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윤석열-이기흥 기막힌 우연, 왜?

손바닥으로 통하는 대통령과 회장님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큰 논란 없이 윤석열정부 첫 국정감사를 마무리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성남FC 후원 의혹’과 체육회 운영 전반에 대해 여야의 질타가 쏟아졌으나 무난하게 매듭을 지었다는 평가다. 이 회장은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해온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체육계에서 거물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지난해 재선에 성공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체육 외에도 자신의 종교인 불교에도 관심이 깊다.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신도회 회장을 지냈을 정도다. 윤석열 대통령도 공식적이진 않지만 독실한 불자로 알려져 있다. 김건희 여사와의 연을 맺어줬다는 ‘무정 스님’의 존재만으로도 그가 불교에 관심이 깊다는 걸 알 수 있다.

정관계
마당발

이 때문에 역대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이 회장과 윤석열정부 간 불협화음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일요시사>는 이 회장과 윤 대통령 및 현 정부와의 닮은꼴을 알아봤다.

이 회장은 체육계에서 대표적인 ‘마당발’로 통한다. 문재인정부와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앞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한국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추가 문제를 논의했을 때 ‘현재 2명인 한국의 IOC 위원(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승민 IOC 선수위원) 수를 한국의 국제스포츠 기여도에 맞게 3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논의한 사실을 말했다고 한다.

당시 바흐 위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IOC 내부 절차를 따르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체육회는 2017년 6월8일 이사회를 열고 이 회장에게 국가올림픽위원회(NOC) 위원장 자격과 IOC 위원 후보 추천을 위임한다고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그러나 이 회장은 그해 8월 IOC로부터 위원 추천을 받지 못했다. 셀프 추천 논란에 대해 이 회장은 “사실은 많은 사람과 의논하고, 다른 사람에게 권유하는 등 절차를 다 거쳤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 회장이 문재인정부 출범에 기여한 인물로 꼽혀 IOC 위원으로 이름이 오르내렸던 것 아니냐는 관측이 무성했다. 이 회장과 문정부의 관계를 보여주는 또 다른 일화도 있다.

윤, 대선 경선 과정 왼손 ‘왕(王)’자 논란
이, 2018년 국감 당시 비슷한 문양 포착

2017년 3월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2000여명의 체육인이 결집하는 상황에서 이 회장은 대선후보였던 문 전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수행했다. 그 자리에는 문재인 캠프에서 문화예술교육특보단장로를 역임한 도종환 전 문체부 장관도 있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수년간 활동한 도 전 장관은 대선 유세 기간 중인 같은 해 4월 대전에서 열린 대한체육회 및 시·도(시·군·구)체육회 임직원 워크숍에도 참석해 체육정책에 대한 관심과 함께 이 회장과의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 회장의 인맥은 정치권에 한정되지 않는다. 과거 야당 총재 비서관과 사업가로 활동한 덕에 법조계와 재계에도 이 회장과 친분이 깊은 사람이 즐비하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는 과거부터 무속 논란의 중심에 섰다. 특히 윤 대통령은 인위적으로 하얀색 눈썹을 붙였다거나 왼손 손바닥에 임금 왕(王)자를 일부러 새기고 토론회에 나왔다는 주장이 상당했다.

윤 대통령의 임금 왕자는 지난해 9월26일 국민의힘 대선후보 3차 토론회에서 처음 등장했다. 정치권에서는 왕자의 크기와 모양이 다르게 보였던 만큼 누군가 매번 새로 써줘 주술적 의미가 담긴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원조 왕자’
빨간색으로

당시 대선후보였던 홍준표 대구시장은 “주술에 의존해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거냐”고 비판했다. 윤석열 캠프 측은 홍 시장의 비판에 대해 “주술적 의미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며 “6차 토론회에도 누가 써주면 그대로 나갈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윤 대통령의 무속 논란은 건진법사 전모씨가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직속 네트워크본부 고문으로 활동했다는 의혹이 핵심이다. 당시 선거대책위원회는 “전씨가 고문으로 활동한 사실이 없다”며 네트워크본부 자체를 해산했다.

