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네 번째 한국인 추기경 유흥식 대주교

  • 오혁진 기자 ohj0001@nate.com
  • 등록 2022.06.07 12:59:59
  • 호수 13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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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업무 추진력 소탈하고 열린 리더십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한국 가톨릭교회 제4대 천주교 대전교구 교구장을 역임한 유흥식 신부가 네 번째 추기경에 임명됐다.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으로 임명된 지 약 11개월 만이다. 그는 국내 사회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이명박(MB) 정부 당시 4대강을 반대했다. 세월호 참사 현장도 방문해 정부를 향한 비판을 이어왔다.

유흥식 신임 추기경은 1951년 11월17일 충청남도 논산군에서 태어났다. 3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생후 6개월에 한국전쟁을 맞았다. 젖먹이 시절 아버지를 잃어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어머니는 3남매를 혼자서 키우느라 갖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유 추기경이 기댈 곳은 성당뿐이었다.

가난했던 과거
수녀님 권유로…

유 추기경은 학창시절 다니던 성당에서 그에게 사랑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수녀님의 권유로 신부의 삶을 꿈꿨다. 논산 대건중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고등학교 1학년인 16세 때 가톨릭교회의 세례를 받아 신자가 됐다.

고등학교 2학년 당시에는 오스트리아 부인회 장학금을 받게 되면서 “이 귀한 돈을 멀리 있는 분들이 보내주셨는데 내가 보답할 길은 다시 성당에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해 그때부터 성당에 열심히 다녔다고 한다.

유 추기경은 신학교에 들어가 신학생이 되기로 결심을 굳혔지만,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집안의 반대를 고려해 집에는 일반대학교(연세대)에 시험 본다고 하고 신학교 입학시험을 치렀다.


유 추기경은 1979년 12월8일 로마에서 사제품을 받았으며, 1983년 교황청립 라테란대학교에서 교의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주교좌 대흥동본당 수석 보좌신부, 솔뫼성지 피정의 집 관장, 대전가톨릭교육회관 관장, 대전교구 사목국장,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 등을 거쳐 1998년 12월 대전가톨릭대학교 총장으로 임명됐다.

2003년 6월24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천주교 대전교구 부교구장 주교로 임명됐으며, 그해 8월19일 주교로 서품됐다. 교구장 경갑룡 주교의 사임에 따라 2005년 4월1일 교구장직을 승계 받아 4월6일 대전교구 교구장 주교로 착좌했다.

2014년 8월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를 주최한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에 큰 역할을 했다.

이 같은 많은 활동을 한 유 추기경의 세례명은 ‘라자로’다. 음력 생일과 일치하는 성인을 찾다 명명하게 됐다. ‘라자로’는 생전에 거지였다가 천국에 가서 부활해 예수의 친구가 됐던 인물이다.

유 추기경은 교황청 장관으로 취임한 이래 전 세계 50만명에 달하는 사제·부제의 직무·생활을 관장하는 업무를 무난하게 잘 수행해오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그동안 줄곧 이탈리아 출신 장관이 도맡아온 일을 아시아 출신 성직자가 넘겨받은 데 대해 교황청 안팎에서 일부 우려도 있었으나 특유의 성실함과 친화력으로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는 불필요하고 잘못된 업무 관행을 개선하고 조직을 능률적으로 탈바꿈시키는 데도 일조했다. 취임 직후 장관실을 모든 직원에게 개방하고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도록 한 것도 교황청 관행상 보기 어려웠던 풍경이다. 탁월한 업무 추진력에 더해 소탈하고 열린 리더십으로 성 내 직원들에게 두터운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 추기경은 한국 인권과 환경, 종교 간 평화를 위해 노력한 종교인이자 개혁파로 평가받는다. ‘쌍용차’ ‘위안부’ ‘사형제’ ‘4대강 사업’ 문제를 두고 진보적, 전향적으로 사목 활동을 벌였다.


4대강·위안부 합의 비판 등 사회 문제 지적
프란치스코 교황 동행해 세월호 유가족 만나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때 안내를 책임지고 이끌면서 세월호 참사 유족과 만날 때도 동행했다.

