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3000억 ‘에이프로스퀘어’에 묻은 이상한 흔적들

몰랐어도 문제…알았어도 문제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강남 노른자 땅에 위치한 오피스 빌딩이 새 주인을 맞이했다. 다만 빌딩을 인수한 시기가 많은 뒷말을 낳게 한다. 굳이 위험 부담을 안고 사들인 이유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는 양상이다.

지난 4월25일 JR투자운용이 운용하는 ‘제이알일반사모부동산투자신탁제32호’는 마스턴투자운용으로부터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소재 에이프로스퀘어(옛 바로세움3차) 오피스에 대한 소유권을 넘겨받았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지 2개월여 만이다. 매각금액은 3080억원이고, JR투자운용은 신탁형 펀드를 조성해 1271억원을 조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래저래
남는 장사

에이프로스퀘어의 실질 소유자는 제이알일반사모부동산투자신탁제32호지만, 등기상 소유주는 수탁자인 우리은행이다. 우리은행은 지난 4월22일 JR자산운용과의 신탁계약을 통해 수탁자로 이름을 올렸고, 엿새 뒤인 지난 4월28일 이전 소유주로부터 소유권을 이전받았다.

에이프로스퀘어는 마스턴자산운용이 조성한 ‘마스턴밸류애드일반사모부동산투자신탁제49호’가 소유했던 부동산이다. 해당 펀드에는 ▲국민연금 ▲산재기금 ▲군인공제회 ▲현대해상 등이 투자했다.

이번 매각으로 마스턴투자운용은 1000억원대 시세차익을 남겼다. 앞서 마스턴투자운용은 2019년 3월 엠플러스자산운용이 운용하는 ‘엠플러스사모부동산투자신탁제9호’로부터 해당 오피스를 매입하는 데 2040억원을 투입한 바 있다.


JR투자운용 입장에서도 에이프로스퀘어는 쏠쏠한 쓰임새가 부각되는 매물이다. 에이프로스퀘어는 2011년 지하 5층~지상 15층, 연면적 2만7220㎡(약 8234평) 규모로 준공됐고, 현재 두산중공업과 위워크가 전체 면적의 약 80%를 임차해 사용 중이다.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구조다.

향후 에이프로스퀘어를 매물로 내놓을 경우 교통의 요지라는 특성이 시세차익을 극대화하는 배경이 될 것으로 점쳐진다. 해당 오피스는 지하철 2호선 강남역과 9호선 신논현역 사이에 위치하며, 신논현역(신분당선) 개통과 용산역까지 신분당선 연장 등 추가적인 주변 개발 효과를 기대해봄직하다.

실질적 몸값에 비해 매각금액이 낮게 책정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희소식이다. 몇몇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입지조건·면적 등을 고려한 에이프로스퀘어의 현 시세를 4000억원대로 추산하고 있다. JR투자운용이 마스턴투자운용으로부터 사들인 금액보다 1000억원 이상 웃도는 수준이다.

하지만 호재만 가득한 건 아니다. 소유권을 둘러싼 거듭된 잡음은 JR투자운용과 우리은행을 곤란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옛 소유주가 제기했던 헌법재판소 가처분 신청은 JR투자운용과 우리은행의 행적을 유심히 보게 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알면서
모른 척?

지난 3월23일 에이프로스퀘어의 최초 소유주인 시선RDI 측은 헌법재판소에 ‘부동산 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했다. 가처분 신청은 김대근 시선RDI 대표가 지난해 11월19일 헌법재판소에 낸 본안(민사소송법 제451조 제1항 등 위헌소헌) 사건과 맞닿아 있다.

