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든 성배’ 민주당 비대위 우상호 역할론과 무용론

잘해도 못해도 욕받이 위원장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독이 든 성배를 결국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이 들었다. 앞서 민주당 지도부는 조기 전당대회 대신 ‘혁신형’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한다고 밝힌 바 있다. 예정대로 8월 전당대회를 치르기로 한 민주당은 전당대회 룰 결정권, 내홍 수습의 임무를 우 의원에게 맡기기로 결정했다. 비대위원장을 맡은 ‘86그룹(1960년대 출생·1980년대 학번) 맏형’ 우 의원은 ‘욕만 얻어먹는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이 민주당의 새로운 리더로 추대됐다. 이로써 계파 싸움에서 한발 물러서 있던 우 의원은 전면에서 양 계파를 중재할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됐다. 함몰 직전인 배의 키를 쥔 우 의원에게 언론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요즘 그는 하루가 바쁘게 ‘민주당을 살릴’ 방안을 찾아 뛰어다니고 있다.

선거 망하고 
갈등 불거져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졌을 때만 해도 민주당의 분위기가 이 정도로 처지지 않았다. 근소한 표 차이로 패배한 점을 꼽으며 나름의 자신감을 챙겼다. 이때 민주당 계파들은 서로 싸우기보단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눈치만 보던 이들이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지방선거가 끝난 직후다.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이재명 의원을 둘러싸고 계파 간의 입장이 엇갈린 탓이다. ‘비명(비 이재명)계’ 의원들은 이 의원의 등판 때문에 전체 판세가 기울었다고 평가하고 있고, ‘친명(친 이재명)계’ 의원들은 애초에 질 싸움을 이 의원 탓으로만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거 하루 뒤인 지난 2일 ‘정세균계’ 이원욱 의원은 본인의 SNS에 “이재명 친구, 상처뿐인 영광! 축하합니다”란 짤막한 글을 올려 이 의원을 비꼰 바 있다. 이 의원은 지방선거 기간에 서울시장 공천을 두고 친명계 의원들과 한 차례 대립한 적이 있는 인물이다. 


정치 9단 박지원 전 국정원장도 본인 SNS에 “자생당사. 자기는 살고 당은 죽는다는 말이 당내에 유행한다더니 국민의 판단은 항상 정확하다”고 적었다. 그는 “자기가 죽어야 국민이 감동한다”고 말미에 덧붙였다. 이를 두고 차기 당 대표설이 돌고 있는 박 전 원장이 벌써부터 이 의원을 견제한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친명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 의원과 오래된 사이로 알려진 ‘7인회’ 소속 문진석 의원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살아 오셔서 총괄 선대위원장을 하셨다고 한들 결과는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 맞받았고 ‘처럼회’ 소속 민형배 의원은 “특정인을 두고 책임을 물으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책임에 경중이 있지만 민주당의 집단책임“이라고 주장했다.

수면 아래에 있던 계파 갈등이 본격적으로 언론에 등장하자 민주당 중진 의원들은 ‘싸움 말리기’에 발 벗고 나섰다.

김종민 의원은 지난 5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이재명 후보 개인에 대한 비판이나 공격 차원이 아니라 민주당에 대한 자기 비판이나 성찰이 필요하다. 민주당으로서는 피해갈 수는 없는 문제”라며 “‘이재명을 지키자’는 식으로 옹호할 문제도 아니다. 민주당의 민주주의가 이대로 좋으냐,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고 있느냐는 문제가 핵심”이라고 다소 중립적인 입장을 내놨다.

‘86그룹 맏형’ 내홍 수습 진두지휘
실권 없이 책임만 지는 자리에 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민주당은 ‘혁신형’ 비대위 구성에 총력을 기울였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도 안 됐고 그렇다고 너무 가벼운 인사에게 당 쇄신을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그동안 민주당 지도부는 외부 인사 영입을 1순위로 생각해왔다. 민주당 측은 계파 갈등과 전혀 관련이 없고 ‘무게감’이 있는 여러 인물을 물망에 올려놓고 지속해서 영입을 추진했다.

민주당의 캐스팅 목록에 올라있던 외부 인사들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 문희상 전 국회의장 등으로 확인됐다. 모두 민주당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내홍을 수습할만한 카리스마가 있는 인물들이다.

이들에 대한 영입 제안과 고사 여부는 확인된 바 없지만,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비대위원장을 캐스팅 목록에서 찾지 못했다.

정치평론가들은 외부 인사들이 비대위원장직을 고사한 이유로 ‘실권’ 없이 ‘책임’만 지는 곳이기 때문이라 평가했다.

