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46년 전 미국의 ‘경찰재단(The Police Foundation)’은 경찰관을 위한 고등교육에 관한 국가 자문위원회(The National Advisory Commission on Higher Education for Police Officers)를 구성해 50개주 고등교육 책임자, 형사사법 기획기관, 100개 이상의 경찰교육 관련 조직과 단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해당 설문조사에서 결론은 ①경찰교육이라고 일반 인문학 교육과 달라서는 안되며 ②경찰교육은 직무와 관련돼야 하며 ③경찰교육이 현대사회의 복잡하고 변화하는 요구와 필요에 대응하는 경찰직업을 향상시키기 위한 도구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학계를 중심으로 경찰관에 대한 고등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경찰의 과도한 무력 사용이나 권한의 오·남용으로 인한 경찰의 잔인성, 폭력성이 이들에 대한 고등교육의 필요성을 더욱 키웠다고 할 수 있다. 고등교육이 경찰의 자질 향상과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직업윤리를 강화시켜 줄 것이라 믿는 것이다.
실제로 학계에선 경찰관에게 고등교육이 필요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들기도 한다. 대학교육을 받은 경찰관일수록 무력 사용 개연성이 더 낮고, 결과적으로 시민의 불만 제기도 더 적게 접수되고, 비리 등으로 징계를 받거나 퇴진하는 개연성이 더 낮다고 한다.
현대 경찰 활동의 방향 또는 추세인 지역사회-경찰 활동과 그 기초가 되는 문제-지향, 문제-해결적 경찰 활동에 있어서도 범죄예방을 위한 분석적 능력, 지역사회와의 소통과 관계 설정, 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의 제시 등 대학교육을 받은 경찰관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경찰이 더 전문화되고, 그래서 더 효율적으로 보다 양질의 서비스를 더 많은 시민들에게 제공하기 위해서 고등교육, 대학교육이 필요하느냐는 논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분명한 건 경찰관의 고등교육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닌 어쩌면 전제조건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경찰관에 대한 고등교육의 필요성은 우리도 예외가 아니어서 국립경찰대학이 그 상징처럼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과거 경남 의령 우범곤 순경 총기 난사 등의 사건, 부조리·부패·비리로 인한 경찰관 자질 향상이라는 사회적 요구가 있었던 것이다.
경찰대학은 전반적인 경찰의 역량 강화와 이를 위한 우수한 자질의 경찰관을 유인하는 차원에서 설립됐다. 검찰과의 수사권 조정 논쟁에서 가슴 시리게 공격받았던 자질 문제에 대한 돌파구이기도 했다.
당시 경찰이라는 직업은 박봉에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인식됐다. 이런 가운데 우수한 자질의 경찰관을 유인하기 위해 각종 특혜를 내세운 경찰대학은 당초 기대처럼 경찰 전반의 자질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수사권 조정의 중심 역할을 했으며, 경찰 조직문화 또한 상당히 개선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설립 당시와 지금의 상황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제는 순경 공채 입직자 절대 다수가 대학교육을 받은 만큼, 자질 향상을 위한 경찰대학은 그 존재 이유가 사라졌다. 경찰대학 졸업생에 대한 자동 임관은 그 절차적 정당성과 결과적 정당성 모두 결여돼있다.
경찰대학을 졸업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경위로 자동으로 입관된다는 것은 임용고사가 없다는 점에서 절차적으로도 정당하지 못하고, 경위로 임용된다는 것은 결과적 정당성도 없다. 간부 후보생들과 동일한 임용고사를 부과해 합격한 사람만 임용하는 것이 그나마 절차와 결과적 정당성을 조금이라도 회복시켜줄 것이다.
더 나은 방법은 경찰대학 졸업생을 포함한 모든 경찰 입직 창구를 순경으로 단일화하는 것이다. 이유는 훌륭한 경찰관은 교실에서 책에서 가르치고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경험을 통해서 몸소 체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위 임용은 이런 소중한 경험을 박탈하는 것이다.
더 이상 경찰대학은 경찰의 자질을 향상시키는 유일한 창구가 아니다. 오히려 신임 경찰관을 배출하는 교육기관이 아니라 급변하는 치안 수요와 과학기술의 발달과 범죄 수법의 진화 및 이에 대응하기 위한 과학수사 능력의 향상 등을 위해서라도 현직 경찰관을 위한 실무교육, 재교육 기관으로서 국방대학과 유사한 기능으로 존재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한다.
[이윤호는?]
▲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