유 추기경은 교황 방문을 앞두고 언론 인터뷰에서 “교황 방문이 세월호 참사와 같은 큰 고통과 갈등을 겪고 있는 한국 사회에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사람을 귀히 여기고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교황의 삶 자체가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 추기경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염원하는 천주교 13만936인 선언’에도 참여했다.

2010년 8월15일 성모승천대축일 때 낸 메시지에서 유 추기경의 지향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당시 간디의 무덤 입구에 새겨진 ‘국가가 멸망할 때 나타나는 일곱 가지의 사회악’을 인용하면서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富),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교육, 도덕 없는 상업, 인간성 없는 과학, 희생 없는 종교다.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을 너무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씁쓸하고 답답해져 온다”고 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다. 정의평화위원회는 2016년 한국과 일본 정부의 위안부 문제 타결에 대한 입장문을 내고 “인권을 경제와 외교 논리로 환치한 결과물”이라며 “이 문제를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당시 정평위는 “정의를 향한 외침과 인권 보호는 교회의 기본 임무”라고 했다.

노동자와 농민도 만났다. 2015년 11월엔 물대포를 맞고 중태에 빠진 농민 고 백남기씨를 당시 김희중 대주교와 함께 병문안했다. 이들은 당시 경찰의 과잉 진압을 비판했다. 2014년 12월엔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과 김정우 전 지부장을 만나 위로했다.

당시 두 사람 동료인 이창근 정책기획실장과 김정욱 사무국장이 70m 굴뚝 위에서 농성을 진행했다. 2009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는데, 여러 병으로 고생하던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을 찾아 격려의 말과 기부금을 전하기도 했다.

인권과 환경
종교간 평화

2015년 대전교구장으로 일할 때는 국회의원들에게 공식 서한을 보내 사형제 폐지를 위한 특별법 공동 발의에 참여할 것을 호소했다.

당시 유 추기경은 “‘보복과 응징’으로 죄인의 생명을 죽이는 것보다 ‘반성과 용서, 사랑과 체계적인 교화’를 통하여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우리 사회의 병폐를 진정한 의미에서 바로잡고 치유하는 길이며 인간에 대한 진정한 희망과 신뢰를 여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프랑스가 많은 반대 여론에도 정치 지도자들의 소신 있는 결단으로 사형제도를 폐지한 선례도 제시했다.

2010년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전국 사제·수도자 5005인 선언문’에 주교 자격으로 이름을 올렸다. 부처님오신날엔 사찰을 찾는 등 종교 간 대화·평화를 위한 여러 활동을 펼쳤다.

유 추기경은 2015년에도 MB의 4대강 비판을 이어갔다. 유 추기경이 위원장으로 있던 주교회의 정평위는 2015년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대회의실에서 진행된 정기총회에서 “하느님은 항상 용서해준다. 사람은 가끔 용서해주지만 자연은 용서하지 않는다”며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사업’이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것으로, 환경 파괴와 자연재해를 우려하는 학계의 견해를 제대로 수용하지 않은 채 국민적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내용과 절차면에서 정당성이 결여되고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으므로 이제라도 충분한 여론 수렴을 통해 재조정돼야 할 불의한 사업”이라며 “교회의 ‘4대강 사업’ 반대가 참된 가치를 바탕으로 복음화하고 올바른 인간의 길을 제시해야 할 사명이 교회 본연에 해당함을 다시 확인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 추기경은 “한국 천주교회는 온전한 생태계 회복을 위해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기초로 한 ‘공동선’의 가치를 독려하고 이를 위한 토론의 장에 동참할 것”이라며 “또 쓰고 버리는 낭비의 문화에서 벗어나 공동체적이고 생태적인 생활방식을 정착시켜 구체적인 정책변화를 이끌어내는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유 추기경은 2016년 1월 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모여 살고 있는 복지시설 ‘나눔의 집’을 위로 방문하고, 한일 외교장관 회담 결과를 비판하기도 했다.


정부 잇단 비판
행동하는 개혁파

앞서 유 추기경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사과가 “진정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비판했다. 한국정부에 대해서도 “왜 졸속으로 이렇게 했는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천주교 최고 의결기구인 천주교주교회의도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합의가 "피해 당사자인 종군위안부의 인권을 또다시 무참히 짓밟았다"고 강력 질타하면서 전면 재협상을 촉구한 바 있다.

