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기업은 지탄받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약속을 꼭 지키고 건실한 경영을 통해 신뢰받는 기업을 만들어야 한다.”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말이다. 그러나 그는 계열사를 동원해 개인회사를 부당 지원하고 3000억원대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지난 17일 계열사를 부당하게 동원하고 수천억원을 횡령·배임한 혐의로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1심에서 10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정확한 혐의는 2015년 말 금호터미널 등 4개 계열사 자금 3300억원을 인출해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보유한 금호산업(현 금호건설) 주식 인수대금에 사용한 것이다.
계획적 범죄
은폐·축소
또 2016년 4월에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금호터미널 주식 100%를 금호기업에 2700억원으로 저가 매각하고, 같은 해 8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아시아나항공 등 9곳의 계열사를 동원해 금호기업에 무담보 저금리로 1306억원을 부당 지원한 혐의도 있다.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의 경영 지배권을 위한 계획범죄로 간주해 이례적으로 검찰 구형량과 동일한 양형을 내렸다.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4부(부장 조용래)는 공정거래법 위반 및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박 전 회장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임원 3명에게는 징역 5년과 3년이 선고됐다.
지난해 11월 보석 청구가 받아들여져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박 전 회장을 포함해 모두 법정 구속됐다. 금호건설은 벌금 2억원을 납부하라고 명령했다.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상 특수 관계인 이익 귀속 부분과 아시아나 항공 기내식 사업권 저가 양도, 부당 지원 혐의에 대해 유죄로 판단했다.
특히 아시아나항공에 상당한 손해를 미쳤다고 지적했다.
박 전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독점 사업권을 저가인 1333억원에 스위스의 게이트그룹에 넘기고, 그 대가로 1600억원 규모의 금호소속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인수하도록 한 혐의가 인정됐다.
재판부는 “아시아나는 기내식 계약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상실돼 손해가 발생했다. BW 인수와 주식 매입에 관련성이 있다. 배임에 고의가 인정된다”고 지적했다. 당시 재정난으로 900억원 자금을 조달해야 했던 아시아나항공에게 피해를 줬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기내식 공급 계약 문제가 있었음을 알았음에도 이를 의식적으로 아시아나항공 실무진에게 공유하지 않았다”면서 “그저 금호기업에 대한 투자유치만 이뤄냈다”고 설명했다.
계열사 부당 지원, 300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
징역 10년 선고 법정구속…이례적 중형 이유는?
반면 “금호그룹이 발행한 BW의 투자가치는 독자적인 투자가 아니다”며 “BW의 현재 가치에 대한 이익은 670억원으로 아시아나항공은 이에 상응하는 손해를 입었다”고도 했다.
금호터미널 매각 과정에서도 계열사 지배권을 높이기 위해 고의적으로 저평가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담당 회계사로 하여금 박 전 회장이 원하는 가격에 맞는 주식평가 보고서만 제출하도록 했다”며 “이런 경위, 가치판단 과정을 보면 금호터미널 2700억원은 저평가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산업은행은 5000억원대로 평가했지만, 아시아나 실무진은 매각 및 가치평가에서 매각에 대해 사전에 알지 못했다. 재판부는 “아시아나항공 이사회에서 이를 알았으면 매각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의 지배권을 위해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로 봤다. 재판부는 “워크아웃으로 잃은 지배권을 얻기 위해 전략경영실의 윤모씨, 박모씨 등이 재건 계획을 수립했다”며 “윤씨와 공모해 금호그룹 계열사 돈 3300억원을 횡령, 광주터미널을 저가 매각해 차액에 해당하는 재산상 이득을 얻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금호홀딩스로부터 자금조달을 받게 해서 박 전 회장과 가족에게 부당이익을 만들었다”고도 덧붙였다.
계열사 전반에 대한 피해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자력도 없는 금호그룹이 계열사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서 전체에 손해를 끼쳤다”며 “아시아나항공은 인수자가 없어 피해가 지속됐고, 피해를 입은 계열회사의 겉으로 드러난 피해 외에도 국가 전체에 입힌 손해가 크다”고 했다.
