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특검법’ 패스트트랙 시나리오

멍 때리다 당한다 ‘선빵불패’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헌정 역사에서 역대 특별검사팀의 활약은 대단했다. 그들은 몇몇 전직 대통령을 구속시켰고 국내 굴지의 기업 오너들을 처벌했으며, 국민적 공분을 산 사건들을 시원하게 해결하곤 했다. 그런 탓에 정치권은 특검을 ‘여론 전환용’으로 자주 사용한다. 이번 더불어민주당의 사례가 그렇다.

요즘 더불어민주당의 내부 분위기는 뒤숭숭하기만 하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기소당했기 때문이다. 대선 사건 공소시효가 끝나기 하루 전인 지난 8일, 검찰은 이 대표를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 대표의 재판은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재판장으로
그 결과는?

가만히 있을 민주당이 아니었다. ‘허위사실 공표’에 대한 검찰의 기소가 이뤄지고, 곧이어 성남FC 후원금 의혹에 대한 기소마저 구체화되자, 민주당은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검법도 같이 구체화하겠다고 나섰다.

검찰의 ‘수사 의지’가 한쪽 진영에만 쏠려 있다는 것이 ‘김건희 특검법’ 강행의 이유였다. 민주당은 수사기관에 대한 불신이 깊어져 있는 상태다.

수사를 맡은 경기남부경찰청은 검찰의 성남FC에 대한 보완 수사 지시로 몇 개월간 재수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지난 13일 발표했다.


경기남부경찰청 측은 이 대표가 제3자뇌물공여 혐의가 인정된다는 결론을 지었다고 언론에 알렸다. 제3자 뇌물 공여죄란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3자에게 뇌물을 ‘공여’하게 하거나 ‘약속함’으로 성립하는 범죄다. 

이 대표는 성남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성남FC의 구단주로 활동했던 적이 있다. 성남FC는 본래 통일교 산하에 있던 ‘성남 일화 천마 축구단’이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통일교가 점차 축구단에 지원을 줄이기 시작했고, 급기야 2013년에 구단 매각을 전격 추진했다. 

이미 명문구단으로 자리 잡은 성남 일화를 매각한다고 선언하자, 성남시민들로 구성된 구단 팬들이 반발했다. 팬들은 성남시에 구단을 사줄 것을 권유했고, 성남시는 그 요청을 받아들여 성남 일화를 사들였다. 성남 일화가 성남시민의 성남FC로 바뀌는 과정에 이 대표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대표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성남시장으로 당선된 뒤, 2014년 재선에 성공해 총 8년간 성남시장으로 재직한 바 있다.

당시 야당 성남시의원들의 구단 매입 반대에 맞서 이 대표는 “운영비를 기업 후원금으로 대체하겠다”고 호언장담해 시의회를 설득해냈다. 결국 이 대표는 말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는 실제로 170억가량의 후원금을 성남FC에 유치시켰다.

성남FC에 후원금을 지급한 주요 기업들은 총 6곳으로 ▲두산건설(55억원) ▲네이버(39억원) ▲NH농협은행(36억원) ▲분당차병원(33억원) ▲알파돔시티(5.5억원) ▲현대백화점 판교점(5억)이다. 지난해 경찰 조사 때 6개 기업의 혐의는 모두 ‘무혐의’ 결론이 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경찰의 재수사로 두산건설의 후원금 55억원만큼은 ‘제3자 뇌물공여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경찰은 이 대표가 55억원의 후원금에 대한 대가로 두산 측이 소유한 병원 부지 3000여평의 용도변경을 허가해줬다고 판단했다. 성남시가 허가한 용도변경을 통해 두산 측이 막대한 이익을 챙길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성남시는 당시 용도변경을 허가할 때, 두산건설 땅의 용적률과 건축 규모 등도 3배가량 높여줬다.