천주교주교회의 산하 공식기구인 정의평화위원회는 당시 “‘모든 위안부 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에 10억엔을 책정한다는 등의 합의문은, 모든 것에 선행돼야 하는 가장 소중하며 보편적인 기본권을 한일 양국의 현안 해결이라는 이름 아래 경제와 외교의 논리만으로 환치시킨 결과물”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러면서 “합의문의 여러 내용은 일본이 저지른 조직적 범죄인 종군위안부에 대한 진상과 책임 규명의 노력을 소홀히 하게 만듦으로써 피해 당사자인 종군위안부의 인권을 또다시 무참히 짓밟았다”고 비판했다.

종교계에서 위안부 합의에 대해 원인무효를 선언하고 나선 것은 천주교가 처음으로 유 추기경의 역할이 컸다. 천주교주교회의 정평위는 이외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서도 성명을 통해 반대 입장을 밝히는 등 박근혜정부의 퇴행성을 비판해왔다.

북한과의 친선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한 문재인정부에서 유 추기경은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는 실제 북한을 포함한 저개발국 지원에 남다른 열정과 관심을 두고 실천했다.

대전교구장으로 봉직하던 2020년 말, 전 세계 교구 중 처음으로 저개발국을 위한 ‘코로나19 백신 나눔 운동’을 시작한 게 대표적이다. 백신 나눔 운동은 이후 한국 천주교 교구 전체로 확대됐고,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 일에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아 직접 한국 교계에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유 추기경은 북한 사정에 가장 정통한 성직자로도 꼽힌다. 한국 천주교 본산인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장(2014∼2018년)으로 있을 때는 교황청 산하 비정부기구(NGO)인 국제 카리타스의 한국 대표로 활동하며 대북 지원사업의 가교 역할을 했다. 2005년 9월 북한을 찾아 ‘씨감자 무균 종자 배양 시설’ 축복식을 하는 등 2009년까지 네 차례 북한을 방문한 바 있다.

유 추기경은 최근까지도 교황청의 북한 방문을 추진하던 인물이다. 유 추기경은 지난해 10월 바티칸에서 기자들과 만나 방북 가능성에 대해 “지금으로선 상대방(북한)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달린 문제”라며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해 노력 중이고 가능하면 (상호)관계에서 상대가 대답을 잘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가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 북한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지원에 대해 “교황청에서는 그런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어려운 사람을 돕는 차원에서 도와줄 수 있는 준비가 돼있다”고 강조했다.

말뿐인 ‘교황 방북 플랜’ 실행·추진력 커져
거칠어진 북 도발 잠재우는 해결사 역할 하나

교황은 4년 전 문 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의 교황 초청 의사를 전했을 때도 수락 의사를 표한 적이 있다. 당시 유 추기경은 교황이 북한의 초청장이 오면 방북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과 관련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안인지 묻는 말에 “제가 말씀을 드릴 처지는 아니다”면서도 “정부도 그렇지만 교황청도 여러 가지 길을 통해 교황님이 북한에 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면서 노력하고 있다. 때가 맞아야 한다. 잘 됐으면 좋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교황청은 지난해 북한과 직접 교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교황청 자선단체인 ‘산에지디오’ 경로를 통해 북한과 의견 교환 및 만남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힘썼다.

앞서 2019년 2월 로마 라테라노 대성당에서 열린 산에지디오 창립 51주년 기념미사와 리셉션에 김천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대리가 참석해 교황청 관계자들과 만났다. 2018년 12월에는 임팔리아초 산테지디오 회장이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나기도 했다.

유 추기경은 “이탈리아가 유럽에서 제일 먼저 북한과 수교한 나라다. 친북 (성향의)의원들도 있어 그 사람들이 가끔 북한을 가기도 한다”면서 향후 의원들과 만나 북한 문제를 논의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천주교계에서는 유 추기경 임명이 북한과 중국 관계에서 큰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문정부에서부터 추진되던 교황의 북한 방문 현실화를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해석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의지가 지금도 확고하지만, 방북 현실화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금까지 방북이 성사된 적이 없고, 현재도 교황청과 북한 간 직접적인 외교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윤석열정부가 들어서면서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핵실험 시나리오까지 나오고 있어 북한의 견제가 심해지고 있다.