또 “금호그룹 계열사 피해액은 수천억원으로 대부분 변제됐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며 “범행 은폐 과정에서 피해 해소는 더 어려워졌고, 아시아나는 기업 명예도 상당히 실추됐다”고 판단했다.
계열사 전체
손해 미쳤다
재판부는 “대규모기업집단은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보장받아야 한다”며 “경제 주체로서 법질서를 준수하고 역할에 맞는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동일인, 가족, 개인회사를 위해 계열사 자금을 쓰는 건 자본 시장 참여자의 이익을 해하고 국민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박 전 회장은 어떤 사람일까.
박 전 회장은 1945년 3월19일생으로 올해 77세다. 택시 두 대로 시작해 그룹을 일궈낸 창업주 고 박인천 회장의 삼남으로 광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1964년 광주일고를 졸업 후 1968년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학사를 졸업했다. 그는 스스로를 ‘공부 열심히 하는 학생’은 아닌 보통 학생이었다고 설명한다. 학교 공부에 충실하진 않았지만 다양한 체험을 하고 여러 친구와 어울리는 데 노력했다.
오토바이 타는 게 취미였다. 당시 학생이 오토바이를 타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는데, 1964년 5월30일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메이퀸을 뽑을 땐 오토바이를 타고 이화여대 운동장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때 빗자루를 들고 호통치며 쫓아오는 수위 아저씨를 피해 도망갔다.
그렇다고 공부를 등한시하지는 않았다. 연세대학교의 최호진 박사, 한기춘 박사, 송자 박사의 강의는 박 전 회장이 아직도 기억하는 강의다. 이런 기억에 그는 좀 더 학생답게 공부를 열심히 할 걸 후회하기도 했다.
박 전 회장은 1967년 금호타이어㈜에 입사해 금호실업㈜ 전무와 대표이사를 거쳤다. 1991년에는 아시아나항공 대표이사 부회장을 거쳤다. 2002년 둘째 형인 박정구 회장이 폐암으로 사망하자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직에 취임했다.
2002년 취임
2019년 퇴임
2009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워크아웃에 빠지며 회장에서 물러났다가 2010년 11월1일 전문경영인 신분으로 논란 속에 회장직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2019년 3월28일 다시 회장직을 사퇴했다.
업계 내에서 박 전 회장의 평판은 좋지 않았다. 아버지와 형들이 일궈놓은 잘나가던 금호아시아나를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회장직 취임 후 그룹은 공격적 M&A의 부작용으로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과의 경영권 다툼이 시작됐다.
금호석유화학을 포함한 석유화학 부문 자회사들의 계열분리, 급기야 2019년 결국 그룹 매출의 70%를 담당하는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 및 그 자회사를 매각했다.
아시아나항공은 HDC 그룹이 인수하기로 했지만 이듬해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코로나19로 인해 인수가 최종 무산됐고 산업은행의 주도하에 대한항공에 매각하는 것으로 결론 났다.
인수합병이 완료되면 금호그룹은 재계 순위 60위권 밖의 중견기업으로 추락하게 되면서 사명도 변경될 예정이다.
금호그룹은 캐시카우인 생명보험과 타이어, 항공사, 석유화학, 부동산 자산과 국내 최대의 고속버스 시장 점유율을 갖춰 자산과 현금이 풍부하다. 이를 바탕으로 아버지 박인천, 첫째 형 박성용, 둘째 형 박정구 전 회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재계 서열 10위권 내로 진입시켰다.
박 전 회장은 창업주 박인천 전 회장의 작고 이후 그룹의 전통이었던 형제 경영도 깨뜨렸다. 다른 대기업과는 달리 금호아시아나그룹의 2세 형제들은 65세가 되면 다음 동생에게 회장직을 물려주기로 했었는데, 원칙대로라면 박 전 회장의 나이 65세인 2010년에 동생 박찬구 회장에게 경영을 승계했어야 했다.
하지만 아들 박세창 사장에게 경영권을 넘겨주려 했고 2006년 대우건설, 2008년 대한통운 인수 과정에서 무리한 인수를 강력히 만류하는 박찬구 회장과 틀어졌다.