논란의 불씨를 꺼버린 것이지만 윤 대통령을 견제하는 언론과 정치권 입장에서는 사실상 증거를 인멸했다고 볼 수 있다.

‘손바닥 왕 자’는 윤 대통령보다 이 회장이 앞섰다. 2018년 10월23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앞서 선서 중인 이 회장의 <뉴스1> 사진을 보면 윤 대통령과는 다른 오른속에 왕 자로 보이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누군가가 이 회장의 손금을 봐준 것으로 추정된다. 무속에서 손바닥에 왕자를 쓰는 것은 언변이 부족하거나 가기 싫은 자리에 가야 하는 상황에서 좋은 기운을 받기 위한 것이라는 의미를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던 조계종 부설 사단법인인 날마다좋은날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원혼과 일제강점 이래 역사 속에서 억울하게 쓰러진 넋들을 기리기 위해 2014년 8월 공연을 열기도 했다. 넋전이란 사람의 넋을 모양내 오린 종이로, 불교의 제사의식에서 유래돼 민간 제사의식에까지 널리 퍼진 전통문화의 하나다.

현재는 사찰에서 행해지는 백중행사 등에 흔적이 남아 있고 무속신앙에 쓰이고 있다.

이른바 이 회장의 무속 의혹은 윤 대통령의 의혹과는 본질이 다르다. 또 윤 대통령과는 다르게 이 회장이 무속에 관심이 깊은 정황이 포착되거나 언급된 적도 없다.

“주술 아니다”
“기운” 해석도


윤 대통령은 불교계 인연이 각별하다. 검찰총장이 되기 전인 2019년 7월까지 김 여사와의 연을 맺게 해준 ‘무정 스님’과 깊은 친분을 유지했고 불교 신자였던 그의 어머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윤 대통령과 불교의 첫 인연은 1980년대 초 윤 대통령이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대 법대에서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에 대한 모의재판이 열렸다. 검사 역할을 맡은 윤 대통령은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이후 외갓집이 있는 강원도 강릉으로 피신한 윤 대통령은 중광 스님과 인연을 맺었다. 중광 스님은 윤 대통령에게 멘토 역할을 하면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이 중관 스님을 강원도 양양 낙산사에서 처음 만났다는 주장도 있으나 사실관계 확인은 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불교는 종교를 넘어 우리의 역사이자 문화 자체로, 불교 문화재의 원형 보존 및 훼손 방지는 선택이 아닌 국가의 의무”라고 강조하며 불교 공약을 발표한 바 있다. 국민의힘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과거 내세웠던 불교 공약은 ▲전통사찰 보존 ▲전통문화유산 보존 ▲국립공원 제도 개선 ▲공공기관 종교 편향 근절 등 4개 분야로 나눠 각각의 방안을 마련했다.

윤 대통령은 불교 공약 외에도 지난 1월 열린 불교리더스포럼 5기 출범식에 참석하는 등 불심 잡기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불교리더스포럼은 이 회장이 상임대표로 있는 곳으로 불교지도자 네트워크로 알려진 단체다.

이 회장은 지난해 4월 상임대표로 위촉됐고 15명의 공동대표로는 ▲이귀남 전 법무부 장관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 ▲이철희 전 청와대 정무수석 ▲육현표 삼성경제연구소 사장 ▲김민배 TV조선 대표 ▲차승재 동국대 교수 ▲최영현 한국복지대학교 특임교수 ▲윤종원 IBK기업은행장 ▲한자경 이화여대 교수 ▲손창동 공무원불자연합회장 ▲이인정 아시아산악연맹회장 ▲최현국 공군 예비역 중장 ▲고유환 동국대 교수 ▲정연만 전 환경부 차관 ▲윤성이 동국대 총장 등 각 사회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 있다.


