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든 성배’ 민주당 비대위 우상호 역할론과 무용론

잘해도 못해도 욕받이 위원장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독이 든 성배를 결국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이 들었다. 앞서 민주당 지도부는 조기 전당대회 대신 ‘혁신형’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한다고 밝힌 바 있다. 예정대로 8월 전당대회를 치르기로 한 민주당은 전당대회 룰 결정권, 내홍 수습의 임무를 우 의원에게 맡기기로 결정했다. 비대위원장을 맡은 ‘86그룹(1960년대 출생·1980년대 학번) 맏형’ 우 의원은 ‘욕만 얻어먹는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이 민주당의 새로운 리더로 추대됐다. 이로써 계파 싸움에서 한발 물러서 있던 우 의원은 전면에서 양 계파를 중재할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됐다. 함몰 직전인 배의 키를 쥔 우 의원에게 언론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요즘 그는 하루가 바쁘게 ‘민주당을 살릴’ 방안을 찾아 뛰어다니고 있다.

선거 망하고 
갈등 불거져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졌을 때만 해도 민주당의 분위기가 이 정도로 처지지 않았다. 근소한 표 차이로 패배한 점을 꼽으며 나름의 자신감을 챙겼다. 이때 민주당 계파들은 서로 싸우기보단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눈치만 보던 이들이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지방선거가 끝난 직후다.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이재명 의원을 둘러싸고 계파 간의 입장이 엇갈린 탓이다. ‘비명(비 이재명)계’ 의원들은 이 의원의 등판 때문에 전체 판세가 기울었다고 평가하고 있고, ‘친명(친 이재명)계’ 의원들은 애초에 질 싸움을 이 의원 탓으로만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거 하루 뒤인 지난 2일 ‘정세균계’ 이원욱 의원은 본인의 SNS에 “이재명 친구, 상처뿐인 영광! 축하합니다”란 짤막한 글을 올려 이 의원을 비꼰 바 있다. 이 의원은 지방선거 기간에 서울시장 공천을 두고 친명계 의원들과 한 차례 대립한 적이 있는 인물이다. 


정치 9단 박지원 전 국정원장도 본인 SNS에 “자생당사. 자기는 살고 당은 죽는다는 말이 당내에 유행한다더니 국민의 판단은 항상 정확하다”고 적었다. 그는 “자기가 죽어야 국민이 감동한다”고 말미에 덧붙였다. 이를 두고 차기 당 대표설이 돌고 있는 박 전 원장이 벌써부터 이 의원을 견제한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친명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 의원과 오래된 사이로 알려진 ‘7인회’ 소속 문진석 의원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살아 오셔서 총괄 선대위원장을 하셨다고 한들 결과는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 맞받았고 ‘처럼회’ 소속 민형배 의원은 “특정인을 두고 책임을 물으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책임에 경중이 있지만 민주당의 집단책임“이라고 주장했다.

수면 아래에 있던 계파 갈등이 본격적으로 언론에 등장하자 민주당 중진 의원들은 ‘싸움 말리기’에 발 벗고 나섰다.

김종민 의원은 지난 5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이재명 후보 개인에 대한 비판이나 공격 차원이 아니라 민주당에 대한 자기 비판이나 성찰이 필요하다. 민주당으로서는 피해갈 수는 없는 문제”라며 “‘이재명을 지키자’는 식으로 옹호할 문제도 아니다. 민주당의 민주주의가 이대로 좋으냐,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고 있느냐는 문제가 핵심”이라고 다소 중립적인 입장을 내놨다.

‘86그룹 맏형’ 내홍 수습 진두지휘
실권 없이 책임만 지는 자리에 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민주당은 ‘혁신형’ 비대위 구성에 총력을 기울였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도 안 됐고 그렇다고 너무 가벼운 인사에게 당 쇄신을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그동안 민주당 지도부는 외부 인사 영입을 1순위로 생각해왔다. 민주당 측은 계파 갈등과 전혀 관련이 없고 ‘무게감’이 있는 여러 인물을 물망에 올려놓고 지속해서 영입을 추진했다.

민주당의 캐스팅 목록에 올라있던 외부 인사들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 문희상 전 국회의장 등으로 확인됐다. 모두 민주당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내홍을 수습할만한 카리스마가 있는 인물들이다.

이들에 대한 영입 제안과 고사 여부는 확인된 바 없지만,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비대위원장을 캐스팅 목록에서 찾지 못했다.

정치평론가들은 외부 인사들이 비대위원장직을 고사한 이유로 ‘실권’ 없이 ‘책임’만 지는 곳이기 때문이라 평가했다.

