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판으로 본 사형 딜레마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8.01 10:32:19
  • 호수 13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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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죽여야 끝나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사형(師兄). 수형자의 목숨을 끊는다는 의미다. 한국은 사형제도가 형사법 체계상 존재하지만, 1997년 12월30일 23명의 사형 집행이 시행된 이후 이뤄지지 않았다. 실질적으로 사형제도 폐지 국가라고 말할 수 있다. 시작은 김대중정부때부터였지만, 여전히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찬반의 목소리에서 가장 큰 쟁점은 ‘오판’의 가능성이다.

지난 14일 헌법재판소 공개 법정에 사형제도 문제가 화두에 올랐다. 사형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헌법소원 청구인 측과 존치 입장에 선 법무부는 헌법의 원리와 사형제도의 역할 등을 놓고 맞섰다. 이번 헌법소원 청구인은 2018년 부모를 살해한 A씨다. 

59명의 사형수

A씨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돼 수감 중이다. 1심에서 검찰이 사형을 구형하자 한국천주교주 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가 A씨와 함께 2019년 사형제도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낸 것이다.

청구인 측은 “생명은 절대적 가치며 법적 평가를 통해 박탈할 수 없다. 사형제도보다 기본권을 덜 제한하는 절대적 종신형 등으로도 범죄인을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해 사회 보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법무부는 “범죄 예방에 따른 공익의 실현 대상은 무고한 일반 국민의 생명이다. 정의를 실현한다는 점에서 중대한 흉악 범죄를 저지른 자에게 사형 선고·집행이 이뤄지는 것이라면 사형제가 달성하는 공익을 가볍게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사형만큼의 범죄 억지 효과를 낼 수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사형제도가 다시 부활하면 어떻게 될까. 지난 17일 법무부에 따르면 현재 판결이 확정돼 국내 교도소에 수감 중인 사형수는 모두 59명이다. 그러나 ‘사형제는 위헌’이라는 결정이 나도 이미 내려진 처벌의 종류를 재심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이 가운데 5명뿐이다.

따라서 이번 헌법소원을 통해 사형제도의 효력이 사라지면 이들 5명은 재심을 청구할 수 있게 되고, 나머지 사형수는 장기수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2007년 연쇄살인사건의 오모씨 ▲2009년 영암 연쇄살인사건의 범인 이모씨 ▲2011년 해병대 총격사건의 김모 상병 ▲2014년 대구에서 전 연인의 부모를 살해한 장모씨 ▲2014년 22사단 GOP 총기난사사건의 임모 병장 등 5명이 헌재의 두 번째 합헌 결정 후 사형 확정 판결을 받았다.

“사형제 필요하다” 의견 70% 넘어
법관 35% “한 번 이상 오판 경험”

사형제도 존치·폐지에 대해 국민 여론은 어떨까. 지난해 9월 시행된 ‘사형 집행 필요성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에는 사형 집행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70.2%였다. 사형 집행이 필요 없다고 답한 응답자는 19.1%였고, 10.4%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사형 집행이 필요하다는 비중이 3배 이상 높은 것이다.

여론조사를 진행한 김대진 조원씨앤아이 대표는 “과거에는 인권이 중시되는 시대였다면, 지금은 시대가 변해서 흉악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회적 불안감을 야기하는 흉악범죄자들이 더 이상 사회에 나오면 안 된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국민이 범죄자들을 세금으로 관리한다는 것을 납득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사형제도는 쉽게 결정될 수 없다. 그 이유는 법관이 하는 재판에 오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제 인권 옹호 한국연맹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법관 중 35%가 한 번 이상의 오판 경험을 갖고 있었다.

법관이 기계가 아닌 이상, 아무리 신중하고 객관적인 판결이어도 오판의 위험성은 늘 존재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국민 의식조사에서도 사법제도에서 오판 가능성이 있다는 응답이 일반 국민 전체의 93%였다. 특히 시민단체·국회의원·언론인·교정위원 등의 90% 이상은 사법 판단에 불신을 나타내고 있다.

오판 가능성 때문에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도 62.4%나 나타났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오판으로 인한 사형 집행 시 생명을 회복할 수 없고 무고하게 사망한 생명의 가치는 아무리 공공의 이익을 강조해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국의 오판 사건 중에는 대표적으로 ‘인혁당 사건’이 있다. 당시 사회가 전시 상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과도한 사형 대상 규정 ▲오판과 사형을 남용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인혁당 사건은 중앙정보부(대한민국의 옛 정보기관)에 의해 도예종 등의 인물이 기소돼 사형이 선고된 사건이다. 1964년 제1차 사건에서는 반공법, 1974년 제2차 사건에서는 국가보안법·대통령 긴급조치 4호 위반 등에 따라 기소됐다. 