2018년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잇따라 개최되는 등 한반도 해빙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교황의 방북 가능성이 열리는 듯했으나 다음 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실패로 끝나며 모든 실무 작업이 중단됐다.

천주교 측에서는 교황의 방북이 경색된 남북관계의 돌파구로 작용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교황은 테러와 전쟁 위험 등의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천주교 역사상 최초로 이라크를 순방했다. 당시 교황은 “희망이 증오보다 더 강력하며 평화가 전쟁보다 더 위력적”이라며서 전쟁을 이기는 평화와 공존의 메시지를 설파했다.

경색된 남북
돌파구 작용?

교황의 의지가 확고해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 북한 측은 교황의 방북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만약 교황 방북이 성사되면 향후 경색된 남북, 북미관계 개선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hounder@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천주교 2인자’ 어떤 의미?

추기경은 천주교계에서 교황 다음의 권위와 명예를 가진 종신직이다.

특히 80세 미만의 추기경은 교황 선종 시 신임 교황을 선출하는 등 교황청 내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콘클라베’에서 투표할 수 있다.

유흥식 추기경 임명은 지난해 6월11일 주교에서 대주교에 서임됨과 동시에 바티칸 교황청의 성직자성 장관에 임명될 때 예견된 바 있다.

성직자성 장관은 대주교보다 높은 추기경 직책으로 분류돼 재임 기간에 추기경에 서임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장관 임명 당시부터 뒤따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 추기경에 대한 신임이 두텁다고 알려졌다.

이들은 2013년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에서 처음 만나 인연을 이어갔다.

교황은 이듬해 방한해 유흥식 주교가 교구장으로 있는 대전교구에서 열린 ‘아시아청년대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유 추기경 임명은 한국이 사실상 동아시아 선교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배려한 조치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특히 한국천주교계가 교황 선출 등 최고의사 결정 기구인 ‘콘클라베(Conclave)’에서 2표를 행사하는 영향력을 얻게 됐다는 의미도 있다.

한국천주교는 고 김수환 스테파노(1922∼2009)·정진석 니콜라오(1931∼2021) 추기경과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을 배출한 바 있지만, 선배 추기경이 80세를 넘겨 콘클라베에서 1표밖에 행사하지 못했다.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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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채 상병 사건’ 사단장 수상한 메시지 내막