결국 박찬구 회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석유화학 부문을 계열분리해 완전히 독립했다. 그 과정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이른바 7년이나 진행됐던 형제의 난이다.
은폐 과정서 피해 해소 어려워져
“국가 전체에 끼친 피해 매우 크다”
두 형제간의 경영 스타일도 극과 극으로 다르다. 박 전 회장은 외형 확장을 중시했고, 박찬구 회장은 보수적인 내실 경영을 중시했다. 2016년 형제의 난은 종결됐고 표면상 화해는 했지만 남보다도 못한 앙숙 관계가 됐다.
업계 내에선 대한통운 인수건은 그나마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당시 대한통운은 현금 흐름이 상당히 좋은 우량기업이었고 육상‧항만 물류기업을 갖추고 있었다. 주력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을 합쳐 종합 물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대한통운 인수에 앞서 이뤄진 대우건설 인수가 발목을 잡았다. 인수자금에만 6조6000억원, 여기에 대한통운까지 포함하면 총 10조원이 넘는 금액이 계열사 동원·교환사채·인수금융 등을 통해 투입됐다. 그룹 내부에서도 막대한 자금을 소모하는 무리한 기업 규모 확장에 대한 우려가 상당했다.
무리한 차입의 결과 2008년 대침체가 터지자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를 맞게 됐다. 그룹의 모태 기업인 금호고속, 지주회사 격인 금호산업, 주요 계열사인 금호타이어와 금호생명이 주채권은행인 한국산업은행으로 넘어갔다.
금호고속과 금호산업의 경영권은 되찾았으나 금호렌터카는 KT에, 금호타이어는 중국의 더블스타에 매각됐고 금호생명은 1조원 가까운 공적자금이 투입된 후 지금까지 산업은행의 애물단지로 남아있다.
박 전 회장은 경영권을 되찾는 과정에서도 여러 문제를 일으켰다. 그룹 재건을 목적으로 금호기업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부동산 가치만 1조원가량이 되는 금호터미널을 아시아나항공으로부터 2700억원이라는 헐값에 인수했다. 이후 금호기업과 금호터미널을 합병시켰다.
설상가상으로 2018년 7월에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공급 부족 사태까지 터졌다. 박 전 회장이 금호타이어의 경영권을 되찾기 위한 자금을 투자받을 목적으로 무리해서 기내식 업체를 교체했기 때문이다. 당시 수많은 승객, 승무원, 하청업체 직원들까지 고통을 겪었고 하청업체 사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박 전 회장의 경영권 회복에 동원된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은 무려 715%에 달한다. IFRS 국제회계기준을 적용하면 1153.3%나 된다. 항공업의 특성상 항공기 구입 배용을 모두 지불하기 어려워 리스로 항공기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일반적으로 부채비율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업계 내에서도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여승무원
미투 논란도
박 전 회장과 관련한 ‘미투’가 터져나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 피해자들은 매달 여승무원들을 방문해 껴안거나 손을 주물렀다고 주장했다.
한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박 회장은 여승무원들을 만나면 ‘내가 기 받으러 왔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했다”며 “본관 1층에서 여승무원들을 불러놓고 20~30분 동안 껴안은 뒤에는, 20대 초반의 갓 입사한 승무원 교육생들이 머무는 교육 훈련동으로 가서 시간을 보냈다”고 폭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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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속 기사> ‘순익 30년 보장’ 기내식 공급사 몰아주기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등 금호아시아나그룹 경영진이 기내식 공급 회사 ‘게이트고메그룹’에 30년 동안 최소 순이익을 보장하고 일방적으로 자사에 불리한 조건까지 허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30년 동안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독점 사업권의 가치가 최소 2600억원대, 순이익 보장 약정까지 더하면 가치가 5000억원대로 추산했다고 밝혔다.
30년이면 2047년까지인데, 대한항공과 인수합병을 앞둔 가운데, 대한항공에도 승계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합병 이후에도 약정대로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사업과 관련해 게이트그룹에 순이익을 보전해줘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인수자금을 제외한 순수 통합 자금이 6000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대한항공은 추가적인 재무 부담까지 안게 됐다.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