이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같은 해 5월9일에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원심을 파기해, 피고인 전원에게 유죄가 선고됐다. 도예종과 양춘우 외에도 박현채를 비롯한 6명에게 징역 1년, 나머지 사람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인혁당 사건’ 무고한 생명 희생
“범죄를 막는다는 증거도 없어”

비상보통군법 회의 제1심판부는 이 중 여정남에 대해 ▲대통령긴급조치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 예비음모 ▲내란 선동 ▲반공법 위반 ▲뇌물 공여 죄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비성보통군법 회의 제2심판부는 도예종·김용원·이수병·하재완·서도원·송상진·우홍선 등에게 ▲대통령긴급조치 위반 ▲내란 예비음모 ▲반공법 위반죄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피고인들은 1974년 7월11일과 7월13일에 재심 대상 판결에 의해 모두 사형을 선고받았다. 1975년 4월8일 대법원은 이들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불과 18시간 만에 형이 집행됐다.

이들은 사형 집행 전 상고를 제기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이에 대법원은 피고인들의 상고 이유인 ▲헌법 위반 ▲법률 위반 내지 법리 오해 ▲비공개 재판의 위법성 ▲공판심리 절차상 위법 ▲증거조사 절차의 위법 ▲채증법칙 위배 ▲이유 불비의 위법 ▲양형 부당 ▲변호인 접견권 및 교통권의 금지 등에 대해 전부 이유 없음으로 상고를 기각해 각 재심 대상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당시 변호인들의 기억에 따르면 공소장과 판결문은 날짜만 다르고 나머지 내용은 모두 같으며 판결문도 1심에서 3심까지 변동이 없었다고 한다. 


2002년 9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는 이 사건을 고문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발표했다. 같은 해 12월 유족들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사형이 집행된 여정남에 대해 징역 10월에 집행 유예 2년, 피고인들에 대해 반공법 위반의 점은 무죄, 그리고 공소사실 중 피고인들에 대한 대통령긴급조치 위반은 각 면소로 판결했다.

이 판결로 오판으로 희생된 피고인들이 늦게나마 명예를 회복한 것이다. 

사형제도에 대해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반대 의견을 비췄다.

이 교수는 “우선 사형제도가 범죄를 막는다는 효과 자체가 과학적 증거로 연구되지 않았다. 연구하는 것도 어려운 분야고, 측정하기도 어렵다. 여론조사 결과 사형 집행 필요성이 높게 나오는 것은 국민들은 잠재적 피해자라고 생각하니 사형제도에 동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제도부터

이어 “과학수사가 증진돼 오판 가능성이 낮아졌지만,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이야기다. 아무리 작은 가능성이라도 무시하면 안 된다. 사형제도는 폐지돼야 한다. 그러나 폐지되려면 미국처럼 ‘가석방 없는 종신형’과 같은 제도를 만들고 폐지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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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신흥시장 라오스는 지금···