[단독] ‘채 상병 사건’ 사단장 수상한 메시지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채 상병 사건’의 핵심 관계자인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이 해병대 간부들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취한 것으로 파악됐다. 자신의 사건을 언급하면서 사실관계를 확인하려 한 게 핵심이다. 임 전 사단장과 연락이 닿은 인물들은 대부분 이해관계자다. 자칫하면 회유 정황으로 보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은 ‘채 상병 사건’의 핵심 피의자다. 수사외압 논란의 시발점이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직접 챙긴 인물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수사 대상인 임 전 사단장은 자신의 사건을 물밑에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다 왜 움직이기 시작했을까? 침묵 지키다… 임 전 사단장은 최근까지 복수의 해병대 간부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는 간부 A씨에게 “(공수처)수사가 종결되지 않은 상황서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어서 연락하지 못했다”며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은 없었다. 다만 “모두가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고, 현재도 겪고 있지만 아들을 잃은 채 상병의 유족 특히 모친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버티고 있다. 진실을 밝힐 때까지는 고통스러워도 견딜 생각이다.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임 전 사단장은 A씨에게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하 대령)의 변호인이었던 김경호 변호사에게 내용증명을 보낸 것과 관련해 민·형사 소송을 준비 중이라며 도움을 요청하는 뉘앙스로 연락을 취했다. 김 변호사가 자신을 고발한 게 무고에 해당하는지와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한 것이다. 그는 타 간부들에게도 비슷한 도움을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간부는 <일요시사>와의 연락서 “난감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모셨던 사람이긴 한데 임 전 사단장에 대해 개개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모든 사람이 채 상병 사건 진상규명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 전 사단장은 과거 박 대령에게도 사실확인요청서를 보낸 바 있다. 자신은 물속 수색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수차례 했고 작전통제권이 육군 50사단장으로 넘어간 상황서 자신의 책임과 범위 내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했다며, 이에 대한 박 대령의 기억과 판단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공수처 수사 대상인데… 사건 연루자들에 연락 당시 임 전 사단장은 “상급지휘관(임 전 사단장)에게 작전통제권은 없지만, 부대를 방문해 전술토의할 수 있고 효율적인 작전이 되도록 유도할 권한은 있다”고 했다. 작전통제권이 없어 안전 책무가 없다면서도, 자신이 현장서 ‘수변을 수색하라’고 지휘한 건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런 이유로 임 전 사단장은 자신의 직권남용 문제를 언급한 해병대수사단의 조사 결과 보고서가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해병대 수사단은 임 전 사단장의 직권남용 혐의를 적시하지 않았다. 수사단은 ‘작전통제권과 상관 없이’ 임 전 사단장을 실질적 수색작전 지휘관으로 보고, 안전지침을 부대에 하달하지 않아 채 상병 순직사고가 일어났다고 판단했다. 임 전 사단장은 김 변호사와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법적 대응까지 예고했다. 김 변호사가 SNS에 게시한 글 중 허위 사실이 포함된 내용이 있다는 게 임 전 사단장의 주장이다. 그는 김 변호사에게 “해병대 수사단 자료의 한계 속에서 해석과 이해를 거쳐 어떤 주장을 하는 것에 관해서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도 같은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악의적이라고 생각한다”며 “해병대 수사단 자료의 문제점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발견됐고, 제가 사안의 진상을 밝히면서 그걸 뒷받침하는 자료를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허위가 여론을 조작하고 진실을 가리는 불의한 상황을 시정하기 위해 나 자신의 안위는 돌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임 전 사단장을 공수처에 세 번째로 고발했다. 이번 혐의는 군형법 제79조 무단이탈죄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임 전 사단장은 지난 1월 말 서울 노원구에 있는 화랑대연구소가 아닌 영등포구에 위치한 해군 관사 ‘바다마을아파트’에 거주하며 인접한 해군 재경근무지원대대 사무실로 출근 중이다. 마음 급해졌나…어떤 의도? 갑자기? 특검 압박 느꼈나 이 사실은 그가 여러 곳에 자신이 결백하다는 취지의 문서를 내용증명, 등기우편 등으로 보내면서 드러났다. 등기 봉투의 발신지는 화랑대연구소였으나 배송 조회 결과 실제 발신지는 서울 신길7동 우편취급국이었다. 임 전 사단장이 거주 중인 서울 관사 인근이다. 발송 시간도 대부분 일과시간 직전이나 일과 중이었다. 임 전 사단장은 언론을 통해 “연수 초기에 육사에서 주로 근무했으나 장거리 출퇴근 비효율적이라서 최근엔 해군재경대대서 근무 중이다. 근무 장소 중 하나가 해군 재경대대”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정책 연수의 일시와 출퇴근 시간 및 장소가 명령으로 특정된다. 인사명령의 지정된 장소서 지정된 출퇴근 시간을 준수해야 한다”며,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인사명령이나 상급기관의 지휘관에게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최근 자주 번호를 변경하는 임 전 사단장의 핸드폰을 압수수색해 무단이탈한 장소와 상급지휘관인 해병대 사령관에게 정식으로 사전에 허가를 받았는지에 관한 진실을 밝혀 강력히 처벌해 달라는 취지”라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임 전 사단장이 해병대 간부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행동이 증거인멸 시도로 볼 수 있다”며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기 위해 메시지를 보내며 같이 책임을 면하자는 회유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공수처는 지난 1월부터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와 경찰 이첩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에 대해 강제수사를 착수해 왔다. 박 대령에게 사실확인요청서를 보낸 것에서 임 전 사단장이 적극적인 책임 회피에 나섰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현재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권서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자 조용했던 임 전 사단장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부적절한 처신 한 해병대 간부는 “전우의 죽음 이후 형평성에 어긋나거나 석연치 않은 윗선의 처리는 진상규명 문제를 떠나 정치권 개입을 불렀다”며 “도의적 책임도 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일부 작자들의 행동으로 인해 해병대 전체의 명예가 실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임 전 사단장은 <일요시사>가 사건 관계인에 연락한 이유에 관해 묻자 "사건 관계인에게 연락한 것은 사실 확인을 위한 것일 뿐"이라고 답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