알토란 같은 민주당의 공천권은 곧 뽑힐 당 대표가 가져가고, 내홍 수습을 성공적으로 해내지 못한다면 비대위원장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아무런 권한도 없이 책임만 지는 자리에 누가 가려 하겠냐”며 “외부 인사들 또한 나름(손익에 대한) 계산이 있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욕’만 듣는 자리에 우 의원이 가기로 결정됐다. 우 의원은 비교적 친명계에 가깝다고 평가되지만 민주당 내 계파 색채가 매우 옅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서대문구갑에서만 4선을 지낸 중진으로 2004년에 국회 입성 후 2008년 당내 노선 차이로 한 차례 낙선한 뒤 2012년부터는 2020년까지 내리 3번 당선에 성공했다.

애초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입 제안으로 정계에 데뷔한 그이기에 민주당 전통 지지자들은 그에 대한 호감도가 높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뜻을 품으며 정치생활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의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됐다. 다소 ‘친노(친 노무현)·친문(친 문재인)’ 색채가 있는 그에게 친명 색채가 가미된 것은 지난 대선 때부터다. 

제3자서
중재자로

정치적 동지라고 인식되는 ‘86 운동권’ 세력이 친명 쪽으로 분류되면서 이들과 관계가 깊은 우 의원 또한 이쪽으로 균형추가 쏠린 것이다.


그는 박홍근 원내대표, 윤호중 전 비상대책위원장, 송영길 전 대표 등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실제로 우 의원은 이들과 함께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캠프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으며 이 의원의 오른팔 역할을 수행한 바 있다.

사실 우 의원은 이재명 캠프에서 총괄선대위원장직을 맡아 이미 한 번 쇄신을 단행한 바 있다. 그는 ‘매머드급’이라 일컬어지던 이재명 초기 선대위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으며 존재감을 알렸다.

지난해 11월 민주당 선대위에 대한 문제점이 여러 가지 형태로 불거지자 “발족식은 했는데 실제로 발족은 안 된 선대위”라고 평가하며 쇄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에도 “민주당 대응이 늦었다” “굉장히 문제가 많았다” “정신 차려야 한다”고 연이은 질책을 쏟아내며 초기 선대위의 수뇌부에게 독설을 퍼부었다.

결국 민주당은 그에게 쇄신을 단행할 권한을 주며 분위기 반전을 노렸다. 우 의원은 성공적으로 쇄신을 성공시키며 그 기대에 부응했다.

보고 체계를 단순화시켰고, 대응 속도를 빠르게 바꾸었으며 적절한 이슈 메이킹으로 불리했던 여론전을 비등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비록 대선에서 졌지만 민주당은 이때 보여준 우 의원의 능력을 잊지 않았다. 다시 한 번 그에게 쇄신의 역할을 맡긴 것이다.

지난 1월 대선을 앞두고 586 용퇴론에 동참하며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기도 했다. 민주당의 변화에 자신이 본보기가 되겠다는 의도였다.


지난 1월27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선 “불출마 선언을 다른 의원들에게 강요나 확산하려는 목적으로 해석하지 말아 달라. 가장 대표적인 정치인의 자기 결단, 헌신의 의미가 있다”고 언급했다.

불출마를 예고한 그가 맡은 이번 ‘혁신형’ 비대위는 마땅한 권한이 없다고 평가받지만 중요한 역할 한 가지를 부여받았다. 전당대회 ‘룰’을 결정할 권한이다. 차기 당 대표를 뽑을 전당대회에서 공천 룰은 민주당 당권 주자들의 최대 관심사다. 

쇄신 역할
다시 한번

현재 민주당은 전당대회 룰을 대의원 45%, 권리당원 40%, 일반 국민 여론조사 10%, 일반당원 여론조사 5%로 설정해 놓고 있다. 대의원은 당연직 대의원과 임기직 대의원으로 나뉘는데, 당연직 대의원은 정당에 속해 있는 당원 중 대통령을 제외한 국회의원이나 당 대표, 당내의 최고위원, 주요 당직자들을 지칭한다.

임기직 대의원은 당적에 1년 이상 등재돼있으며 당비를 내고 있는 후원 당원들이 지역대표로 선출한 이들을 말한다.

권리당원은 당원 가입 후 당비를 지난 1년간 6회 이상 내왔던 사람을 말한다. 다만 권리를 행사하려면 ‘권리 행사(전당대회) 전 6개월’이라는 세부조건이 따라 붙는다.

다시 말해 오는 8월 전당대회에 참여하려면 적어도 2월 초에는 입당한 후, 당비를 내왔던 당원이어야만 한다. 당비는 최소 1000원만 내도 무방하다.

계파 간 쟁점은 여기서 불거진다. 현행대로라면 지난 대선 이후(3월 초) 새로 유입된 권리당원들이 전당대회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친명계는 당헌·당규를 바꿔서라도 이들을 전당대회에 참여시키자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 자료에 따르면 지난 대선 이후 들어온 신규 당원들은 12만명이 넘는다. 지역별로는 서울 25%, 경기 34%인 것으로 밝혀졌으며 연령별로는 40대 입당자가 3만3000명으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다. 지난 대선 결과를 비춰볼 때, 40대는 이 의원에게 우호적인 세대라고 평가된다.

