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LF그룹에서 의미심장한 지분율 변동이 목격됐다. 그리 눈에 띄지 않는 비주류 계열회사가 그룹 핵심 회사의 주식을 연달아 매입하고 나선 것. 후계자의 개인회사를 앞세운 경영권 승계 작업이라는 본질을 파악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2007년 LG상사에서 분리된 ㈜LF는 2014년 3월 현재의 상호로 변경하고 LG그룹과 완벽한 선긋기를 이뤄냈다. LG패션 계열분리 작업을 진두지휘했던 인물이 바로 구본걸 현 LF 회장이다.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손자인 구 회장은 미국 펜실베니아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마친 뒤 LG증권 재무팀에 입사해 주요 보직을 거쳤다. 구 회장은 2006년 11월 LG상사 패션 부문 대표이사 사장에 부임했고, 이듬해 패션 부문은 계열분리를 통해 LG그룹에서 떨어져 나왔다.
분주한
움직임
홀로서기는 꽤나 성공적이었다. LF그룹은 ▲라푸마 ▲헤지스 ▲모그 등 다수의 브랜드가 시장에 안착한 것에 힘입어 거대 패션기업으로 발돋움하기에 이르렀다.
LF그룹은 ㈜LF라는 확실한 캐시카우를 기반으로 어느새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는 기업집단의 면모를 갖춘 상태다. 올해 상반기 기준 계열회사는 49곳(상장 1곳, 비상장 48곳)에 달하며, 금융·식품·유통 등을 영위하는 사업회사가 소속돼있다.
최근에는 경영권 승계를 염두에 둔 움직임이 표면화된 양상이다. LF네트웍스, 고려디앤엘, 태인수산(현 해우촌) 등 비상장 오너 일가 회사의 최근 행보를 눈여겨봐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LF는 핵심 사업회사인 동시에 그룹에 속한 대다수 계열회사를 관할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오너 일가가 나머지 계열회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도 ㈜LF에 대한 지배력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경영권 승계 역시 ㈜LF 지분을 후계자가 어느 시점에 확보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움직임은 그다지 부각되지 않았다. 일단 1957년생 구 회장의 나이를 감안하면 승계가 시급한 현안이 아닌 것처럼 비춰졌다.
이런 이유로 구 회장 형제들에게 쏠린 지분구조는 좀처럼 요동치지 않았다. 실제로 구 회장(19.11%), 구본순 전 고려조경 부회장(8.55%), 구본진 ㈜LF 부회장(5.84%) 등 구 회장 3형제의 지분율과 비교하면 오너 2세가 보유한 ㈜LF 지분율은 턱없이 낮은 수준이었다.
구 회장의 장남이자 그룹의 실질적인 후계자로 꼽히는 구성모씨는 올해 상반기 기준 ㈜LF 지분율이 1.18%(34만4259주)에 그친다. 1993년생인 구성모씨는 아버지인 구 회장과 조모인 홍승해씨로부터 각각 12만주, 2만1415주를 증여받은 바 있다.
치밀한
우회 작전
최근 들어 승계와 관련해 구성모씨의 지분에 유의미한 변화가 감지된 상황이다. 구성모씨가 직접 ㈜LF 보유 주식을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개인회사를 통해 지배력을 확대하는 모습이 부각되고 있다. LF네트웍스 인적 분할이 신호탄 역할을 했다.
LF네트웍스는 이전부터 경영권 승계를 위한 창구로 주목받는 곳이다. 2020년 10월 ㈜LF 특수관계인 명부에 처음 등장한 이후 꾸준히 지분율을 높였고, 올해 상반기 기준 3대주주에 이름을 올린 상태였다.
지난 7월 LF네트웍스는 인적 분할을 통해 존속법인(LF네트웍스)과 신설법인(고려조경)으로 쪼개졌다. 이 과정에서 LF네트웍스가 보유했던 ㈜LF 주식 180만6000주(지분율 6.18%)는 고려조경으로 모두 이전됐고, ㈜LF의 특수관계자 명단에서 LF네트웍스가 제외된 대신 고려조경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고려조경은 지난달 4일 고려디앤엘로 상호를 변경했고, 곧바로 ㈜LF 주식 추가 매입에 나섰다. 그 결과 한 달 여 만에 6.18%였던 ㈜LF 지분율이 6.75%로 상승했다. 구 회장은 고려디앤엘이 주식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12억원을 빌려주면서 주식 매입에 적극 관여했다.
불붙은 경영권 승계 행보
누가 봐도 뻔한 교통정리
구성모씨는 고려디앤엘의 활약에 힘입어 ㈜LF에 대한 지배력을 한껏 키운 모습이다. 구성모씨가 고려디앤엘 지분 91.58%를 보유한 최대주주이기 때문이다. 기존 고려디앤엘 최대주주는 구 회장(지분율 20.1%)이었지만, 구 회장 지분을 포함한 오너 일가 소유 지분이 증여를 통해 구성모씨에게 넘어간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7일 기준 구성모씨가 확보한 ㈜LF 우호 지분은 7.93%인 것으로 집계됐다. 본인이 직접 보유한 1.18%와 고려디앤엘에 보유한 6.75%를 더한 수치다. 구 회장(19.11%)과 구본순 전 부회장(8.55%)에 이은 실질적인 3대주주 자리를 꿰찬 셈이다.
이렇게 되자 재계에서는 고려디앤엘의 ㈜LF 지분 확대를 승계 작업과 연결짓는 분위기다. 오너 일가가 경영 승계 과정에서 비상장 계열사를 이용하는 통상적인 방식과 다를 게 없다는 시각이다.
표면화된
승계 절차
태인수산에서 사명을 변경한 해우촌 역시 향후 구성모씨의 우호 세력으로 편입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2018년 1월 설립된 태인수산은 정관상 조미김 가공업, 농수산물 유통 및 가공업, 주류 판매업, 시장조사 및 경영상담업 등을 영위하고 있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태인수산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LF 특수관계인 명단에 이름을 올린 2020년 4월부터다. 이전까지 ㈜LF 주식 보유량이 전무했던 태인수산은 이 무렵부터 약 53억원을 투입해 ㈜LF 주식을 잇달아 매입했다.
공교롭게도 태인수산은 2020년 10월 기준 총자본이 -29억원인 완전 자본잠식 상태였고, 이런 이유로 주식 매입 대금은 모두 구 회장으로부터 차입했다. 태인수산 지분을 구 회장이 100% 쥐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구 회장이 자본잠식인 태인수산을 앞세워 ㈜LF 지분을 사들였다과 봐도 무리는 아니다.
지난해 4월 태인수산은 사명을 해우촌으로 변경했다. 사실 해우촌은 태인수산이 2018년 약 50억원을 들여 인수한 조미김 생산·판매업체 회사로, 일찌감치 태인수산에 합병되면서 소멸된 상태다. 합병 이전에는 태인수산이 해우촌 지분 100%를 보유했었다.
태인수산은 해우촌으로 탈바꿈하자마자 또 한 번 ㈜LF 지분 사들이기에 나섰다. 해우촌은 지난 5월3일과 4일에 걸쳐 ㈜LF 주식 8972주, 4만5929주를 매입했다. 올해 상반기 기준 해우촌은 ㈜LF 지분 1.59%를 보유 중이다.
돈 줄이고
지분 늘리고
구 회장이 해우촌을 2세에게 승계하면 해우촌이 보유한 ㈜LF 지분 역시 실질적인 주인이 바뀌게 된다. ㈜LF 주식을 직접 증여하는 것보다 비상장사인 해우촌을 통해 주식을 증여하는 것이 세금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