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30일, 국무회의를 열고 내년 예산 639조원 중 복지예산으로 약 109조원(17%)을 발표했다. 이는 복지예산 역대 최대 규모로, 100조원을 돌파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복지예산이 많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생산에 관련된 예산이 줄어든다는 의미고, 이제 한국은 생산자 중심의 1·2·3차 산업혁명 시대를 지나 소비자 중심의 4차 산업혁명 시대로 들어섰다는 의미다.
산업의 형태가 변하면서 사회의 형태도 같이 변해왔는데, 기계화(1차), 대량생산(2차), 자동화(3차) 등의 1·2·3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생산자 중심의 시대로 다수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획일적인 대중사회였다.
그러나 로봇이나 인공지능(AI), 사물 인터넷(IOT) 등의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소비자 중심의 시대로 다수의 가치를 중요시하되 개인의 가치를 철저히 보장하는 다양성의 다중사회가 됐다.
산업이나 사회 형태의 흐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생산자 중심이 아닌 소비자 중심의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 시대가 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매월 경제동향을 발표하는 한국은행도 생산자물가지수보다 소비자물가지수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고, 기업도 우리 사회가 과거 생산자 중심의 패턴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급격하게 이동하고 있음을 의식해 제품의 질보다 소비자의 서비스 질에 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공공주택을 분양할 때도 생산자가 소비자에게 분양원가를 공개함으로써 생산자의 원가 투명성과 소비자의 정보 접근성을 높여주고 있고, 공산품을 수입할 때도 소비자 중심 정책의 일환으로 관세청에서 수입 공산품 원가를 공개하고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중간에서 교량역할을 하고 있는 유통업계도 이제는 전과 달리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 중심의 전략을 세워야 성공하는 시대가 됐다.
이렇게 생산자 중심 시대가 지나고 이제 소비자 중심 시대가 됐는데도 아직까지 생산자 중심 시대에 만들어졌던 생산자 편의 비용인 감가상각비만 존재하고, 소비자 중심시대에 걸맞는 소비자 편의 비용은 없다는 게 모순이라는 생각이 든다.
감가상각비는 제품이나 서비스 등을 생산하면서 기계나 설비가 노후한 만큼의 가치를 제품생산 원가에 포함시키는 생산자 중심 시대의 비용이다.
따라서 우리가 구매하는 모든 공산품과 서비스의 소비자가격에는 소비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생산자의 기계나 설비의 가치 감소 부분이 원가에 들어가 산정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생산자 중심 시대라고 해서 제품을 생산할 때 발생하는 로스에 대한 손해 부분의 가치를 제품생산 원가에 적용하는 로스상각비가 없다는 것이다.
아무튼 국가가 기업의 생산활동을 장려해야 하는 생산자 중심의 토양에서는 감가상각비가 별 문제 없이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소비자 중심 시대임을 감안할 때, 소비자 입장에서 감가상각비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감가상각비를 원가에 적용한다는 것은 결국 생산에 필요한 기계나 설비의 구입 및 유지보수 비용을 생산자가 부담하지 않고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소비자 입장에서는 좋지 않은 산정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생산자 중심 시대의 감가상각비에 견줄만한 소비자 중심 시대의 비용을 찾아보고 없다면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찾아봐도 소비자 중심 시대에 걸맞는 소비자 편의 비용은 아직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증가절삭비’를 제안하고자 한다.
증가절삭비는 소비자가 생산자로부터 구입한 제품을 사용할 때, 생산자의 브랜드 가치와 기업의 좋은 이미지가 증가한 만큼의 가치를 소비자가격에서 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공산품의 소비자가격에 증가절삭비를 적용한다는 것은 소비자가 제품을 사용하면서 만든 무형의 가치를 생산자로부터 보상받는 차원으로 소비자 입장에서 기분 좋은 산정방식이라 할 수 있다.
생산자가 소비자의 제품 사용 효과로 얻은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보다 증가된 가치를 소비자가격에서 미리 빼는 것이 투명성을 넘어 소비자 중심 시대에 걸맞는 공정한 방식이다.
증가절삭비로 공산품 소비자가격이 떨어져 당장 생산자에게 피해가 갈지라도 다중사회의 소비자 중심 시대에 걸맞는 증가절삭비를 만들어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공정한 명분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으로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증가절삭비지만, 그래도 최근 계속 소비자 중심 정책을 발표하고 있는 정부나 기업이 새겨들어야 하지 않을까?
※ 이 기고는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