야당 대표 잇단 기소에 영부인 물고 맞불
새 범죄 정황 드러나…“김건희도 위험하다”

이로 인해 1991년 처음 두산 건설이 매입할 당시 가격이었던 70억여원의 땅이 현재 1조원가량으로 막대하게 상승한 상태다. 약 100배 이상의 이익이 두산건설에게 돌아간 셈이다. 즉, 두산건설이 성남시로부터 땅값의 약 100배 이상 오른 ‘특혜’를 받은 것, 그리고 그 두산건설이 성남FC에 55억여원의 ’후원금’을 제공한 것까지는 경찰 수사 결과 사실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 사실들을 ‘제3자뇌물공여죄’에 적용할 수 있냐는 것에 대해선 법리적 해석이 갈린다.

경찰은 해당 건을 ‘이 대표가 성남FC에 투자를 유치함으로써 성남시민들의 지지를 얻었고, 그가 정치인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정치적 이득을 취했다’고 봤으며 성남FC를 뇌물을 받은 ‘제3자’로 봤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에 무리가 있다는 반대 의견도 거세다. 스포츠구단에 대한 ‘운영 후원금’을 받은 것까지 문제 삼으면 정치 행위의 범위가 급격히 줄어들 것이라는 의견이다. 민주당에선 그런 해석에 수사기관의 ‘의지’가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일요시사>와 만난 민주당 중진 의원실 관계자는 “다분히 정치적인 수사 행태로 보인다. 사실 성남FC 사건은 2018년 처음 신고가 들어간 오래된 사건”이라며 “지난 몇 년간 수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이 대표의 정치적 위치에 따라 수사 속도가 달라졌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경기도지사 시절 당선 무효형을 받았을 때는 또(경찰이) 수사에 속도를 냈다가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됐을 때는 수사를 ‘불송치’로 마무리지었다”며 “그러다 다시 이번 대선에서 지고, (이 대표가)정치적 위기에 몰리자 재수사 후 ‘제3자뇌물죄’를 적용시키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의견이 분분한 사건을 이 대표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입맛대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게 그의 주장이다. 민주당 내부적으로 이대로 간다면 이 대표의 나머지 혐의들도 모두 수사기관의 입맛대로 판단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렇듯 민주당의 걱정은 수사기관의 ‘수사 의지’가 한쪽에 쏠려있다는 의심에서 출발한다. 검찰 측은 이 대표의 ‘허위사실 공표’를 기소할 때 ‘새로운 근거가 많이 나온 점’을 기소 이유 중 하나로 들었다. 

그러나 ‘새로운 근거’는 최근 김 여사에 대한 의혹에도 나온 바 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새로운 녹취록이 언론을 통해 공개된 것이다. 보도된 녹취록에는 따르면 증권사 담당직원이 구체적인 금액을 제시하고 김 여사가 구매를 지시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새로운 근거?
녹취록 폭로

직원이 김 여사에게 “오늘도 도이치모터스 살게요. 2500원까지”라고 말하면 김여사가 직원에게 “아 전화왔어요? 그럼 좀 사세요”라고 말하는 대화다.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 측에서 “이모씨가 주식을 잘한다는 말을 듣고 수익을 내달라는 취지로 아내(김건희 여사)가 계좌를 맡긴 것이고 도이치모터스 주식도 이씨가 알아서 산 것”이라고 해명한 것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내용이다.

해당 발언은 윤 대통령이 지난 대선 기간 때 했던 것으로, 이번에 기소된 이 대표의 발언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민주당은 이 대표에 대한 수사가 압박을 받자 지난 5일 윤 대통령 또한 ‘허위사실 공표죄’로 검찰에 고발했다. 김 여사에 대한 새로운 정황이 나왔으니 범죄가 성립한다는 주장이다.

민주당 측은 “윤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저지른 범죄에 대한 고발이고 이는 9일 공소시효가 종료된다”며 “대법원 판례에 의해 대통령 재직 시에는 소추받지 않아 공소시효가 정지된다. 다만 퇴임 후 얼마든 수사할 수 있기 때문에 우선 9일 전 접수한 것”이라고 고발 이유를 밝혔다.