당시 김 대표는 검사의 공권력 행사 및 불기소 처분 등으로 헌법상 보장된 재산권 및 평등권,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이 침해당했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 청구서를 제출했다. 시선RDI가 검찰의 부당한 조사로 인해 에이프로스퀘어의 소유권을 빼앗겼다고 강조하는 한편, 검찰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개인의 권리가 침해당하지 않도록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놀랍게도 헌법재판소는 김 대표가 낸 위헌소원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21일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을 ‘전원재판부’의 심판에 회부하고, 국선변호인 선정을 결정했다. 개인의 요청에 의해 헌법 개정 여부가 검토되는 지극히 이례적인 광경이 펼쳐진 셈이다.

위헌소원이 심판 회부되자, 에이프로스퀘어 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헌법재판소는 시선RDI 측이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한 지 닷새 만인 지난 3월28일 법무부 장관 및 법원행정처장, 국회의장, 서울고등법원 등에 가처분 신청 접수를 통지했고, 현재 이 사건은 헌법재판소 심리 중인 상태다.

눈여겨볼 부분은 JR투자운용과 우리은행이 에이프로스퀘어를 인수하고 소유권자로 등재된 시기(지난 4월28일)가 가처분 신청을 헌법재판소가 접수 통지(지난 3월28일)한 지 불과 한 달 남짓 지난 시점이라는 사실이다.

지난 3월30일 시선RDI 측은 에이프로스퀘어 소유권 분쟁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법인 12곳에 가처분 신청 접수 통지 사실과 함께 부동산 매각금지 및 반환을 촉구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당시 매각 우선협상대상자 신분이었던 JR투자운용은 해당 공문을 발송 이틀 뒤인 지난 4월1일 수령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법조계 관계자는 “보수적인 국내 법조계 성향을 감안하면 개인이 낸 헌법소원을 헌법재판소가 검토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라며 “본안 처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가처분 신청에 대한 심리 결과가 영향을 받을 텐데, 인수자 측이 급하게 매매에 나선 이유를 모르겠다”고 언급했다.

몰랐다는데…정말?

JR투자운용은 헌법재판소 가처분 신청 사실을 몰랐다는 입장이다. JR투자운용 관계자는 “해당 사실을 인수 작업을 마무리할 때까지 알지 못했다”며 “에이프로스케어 인수 건은 충분한 법적 검토를 거쳐 결정된 사안”이라고 말했다.

수탁자인 우리은행도 같은 입장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가처분 신청 사실을 JR투자운용으로부터 전해들은 바 없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에이프로스퀘어 인수에 앞서 이뤄진 헌법재판소 가처분 신청이 현재 심리 중인 상태만으로도 JR투자운용과 우리은행을 난감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가처분 신청 심리 중이라는 상태를 사전에 알았어도 문제, 몰랐어도 문제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할 수 없도록 하는 가처분 신청이 헌법재판소에서 받아들여질 경우 JR투자운용과 우리은행은 향후 에이프로스퀘어 처분을 고려할 때 제약이 뒤따를 수 있다. 본안 건이 에이프로스퀘어 소유권 분쟁과 연결된 탓이다.

김 대표가 낸 위헌소원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에이프로스퀘어 소유권의 행방이 묘연해질 위험성이 충분하다.

구멍 뚫리면
누구 책임?


JR투자운용의 경우 가처분 신청 사실을 제이알일반사모부동산투자신탁제32호 투자자들에게 충분히 전달했느냐가 쟁점이다. 사전 인지 상태에서 투자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면, 리스크 요인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생긴다. 인지하지 못했다면, 기초적인 리스크 요인조차 파악하지 못했다는 걸 인정한 셈이고, 이로 인해 투자자들이 향후 생각지 못한 위험 부담을 떠안게 될 수 있음을 뜻한다.

수탁자인 우리은행 역시 별반 다를 게 없다. 신탁 관계에 따라 위탁자로부터 일정한 사무를 위임받은 수탁자는 해당 물건의 위험요소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은행 측은 부동산 등기부등본상 가처분 금지 신청 내용을 파악할 수 없으며 가처분 금지 신청만으로 수탁 예정자가 이를 확인하기란 어렵단 입장이다. 