조카 대통령실 근무 확인…소통창구 역할?
아주 특별한 인연…닮은꼴 불교 행보 눈길

윤정부와 불교계의 교감은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 회장의 조카인 이강래 대통령실 선임행정관은 강승규 시민사회수석과 함께 지난달 제37대 총무원장으로 취임한 진우 스님을 예방했다.

앞서 이 선임행정관은 성균관대학교 국정전문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고, 행정사 자격증을 갖춘 행정 전문가다.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로 강의했고 UC 버클리 동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한국정책분석평가학회 정책사례·실무연구이사(위원장),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운영실무협의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기도 했다.

특히 국회와 청와대에서 10여년간 정부 정책에 대한 실무 경험을 쌓았다. 이명박정부 청와대에서 대통령 의전관(행정관)으로 G20 서울정상회의, 핵안보정상회의 등 국내외 주요 행사를 기획·총괄하고 홍보기획팀장(선임행정관)으로서 대통령의 이미지(PI) 관리와 다양한 정책 행보를 기획했다.

재직 중에는 ‘정책제안 우수자’로 선정되어 대통령실장 표창(장관급)을 받기도 했다.

이 선임행정관과 강 수석은 ‘취임을 축하드립니다’라는 메시지가 적힌 윤 대통령의 축하 난을 진우 스님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같은 달 이진복 정무수석은 대통령실불자회장으로 취임했다.

이 수석은 취임사로 “국익과 국민을 위한 국정 운영이 마치 부처님의 말씀처럼 노력을 통한 공덕을 쌓아가는 과정”이라며 “공덕의 과정에 많은 어려움이 직면할 수 있겠지만 부처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지혜롭게 헤쳐나가겠다”고 밝혔다.

국회 정각회장인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도 “국회 정각회에서 함께 활동하며 신심과 책임감을 인정받은 이진복 정무수석이 회장을 맡게 돼 든든하다”며 “불교계 현안 해결에 끝까지 책임을 다하기 위해 국회 정각회장 소임을 맡게 된 만큼, 대불회와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불교계의 숙원이 잘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독실한 불자?
교감 공통점

이 회장은 “세대, 지역, 종교 등 사회적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현상을 극복하고 지혜롭게 해결해나가기 위한 노력에 대통령실불자회가 앞장서 달라”며 “명예와 이익을 구하지 말고 수행을 위해 끝없이 정진해야 한다는 태고보우 스님의 말씀처럼 행동 하나가 모두 국민과 함께하는 수행이라고 여기고 굳건한 사명감으로 임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안민석 VS 이기흥,  체육계 진짜 실세는?

체육 행정을 총괄하는 사람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다.

하지만 체육계 인사들은 보통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과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진짜 실세라고 입을 모은다.

두 사람은 관계는 친분이 있다기보다는 앙숙에 가깝다. 실제 서로가 비난하는 모습도 여러 차례 공개됐다.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의 성폭력 파문이 터졌을 당시 안 의원은 한 방송사 TV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 “이 회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안 의원은 “이 회장이 물러나지 않으면 대한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KOC)를 분리하면 된다. 그러면 대한체육회장 선거를 다시 치러야 한다”며 KOC 분리를 주장했다.

이 회장이 대한체육회장과 KOC 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것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사퇴하지 않았고 KOC 분리에 대해서도 “이런 상태에서 KOC 분리라니 지금 앞뒤가 안 맞는, 애들 장난도 아니고”라며 반발했다.

이 회장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에 당선됐을 때도 두 사람의 불편한 관계가 나타났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낙연 전 국무총리를 비롯한 체육계 주요 인사가 대거 축하 메시지를 보냈지만 안 의원은 IOC 위원 선출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안 의원은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를 졸업한 대학 교수 출신이다.

생활체육과 학교체육을 강조하고 KOC 분리를 주장하는 대표적 인사로 알려진다.

반면 이 회장은 대한카누연맹, 대한수영연맹을 이끈 뒤 대한체육회 부회장을 거쳐 2016년 10월 통합 대한체육회장으로 선출된 입지전적 인물로 안 의원과는 기반이 대조적이다. <진>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