이제 김 여사가 남았다.


검찰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김 여사를 아직도 수사 중이다. 그러나 수사 기간 동안 검찰 내부에서 여러 의견이 난무했고, 갑론을박 끝에 최근 ‘무혐의’로 결론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을 맡은 중앙지검 반부패강력수사2부팀은 도이치모터스 권오수 회장 등 여러 참고인으로부터 김 여사와 관련한 유의미한 증언을 확보하지 못했고, 뚜렷한 증거 확보에도 실패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종적으로 소환조사까지 검토했지만 내부의 의견 차이로 이마저도 무산되는 분위기다. 

민주당은 검찰이 김 여사를 불기소할 것에 무게추를 두고 특검 카드를 빼들었다. 윤정부의 수사기관은 여러 정황상 믿을 수 없으니 신뢰할만한 특별검사를 임명해 수사를 맡기자는 취지다.

또 민주당은 특검이 주가조작 의혹에 더해 지난 5일 무혐의 결론을 받은 허위경력 기재 의혹, 코바나 컨텐츠 전시회와 관련한 뇌물성 후원 의혹 등을 함께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검법 수사 대상에 대해 민주당은 “김 여사가 도이치모터스 등 주식 거래를 통해 부정한 이익을 획득했다는 의혹, 김 여사가 대학교 시간강사·겸임교원 지원 시 고의적·상습적으로 학력 및 근무경력을 위조한 이력서 등을 통해 사기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본회의까지 
속전속결

민주당이 발의한 특검 법안에 따르면, 특검 임명 시 대통령이 소속되지 않은 교섭단체에서 2명을 추천하고 그중에서 1명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이는 사실상 민주당이 추천한 인사 2명중 윤 대통령이 지명하는 형태다.

특검팀의 규모는 약 65명 규모로 제안했다. 활동기간은 임명된 날부터 20일간 직무 수행에 필요한 준비를 할 수 있고, 준비기간이 끝난 다음 날부터 70일간 수사할 수 있다. 

그러나 최종 가결까지는 불가능에 가깝다.

우선 법안이 본회의에 상정되는 것까지도 매우 까다롭다. 최초 발의된 모든 법률안은 해당 법을 소관하는 각 상임위에서 일일이 심사한 후에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로 넘긴다. 각 상임위에서 심사한 법을 법사위에서 최종 심사한 후에 본회의로 보내는 방식이다.

상임위 통과나 법사위 통과가 되지 않으면 본회의까지 가지도 못한다.

발의된 법 중 대부분의 경우는 상임위 단계에서 막혀 오랫동안 계류되거나 폐기된다. 상임위를 통과하더라도 법사위에서 막히면 이 또한 폐기되기 마련이다.

여기서 법사위원장의 역할이 막강하다. 법사위원장은 각 상임위에서 올라온 법안들을 본회의에 올려 보내는 수문장 역할을 한다.

법사위원장이 마음만 먹으면 법안 처리 속도를 내게 할 수도, 지연시킬 수도 있다. 심지어 거부할 권리까지 주어진다. 국회 후반기 원구성 전, 법사위원장 자리를 놓고  여야가 크게 대립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기나긴 싸움 끝에 제21대 국회 하반기 법사위원장 자리는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에게 돌아갔다. 이 때문에 정통한 방법으로는 ‘김검희 특검법’을 본회에 상정하는 게 불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민주당 측 내부 인사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아시다시피 ‘그냥’은 법사위를 통과시키기 어렵다. 따라서 패스트트랙으로 통과시킬 예정”이라고 전했다. 패스트트랙은 ‘식물 국회 방지법’의 일환으로 도입된 방법이다.