알토란 같은 민주당의 공천권은 곧 뽑힐 당 대표가 가져가고, 내홍 수습을 성공적으로 해내지 못한다면 비대위원장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아무런 권한도 없이 책임만 지는 자리에 누가 가려 하겠냐”며 “외부 인사들 또한 나름(손익에 대한) 계산이 있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욕’만 듣는 자리에 우 의원이 가기로 결정됐다. 우 의원은 비교적 친명계에 가깝다고 평가되지만 민주당 내 계파 색채가 매우 옅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서대문구갑에서만 4선을 지낸 중진으로 2004년에 국회 입성 후 2008년 당내 노선 차이로 한 차례 낙선한 뒤 2012년부터는 2020년까지 내리 3번 당선에 성공했다.

애초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입 제안으로 정계에 데뷔한 그이기에 민주당 전통 지지자들은 그에 대한 호감도가 높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뜻을 품으며 정치생활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의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됐다. 다소 ‘친노(친 노무현)·친문(친 문재인)’ 색채가 있는 그에게 친명 색채가 가미된 것은 지난 대선 때부터다. 

제3자서
중재자로

정치적 동지라고 인식되는 ‘86 운동권’ 세력이 친명 쪽으로 분류되면서 이들과 관계가 깊은 우 의원 또한 이쪽으로 균형추가 쏠린 것이다.


그는 박홍근 원내대표, 윤호중 전 비상대책위원장, 송영길 전 대표 등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실제로 우 의원은 이들과 함께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캠프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으며 이 의원의 오른팔 역할을 수행한 바 있다.

사실 우 의원은 이재명 캠프에서 총괄선대위원장직을 맡아 이미 한 번 쇄신을 단행한 바 있다. 그는 ‘매머드급’이라 일컬어지던 이재명 초기 선대위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으며 존재감을 알렸다.

지난해 11월 민주당 선대위에 대한 문제점이 여러 가지 형태로 불거지자 “발족식은 했는데 실제로 발족은 안 된 선대위”라고 평가하며 쇄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에도 “민주당 대응이 늦었다” “굉장히 문제가 많았다” “정신 차려야 한다”고 연이은 질책을 쏟아내며 초기 선대위의 수뇌부에게 독설을 퍼부었다.

결국 민주당은 그에게 쇄신을 단행할 권한을 주며 분위기 반전을 노렸다. 우 의원은 성공적으로 쇄신을 성공시키며 그 기대에 부응했다.

보고 체계를 단순화시켰고, 대응 속도를 빠르게 바꾸었으며 적절한 이슈 메이킹으로 불리했던 여론전을 비등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비록 대선에서 졌지만 민주당은 이때 보여준 우 의원의 능력을 잊지 않았다. 다시 한 번 그에게 쇄신의 역할을 맡긴 것이다.

지난 1월 대선을 앞두고 586 용퇴론에 동참하며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기도 했다. 민주당의 변화에 자신이 본보기가 되겠다는 의도였다.


지난 1월27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선 “불출마 선언을 다른 의원들에게 강요나 확산하려는 목적으로 해석하지 말아 달라. 가장 대표적인 정치인의 자기 결단, 헌신의 의미가 있다”고 언급했다.

불출마를 예고한 그가 맡은 이번 ‘혁신형’ 비대위는 마땅한 권한이 없다고 평가받지만 중요한 역할 한 가지를 부여받았다. 전당대회 ‘룰’을 결정할 권한이다. 차기 당 대표를 뽑을 전당대회에서 공천 룰은 민주당 당권 주자들의 최대 관심사다. 

쇄신 역할
다시 한번

현재 민주당은 전당대회 룰을 대의원 45%, 권리당원 40%, 일반 국민 여론조사 10%, 일반당원 여론조사 5%로 설정해 놓고 있다. 대의원은 당연직 대의원과 임기직 대의원으로 나뉘는데, 당연직 대의원은 정당에 속해 있는 당원 중 대통령을 제외한 국회의원이나 당 대표, 당내의 최고위원, 주요 당직자들을 지칭한다.

임기직 대의원은 당적에 1년 이상 등재돼있으며 당비를 내고 있는 후원 당원들이 지역대표로 선출한 이들을 말한다.

권리당원은 당원 가입 후 당비를 지난 1년간 6회 이상 내왔던 사람을 말한다. 다만 권리를 행사하려면 ‘권리 행사(전당대회) 전 6개월’이라는 세부조건이 따라 붙는다.

다시 말해 오는 8월 전당대회에 참여하려면 적어도 2월 초에는 입당한 후, 당비를 내왔던 당원이어야만 한다. 당비는 최소 1000원만 내도 무방하다.

계파 간 쟁점은 여기서 불거진다. 현행대로라면 지난 대선 이후(3월 초) 새로 유입된 권리당원들이 전당대회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친명계는 당헌·당규를 바꿔서라도 이들을 전당대회에 참여시키자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 자료에 따르면 지난 대선 이후 들어온 신규 당원들은 12만명이 넘는다. 지역별로는 서울 25%, 경기 34%인 것으로 밝혀졌으며 연령별로는 40대 입당자가 3만3000명으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다. 지난 대선 결과를 비춰볼 때, 40대는 이 의원에게 우호적인 세대라고 평가된다.