범죄 신흥시장 라오스는 지금···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라오스가 동남아의 마지막 프런티어이자 신흥 투자처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국제 범죄자들의 주요 거점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수력발전과 광물, 인프라 개발을 앞세운 투자시장이 활발하게 성장하는 반면, 불법 콜센터를 중심으로 한 사이버 범죄 산업도 동시에 팽창하기 때문이다. 합법과 불법, 투자와 범죄가 교차하는 이 구조는 라오스를 단순한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국제 금융·사이버 범죄의 회색지대로 바라보게 만든다. 최근까지 라오스에서 발생한 보이스피싱 범죄는 과거 한국이나 중국에서 인식해 온 단순 전화 사기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대거 이동 범죄 온상 라오스 스스로도 더 이상 ‘내륙 봉쇄국’이 아니라 ‘육상 연결국’을 자임하며 철도와 도로, 에너지, 도시 인프라를 국가 도약의 기반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 밝은 전면 뒤에는 국제 범죄도시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함께 드리워지고 있다. 투자시장과 범죄 산업이 동시에 팽창하는 이중 구조다. 라오스에서 발생하는 보이스피싱과 온라인 투자사기는 전화와 메신저, SNS를 결합한 다층적 구조가 정착됐다. 가짜 투자 플랫폼과 암호화폐, 외환(FX) 거래를 미끼로 한 고도화된 금융사기가 핵심 수법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 범죄는 국경 지대와 특별경제구역을 거점으로 운영된다. 미얀마·태국과 맞닿은 북부지역 경제특구 일대는 외국 자본과 외국 인력이 밀집한 구조를 악용하기 쉬운 환경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겉으로는 카지노나 리조트, 개발사업사무소로 위장하지만, 내부에서는 각국 언어를 담당하는 인력이 분업 형태로 사기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발송한다. 최근에는 캄보디아 내 대규모 범죄조직들이 현지 단속을 피해 라오스 등 인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정황도 잇따라 포착되고 있다. 지난 10월19일 양기대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라오스에 체류 중인 한국인 민간봉사단체 관계자는 국제 통화에서 “라오스 정부 고위 인사들에게 캄보디아 범죄조직의 라오스 이동 가능성을 물었지만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들었다”고 전했다. 교민사회에서는 태국발 마약 범죄만으로도 벅찬 상황에서 캄보디아발 범죄조직까지 유입되면 감당이 어렵다며, 한국 정부가 후임 대사를 조속히 임명하고 경찰·영사 인력을 보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이 범죄들이 ‘라오스 현지 범죄’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 피해자는 한국과 중국, 일본은 물론 동남아 전역, 유럽과 북미까지 확산돼있다. 라오스는 범죄가 실행되는 물리적 공간일 뿐, 자금은 국제 금융망과 가상자산을 통해 순식간에 국경을 넘는다. 캄 ‘프린스그룹’ 라 ‘킹스 로만스’ 해외투자 뒤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 보이스피싱 조직은 가짜 투자 수익 인증 화면과 조작된 거래 내역을 제시해 신뢰를 쌓고, 일정 금액 이상이 입금되면 추가 투자나 긴급 송금을 요구한 뒤 출금을 차단하는 전형적인 수법을 반복한다. 일부 사례에서는 실제 존재하는 라오스 광산 개발, 에너지 프로젝트, 부동산 사업을 사기 시나리오에 끼워 넣어 ‘현지 실물 투자’처럼 포장하기도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범죄 구조가 인신매매와 강제노동과 결합돼있다는 점이다. 고수익 IT·마케팅 일자리를 제안받고 라오스로 입국한 외국인들이 여권을 압수당한 채 콜센터에 감금돼 사기를 강요받는 사례가 국제 언론과 인권단체 보고서를 통해 반복적으로 드러났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폭행과 협박이 뒤따르고, 탈출을 시도하면 몸값을 요구받는 구조도 확인됐다. 이는 단순 금융사기를 넘어 국제적 인권 범죄이자 조직범죄로 분류되는 이유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일대에 밀집했던 대형 범죄단지가 해체되며 조직이 점조직 형태로 흩어지고 있다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현지 단속 이후 웬치로 불리는 범죄단지 상당수가 텅 비었고, 이들 조직원 상당수가 라오스와 태국, 미얀마 접경 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른바 ‘골든 트라이앵글’은 과거 세계적인 마약 생산지였지만, 최근에는 다국적 피싱 사기의 온상지로 탈바꿈했다. 울창한 산림 지역에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장비를 설치해 전 세계를 상대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라오스 북부 보케오 지역에는 ‘범죄단지’를 넘어선 ‘범죄마을’도 존재한다. 중국 카지노 그룹 킹스 로만스가 99년간 임차해 카지노와 호텔을 운영하는 이 지역은 사실상 외부 접근이 차단된 치외법권에 가깝다. 불법도박과 마약 밀매, 스캠 사기, 암호화폐 자금세탁이 복합적으로 이뤄진다는 의혹이 제기돼왔고, 미국은 이미 2018년부터 킹스 로만스를 초국가범죄 기업으로 지정해 제재하고 있다. 캄보디아에 프린스그룹이 있다면, 라오스에는 킹스 로만스가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국경 넘는 나쁜 놈들 마약 범죄 역시 라오스의 또 다른 어두운 단면이다. 최근 라오스 공항에서 마약을 소지한 채 출국을 시도하다 적발되는 한국인이 급증했다. 비엔티안과 지방 공항에서 잇따라 체포된 사례들은 대부분 헤로인과 케타민, 필로폰 등 대량의 마약을 포함하고 있다. 라오스 형법은 마약 범죄에 극히 강경하다. 일정 기준을 초과하면 사형이나 무기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고, 미수나 공범 역시 동일하게 처벌된다. 실제로 2019~2020년 비엔티안 공항에서 필로폰을 소지하다 적발된 한국인 2명은 현재까지도 장기 복역 중이다. 주라오스 한국대사관이 “타인으로부터 물건을 위탁받지 말라”고 반복적으로 경고하는 배경이다. 라오스 정부 역시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불법 콜센터 단속과 외국인 범죄자 검거, 장비 압수와 추방 조치를 공개적으로 발표하며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단속이 강화될수록 범죄조직이 인접 국가로 이동하는 ‘풍선효과’는 반복되고 있다. 