패스트트랙을 이용하면 법사위 심사를 거치지 않고 바로 본회의로의 상정이 가능하다. 법사위원 60%, 또는 전체 국회의원 300명 중 60%(180명)의 동의만 있으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민주당 국회의원은 총 169명으로 180석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법사위 구조상 조정훈 역할 주목 
대통령 거부하게 만드는 게 목표?

이 때문에 민주당은 ‘법사위원 60%의 동의’를 노리고 있다. 전체 법사위원 정수 18명 중 민주당 의원은 10명이다.나머지 8명 중은 국민의힘 의원이 7명이고, 비교섭단체 의원 1명이 포진돼있다.

이 비교섭단체 의원 한 명이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이다. 그가 이번 특검법에서 ‘키맨’으로 자주 언급되는 이유다. 민주당은 조 의원을 포섭할 것을 이번 특검법 통과의 주요 전략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조 의원은 그런 민주당 전략에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민주당에 친화적인 태도를 취했던 조 의원이 지난 검수완박 강행 처리 때부터 민주당에 반기를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조 의원은 지난 4월 본인의 SNS에 “(검수완박이)완수된다고 해서, 정말 부패권력 척결이 가능해질까”라며 “개혁방식을 두고 한국사회가 분열하더니 이제는 개혁의 진정성을 의심받을 정도로 ‘정치 편가르기’의 영역이 돼버렸다”고 지적했다.

조 의원은 이후 각종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검찰을 개혁하자는 취지 자체를 의심하고, 이것이 결국에 불가능할뿐더러 검찰개혁을 미끼로 민주당이 국민들을 선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검수완박 반대로 민주당은 필리버스터 저지를 위해 필요한 180석에 1석이 못 미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됐다.

그는 당시 “나는 필리버스터 저지에 동참할 뜻이 없다”며 “검찰개혁 의제가 최우선 의제가 아니라고 확신했기 떄문이다. 지금은 민생이 극히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때의 반대가 이번에 다시 되풀이되고 있다. 조 의원은 검수완박에 이어 김건희 특검법 또한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현 가능성조차 극히 낮은 특검법을 발의해 민주당이 ‘노이즈 마케팅’을 하고 있다는 의심에서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특검법은)현실성이 없는 경로라는 것을 민주당도 잘 알고 있다”며 “이건 결국 과정에서의 소음을 노린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거기에 내가 초대받은 적도 없고 참가하겠다고 한 적도 없는데 그 쇼 포스터에 ‘출연 조정훈’ 이렇게 써놓으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조 의원의 말대로 특검법이 최종 공포될 리는 만무하다. 조 의원의 전격적인 동의로 본회의에 상정된다 하더라도 ‘대통령 거부권’이라는 문턱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실 본회의에 상정하기만 하면 가결까지는 일사천리다.

본회의에서 법안을 가결하려면 전체 과반 출석에 과반 동의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원내 1당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의 의석수는 전체 과반이 훌쩍 넘는다. 그러나 대통령이 가결된 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면 전체 과반이 아닌 국회 2/3의 동의(200표 이상)가 필요하다.

현재 169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 표는 200표 이상의 동의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친야 성향 정당들의 표를 더한다고해도 170석을 간신히 넘기는 정도다.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윤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 기정사실화돼있는 상태에서 뭐하러 인력 낭비를 하느냐는 것이 조 의원의 일관된 주장이다.

소신이냐?
타협이냐?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지난 15일 본인의 SNS에 “거두절미, 의원님의 소신을 존중한다”면서도 “조 의원이 어떻게 국회에 들어오게 됐는지 한 번 되돌아봤으면 좋겠다“고 일갈했다. 더불어시민당으로 비례대표에 당선된 뒤 시대전환으로 복귀한 조 의원의 이력을 지적한 것이다. 조 의원의 결정을 민주당이 과거의 이력을 들어 겁박하고 있는 가운데, 조 의원이 소신을 지킬 수 있을지 정계는 주목하고 있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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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