자료 말미에는 ‘신규 당원의 80%가 여성’이라고 덧붙여져 있다. 실제로 이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여성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바 있다. 당에서 수적 세가 불리한 친명계 입장에서 이들의 투표권은 절실하다. 전통적 기반인 기존 당원들에 맞설 표들이 ‘신규 당원’들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전당대회 룰 개정 두고 
‘친명’이냐 ‘친문’이냐

친명계 의원들은 예비경선에서 권리당원들이 배제돼있는 점, 본투표에서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등가성이 너무 차이가 나는 점을 들며 ‘권리당원의 권한 보장’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친문계는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게 룰을 개정하자는 소리”라며 응수하고 있다. 친문의 수장 격인 홍영표 의원은 “지금 당도 어렵고 복잡한 상황에서 선거를 앞두고 룰을 바꾼다면 당에 상당한 진통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그때도 (룰을)만든 이유들이 있었다. 하루 이틀 해온 것도 아닌데 기존 룰을 존중하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혁신을 주장하고 있는 비대위가 ‘고인물 잔치’를 반대할 명분은 충분하다. 국민의힘에 내리 3연패하며 변화의 물꼬를 틀어야 하는 민주당 입장에서 이번에 입당한 ‘젊은’ 당원들의 의견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반성을 뒤로한 채 자기들만의 정치를 이어갔다’는 총평을 들은 바 있다. 대선 패배에 반성은커녕 ‘졌잘싸’ 프레임으로 응수하며 국민의힘을 견제했고, 중도층을 선거에 끌어들이지 못한 채 정권과 지방권력 모두를 국민의힘에 넘겨줬다는 평가다.

이런 배경에서 ‘변화’하지 못한 민주당에 변화를 몰고 올 세력은 새로 들어온 당원들이라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민주당 이수진 의원은 자신의 SNS에 “대선 이후 많은 분이 민주당원으로 가입해주셨다. 당의 변화와 이재명 후보에 대한 지지라고 생각한다”며 “최근 입당한 분들도 8월 전당대회에서 권리당원의 자격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014년의 경우 당비 납입 횟수를 3회로 정한 사례도 있다”고 구체적인 사례도 언급했다. 우 의원과 함께 비대위원으로 추대된 이용우 의원도 이 의원의 주장을 거들었다.

이 의원은 지난 8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민주당이 국민과 괴리돼 우리들만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룰 개정 등)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룰 개정에 관한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내놨다. 

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세력과 빼앗으려는 세력은 두 달 간 진흙탕 싸움이 이어지리라 예고하고 있다. 중재 역할을 맡은 ‘맏형’ 우 의원의 어깨는 이들의 날선 공방이 오갈 때마다 무거워지는 중이다. 이런 흐름에 우 의원의 역할에 대한 의심이 나오고 있다. ‘혁신’하기보다는 ‘관리’ 쪽으로 역할이 기우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재명룰?
친문룰?

당을 바꾸기는커녕 양측 싸움을 말리다가 두 달을 허비할 것이라는 소리다. 지난 두 번의 선거 패배를 매듭짓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할 동력이 충분치 않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계파 색깔이 없다”는 의미는 다시 말해 양쪽 어느 진영에도 영향력이 없다는 소리와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서로 양보해야 하는 양측의 싸움에서 영향력 없는 리더가 발만 동동 구르는 모습은 그동안 정계에서 숱하게 반복돼왔던 그림이다.


<ingyu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우상호 도우미 비대위원 누구?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우상호 의원을 도울 비대위원들을 함께 추대했다.

다양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선수별로 추천을 받았고, 원외 인사와 지도부에서도 한 명씩 선정됐다.

비대위원은 초선, 재선, 3선, 원외 인사, 당연직, 여성 의원에서 한 명씩 총 여섯명이 선정됐다.

선정된 인물들은 우 의원처럼 계파색이 옅은 인물과 ‘친문계’ ‘친이재명계’ 인사 한 명씩이 균형감 있게 뽑혔다.

현재 발표된 비대위원은 이용우(초선), 박재호(재선), 한정애(3선), 김현정(원외 인사), 박홍근(원내대표, 당연직), 서난이(전북도의원)이다.

이 의원은 ‘무계파’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인물이고, 박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의원을 도운 전력이 있지만, 우 의원처럼 계파 색이 매우 옅다.

한 의원은 ‘친문계’로 분류되는 인물이고, 박홍근 원내대표는 ‘친이재명계’ 인사다. 

민주당은 이외에도 청년·노동 분야에서 한 명씩 추가 선정해 총 9명으로 비대위원회를 완성시킬 계획이라 밝혔다. <정>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