위원회 후보 의원 명단 제출을 요청했다. 

공방전
반사이익

야당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특위 명단을 일찌감치 제출했다. 시한을 정해두고 ‘단독 의결이라도 강행하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이에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점차 ‘국정조사를 받자’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의결을 막을 수 없으니 협상에 임해 최대한 실리를 챙겨야 한다”거나 “국민 다수가 원하는 방향인데 여당이 빠지는 건 큰 부담이다”라는 식의 ‘현실론’이 거론됐다.

이를 염두에 둔 듯,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그동안 국정조사에 관해 애매한 입장을 유지해왔다. 

국민의힘은 당내 의견수렴에 난항을 겪었다. 대통령실의 부담을 의식한 친윤(친 윤석열)계가 꾸준히 반대 의사를 고수한 탓이다. 앞서 2선 후퇴를 선언했던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이 전면에 복귀해 당내 반대 여론을 진두지휘했다.


장 의원은 지난 14일 기자들과 만나 “국정조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건 중진 의원들이 다 동의했다. 만장일치였다”며 “경찰 수사를 지켜보는 게 가장 진상규명을 빨리하는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도 반대 의견에 힘을 싣는 눈치였다.

결국 현실론으로 의견이 기울었다. 주 원내대표와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지난 23일 예산안 처리를 전제로 국정조사를 함께 실시하는 것에 합의했다. 이를 결의한 의원총회에 친윤계 핵심 인사들이 단체 불참하는 등 국민의힘 내부에선 계속 불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지만, 야당이 못 박은 기한(24일 본회의 의결)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데 따른 결단이었다. 

주 원내대표는 합의 다음날인 24일 오전 비대위 회의에서 “불만스러운 점이 많지만, 야 3당의 일방적 국정조사를 저지할 방법이 없었다는 점, 그리고 예산안 처리가 법정기간 안에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점 때문”이라며 “불가피한 합의였다”고 밝혔다.

여야는 합의 이후에도 끝까지 진통을 겪었다. 국민의힘이 조사 대상에 대검찰청이 포함된 것을 뒤늦게 문제 삼았다. 양측은 줄다리기 끝에 마약 수사 관련 부서장만 부르는 선에서 추가 합의를 이뤄냈다. 이들은 지난 24일 열린 본회의에서 국정조사 계획안을 통과시켰다. 

진통 끝 10·29 참사 국정조사 합의
정작 싸운 건 여야인데…검승 경패?

이때 국민의힘 장제원·윤한홍·이용 등 친윤계 의원 일부는 반대표를 던지기도 했다. 이렇듯 10·29 참사 국정조사는 온갖 진통과 우여곡절을 거친 뒤에야 첫발을 떼게 됐다. 

국정조사를 둘러싼 공방이 격화된 시점부터 검찰은 어떤 결말이든 실리를 챙길 수 있는 유리한 상황에 들어섰다. 국정조사의 실시 여부와 그 성패에 상관없이, 모든 상황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의 명분을 떨어트릴 수 있어서다.


검찰이 국정조사 국면에서 잃을 것은 딱히 없다는 분석이다. 사정당국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정작 검찰은 국정조사 대상에 대검찰청이 들어가는 데 큰 부담을 느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한 경찰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검수완박 이후 검찰과 경찰은 계속 실적 경쟁 중이다. 이 때문에 마약(사범 단속)과 관련한 정보 공유·상호 협조 등은 매우 한정적”이라며 “참사 당일 경찰의 마약 단속에서 검찰과의 연결고리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당일 단속은 경찰 측이 직접 주도했을 가능성이 크고, 국정조사를 통해 검찰 측 과실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실제로 대검찰청은 지난 4일 “검찰은 참사 당일 이태원 일대에서 마약사범 단속을 계획하거나 실시한 바 없다”고 밝혔다.

국정감사의 실시 명분은 기존 수사체계에 대한 불신에서 나온다. 현행 수사 체제에서는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국정조사 도입 요구에 불을 붙였다.

진상규명 난항
검수완박 때문?

지금 수사를 주도하고 있는 곳은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이다. 참사 당시 경찰의 미숙한 대응과 이후 특수본의 지지부진한 초반 수사 진척도가 국민 불신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특수본은 활동 초반 일명 ‘윗선’보다는 말단 실무자 수사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의도적으로 ‘꼬리 자르기’를 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아래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수사하겠다는 특수본 방침은 진상규명이 어느 선에서 멈출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초래했다. 아울러 ‘경찰 과실을 경찰이 수사한다’는 구조적 모순도 함께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일각에서는 이미 이 같은 혼란과 불신의 근본적 원인으로 검수완박을 지목하고 나섰다. 검수완박으로 수사체계가 크게 흔들렸고, 이로 인해 여러 혼선이 빚어졌다는 주장이다. 

검수완박 이전에 ‘대형 참사’는 검찰의 직접 수사 대상이었다. 대형 참사가 발생하면 검찰과 경찰 등은 합동수사단(합수단)을 꾸렸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검찰과 해양경찰청는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 진상규명에 나선 바 있다. 

하지만 검수완박 이후에는 대형 참사 관련 수사가 검찰의 영향권 밖으로 벗어났다. 유독 이번 참사에서만 검찰 주도의 합수단 구성이 이뤄지지 않은 배경이다.

특수본에서 다루고 있는 세부 혐의를 살펴봐도 검찰의 직접적 개입 여지가 부족하다. 원칙적으로 경찰의 범죄는 검사의 직접 수사 대상에 들어가고, 직무유기 범죄 또한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 개정 이후로 검사의 직접 수사 대상 범죄로 포섭됐다. 