구조적 취약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범죄의 위치만 바뀔 뿐 산업 자체는 유지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범죄 환경은 라오스 투자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다. 라오스는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 요소를 갖춘 국가다. 수력발전과 광물, 재생에너지, 일부 농업·임산물 가공 분야는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행정 절차의 불투명성, 계약 집행의 불확실성, 외환 규제와 금융 접근성 문제는 오래된 리스크다. 여기에 사이버 범죄가 결합되면서 정상 프로젝트와 사기성 프로젝트의 경계는 더욱 흐려지고 있다. ‘정부 승인’ ‘양허권 보유’ ‘현지 고위 인맥’ 같은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공식 검증 없이는 실체를 가늠하기 어렵다. 동남아 마지막 남은 블루오션 라오스의 개발 모델 역시 기회와 위험이 교차한다. 인프라를 외부 차관과 ODA로 먼저 구축하고 성장을 통해 상환하는 구조는 철도와 도로, 병원, 상수도 같은 가시적 성과를 냈다. 그러나 정부 부채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60% 후반으로 추정되고, 낍(KIP)화 약세는 상환 부담을 키우고 있다. 빚으로 지은 인프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자산이 아니라 부담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경고다. 현장에서는 인프라가 완공돼도 운영 시스템과 인력, 수요가 따라오지 못하는 모습이 반복된다. 다만, 한국 정부는 ‘메콩강 내륙국’으로 외교적 지평을 넓히기 위한 포석으로 라오스를 지목했다. 해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 개발 속도가 더딘 메콩강 유역 내륙국 시장을 선점해 경제협력의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판단도 깔려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올해 마지막 정상회담 대상국으로 라오스를 선택한 이유다. 이 대통령은 지난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통룬 시술릿 라오스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했다. 이날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라오스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한 것은 12년 만이다. 라오스는 대표적인 메콩강 유역의 내륙 국가로 꼽힌다. 인도차이나반도의 젖줄인 메콩강은 중국 칭하이성에서 발원해 윈난성과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남중국해로 흐른다. 한국은 중국과 미국에 이어 '3대 교역국'으로 꼽히는 베트남을 비롯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의 해양국과 활발한 경제·문화·인적 교류를 해온 반면 라오스와 미얀마, 캄보디아 등 메콩강 유역 내륙국과 비교적 교류가 적었다. 조원득 국립외교원 아세안인도연구센터장은 “(한국의) 경제협력이나 투자는 베트남 등에 집중됐고 동남아의 내륙 국가에 대한 실질적인 투자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며 “최근 몇 년간 (한국이) 한미일 외교에 집중하다 보니 (내륙국에 대한) 정치·외교적인 관심이 많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범죄로 얼룩 이면엔 ‘기회의 땅’ 무궁무진 천연 광물과 수력발전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메콩강 유역 국가들은 베트남처럼 경제적으로 한 단계 높은 층위를 차지하는 국가들과 아닌 국가들로 구분돼있다”며 “메콩강 지역 개발의 최대 수혜는 상대적으로 빈곤한 국가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얀마는 군부독재라는 문제가 있고 캄보디아는 온라인 ‘스캠’(사기)으로 대표되는 치안 문제가 있다”며 “한국이 메콩 지역 개발을 위해 손잡고 일할 수 있는 국가는 현재로선 라오스”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해양국들뿐 아니라 내륙국들과 교류·협력 등을 통해 아세안에서 영향력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된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아세안의 GDP 규모는 약 3조8000억달러(약 5590조원)로 국가로 치면 세계 5위 수준이다. 인구 규모는 6억7000만명으로 세계 3위다. 미중 갈등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불확실성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4강’을 넘어 아세안 등 신흥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약 6개월 만에 G7(주요 7개국), 유엔(UN·국제연합)총회,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해 상생과 연대의 가치를 강조하며 자유무역 질서 및 다자주의 회복에 힘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통룬 주석과의 확대회담에서 “라오스가 통룬 주석의 리더십 하에 내륙 국가라는 지리적 한계를 새로운 기회로 바꿔 역내 교통·물류의 요충지로 발전한다는 국가 목표를 성공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확신한다”며 “이 과정에서 한국이 든든한 파트너로서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양국 간 호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를 더욱 확대·발전시켜서 양국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성과를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익 보장? 의심부터 결국 라오스의 투자시장과 보이스피싱 범죄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제도적 공백과 국경 지대의 느슨한 관리, 외국 자본과 인력 유입이 만들어낸 회색지대라는 동일한 토양에서 자라난 두 개의 얼굴이다. 라오스는 여전히 기회의 땅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이제 철저한 검증과 리스크 관리 없이는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 됐다. 높은 수익률을 약속하는 투자 제안일수록, ‘이미 현지에서 잘 돌아가고 있다’는 말일수록 냉정하게 의심해야 하는 이유다. 라오스 투자시장의 성장과 국제 범죄 산업의 확산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같은 구조가 낳은, 서로 다른 두 개의 결과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