자료 말미에는 ‘신규 당원의 80%가 여성’이라고 덧붙여져 있다. 실제로 이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여성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바 있다. 당에서 수적 세가 불리한 친명계 입장에서 이들의 투표권은 절실하다. 전통적 기반인 기존 당원들에 맞설 표들이 ‘신규 당원’들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전당대회 룰 개정 두고 
‘친명’이냐 ‘친문’이냐

친명계 의원들은 예비경선에서 권리당원들이 배제돼있는 점, 본투표에서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등가성이 너무 차이가 나는 점을 들며 ‘권리당원의 권한 보장’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친문계는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게 룰을 개정하자는 소리”라며 응수하고 있다. 친문의 수장 격인 홍영표 의원은 “지금 당도 어렵고 복잡한 상황에서 선거를 앞두고 룰을 바꾼다면 당에 상당한 진통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그때도 (룰을)만든 이유들이 있었다. 하루 이틀 해온 것도 아닌데 기존 룰을 존중하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혁신을 주장하고 있는 비대위가 ‘고인물 잔치’를 반대할 명분은 충분하다. 국민의힘에 내리 3연패하며 변화의 물꼬를 틀어야 하는 민주당 입장에서 이번에 입당한 ‘젊은’ 당원들의 의견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반성을 뒤로한 채 자기들만의 정치를 이어갔다’는 총평을 들은 바 있다. 대선 패배에 반성은커녕 ‘졌잘싸’ 프레임으로 응수하며 국민의힘을 견제했고, 중도층을 선거에 끌어들이지 못한 채 정권과 지방권력 모두를 국민의힘에 넘겨줬다는 평가다.

이런 배경에서 ‘변화’하지 못한 민주당에 변화를 몰고 올 세력은 새로 들어온 당원들이라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민주당 이수진 의원은 자신의 SNS에 “대선 이후 많은 분이 민주당원으로 가입해주셨다. 당의 변화와 이재명 후보에 대한 지지라고 생각한다”며 “최근 입당한 분들도 8월 전당대회에서 권리당원의 자격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014년의 경우 당비 납입 횟수를 3회로 정한 사례도 있다”고 구체적인 사례도 언급했다. 우 의원과 함께 비대위원으로 추대된 이용우 의원도 이 의원의 주장을 거들었다.

이 의원은 지난 8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민주당이 국민과 괴리돼 우리들만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룰 개정 등)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룰 개정에 관한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내놨다. 

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세력과 빼앗으려는 세력은 두 달 간 진흙탕 싸움이 이어지리라 예고하고 있다. 중재 역할을 맡은 ‘맏형’ 우 의원의 어깨는 이들의 날선 공방이 오갈 때마다 무거워지는 중이다. 이런 흐름에 우 의원의 역할에 대한 의심이 나오고 있다. ‘혁신’하기보다는 ‘관리’ 쪽으로 역할이 기우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재명룰?
친문룰?

당을 바꾸기는커녕 양측 싸움을 말리다가 두 달을 허비할 것이라는 소리다. 지난 두 번의 선거 패배를 매듭짓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할 동력이 충분치 않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계파 색깔이 없다”는 의미는 다시 말해 양쪽 어느 진영에도 영향력이 없다는 소리와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서로 양보해야 하는 양측의 싸움에서 영향력 없는 리더가 발만 동동 구르는 모습은 그동안 정계에서 숱하게 반복돼왔던 그림이다.


<ingyu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우상호 도우미 비대위원 누구?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우상호 의원을 도울 비대위원들을 함께 추대했다.

다양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선수별로 추천을 받았고, 원외 인사와 지도부에서도 한 명씩 선정됐다.

비대위원은 초선, 재선, 3선, 원외 인사, 당연직, 여성 의원에서 한 명씩 총 여섯명이 선정됐다.

선정된 인물들은 우 의원처럼 계파색이 옅은 인물과 ‘친문계’ ‘친이재명계’ 인사 한 명씩이 균형감 있게 뽑혔다.

현재 발표된 비대위원은 이용우(초선), 박재호(재선), 한정애(3선), 김현정(원외 인사), 박홍근(원내대표, 당연직), 서난이(전북도의원)이다.

이 의원은 ‘무계파’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인물이고, 박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의원을 도운 전력이 있지만, 우 의원처럼 계파 색이 매우 옅다.

한 의원은 ‘친문계’로 분류되는 인물이고, 박홍근 원내대표는 ‘친이재명계’ 인사다. 

민주당은 이외에도 청년·노동 분야에서 한 명씩 추가 선정해 총 9명으로 비대위원회를 완성시킬 계획이라 밝혔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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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