하지만 특수본에서 다루는 혐의는 업무상 과실치사(상)가 대부분이다. 직무유기와 달리 업무상 과실치사 범죄에 관한 수사권은 경찰에 있다는 게 법조계 판단이다. 용산구청 등 경찰 이외의 조직을 수사할 권한도 검찰이 아닌 경찰에 있다.


특수본 수사 자체가 검찰 운신의 폭을 좁혔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수본이 용산서장 등에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이면서 검찰의 역할이 더욱 축소됐다는 주장이다. 규정상 검찰과 경찰이 같은 범죄사실을 수사할 때, 경찰이 먼저 영장을 신청하면 해당 영장에 기재된 범죄사실은 경찰이 수사할 수 있다.

‘반 검찰’ 
연대 와해

이에 검찰은 관련 대응 체계를 마련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한발 물러선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검찰은 영장 청구 등을 위해 과거 사례를 분석하고 법리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이는 검찰이 경찰의 사건 종결 후 보완수사를 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2일 대검찰청이 이태원 참사 대책본부를 꾸린 것을 두고는 “일반론적으로 말하면 여러 법리 검토 부분에 지원하기 위해 준비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특수본 수사를 둘러싼 논란이 가중되면서 “지금까지 각종 대형 참사 수사를 주도해온 검찰이 뒤로 물러서 있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경찰의 수사를 믿을 수 없다는 주장도 일부 있지만, 검찰 내부에 축적된 대형 참사 범죄에 대한 수사 경험를 썩히는 게 아깝다는 논지가 핵심이다.

검찰은 세월호 참사 외 1993년 서해 훼리호,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등 여러 대형 참사 사건을 직접 수사한 바 있다. 특히 대형 참사 범죄는 혐의 입증이 까다로운 편에 속해 검사가 수사 초기에 직접 관여해야 한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렇듯 ‘검찰 재등판론’이 꾸준히 언급되는 가운데, 특수본이 진상규명을 깔끔히 마무리하지 못한다면 ‘검수완박 역풍’이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전망이다.

아울러 야당의 태도 변화도 변수로 떠올랐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부터 최근까지 경찰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검찰을 지속적으로 압박하기 위해 경찰을 전략적으로 지원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윤석열정부는 경찰 길들이기·검찰 살리기 시도를 노골화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야당-경찰, 여당-검찰 간의 전략적 연합관계가 구축됐다. 이들의 대표적인 충돌지점이 검수완박 국면이었다. 

실제로 민주당은 검수완박 국면에서 밀려난 경찰을 지원사격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은 경찰에 법무부·검찰이 헌재에 낸 검수완박 권한쟁의심판 청구서에 대한 의견을 요청했다. 경찰은 이를 참고자료 형태로 작성해 기 의원에게 건넸다.

경찰은 의견서에서 법무부·검찰의 검수완박, 즉 검찰 수사권 대폭 축소에 대한 반대 논리를 조목조목 논박했다. 

과거 제대로 결과 낸 사례 드물어
맹탕으로 끝나면 검 역할론 재점화 

한때 경찰은 이를 바탕으로 300페이지 분량의 정식 의견서를 작성, 헌재에 제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그간 경찰이 권한쟁의심판에 의견을 제출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 의원실에 따르면 법무부가 권한쟁의심판 청구서를 경찰과 공유하지 않아 경찰이 의견서를 낼 수 없었다. 이에 기 의원이 법무부·검찰의 청구서를 경찰에 전해주고 나서야 경찰이 의견서 제출을 추진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경찰 엄호에 적극적이었던 민주당도 이번 참사 이후로는 경찰에 등을 돌린 모양새다. 경찰이 전 국민적인 비판 대상이 되자 ‘손절’한 셈이다. 이는 검찰 입장에서 더할 나위 없는 희소식이다. 단순히 수사 경쟁 상대인 경찰의 입지가 줄어드는 것뿐만 아니라, 반(反)검찰 연대의 약화도 기대할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다시금 검수완박 폐지론이 제기돼도 이전에 비해 반발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검찰에겐 국정조사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점도 호재다. 국정조사가 용두사미로 끝나게 된다면 결국 특검이나 검찰 역할론으로 화제가 옮겨갈 공산이 크다. 두 경우 모두 검찰에게는 존재가치를 강조할 절호의 기회다. 

앞선 국정조사 사례들을 살펴보면 이번 국정조사에 관해서도 비관적인 전망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국정조사 요구서가 발의된 사례는 총 106건이다. 하지만 이 중 실제 여야 협의를 통해 조사가 실시된 사례는 29건에 그쳤다.

게다가 결과보고서를 낸 사례는 이 절반에 불과하다. 애초에 국정조사로는 철저한 진상규명에 한계가 있다는 게 중론이다. 국정조사는 강제성이 없어 통상적인 사정당국 수사에 비해 제약이 많은 편이다.

손 안 대고 
코 풀었다

만에 하나 국정조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된다고 해도 잃을 건 없다. 비슷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매번 국정조사를 열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도 국정조사 결과와 특수본 수사 결과가 비교될 수밖에 없고, 결국 경찰 수사력에 대한 비판 여론이 조성될 공산이 크다. 경찰 수사의 대안으로는 ‘임시’인 국정조사위원회나 특검보다 ‘상설’인 검찰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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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