등기 검인 절차상에서도 우리은행이 수탁자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수탁자는 신탁계약에 의한 소유권 이전 시 등기 원인을 증명하는 검인 과정을 밟아야 한다. 

우리은행 측은 절차대로 검인 과정을 진행했다고 언급한 상태다. 등기와 관련해 관할인 서초구청의 검인을 완료했으며, 검인된 신탁계약서와 관련한 신고필증을 보관 중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서초구청이 시선RDI 측에 회신한 내용에 따르면 소유권 이전 시 뒤따라야 할 관련된 부동산매매계약서 및 신탁등기 말소, 신탁재산의 처분에 따른 검인 신고 여부 등이 부동산거래관리시스템상에서 부존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곳곳에
의문투성


한편 에이프로스퀘어가 새 주인을 찾는 과정에서 목격된 이해하기 힘든 몇몇 구석은 해당 펀드에 투자한 기관 및 법인에 대한 궁금증으로 연결된다. 현 시점에서 제이알일반사모부동산투자신탁제32호에 투자한 기관 및 법인의 정확한 내역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사모펀드의 특성상 많은 부분이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신탁계약서상에 수익자가 기재되는 통상적인 사모펀드 사례와 달리 해당 펀드는 이마저도 생략돼있어 실소유주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지고 있다.


<heat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복잡했던 에이프로스퀘어 과거사

2008년 1월 시선RDI는 에이프로스퀘어(옛 바로세움3차)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사업자금 조달을 위해 시선RDI 자본금 5000만원으로 자회사인 시선바로세움을 세웠고, 시선바로세움은 기업어음 1200억원을 발행했다. 

그러나 시공사였던 두산중공업이 2011년 5월 상환 실패를 이유로 대위변제에 나서면서, 시선RDI는 에이프로스퀘어의 소유권을 잃게 됐다.

이후 시선RDI는 시공사(두산중공업)와 수탁사(한국자산신탁)가 공모해 소유권을 빼앗았다며 소송전에 돌입했지만, 2014년 대법원은 시공사와 수탁사의 손을 들어줬다.

시선RDI는 과거 대법원 판결이 잘못됐다며 재심을 청구했지만, 서울고법 민사9부(재판장 남성민)는 지난해 7월 시선RDI가 더케이(두산중공업 SPC)을 상대로 낸 우선수익자지위 부존재확인 소송 재심을 각하했다.

재판부는 “원고가 제출한 내용들은 민사소송법에 의한 재심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사이 에이프로스퀘어의 소유권은 제3자에게 넘어갔다.

2013년 12월24일 엠플러스자산운용이 운영하는 ‘엠플러스사모부동산투자신탁제9호’는 바로세움3차 인수대금 1680억원을 납부하고 빌딩의 새 주인으로 나섰다.

2011년 감정가 2630억원으로 평가받던 빌딩을 1000억원가량 낮은 금액에 매입한 것이다.

매입 당시 엠플러스사모부동산투자신탁제9호의 설정액(수익증권)은 500억원, 엠플러스자산운용을 휘하에 둔 ‘군인공제회’가 300억원, ‘키스톤인베스트먼트유한회사’가 150억원, 우병우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의 가족회사 ‘정강’이 50억원을 투자했다.

나머지 인수 비용은 총 7곳의 저축은행에서 끌어온 대출금으로 충당했다.

다만 이들은 2017년 3월 엠플러스사모부동산투자신탁제9호의 수익증권을 ‘아시아퍼시픽캐피탈어드바이저(APC)’에 원금가에 넘겼다.

에이프로스퀘어의 소유권은 2019년 3월 또 한 번 바뀌었다.

이 무렵 마스턴투자운용이 운영하는 ‘마스턴밸류애드전문투자형사모부동산모투자신탁제49호’는 에이프로스퀘어를 2040억원에 사들였다.

엠플러스사모부동산투자신탁제9호는 투자 4년여 만에 시세차익 360억원을 달성했다.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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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